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화
차달자를 안아 준 김소희가 미 소를 지으며 탁자에 놓인 음식들 을 보았다.
그중 육개장과 김치볶음을 본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내 자네가 만든 파가 듬뿍 들 어간 육개장이 그리웠는데 오늘 마음껏 먹을 수 있겠군.”
김소희의 말에 차달자가 급히 빈자리로 그녀를 안내했다.
“아가씨, 어서 앉으세요.”
“그래. 고맙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김소희가 차연미와 직원들을 보 았다.
“달자 옆을 지켜주어 고맙구 나.”
김소희의 말에 변대두가 고개를 숙였다.
“처음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변대두입니다.”
김소희가 차달자의 가게에 드나 들었지만, 귀신들은 김소희가 오 면 알아서 자리를 비워주곤 했 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이렇게 마 주한 것은 처음인 것이다.
변대두의 인사에 이호남과 차연 미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 다.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지만, 차 달자에게 김소희에 대한 이야기 를 자주 들었기에 공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들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며 김소희가 자리에 앉았다.
그에 강진이 말했다.
“음식은 어떻게 해 드릴까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탁자를 보았다. 탁자에는 육개장과 김치 볶음, 그리고 전들이 놓여있었다.
“두부 있으면 좀 주게. 김치볶 음을 보니 두부와 먹으면 맛이 있겠군.”
“알겠습니다.”
“그리고 술은 막걸리로 주게 나.”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주전자에 다 막걸리를 담아서는 가지고 나 왔다.
“두부는 따뜻하게 만들어야 하 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냥 주게.”
“차가우실 텐데요.”
“따뜻해도 두부고, 차가워도 두 부일세. 차가우면 차가운 대로 맛이 있으니 괜찮네.”
김소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냉장고에서 두부를 꺼내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가지고 나왔다.
“두부입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젓가락으 로 두부 한 점을 반으로 잘라 입 에 넣고는 차달자를 보았다.
“자네가 만드는 두부가 생각이 나는군.”
“다음에 해 드리겠습니다.”
김소희의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강진이 차 달자를 보았다.
“두부도 만드세요?”
“네.”
“두부 만드는 것 어렵지 않아 요?”
“어렵지 않아요.”
“그래요? TV 보면 손 많이 가 는 것 같던데?”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미소를 지었다.
“어떤 음식이든 손이 많이 가기 는 하지요. 두부는 정성과 시간 이 만드는 음식이에요.”
“정성과 시간이라…… 좋은 말 이네요.”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물었 다.
“그럼 저희도 두부를 만들어 볼 까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도 될까요?”
“자주 만드는 건 손이 많이 가 서 힘들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특식으로 만들어서 손님들 하고 먹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무 좋지요. 두부 전골 도 아주 맛이 좋답니다.”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대신 적당히 하시는 겁니다. 몸에 무리가 되지 않게요.”
“알겠어요.”
그녀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강 진이 자리에 앉았다.
“식사하시죠.”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모두 김 소희를 보았다. 평소 같다면 귀 신들이 진작 먹고 마시며 떠들 테지만, 김소희가 있으니…… 눈 치를 보는 것이다.
그런 귀신들의 모습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편히들 드시게.”
김소희의 말에 귀신들이 그제야 음식을 먹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런 귀신들을 보던 김소희가 차 달자를 보았다.
차달자는 살짝 놀란 눈으로 강 진을 보고 있었다. 여전히 서 있 는 차달자의 모습에 김소희가 빈 자리를 가리켰다.
“자네도 앉으시게.”
“제가 어찌 아가씨와 같은 자리 에 앉겠습니까.”
차달자가 놀란 눈으로 강진을
본 이유는 그가 김소희의 앞에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식당을 할 때부터 지금 까지, 그 누구도 김소희와 겸상 을 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차달자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렇게 막힌 사람은 아니 네. 괜찮으니 자리하시게.”
“그래도 될지……
“그래도 되니 앉으시게나.”
김소희의 말에 차달자가 그녀를 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강진의 옆 에 자리했다.
“아가씨께서 좀 변하신 듯합니 다.”
“시대가 변하였는데 나 혼자 조 선에 멈춰 있을 수는 없는 일 아 니겠는가.”
