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 화
탓! 탓!
태블릿에서 나오는 바둑 두는 소리만이 식당 안을 채우고 있었 다.
그리고 식당 안에 있는 모든 귀 신들은 조용히 자신들의 일에 집 중하고 있었다.
스윽!
강진이 조심히 일어나서는 변대
두가 보는 태블릿을 보았다. 태 블릿에는 흑돌과 백돌이 빽빽하 게 놓여 있었다.
‘누가 이기는 거야?’
뭘 볼 줄 알아야 누가 이기는 줄 알 텐데, 그러지 못한 강진으 로서는 ‘그냥 돌이 많다.’가 감상 의 전부였다.
승패는 모르겠고, 중요한 건 빨 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변대두가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침묵으로 바둑을 두니, 괜히 신
경 쓰이게 할까 봐 가게 사람이 나 귀신이나 다 조용히 하는 것 이다.
그래서 빨리 끝났으면 했다.
“이겼다.”
상대가 돌을 던지는 것에 변대 두가 작게 한숨을 토하고는 판을 보았다.
〈신의국수: 잘 하시네요.〉
변대두가 바둑판을 보고 있을 때 옆에 뜨는 채팅창에 강진이 말했다.
“여기 상대가 채팅 쳤는데요.”
“채팅?”
“여기요. 이게 상대가 쓰는 글 이에요.”
“아! 채팅.”
강진의 말에 변대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채팅창을 보다가 말 했다.
“나도 채팅 좀 쳐 줘.”
바둑을 두는 것이나 조작 방법 은 여자 귀신들한테 배웠지만, 채팅 치는 것은 아직 잘 모르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채팅 창을 클릭하 고는 말했다.
“뭐라고 쳐 드릴까요?”
“잘 둔다고 하면서 너 아마 1단 아니지, 라고 해 줘.”
변대두의 말에 강진이 채팅을 쳤다.
〈변어르신: 그쪽도 잘 두네요. 근데 아마 1단 아니지요?〉
변대두가 말은 반말로 했지만, 채팅까지 반말로 하기 그래서 강 진이 존대로 바꿔서 적었다.
강진이 채팅을 치자 상대의 채 팅이 올라왔다.
〈신의국수: 그쪽도 아마 1단 실
력이 아닌 것 같은데요.〉
채팅을 본 변대두가 하는 말을 강진이 대신 쳐주었다.
〈변어르신: 저는 오늘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아마 1단입니다. 근데 그쪽은요?〉
〈신의국수: 나는 가끔 머리 식 히려고 합니다. 그래서 급을 안 올리고 있습니다.〉
〈변어르신: 그쪽 실력에 아마 1 단에 있으면 사람들이 너무 불리 한 것 아닌가요?〉
〈신의국수: 머리 식히려고 하는 거라서요. 그래서 지도 바둑 둔 다 생각하고 적당히 급 맞춰서 두고 있습니다.〉
〈변어르신: 나하고 할 때는 지 도 바둑이 아니던데요.〉
〈신의국수: 두다 보니 아마 1단 이 아니신 것 같아서요. 저도 기 력을 올렸습니다.〉
〈변어르신: 그럼 진짜 기력은 어떻게 됩니까?〉
〈신의국수: 글쎄요— 근데 연세 가 어떻게 되세요? 나이 많으실 것 같은데?〉
〈변어르신: 그걸 어떻게 아셨습 니까?〉
〈신의국수: 수 두시는 것이 옛 날 방법이라서요.〉
〈변어르신: 옛날 방법?〉
〈신의국수: 바둑도 유행이 있으 니까요. 이번에는 제가 어르신의
기력을 잘못 생각해서 졌지만 다 음에는 안 질 겁니다.〉
〈변어르신: 전력이 아니었다?〉
〈신의국수: 어르신 실력을 처음 에 알았으면 그에 맞게 뒀을 건 데…… 아마 1 단이라 생각을 해 서 초반에 제가 수를 잘못 뒀습 니다. 그래서 그거 복구하느라 몇 점 깔아주고 한 것과 같죠.〉
〈변어르신: 그럼 한 판 더 어때 요.〉
〈신의국수: 지금은 제가 일이
있어서요. 친추 할 테니 다음에 같이 한 번 더 두시죠. 아! 그리 고 여기 기보라는 곳에 가시면 유명한 대회 기보들 있거든요. 그거 보세요. 어르신 실력이 좋 기는 하지만 바둑도 유행을 알아 야 재미가 더 있으실 겁니다.〉
신의국수라는 이의 글에 변대두 가 미소를 지었다.
“좋은 놈이네.”
