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화
귀신을 직접 보고 대화할 수 있 는 강진으로서는 그가 사기를 당 했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사기 당하신 것 같네요.”
“그런……가요?”
“네.”
단호하게 말을 한 강진이 핸드 폰을 꺼냈다.
“거기 무당 집 위치가 어떻게
됩니까?”
“네?”
“아무래도……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 다.
“신기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것 그냥 못 보겠네요.”
“찾아가시게요?”
“네.”
“그래도 친구 잘 갔을 수도
“안 갔습니다.”
“네?”
의아한 듯 자신을 보는 고경수 를 보며 강진이 뭔가 말을 하려 다가 재차 입맛을 다셨다.
“안 갔습니다.”
자세 하게 이야기해서 좋을 것 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고경수 씨 가 제주도에 오면 친구분께서 감 사해하고 고마워한다는 겁니다.”
“대……식이가요?”
“친구분 성이 최 씨 맞죠?”
강진의 말에 고경수가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곧 고경수의 눈빛에 신뢰감이 섞여들었다.
친구의 성 씨를 맞추는 건 그냥 찍는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어떻게……
‘정말 신기가 있구나. 하긴 황민 성 사장님 같은 분이 있다고 했 으니……
놀란 눈을 하고 생각을 하던 고 경수가 급히 물었다.
“혹시…… 제 친구가 보이세 요?”
“지금은 안 보입니다.”
강진은 사실에서 조금만 바꿔서 말을 하기로 했다. 너무 많은 것 을 알면 좋지 않지만…… 고경수 를 설득할 정도로만 말을 할 생 각이었다.
“그럼 어떻게……
“제가 신기가 있으니까요.”
‘죽어서 내 혓바닥에 과수원 열 리는 거 아냐?’
혓바닥 걱정을 잠시 하던 강진 은 고경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 자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안 계십니다.”
“그럼 어떻게?”
다시 같은 말을 하는 고경수를 보며 강진이 입을 열었다.
“사람이 귀신에 대해 아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알려 줄 수 없다는 강진의 말에 고경수의 얼굴에 더욱 신뢰감이 떠올랐다. 어쩐지 알려주지 않는 다는 말이 더 믿음이 가는 것이 다.
그런 고경수를 다소 착잡한 눈 으로 보던 강진이 물었다.
“그래서 그 무당 집이 어디예 요?”
강진의 물음에 고경수는 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저었다.
“그것보다……
고경수가 몸을 비틀어 뒷주머니 에 손을 넣었다.
스윽!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다 름 아닌 핫팩이었다.
조심히 핫팩을 탁자에 놓는 고 경수의 모습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것을 보았다.
‘핫팩? 추위를 많이 타시나?’
지금은 봄이다. 아침저녁으로 조금 쌀쌀하기는 하지만 핫팩을 붙일 정도는 아니었다.
강진이 의아한 듯 핫팩을 보자, 고경수가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 다.
“이거…… 제 친구에게 그
고경수가 생각이 나지 않는 듯 말끝을 계속 늘이다가 “아!”하고 말을 이었다.
“공양이라고 하나요?”
“귀신이나 신에게 바치는 거라 면 공양이 맞을 겁니다.”
“이걸 공양하고 싶습니다.”
“핫팩을요?”
강진이 의아한 듯 핫팩을 보았 다. 핫팩은 붙이는 것으로, 강진 도 겨울 야간 아르바이트할 때 사용해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핫팩 뒷면에 붙은 비닐이나 종 이를 떼어 옷에 붙이면 따뜻해지 기 때문에 보통 등에 하나, 가슴 에 하나 붙여서 썼다.
가슴께에 붙이는 이유는 정확하 지는 않지만, 심장 근처에 붙이 면 피가 따뜻해져서 다른 곳보다 더 몸이 따뜻해진다는 설 때문이
었다.
특히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은 많이들 그렇게 했다. 혹한기 때 심장 위쪽에 핫팩을 붙여야 얼어 죽지 않는다는 말을 하며 군대 안 간 강진에게 말하곤 했던 것 이다.
하지만 사실 핫팩을 몸에 붙이 기 좋은 자리는 아랫배와 뒷목 쪽이었다.
아랫배가 따뜻해야 병이 안 생 기고, 뒷목은 찬바람에 노출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어쨌든 강진이 ‘핫팩을 왜?’하는 시선으로 보자 고경수가 핫팩을 보다가 말했다.
“이건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생명의 은인요?”
강진의 말에 고경수가 잠시 멍 하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수능 끝나고 저와 대식이는 제 주도로 여행을 갔습니다.”
