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421화 (419/1,050)

420화

고경수가 들어오는 것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일단 문을 닫았다.

황민성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 다.

“김치찌개 두 개 줘.”

“그런데 오 실장님은?”

“이 친구가 면접 보러 늦게 와 서 실장님은 밥 먼저 먹었어.”

고경수를 가리킨 황민성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실장님은 특별한 일 아 니면 식사 따로 하시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동안 황민성은 늘 혼자 왔고 오 실장은 밖에서 대기하는 일이 많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녁에 술 마 시러 올 때는 황민성이 혼자 왔 고, 식사 때에는 오 실장이 먼저 식사를 하다 보니 황민성 혼자 와서 밥을 먹었다.

일이 바쁘면 끼니를 놓치는 경 우가 많기도 하고, 특히 식사 시 간에 미팅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오 실장은 먼저 식사를 마친 뒤 대기하는 것이다.

사업적인 미팅 자리에 오 실장 이 동석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황민성이 고경수를 보았다.

“늦게 왔어요.”

“점심때 피해서 온 건데…… 죄 송합니다.”

고경수가 바로 사과를 하는 것

에 황민성이 말했다.

“이력서 가져왔어요?”

“네.”

고경수가 이력서를 내미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면접을 회사에서 안 보시고 여 기서 보시는 건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황 민성이 이력서를 보며 말했다.

“내가 하도 배가 고파서, 식사 를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 여기

서 하려고.”

자신의 생각을 읽은 듯한 황민 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 다.

“편한 대로 하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 의자를 뺐다.

“이리 와.”

“저요?”

“네가 괜찮아 보인다고 해서 내 가 말을 걸었으니 너도 같이 봐

야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경수를 보고는 자리에 앉으려다가 멈칫 했다.

강진은 몸을 세우며 황민성에게 말했다.

“여기 있는 분이 앞으로 저와 같이 일하기로 한 차달자 이모님 이세요.”

강진이 차달자를 가리키며 하는 말에 황민성이 급히 자리에서 일 어났다.

“안녕하세요. 황민성이라고 합 니다.”

황민성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것에 차달자도 일어나서는 고개 를 숙였다.

“차달자예요.”

“제가 버릇없는 사람은 아닌데, 손님인 줄 알고 인사를 먼저 드 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식사하세요.”

고개를 숙인 차달자가 슬며시 주방으로 가자, 황민성이 강진에

게 속삭였다.

“평범해 보이시는데? 이쪽은 어 떻게 아시는 분이야?”

저승식당에서 일하려면 평범한 사람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저승식당 전 주인이세요.”

“전 주인?”

“여기는 아니고 충청도에 있는 저승식당 주인이셨는데 사정이 있어서 그만두셨어요. 우연히 만 났다가 이야기 듣고 이모님께 저 좀 도와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아……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 민성이 주방을 보고는 자리에 앉 았다.

그러고는 이번엔 고경수를 보았 다.

“이쪽은 나하고 친한 동생입니 다. 이 친구가 고경수 씨 보고 인상이 참 좋다고 해서 제가 면 접 보자고 한 겁니다.”

“네?”

고경수가 강진을 의아한 듯 보

자, 황민성이 말했다.

“이 친구가 신기가 있어서 사람 을 잘 봅니다.”

“신기요?”

황당한 듯 자신을 보는 고경수 를 보던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 다.

그가 살짝 눈짓하는 것에 강진 이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 다.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제가 신기가 좀 있습니다.”

“아

‘미친놈인가?’라는 말이 절로 나 올 일이지만, 황민성이 친한 동 생이라고 소개를 했는데 그런 말 을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황민성이 하는 말을 들 으니 강진이 자신의 면접관이기 도 했고 말이다.

별말 없는 고경수를 보며 황민 성이 이력서를 가운데에 놓았다.

“같이 보자.”

그에 강진도 같이 이력서를 보

았다.

“나이가 서른셋…… 나이가 꽤 많은데 회사 경력은 인턴 정도뿐 이네요. 그것도 마지막 인턴도 사 년 전이고?”

“네.”

“전공은 토목이라…… 저희 회 사가 투자 회사인 건 아시죠?”