말과 함께 김소희가 주전자를 들며 내밀자, 차달자가 급히 양 은그릇을 들었다.
쪼르륵!
김소희에게서 막걸리를 받은 차 달자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제가 아가씨에게 술을 받을 줄 은 생각을 못 하였습니다.”
“앞으로 종종 같이 마시도록 하 세.”
말을 하며 김소희가 그릇을 들 었다. 그에 차달자가 살며시 잔 을 부딪치고는 고개를 돌려 술을 마셨다.
그런 차달자를 보며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신 김소희가 입을 열
었다.
“작년에 보니 영양사가 자네를 힘들게 하는 것 같던데.”
“그것을 어떻게……
“내 자네가 걱정되어 가끔 들여 다보았다 하지 않았는가.”
“못난 모습을 보여 드려 송구합 니다.”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차달자를 보며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 못난 모습일 이유가 있나. 자네는 그 저 열심히 일했을 뿐이네. 다 만…… 그런 자네를 이용한 그 여아가 잘못됐을 뿐.”
차달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영 양사 일을 생각하면 그 잘못이 자신의 책임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 차달자를 보며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내 그 꼴이 보기 싫어 남자 하 나와 연을 맺게 했는데 잘 되었
나 모르겠군.”
김소희의 말에 차달자가 그녀를 보았다.
“저희 병원 의사 선생님하고 연 애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아가씨께서 엮어 주신 것인지 요?”
“짚신처럼 짝이 될 자가 보여 엮어 주었는데…… 잘 엮인 모양 이군. 잘 되었어.”
고개를 끄덕이며 김소희가 막걸 리를 마시는 것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저기…… 그런 사람을 왜 의사 하고 엮어 주신 건가요? 의사면 그 영양사한테 좋은 일 아닌지 요?”
“둘이 어울렸네.”
“어울려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김치볶 음을 집어 입에 넣고는 천천히 씹었다.
입에 무언가가 있을 때는 말을 하지 않는 그녀였다. 그렇기에
강진은 그녀가 다 먹기를 조용히 기다리면서도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의사면 신랑감으로는 최고일 텐데..
직업으로 사람을 가늠하면 안 되겠지만, 종합 병원 의사면 사 회적이나 경제적으로나 빠질 것 이 없었다.
그런 사람을 하필 그 영양사와 엮어줬다니 의아한 것이다.
잠시 후, 김소희가 김치를 삼키
고는 입가심으로 막걸리를 한 모 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같은 것 이 하나 있네. 그것이 뭔지 아는 가?”
“글쎄요?”
“사람의 겉을 무척 중시한다는 것이네.”
“그야…… 그렇지요.”
강진의 답에 김소희가 말했다.
“물론 겉보기를 무시하는 것도
좋지 않네. 조선이 선비의 나라 이고, 선비는 예를 중시하는 법 이네. 또한 예의 시작은 자신을 정갈히 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에 서 시작하는 것이니, 늘 단정하 고 깨끗함을 중시해야 하네. 허 나 깨끗함을 넘어 화려한 외면을 중시하는 것은 예를 넘어선 일이 네.”
조선 시대로 넘어가는 이야기에 강진이 다소 의아해하면서도 경 청하자 김소희가 말을 이었다.
직업이 무엇인지, 어떠한 옷을
입었는지로 사람을 가늠하는 것 은 좋은 일이 아닐세.”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소 희가 말했다.
“허나 누구나 아는 것처럼 사람 은 외형도 중요하지만 내면만큼 중요하지는 않네. 좋은 비단옷을 입었다 해도 속에 사갈(姓빼)이 들어 있다면 그이를 어찌 좋은 사람이라 하겠는가?”
“그럼 혹시 그 의사분이?”
없는 집에서 태어나 열심히 노
력해 사람을 살리는 직업을 얻었 으니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을 것인데…… 못 살았던 자신의 과 거를 지우기라도 하겠다는 것처 럼 외형을 중시하고, 허영이 속 에 가득 차 있으니 좋은 사람이 라 하기는 어렵네. 또한……
잠시 말을 멈춘 김소희가 입맛 을 다셨다.
“부모를 우습게 여기니 싹수도 없지.”