최대식에게 들은 이야기가 나오 자 강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 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본 한라 산을 다시 한 번 가자고 간 거였 습니다. 수능도 끝났고 이제 성 인이니 마음도 새로 잡고요.”
강진이 고개를 재차 끄덕였다.
‘거기서 대식 씨가 죽었지.’
“그때 눈이 많이 왔습니다. 눈 이 와서 대식이가 다음에 가자고 했는데…… 제가 여기까지 왔으 면 보고 가야 한다면서 산을 올 랐습니다. 그리고 등산 금지가 될 정도의 눈도 아니었고요.”
강진이 입맛을 다실 때, 차달자 가 슬며시 차를 가지고 나왔다.
“차 마시면서 이야기하세요.”
“감사합니다.”
차달자에게 고개를 숙인 고경수 가 잠시 있다가 말했다.
“산에 올라갈 때 대식이가 핫팩 을 주더군요. 추우니까 이거 하 라고. 언제 그런 것을 준비했는 지…… 그 녀석이 그래요. 매人} 에 꼼꼼한 성격이거든요.”
강진이 가만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고경수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는 됐다고 했어 요. 어차피 산에 올라가면 힘들 어서 몸에 열 날 텐데 이런 걸 왜 하나 싶었거든요.”
고경수가 입맛을 다시며 핫팩을 손으로 쥐었다. 그러고는 가만히 핫팩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 는데 처음에는 좋았어요.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것도 좋았 고, 눈 덮인 산도 보기 좋았거든 요.”
“그렇군요.”
강진의 말에 고경수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중간에 어떻게 길 을 잘못 들었는지 길이 없더라고 요.”
“등산로만 갔으면 문제없었을 텐데?”
“모르겠어요. 귀신한테 홀렸는 지 길을 따라간다고 생각을 했는 데 정신 차려 보니 길이 아니더 라고요. 주위를 봤는데 사람도
없고……
“이정표 같은 것이 손상이 됐나 보네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두 워지는데 길은 못 찾겠어서 되돌 아가려 했을 때 대식이가 넘어졌 어요. 하필이면 넘어진 것도 비 탈 쪽으로 넘어져서……
“그래서요?”
“대식이 잡으려고 하다가 저도 같이 넘어졌죠. 그래서 같이 비 탈길을 굴렀는데……
고개를 저은 고경수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기절을 했는지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더라고요.”
“아……
강진이 입맛을 다시자, 고경수 가 핫팩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 다.
“의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몸 에 뭔가를 막 하는데…… 옆에 찢어진 채 놓여 있는 제 옷이 보 였어요. 근데…… 옷에 핫팩이
붙어 있더군요.”
고경수의 말에 강진이 핫팩을 보았다. 핫팩을 감싼 봉지는 많 이 구겨져 있었다.
“그때는 잘못 본 줄 알았다가 나중에 제 옷을 다시 봤는데, 핫 팩이 세 개가 붙어 있더군요. 제 가 안 붙인다고 했던 핫팩을, 기 절한 사이에 대식이가 붙였
잠시 말을 멈춘 고경수가 핫팩 을 소중하게 손에 쥐고는 구겨진 부분을 손으로 문질러 펴기 시작
했다.
하지만 한 번 생긴 자국들은 펴 지지 않았다. 마치 죽은 친구가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스윽! 스윽!
구겨진 자국들을 손으로 연신 문지르던 고경수가 입을 열었다.
“대식이가 붙여준 핫팩으로 제 가 살았습니다. 그리고…… 대식 이는 죽었습니다.”
한겨울 산속에서 핫팩을 붙인 것만으로 살았다고는 볼 수 없었
을 것이다. 핫팩이 따뜻하다고 해도 조금 위안이 될 정도지, 한 겨울 산속의 추위를 견디기엔 턱 없이 부족한 것이다.
하지만 고경수는 그렇게 믿었 다.
자신이 기절한 사이 최대식이 핫팩을 붙여줘서…… 자신은 살 았고 최대식은 죽었다고 말이다.
기절한 자신이 아닌 그 스스로 의 몸에 핫팩을 붙였다면…… 어 쩌면 그가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계속 해온 것이
다.
말이 없는 고경수를 보던 강진 이 핫팩을 보았다.
“그 핫팩은?”
“병원에서 퇴원할 때 대식이 생 각이 나서 샀습니다. 그리고……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있습니 다. 가지고 있으면 대식이가 있 는 것 같고……
고경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핫팩을 보았다. 그제야 핫팩의 쭈글쭈글한 포장이 이해
가 되었다.
