411 화
강진이 주방을 볼 때, 이호남이 말했다.
“사장님께서는 음식 만드는 것 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승식당 을 그만두면서 귀신들한테 미안 해하는 것도 있어서 장례식장에 들어가는 음식에 공을 들이십니 다.”
“엄마가 남아서 일 도와주고 하 니까 저년이 그거 노리고 자기가
수당을 챙기더라고요. 나쁜 년!”
이호남의 말에 강진이 주방을 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수당은 저 여자가 챙기 고 일은 사장님이 한다는 거군 요.”
“맞아요. 그리고 엄마가 일 잘 하니까 잡일도 막 맡기고. 사람 을 무슨 호구로 안다니까요.”
“보니 일하러 오는 사람 한 명 도 가짜로 명의만 올려놓고 그 월급도 자기가 챙기는 것 같더군
요.”
이호남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 그렸다.
“아니, 그게 안 걸립니까?”
“뭘 안 걸리게 했는지 안 걸리 더군요. 그리고 저 여자뿐이 아 닙니다. 다른 아줌마들도 앞에서 는 언니 고생한다 어쩐다 하면 서, 일 있다면서 먼저 퇴근해 버 리는 식으로 사장님한테 일 맡겨 버리고.”
한숨을 쉰 이호남이 강진을 보
았다.
“사장님 여기서 더 일하시다가 는 몸이 못 버팁니다. 여기를 그 만두셔야 사장님이 사십니다.”
“요즘은 집에 가서 계속 끙끙거 리면서 앓으세요.”
이호남과 차연미의 말에 강진이 주방을 보다가 말했다.
“퇴근 몇 시인가요?”
“원래는 세 시인데……
일을 더 하신다는 말이군요.
수당도 없이요.”
“오후 근무자들 들어와서 저녁 준비할 때 장례식장 음식도 만들 어야 하거든요.”
이호남이 답에 강진이 시계를 보았다.
“2시 30분.”
시간을 확인한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 시간에 제가 모시고 가겠 습니다.”
“그래 주시겠어요?”
차연미의 말에 강진이 재차 고 개를 끄덕이자, 이호남이 걱정스 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사장님이 안 가시려고 하실 텐데.”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호남과 차연미가 서로를 보고는 주방으로 들어갔 다.
그 모습을 보던 배용수가 말했 다.
“어쩌려고?”
“생각이 있어.”
“안 가실 것 같은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남은 밥을 마저 먹었다.
“맛없다며?”
“음식 남기면 지옥 가서 남긴 음식들 다 먹어야 한다고 하더 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식을 몇 점 집어
먹었다.
강진의 입에는 그냥저냥이지만 배용수의 입에는 먹을 만한 것이 다.
3시가 되자 일하던 직원들이 고 무장갑을 벗기 시작했다.
“수고하셨어요.”
“수고했어.”
사람들이 주방을 나서자 영양사 가 차달자를 보았다.
“정리해야죠.”
“네.”
차달자도 퇴근할 시간이지만 고 무장갑을 벗지 않은 채 다음 해 야 할 일을 먼저 하기 시작했다.
그 人}이, 다른 직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언니.”
“왔어?”
교대자들이 들어오는 것에 차달 자가 웃을 때, 배식구로 강진이
고개를 내밀었다.
“지금은 배식하지 않아요.”
영양사가 자신을 보고 하는 말 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밥 먹으러 온 것 아닙니다. 차 사장님.”
강진의 부름에 영양사가 그가 누구를 부르나 싶어 고개를 갸웃 거렸다. 주방에 사장님이라고 불 릴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때 차달자가 강진을 보고는 웃었다.
“아직 안 갔어요?”
“퇴근하셔야죠.”
“아…… 난 일 더 해야 하는 데.”
“저하고 가실 곳이 있어요. 나 와 보시겠어요?”
강진의 말에 영양사가 눈을 찡 그리며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차달자 씨 일 해야 하는데 가기는 어디를 가 요?”
“3시까지 근무고 퇴근 아닙니 까?”
“차달자 씨는 잔업이 있어요.”
“그럴 리가요? 제가 알기로 차 사장님 잔업 아닌 걸로 아는데?”
강진의 말에 영양사가 눈을 찡 그렸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차 달자가 굳이 잔업을 해야 할 이 유는 없었다.
이름만 올려놓은 사람의 몫까지 해야 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 다.
“차달자 씨.”