“쉽게 말해서 좋은 사람이 아니 라는 것이네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흔히 말하는 카 푸어라 할 수 있네.”
“카 푸어? 아가씨께서 카 푸어 라는 말도 아십니까?”
“조선시대 귀신이라 해서 귀를 막고 사는 것은 아니라네. 겉은 멀쩡하고 속은 빈 자를 카 푸어 라 하지 않는가.”
정확히 같은 말은 아니지만…… 의미가 비슷하기는 했다.
빚을 내서 외제 차와 같은 고급 차를 끌고 다니는 자들은 속이 비기 마련이니 말이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결론은 카 푸어와 카 푸어가 만난 거네요.”
영양사도 차달자를 통해 받을 돈을 생각해서 할부로 차를 샀으 니 말이다.
“그런 셈이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의사 선생 차는 뭔데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잠시 멈 칫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외형에 중시하는 사람 같 은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속으로 웃었다. 그녀는 의사 선생이 타 는 차가 뭔지는 모르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 닙니다. 그리고 저도 차에 대해 서는 잘 몰라요.’
“한잔하시지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잔을 들 어 가볍게 부딪히고는 차달자를 보았다.
“자네는 이만 일어서게나.”
“네? 제가 무슨 실수라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차달자를 보며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식구들과 오랜만에 이런 자리 를 한 것일 터인데 내가 잡고 있 으면 되겠나? 자네 가족들과 함 께하게나.”
김소희의 말에 차달자가 차연미
가 있는 자리를 보았다. 차연미 와 가족들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에 차달자가 미소를 지으며 자 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차달자의 말에 김소희가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하네.”
김소희의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숙였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 다.”
차달자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걸리를 마셨다. 그 에 차달자가 가족들이 있는 곳으 로 가 앉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 차달자를 보던 강진이 김 소희를 보았다.
“이모님 오신 것 알고 오신 거 였군요.”
“반가운 마음에 오게 되었네.”
“그런데 통영에서 오신 건가 요?”
“그렇네.”
“통영에서 여기 있는 이모님 기 운을 느끼시고요?”
대단하다는 듯 자신을 보는 강 진에게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런 김소희에게 강진이 문 득 물었다.
“전에 예림이가 북한으로 튕겼 을 때는 기운을 못 느끼지 않으 셨습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잠시 멈 칫하다가 입을 열었다.
“예림이는 그때 잠시 스친 인연 이 아니었나. 내 아무리 대단하 다 해도 잠시 스쳐 간 인연의 기 운까지 살필 수는 없는 일이네.”
“아! 그러셨군요.”
“나나 되니 북한에서 예림이를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이네.”
“정말 대단하십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보다가 주전자 를 들었다.
그에 강진이 남은 막걸리를 단
숨에 마시고는 잔을 들었다.
쪼르륵!
“달자가 앞으로는 여기에서 지 내는 것인가?”
“저 혼자 영업하기 힘들어서 모 셨습니다.”
“잘 하였군.”
고개를 끄덕이며 주전자를 내려 놓은 김소희가 말했다.
“내 달자가 걱정이 되었는데 여 기에 있으니 마음이 놓이네. 좋
은 일 하였네.”
“아닙니다. 이모님이 계셔서 제 가 도움을 많이 받을 것 같습니 다.”
“며칠 동안은 처녀 귀신들이나 총각 귀신들이 종종 올 것이네.”
“이모님 기운 느끼고요?”
“달자의 밥을 먹은 귀신은 나 혼자가 아니니 말이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손님들이 많이 늘겠네요.”
사람 손님뿐만 아니라 귀신 손 님도 늘면 저승식당으로서는 좋 은 일이었다.
“한 잔 드시지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잔을 들 어 가볍게 부딪히고는 막걸리를 마셨다.
강진도 뒤따라 막걸리를 마시며 차달자 쪽을 보았다.
차달자는 연신 기분 좋은 미소 를 지으며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
누고 있었다.
‘이모님,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 요.’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김소희 를 보았다. 그녀도 살짝 미소를 지은 채 차달자를 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소희를 보니 강진은 기분이 좋았다.
‘소희 아가씨도 이모님 오셔서 좋은 모양이네.’
평소 잘 웃지 않는 김소희가 오
늘은 여러 번 미소를 지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