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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419화 (417/1,050)

418화

강진은 다소 좋지 않은 안색을 한 채 1층으로 내려왔다.

“끄웅!”

작게 신음을 토하는 강진의 모 습에 배용수가 그를 보았다.

“속 괜찮아?”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작게 저었다.

“속 안 좋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어제 술 많이 먹더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밤 차달자를 보고 기분이 좋아진 김소희가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셨다. 그 덕에 앞에서 같 이 마시던 강진도 페이스가 올라 가서 평소보다 좀 더 많이 마시 게 된 것이다.

게다가 어제는 막걸리를 마셨던 터라 뒤끝도 안 좋았다. 강진이

머리를 부여잡은 채 의자에 앉 자, 배용수가 주방에서 국그릇을 들고 나왔다.

“일단 이것부터 먹어라.”

“뭔데?”

“콩나물에 황태 넣고 끓인 거 야.”

“고맙다.”

강진이 수저를 들고는 국을 보 았다. 마치 사골곰탕처럼 하얀 육수에 황태와 콩나물, 그리고 계란이 몽글몽글하게 담겨 있었

다.

“고춧가루 안 넣었어?”

“어제 너 먹는 것 보니까 속 많 이 안 좋을 것 같아서 안 넣었 어. 고춧가루 넣으면 자극적이니 까.”

강진은 자신의 속을 걱정해준 그가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아쉬 웠다.

“맵게 먹어야 속 풀리는데.”

“그것도 적당히 취했을 때 고…… 숙취 심할 때 먹으면 자

극돼서 토하기만 한다.”

배용수가 국그릇에 숟가락을 담 가 주었다.

“일단 잡수기나 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저로 국물을 떠서 먹었다.

후루룹!

“하아아아! 너무 좋다.”

국물을 마신 강진의 입에서 탄 성이 터져 나왔다. 단단하게 얼

어붙은 위가 따뜻하게 풀리는 느 낌을 받아 그런 것이었다.

“좋아?”

“아주 좋다.”

다시 국물을 마신 강진이 배용 수를 보았다.

“그런데 사골 육수로 끓인 거 야?”

사골 육수처럼 고소하면서도 구 수한 맛에 조금 걸쭉하기에 물은 것이다.

“황탯국에 무슨 사골 육수.”

“그런데 뭐가 이렇게 뽀얗지? 그리고 사골국처럼 진한데?’’

“여섯 시간 동안 황태를 우려서 그래.”

“황태를 우렸는데 이런 색이 나 와?”

“강원도 유명한 황태 해장국 집 에선 24시간 동안 우리기도 해. 그건 거의 우윳빛이 나지.”

“황태를 그렇게 오래 우리는구 나.”

황태 해장국은 길어야 20분 내 외의 요리라 생각을 했던 강진은 살짝 놀랐다.

어쨌든 강진은 술로 엉망이 된 속을 황태 해장국으로 달랬다. 몽글몽글하고 부드러운 계란 덩 어리를 삼킨 강진이 미소를 지을 때, 배용수가 말했다.

“괜찮지?”

“너무 좋다.”

강진의 답에 배용수가 말을 이 었다.

“너무 술을 많이 마셨을 때는 자극적인 것보다 이런 것이 괜찮 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강진을 보던 배 용수가 가게 문 쪽을 한 번 보더 니 말했다.

“민성 형 곧 올 거다.”

“형이 왜?”

“이거 정성이 많이 들어간 음식 이야.”

“6시간 끓였으면 그렇겠지.”

“이런 걸 너만 먹을 수 있냐? 그래서 형한테 아침에 여기서 먹 으라고 했어. 마침 형도 어제 술 많이 마셨다고, 잘 됐다고 하더 라.”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물었다.

“이모님은?”

어제 차달자도 술을 많이 마신 것이다.

“이모님이야 이호남 씨가 어련 히 식사 챙겨 드리지 않겠어? 어

제 보니 식재도 몇 개 챙기는 것 같던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이호남이 미안하다고 하면서 식 재 몇 가지와 일회용 비닐장갑을 챙겨 갔던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며 국을 먹자 속 이 개운해진 강진이 마지막으로 국물을 그릇째 쭈욱 들이켰다.