황민성이 이전에 보았던 면접관 들이 자신을 떨어뜨릴 때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하자 고경수가 고개를 숙였다.

“잘 하겠습니다.”

고경수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며 말했다.

“합격.”

황민성의 말에 놀란 고경수가 고개를 번쩍 들고 그를 보았다.

“네‘?”

“일단은 인턴입니다. 삼 개월 동안 하는 것 보고 정직원으로 고용할지 안 할지 결정하겠습니 다.”

“감사합니다!”

너무 쉽게 합격을 해서 이게 꿈 인가 생시인가 싶었지만 어쨌든 합격이다. 물론 그것이 인턴이라 고 해도 고경수에게는 큰 기회였 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황 민성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고 회사 역시 튼튼했다.

면접이 끝나가던 찰나 차달자가 쟁반에 음식을 들고 나오자, 황 민성이 급히 일어나 쟁반을 받아 들곤 음식들을 탁자에 놓았다.

그에 고경수도 급히 음식들을 놓았다. 황민성이 음식을 놓는데 자신이 앉아 있을 수만은 없으니 말이다.

그런 두 사람을 보던 강진이 황 당한 눈으로 황민성을 보았다.

‘이렇게 쉽게 합격시킨다고?’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황민 성이 그를 힐끗 보고는 작게 웃 었다.

‘무슨 생각이시지?’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자리

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식사 를 편히 하도록 자리를 비워 준 것이다.

식사를 마친 황민성이 고경수에 게 말했다.

“여기 맛있죠?”

“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 다.”

고경수가 티슈로 입을 닦으며 하는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 이고는 말했다.

“인터넷으로 저희 회사에 대해 좀 알아봤습니까?”

“네.”

“그럼 저희 회사가 무슨 일 하 는지는 아실 테고……

황민성의 분위기가 조금 차갑게 변하는 것에 고경수가 급히 자세 를 바로 했다.

그런 고경수의 모습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는 있네.’

속으로 중얼거린 황민성이 말을 이었다.

“저희 회사는 투자를 하면 최소 한 몇십억에서 몇백억, 혹은 몇 천억까지 올라갑니다.”

엄청난 액수에 감이 오지 않았 지만, 고경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고경수를 보며 황민성이 말 했다.

“저희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이 런저런 투자 정보를 듣게 될 겁 니다.”

“비밀 주의하겠습니다.”

“한 가지만 지켜요. 회사에서 들은 것을 가족이나 그 누구에게 도 말하지 않는 것…… 이것만 지키면 회사 생활 어렵지 않습니 다.”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혹시라도 어기면…… 퇴사 정 도로는 끝나지 않습니다.”

황민성은 퇴사 후에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 다. 그리고 고경수 또한 묻지 않

았다.

황민성의 싸늘한 눈이 아주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의미 를 담고 있으니 말이다.

그에 고경수가 고개를 숙였다.

“주의…… 아니, 그런 일 없도 록 하겠습니다.”

고경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민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실장님이 그쪽 상관입니다. 앞으로는 오 실장님이 하는 일 배우면 됩니다.”

“오 실장님이면…… 운전하시는 분?”

고경수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혹시 그쪽도 운전기사에 대한 직업적 편견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생각이면 지금 돌아서서 집으로 가세요.”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인지 황 민성의 목소리는 더 차가웠다. 황민성의 말에 고경수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일하던 주유소가 조금 변 두리에 있습니다.”

고경수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시내에 차 대기 힘든 트럭들이 기름을 넣고 주유소 옆 빈 땅에 주차하십니다. 그러다 보니 기사 님들하고 친하게 지냈습니다. 나 이 드신 분들한테는 아버님이라 고 했고, 몇 살 위인 분들은 형 님으로 모시며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부러웠습니다. 아

침에 주유소로 와서 차 가지고 일하러 가시는 분들이 말입니 다.”

잠시 황민성을 보던 고경수가 말을 이었다.

“저와 같은 취준생들은 원하는 직업이 따로 있다 해도, 열심히 일하는 분들의 직업에 편견을 가 질 여유가 없습니다.”

“여유가 생긴다면?”