더 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듯, 영양사가 채근하듯 부르자 차달 자가 부엌을 나와 강진에게 다가 갔다.
“사장님 왜 그래요?”
“저하고 같이 가시죠. 저희 가 게에서 일하세요.”
“말은 고마운데 나는 여기서 일 하는 것이……
“좋으시죠?”
“네.”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사장님 마음이 어떤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강진이 영양사 를 보았다. 강진의 시선에 영양 사가 그를 마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강진이 말했 다.
“사장님이 여기서 일하면서 받 지 못하는 수당들, 저 영양사가
다 챙겼을 겁니다.”
“뭐라고요!”
자기 들으라는 듯 하는 말에 영 양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높 이자, 주방에 있던 사람들이 모 두 그녀를 보았다.
식사 시간이 끝나 조용해진 터 라 영양사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들린 것이다.
“당신 지금 뭐라고 하는 거예 요.”
영양사의 말에 강진이 차달자를
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아시죠? 이승과 저승 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야 알죠.”
“그럼 남을 속이고 돈을 가로챈 사람들이 받는 형벌도 아시죠?”
“그건......"
차달자가 말을 잇지 못하자, 강 진이 말했다.
“사장님이야 음식 하는 것이 좋 고, 다른 귀……
귀신이라는 말을 하려던 강진이 말을 돌렸다.
“다른 사람들에게 음식을 해 주 는 것이 좋아서 일을 더 하셨겠 지만, 저분은 그것을 이용해 사 장님이 받아야 할 수당과 월급을 챙겼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영양사를 보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이야 돈에 눈이 멀어 차 사장님을 이용하며 속으로 비웃 겠지만, 죽으면 그게 다 죄가 돼 서 지옥에서 벌을 받게 됩니다.
도둑질을 하거나 빌려 간 물건을 갚지 않은 자들이 가는 화탕지옥 에서 똥물에 튀겨지거나, 상도에 어긋나는 일을 했으니 거해지옥 에서 사지가 톱으로 잘려나가는 형벌을 받을 겁니다.”
“다…… 당신 지금 무슨 개소리 를 하는 거야!”
영양사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 굴로 소리치자 강진이 물었다.
“차 사장님의 수당을 제대로 주 셨습니까?”
“그건…… 차달자 씨가 그냥 일 만 하게 해 달라고 했어!”
“그럼 차달자 씨 앞으로 나온 수당은요?”
“당신이 알아서 뭐하게!”
영양사의 고함에 강진이 차달자 를 보았다.
“사장님의 마음이 어떠하든, 사 장님의 마음을 이용해 저 사람은 죄를 짓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지옥 가는 게 사장님이 원하시는 것입니까?”
“그게, 나는……
머뭇거리는 차달자를 보며 강진 이 슬며시 주방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고는 차달자에게만 들릴 목 소리로 속삭였다.
“영양사뿐만이 아닐 겁니다. 사 장님에게 일을 맡기며 자신의 편 리함을 추구한 사람들도 죄를 짓 고 계신 겁니다.”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슬며시 주방을 보았다. 주방에서 일하는
이들과 자신은 친했다.
힘들 때 자신을 도와준 이들도 있고, 아픈 자신에게 약을 사다 준 정 많은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귀찮은 일이나 급한 일이 있을 때 자신에게 일을 미 룬 이들도 있다.
저들이 자신을 이용했다고 생각 하기는 싫었다. 그저 자신이 편 해서 그랬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강진의 말이 옳다. 그들 이 자신에게 부탁하며 했던 말들
이 거짓이고, 그로 인해 이익을 얻고 몸이 편해졌다면 그것 역시 저승에서 처벌을 받을 죄가 될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죄는 영양사가 받 겠지만…….
잠시 있던 차달자가 한숨을 쉬 었다.
“알겠어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차달자가 주방으로 들 어가서는 영양사에게 고개를 숙
였다.
“저 퇴근하겠습니다.”
“아니, 아줌마! 지금 무슨 소리 예요! 일 안 해요?!”
“저 퇴근 시간입니다.”
“아니, 지금 이렇게 가면 여기 일은 누가 해요.”
버럭 고함을 지르는 영양사의 모습에 차달자가 재차 고개를 숙 이고는 말했다.
“가 보겠습니다.”
“내일부터 안 나올 생각이면 가 요!”
영양사의 말에 차달자가 그녀를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 를 저었다.
“제가…… 죄송합니다.”