꿀꺽! 꿀꺽!

시원한 국물을 연신 들이켤 때

문이 열렸다.

띠링!

곧 황민성과 오 실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오셨어요?”

강진의 인사에 손을 들던 황민 성이 웃었다.

“네 덕에 내가 해장국을 먹나 보네?”

“네?”

“너 얼굴 폐인 그 자체다. 어제

술을 얼마나 많이 마신 거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었 다.

“저 얼굴 많이 안 좋아요?”

“많이 안 좋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국물을 한 번 더 마시고는 말했 다.

“어제 저희 새 가족 모셨거든 요. 그래서 좀 많이 마셨습니다.”

“새 가족?”

“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작게 말했다.

“이쪽? 아니면 용수 쪽?”

사람이냐 귀신이냐는 물음이었 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두 쪽 다요.”

“두 쪽 다?”

의아한 듯 되물으며 자신을 보 는 황민성에게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에 황민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사람 직원 써도 되는 거 야?”

“이쪽 일 잘 아시는 분이세요 점심이나 저녁에 한 번 오세요. 소개해 드릴게요.”

“궁금하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일어났 다.

“식사 챙겨 드릴게요.

“용수가 사진 찍어 보냈는데 맛 있어 보이더라. 기대가 커.”

“기대하신 만큼 맛있을 거예 요.”

그러고는 강진이 오 실장을 보 았다.

“실장님도 같이 드세요.”

“저는 아침 먹었습니다.”

“그럼 맛이라도 보세요. 강원도 에서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 입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 실장을 보았다.

“실장님도 앉으세요. 할 이야기 도 있고요.”

“이야기라 하시면……

“별것 아니니까 긴장하지는 마 시고요.”

황민성의 말에 오 실장이 더는 사양하지 않고 앞에 앉았다. 그 사이 부엌으로 들어간 강진은 배 용수가 준비한 음식들을 쟁반에 올렸다.

그러고는 강진이 힐끗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는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 있었다.

치이 익!

부드럽게 익어가는 계란을 이리 저리 흔들며 타지 않게 익히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나는 계란 프라이 안 주더만.”

“너도 같이 먹던가.”

“칫! 나는 안 주고 민성 형만 주고…… 질투 나.”

강진이 슬며시 배용수의 허리에 손을 대자, 배용수가 눈을 찡그 리며 그를 보았다.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소름 돋는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쟁반을 들고는 홀로 나왔다.

음식들을 테이블에 하나씩 놓은 강진이 오 실장 앞에도 국과 밥 을 놓았다.

“식사하셨다고 해서 밥은 조금 만 떴습니다. 혹시 더 드시고 싶

으시면 말씀하세요.”

“고맙습니다.”

고개를 숙인 오 실장을 보던 황 민성이 국물을 떠서 한 입 먹고 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불쾌함이 어린 찡그림이 아니 라, 숙취로 굳은 속이 풀리면서 나오는 그런 기분 좋은 찡그림이 었다.

“크윽! 좋다.”

“저도 먹었는데 좋더라고요.”

“속이 부드럽게 화악 풀린다. 칼칼하지도 않은데 너무 좋다.”

웃으며 황민성이 국물을 쭈욱 마시고는 말했다.

“국물 좀 더 줘.”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주방에서 국물을 더 담아 와서 부어주었 다.

“실장님의 입에는 맞으세요?”

“아주 맛이 좋습니다.”

오 실장이 웃으며 하는 말에 황

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보았다.

“이런 해장국은 술을 마신 다음 날에 먹으면 맛이 더 각별한 데…… 오 실장님은 저와 일하는 동안 술을 못 드셨지요.”

“운전하는 사람이 술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되지요.”

오 실장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 를 끄덕였다. 황민성이 필요한 날과 시간에 대기를 하다가 운전 을 해야 하기에 오 실장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물론 설과 추석에는 휴가를 받 아 술을 마실 수도 있지만 그 외 에는 술을 하지 않았다.