“주유소에서 일할 때, 그분들이 가면서 ‘수고하세요.’, ‘감사합니

다.’라고 말해주시면 그렇게 기분 이 좋았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 이 되고 싶습니다.”

고경수의 말에 그를 보던 황민 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한테도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군요.”

“그렇게 되도록 노력, 아니 되 겠습니다.”

고경수의 답에 황민성이 재차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잠시 나가 있으세요. 오 실장

님한테 제대로 인사도 하고.”

황민성의 말에 고경수가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를 나갔다.

고경수가 나가자 황민성이 강진 을 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좋은 사람인 것 같네요.”

강진은 고경수가 한 마지막 말 이 마음에 들었다. 강진도 아르 바이트를 할 때 손님의 반말과 툭툭 하는 행동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계산대에 던지는 돈이나 카드에 도 마음이 상했고, ‘야’라는 말에 도 상처를 받았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손님이라고 해도 ‘야, 뭐 어디에 있냐?’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수 없 었다.

하지만 반대로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 존대를 해 주면 기분이 좋았고, ‘수고하세요. 감사합니 다.’라는 말을 들으면 뿌듯하기도 했다.

이는 아주 간단한 말이지만, 이 런 말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면 좋은 사람일 것이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좀 굳은 듯 했지만, 밥을 같이 먹고 난 후에 는 조금 편해져서인지 본성이 보 였고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면…… 내 사람으로 만들 가치는 있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황민성이 자리 에서 일어났다.

“들어가세요.”

강진이 고개를 숙이자 황민성이 지갑에서 만 원을 하나 꺼내 아 크릴 통에 넣고는 가게를 나갔 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식탁을 치 우려 할 때, 차달자가 다가왔다.

“방금 나가신 분은?”

“저와 친한 형이세요. 아! 저 형은 저승식당 영업시간에도 가 끔 와요.”

“저승식당 영업시간에요?”

일반인이 어떻게 그 시간에 올 수 있느냐는 의문이 담긴 눈빛을 본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귀신들에게 영향을 안 받으시 더라고요.”

“아......"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잠시 문 을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힘든 삶을 사시는 분이군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어쩐지 김소희가 황민성 을 보며 하던 말과 비슷했다.

“혹시 뭐 좀 아세요?”

“가끔 귀신한테 영향을 안 받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을 보신 적이 있으세 요?”

“저도 한 분 만난 적이 있었는 데……

차달자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 고는 작게 고개를 저은 차달자가 그릇들을 치우자 강진이 물었다.

“그 좀 안 좋으셨나요?”

“저도 직접 본 건 한 분뿐이라 그렇다 아니다 할 수는 없지 만…… 삶이 힘드시더군요.”

고개를 저은 차달자가 재차 한 숨을 쉬었다.

“귀신과 가까운 사람들 치고 삶 이 편한 분은 없는 것 같아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어쩐지 자신에 대한 말 인 것 같기도 한 것이다.

그녀를 보던 강진이 빈 그릇을 담은 쟁반을 들고는 주방으로 향

했다. 차연미가 쟁반을 받아 싱 크대로 옮기자 강진이 변대두를 보았다.

변대두는 주방 한쪽에 엉덩이를 깔고 여전히 바둑을 두고 있었 다.

그런데 변대두의 얼굴이 무척 심각했다.

“왜 그러세요?”

“이 자식, 급을 속이나 봐.”

“네?”

강진이 보자 변대두가 심각한 얼굴로 수를 놓고는 인상을 썼 다.

“이게 무슨 아마 1단이야.”

“어르신도 아마 1단이시잖아 요.”

“그야 나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고. 어쨌든 이놈 아마 1단이 아니야. 이거 프로 놈의 자식이 못 하는 애들 가지고 놀고 있었 던 거야. 내 이 상도덕도 없는 놈을!”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신중히 펜 을 움직이는 변대두의 모습에 강 진이 힐끗 바둑판을 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하얀 돌과 검은 돌뿐이라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바둑이 재밌나?’

아무것도 모르는 강진이 보기에 는 이게 왜 재밌는지 몰랐다.

그런 와중에도 변대두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신중한 얼굴로 돌을 놓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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