웃으며 변대두가 말했다.
“고맙다고 해 줘.”
변대두의 말에 강진이 채팅을 쳐주었다. 그리고 신의국수가 걸 어온 친구 추가를 승낙하자, 신 의국수가 방에서 나갔다.
태블릿을 강진이 내려놓자 변대 두가 입맛을 다셨다.
“아! 담배 피우고 싶다.”
“담배 피우세요?”
“원래 바둑은 담배 피우면서 해 야 더 재밌는 법이지.”
‘그거야 담배 피우는 분들 말이 고요.’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이 혜미를 보았다.
“혜미 씨가 어르신 채팅 치는 방법 좀 알려 주시겠어요?”
“네.”
이혜미가 다가오자 변대두가 태 블릿을 내려놓았다. 그에 이혜미 가 채팅을 치는 방법을 알려주었 다.
“호오! 그리 안 어렵네.”
“어르신은 이런 것 잘 다루시네 요.”
“내가 이래 보여도 한국에서 컴 퓨터를 가장 빨리 배운 사람들 중 하나야.”
웃으며 변대두가 채팅창을 클릭 하고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상 대가 이미 나가 의미는 없지만, 연습 겸 쳐보는 것이었다.
채팅을 연습하던 변대두가 기보 라는 곳에 들어갔다가 눈을 찡그 렸다. 그러고는 슬며시 강진의 눈치를 보자, 차달자가 웃으며
말했다.
“돈 내래요?”
차달자의 말에 변대두가 입맛을 다셨다.
“기보 보려면 무슨 한 달 정액 권을 끊어야 한다네.”
“끊으시면 되죠. 얼마인데요?”
“한 달에 4,900원.”
변대두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결제해 드릴게요.”
“정말?”
“저도 이번 기회에 바둑도 배우 고 해 보죠.”
변대두가 웃으며 태블릿을 내밀 자 강진이 결제를 해 주었다. 그 모습에 차달자가 말했다.
“사장님, 그거 제가 드릴게요.”
“괜찮아요.”
“아니요. 제가 할 줄 알면 제가 할 텐데…… 이런 건 잘 몰라서 요. 앞으로 제 가족들이 사고 싶 다는 것 있을 때 사장님이 결제
해 주시면 제가 돈을 드릴게요.”
“편한 대로 하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결제를 해 주 자 변대두가 환히 웃으며 기보실 에 들어갔다.
“호오! 좋네.”
그런 변대두를 보던 강진이 시 간을 보았다. 다섯 시가 다가오 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뭐 하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이호남을
보며 말했다.
“이호남 씨가 짬뽕하고 탕수육 하자고 하던데.”
“우리 불 약해서 좀 그렇지 않 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말했다.
“그래서 주방에 불 좀 놓자고 했잖아.”
“그건 이따가 이야기해 보는 것 으로 하고……
강진이 이호남을 보았다.
“화력 괜찮겠어요?”
“물론입니다.”
이호남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개 싫다는 분은 한식으로 간단하게 해 드리면 되겠네요. 그럼…… 20인분 정도 한다 생각 하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이호남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강 진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강진이 따라 들어오자 이호남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를 보았 다.
“저도 좀 배우려고요.”
강진의 말에 이호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말을 한 이호남이 밀가루를 그 릇에 덜고는 옥수수 전분을 적당 히 덜어 섞었다.
“전분을 넣으시네요?”
“전분을 넣으면 쫄깃해져요.”
그러고는 따스한 물을 넣어 익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익반죽을 해도 쫄깃하죠.”
“그렇죠.”
웃으며 이호남이 빠르게 밀가루 를 섞어 반죽을 만들고는 랩을 씌웠다.
그것을 한쪽에 놓고는 짬뽕과 탕수육을 만들 준비를 했다.
탕수육으로 쓸 고기에 밑간을
하고 랩을 씌운 이호남이 이번엔 재료를 손질했다. 중화 요리사라 그런지 이호남은 재료부터 손질 을 시작했다.
이호남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 는 것을 보며 강진은 배우는 것 이 있었다.
탕수육 반죽에 식용유를 부으며 이호남이 강진을 보았다.
“식용유 왜 넣는지 아세요?”
이호남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반죽이 더 바삭하고 맛있어지
라고요.”
“아시네요?”
“저도 탕수육 가끔은 해 먹거든 요.”
강진이 주방 한쪽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이쪽에 중화 요리 화구 를 만들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괜찮습니다.”
웃으며 이호남이 고기를 반죽에
넣고는 기름에 넣었다.
촤아악! 촤아악!