황민성이 언제 어느 때 자신을 부를지 알 수 없으니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그런 오 실장을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장인어른이 오 실장님을 소개 해 주고 난 후 십 년 정도 된 것 같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오 실장이 웃으 며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 덕에 죽지 않고 열심히 살게 됐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오 실장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 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오 늘 젊은 친구 한 명 면접을 봅니 다. 면접에서 통과하면 오 실장 님이 잘 가르쳐 보십시오.”

황민성의 말에 오 실장의 얼굴

이 살짝 굳어졌다.

“사장님, 제가 무슨 실수라 도……

“아! 제가 말실수를 했군요. 오 실장님 그만두라는 것이 아닙니 다. 오 실장님 없으면 제가 어떻 게 안심하고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십시 오. 아니, 오히려 오 실장님 그만 두면 어쩌나 제가 걱정을 해야 할 판입니다.”

“아…… 네.”

오 실장이 안도의 한숨을 작게 쉬었다. 황민성의 차를 모는 것 은 사실 고된 일이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황민성의 곁을 지켜야 하니 말이 다.

물론 일이 고된 만큼 업계 최고 의 대우를 받는다. 가끔 사장님 들 운전기사들끼리 모여서 담배 를 피울 때가 있는데, 그때 나오 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자신은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대우를 받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아마 직장인 연봉으로 따져도 최고 수준일 것이었다.

연봉이 높은 것도 있지만, 사실 황민성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가 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어디 노숙 자가 돼 있을 수도 있었다.

황민성은 상사이자 은인인 것이 다.

“그런데 제가 뭘 가르쳐야 하는 지?”

“실장님이 하는 것을 그대로 가 르치면 됩니다. 특히 신뢰를 가

르쳐 주십시오.”

“신뢰?”

“차 안에서 제가 하는 모든 행 동과 통화는 차 안에만 남아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아……

“실장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누 구를 만나고 어떤 대화를 하는지 는 다 극비입니다.”

황민성의 말에 오 실장이 고개 를 끄덕였다.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사실이다.

“이번에 오는 친구 느낌이 좋아 서 면접을 보라고 불렀는데

황민성이 힐끗 강진을 보고는 말을 이었다.

“제 느낌이 늘 맞는다는 법은 없으니 실장님이 옆에서 가르쳐 보시고, 옆에 둘 사람인지 봐 주 십시오.”

“사장님이 고르셨습니다. 좋은 친구겠지요.”

“의리는 있어 보이더군요.”

고개를 끄덕인 황민성이 말을 이었다.

“면접에서 통과한다면 실장님이 밑에 두고 몇 달 일을 가르쳐 보 세요.”

“운전을 가르쳐도 되는 것입니 까?”

“내가 그 친구에 대해 아는 것 은 의리가 있어 보인다 정도입니 다. 그래서 그 친구가 뭘 잘하는 지 모릅니다. 일단 옆에 두고 뭘 잘하나 보려고 합니다.”

“뭘 잘하는지도 모르고 면접을 보라고 하신 것입니까?”

“사람만 쓸만하면 일이야 가르 치면 되니까요.”

황민성의 말에 오 실장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오 실장의 답에 황민성이 웃으 며 말했다.

“그 친구가 면접 통과하면 실장 님 일도 좀 줄어들 것이니 앞으 로는 술도 좀 하고 하십시오.”

황민성의 말에 오 실장이 미소 를 지었다.

“그 친구가 일을 잘 배우기를 바라야겠습니다.”

오 실장의 답에 고개를 끄덕이 던 황민성이 문득 그를 보았다.

“실장님 따님 결혼식 준비는 잘 되고 있습니까?”

황민성의 말에 오 실장의 얼굴 이 살짝 굳어졌다.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오 실장의 작은 목소리에 황민 성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그의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 다름 아닌 오 실장이다. 차를 타고 다니고, 강진의 식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밥을 먹을 때는 그와 둘이 먹을 때도 많다.

그래서 사적인 이야기도 가끔 나눈다. 황민성이 알기로 오 실

장의 딸이 대학교 때 사귄 남자 하고 조만간 결혼하기로 했고, 그전에 상견례를 한다고 했다.

희소식인 만큼 밝아야 할 그의 얼굴이 굳자 황민성은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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