그만두라고 하니 사과를 한다고 생각한 영양사가 고개를 끄덕였 다.
“죄송한 줄 알면 일해요.”
“아니…… 그런 것이 아니
라……
차달자가 영양사를 안쓰러운 눈 으로 보았다.
“제가 잘못 생각해서 영양사님 이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죄 송합니다.”
“네?”
“오늘까지만 일하고 내일부터는 안 나오겠습니다.”
“아니 아줌마, 이대로 가면 어 떻게 해요?”
차달자가 고개를 다시 한 번 숙 이고 몸을 돌리자, 영양사가 급
히 말했다.
“알았어요. 오늘은 그냥 가고 내일부터는 다시 열심히 일해 요.”
“아닙니다. 오늘까지만 하겠습 니다.”
“아니, 이대로 가면 내 차 할부 는 어떻게……
말을 하던 영양사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차달자의 수당만 믿고 이번에 새 차를 산 것을 얼떨결 에 반쯤 실토해 버린 것이다.
그 모습에 차달자가 영양사를 보며 다시 한숨을 쉬었다.
“지금이라도 착하게 살아요. 저 승 가면 무척 힘들어요.”
“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 는.. ”
차달자가 주방 한쪽에 있는 문 으로 가자, 영양사가 급히 그 뒤 를 쫓아갔다.
“차달자 씨, 잠시 나하고 이야 기 좀 해요. 아니, 이모! 이모!! 나하고 이야기 좀……
차달자의 뒤를 부리나케 쫓아가 는 영양사의 모습에 주방 사람들 이 작게 투덜거렸다.
“어휴, 진짜 언니 수당 가지고 차를 뽑은 거야?”
“세상에 무슨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이거 위에 찔러야 하는 것 아 냐?”
“놔 둬. 괜히 그러다가 우리한 테 불똥 튀기면 어떡해. 이런 직 장 구하기도 쉽지 않아.”
“에이! 몹쓸 사람 같으니.”
“그나저나 언니 그만두면 일 힘 들어지 겠네.”
“그러게…… 언니가 힘든 일 많 이 해 줬는데.”
“당장 밥은 누가 해?”
수백인 분의 밥을 하는 것은 무 척 힘들었다. 씻어야 하는 쌀의 분량과 무게가 어마어마한 것이 다.
그래서 늘 차달자가 밥을 했는 데 이제는 자신들이 하게 생긴
것이다.
밥 이야기가 나오자 아주머니들 이 서로를 한 번 보고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자신들이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괜히 밥이라는 말을 했다가 자 신이 밥을 할 수도 있으니 말이 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 힘드셨겠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이
호남이 급히 다가왔다.
“사장님이 병원 뒷문에서
네요.”
“대화를 어떻게?”
“저희 말이야 사장님이 못 만, 사장님이 하는 말이야 가 들으니까요.”
이호남이 환하게 웃으며 말에 강진이 말했다.
뵙자
듣지
저희
하는
“뒷문으로 어떻게 가면 됩니 까?”
“이쪽으로 오세요.”
이호남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 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호남의 안내를 따라 후문으로 나온 강진은 잠시 후 차달자가 가방을 메고 오는 것을 볼 수 있 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영양사가 뭔 가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모 이렇게 그만두면 어떻게
해요.”
“아니에요.”
“아니라고 하지 마시고요. 그럼 며칠 쉬시고 다시 나오는 거로 하세요. 제가 휴가로 바꿔 놓을 게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번에 좀 쉬세요. 하긴, 우리 이모 쉴 때가 되기는 했죠. 그동안 하루도 안 쉬셨잖 아요.”
“괜찮습니다.”
어떻게든 차달자를 다니게 하려 고 설득하는 영양사의 모습에 강 진이 입맛을 다셨다.
“죄를 저렇게 지어서 어쩌려 고……
“그러게 말이다. 나중에 우리 가게에 손님으로 오면 음식 맛없 게……
말을 하던 배용수가 입맛을 다 시고는 말을 바꿨다.
“조금만 주자.”
손님이 아무리 미워도 요리사가
음식을 맛없게 하는 것은 자존심 도 긍지도 저버리는 것이니 말이 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서둘러 차달자에게 다 가갔다.
“가방 저 주세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가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영양사를 한 번 보았다. 그 시선에 더는
따라오지 못하게 된 영양사가 급 히 말했다.
“이모, 이따가 내가 전화할게 요.”
영양사의 말에 차달자가 한숨을 쉬고는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