기름이 맛있는 소리를 내며 튀 겨지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강진이 구경을 할 때, 입구에서 띠링 소리가 났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내밀자 태블릿과 핸드폰 을 든 귀신들이 하나둘씩 주방으 로 들어왔다.
차달자의 직원들도 향수를 뿌려 놔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귀신들이 주방으로 들어오자 강
진이 홀로 나와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고경수가 서 있었다.
“아직 영업 아니신가요?”
“손님 왔으면 영업해야죠. 들어 오세요.”
강진의 말에 고경수가 작게 고 개를 숙이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지금 일과 시간 아니신 가요?”
아직 다섯 시가 안 됐으니 근무 시간이 아닌가 싶었다.
“오늘은 첫날이라 일찍 퇴근했 습니다. 그리고 이삿짐도 옮겨야 하고요.”
“이삿짐요?”
“사장님 수행비서로 발령이 나 서요. 사장님 집 근처에 있는 빌 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빌라‘?”
“오 실장님이 가끔 일이 늦으면 주무시는 곳입니다.”
“아……
하긴, 황민성의 일이 늦으면 오 실장이 그를 계속 보필한다. 너 무 늦게 퇴근하거나 일찍 퇴근해 야 할 때는 그의 집 근처에 있는 숙소에서 자는 것이 편할 것이 다.
게다가 숙소 비용을 오 실장에 게 내라고 할 황민성도 아니고 말이다.
“인턴 합격하면 숙소 어떻게 하 나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고경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유소에서 숙식을 하
는 고경수이니 취직을 하면 당장 잘 곳부터가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저녁 식사하기에는 좀 이른 시간인 것 같은데?”
강진의 물음에 고경수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 아까 신기 있다는 이야기 진짜인가요?”
“신기요? 아……
고경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아마도 자신이 신기가 있 다고 하니 찾아온 모양이었다.
“신기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좀 그런 쪽으로 감이 있는 편입니 다.”
“그럼 혹시…… 귀신도 보고 하 십니까?”
귀신이라는 말에 강진이 조금 놀란 눈을 한 채 물었다.
“귀신이요?”
강진의 말에 고경수가 잠시 있 다가 입을 열었다.
“제 오랜 친구가 사고로 죽었습 니다.”
“친한 친구였나 보네요?”
“초등학교 친구였습니다.”
“그렇군요.”
“예전에 무당한테 점을 본 적이 있는데 제 친구가 아직도 이숭에 남아 있다고 하더라고요.”
고경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진짜 무당을 찾아가기 는 했나 보네.’
친구가 귀신이 되어 이승에 있 다고 한 것을 보니 말이다.
“그래서 굿을 했습니다. 친구 무사히 극락왕생해 달라고요.”
멈칫!
고경수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 그렸다.
“극락왕생 굿요?”
“네. 돈은 좀 들기는 했는데 친 구가 좋은 곳으로 갔다고 해서 다행입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이야 기를 들은 배용수가 혀를 찼다.
“쯥! 사기 당했네.”
강진도 눈을 찡그린 채 고경수 를 보다가 말했다.
“얼마 줬는데요?”
“천만 원요.”
“천만 원요?!”
깜짝 놀라는 강진을 보며 고경 수가 웃었다.
“사기 같기는 했는데…… 그래
도 그거 하니까 마음이 편하더라
고요.”
고경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모은 천만 원이면 일 년은 모으셔야 했을 텐데?”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다 모으 면 천만 원이야 넘겠지만, 생활 비를 써야 하니 실질적으로 모으 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열심히 아껴 모은 돈을 굿에 날린 것이 다.
‘승천은커녕 최대식 씨는 아직 도 제주도에 있는데!’
최대식이 승천을 했다면 모를 까, 아직도 제주도에 있으니 돈 을 날린 게 확실했다.
‘친구가 이승에 머물고 있다는 것도 그냥 찔러 본 것 아냐?’
예를 들어, ‘집에 감나무 있어?’ 라 물은 뒤 없다고 하면 ‘있었으 면 큰일 날 뻔 했어! 없어서 네 가 살은 거야.’라고 답하는 식이 다.
아니면 ‘어릴 때 물로 고생을 했겠어.’라는 말처럼 애매모호한 말을 할 때도 있다. 굳이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것이 아니라도 비를 맞아 감기가 걸렸거나, 비 오는 날 헤어졌거나 등등 비와 관련된 안 좋은 기억 한둘은 있 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없다고 하면 ‘네가 기억을 못 해 서 그래. 자네 엄마는 알 거야.’ 라는 식으로 말을 돌려도 되고 말이다.
어쨌든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몰 라도 고경수는 무당한테 사기를 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