13년 동안 품에 가지고 다닌 핫 팩인 것이다.
“그래서 이걸 대식 씨에게 공양 하고 싶은 겁니까?”
“고맙다고…… 그곳에서는 따뜻 하게 지내라고요.”
살짝 눈가를 손으로 닦은 고경 수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 어났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그가 고개를 숙이고는 문을 나 서는 모습을 강진은 가만히 지켜 보았다.
띠링!
문이 닫히는 것을 보던 강진이 핫팩을 보았다. 물끄러미 핫팩을 보는 강진의 옆에 배용수가 다가 왔다.
그러고는 핫팩을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무슨 핫팩에…… 사연이 이렇
게 깊어.”
“그러게 말이다. 사연이…… 너 무 깊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핫팩을 보다가 말했다.
“대식 씨 불러.”
그를 불러서 핫팩 주라는 배용 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 다.
“저녁에.”
“저녁에?”
“귀신 몸에 핫팩 붙인다고 따뜻 할 일 없잖아.”
“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눈을 찡그렸다.
“그나저나 그 무당 주소 못 받 았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도 눈을 찡 그렸다.
“받아야지.”
강진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
덕였다. 재미로 점 봐 주고 약간 의 복채를 받는 건 괜찮다.
점을 보는 사람들도 그 점이 100% 맞을 거라 생각을 하고 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재미로 보고, 좋은 이야기 가 나오면 웃으며 듣고 안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조심하면 될 일 이었다.
하지만 천만 원이라니. 명백히 사기고 범죄다. 게다가 불쌍한 귀신들을 모신다는 무당이면 더 더욱 해서는 안 될 아주 나쁜 행
동이었다.
“근데 가짜 무당이면 어쩌려 고?”
“JS 음식 좀 주고 와야지. 귀신 으로 돈 벌었으니 귀신하고 친하 게 지내야지.”
불쌍한 귀신들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면 그냥 두지 않을 것이었 다. 마땅히 그에 대한 응징을 해 줄 것이다.
“짬뽕 드셔 보세요.”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주방
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 렸다.
이호남이 짬뽕과 탕수육을 들고 홀로 나오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가게 문을 잠그고 는 자리에 앉았다.
이호남이 만든 짬뽕은 전에 먹 었지만 탕수육은 처음이었다. 탕 수육과 소스가 따로 놓인 그릇을 보며 강진이 슬며시 집어서는 먹 었다.
바삭!
‘맛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했다. 입에 반을 넣고 당기자 치즈처럼 튀김옷이 늘어났다.
“탕수육이 바삭하면서 쫄깃한 것이 아주 맛있네요.”
“감사합니다.”
이호남이 웃는 것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지었다.
‘맛있네.’
바삭함과 쫄깃함이 느껴지는 탕
수육은 맛이 좋았다. 게다가 소 스는 달콤하고 말이다.
저녁 장사를 마치고, 어느덧 저 승식당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10:45>
시간을 본 강진이 카운터로 가
서는 서랍에 넣어 둔 핫팩을 꺼 냈다.
핫팩을 손에 쥔 강진이 입을 열 었다.
“최대식, 최대식, 최대식.”
강진의 부름에 앞에 최대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대식은 가게 를 둘러보다가 웃으며 강진을 보 았다.
“여기가 서울 저승식당이군요.”
“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대식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고경수 씨가 취직을 했습니 다.”
“잘 됐네요.”
최대식이 미소를 짓는 것에 강 진이 물었다.
“어디에 됐는지는 안 물어보십 니까?”
“어제 황민성 씨가 경수에게 말 거는 자리에 저도 있었습니다.”
“아…… 그랬죠.”
어제 최대식이 고경수 배웅한다 고 공항에 따라왔었으니 말이다.
“경수가 긴장하는 것 보니 좋은 회사인 것 같던데 잘 됐네요. 감 사합니다.”
최대식이 고개를 숙이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뭐 한 것이 있나요?”
“강진 씨가 말을 해 줘서 면접 을 볼 기회를 얻은 것 아니겠습 니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
다.”
최대식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세요?”
“제주도에서도 먹고 싶은 것은 먹었습니다.”
“그래도 여기 오셨는데…… 아! 저희 요리사가 중식을 잘 합니 다. 자장면 해 드릴까요?”
자장면이라는 말에 최대식이 입 맛을 다셨다.
“맛있겠네요.”
제주도에서 먹고 싶은 것은 자 주 먹었지만, 자장면은 언제 먹 어도 맛있는 음식이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주방을 향해 말했다.
“자장면 몇 그릇만 만들죠!”
“네!”
강진의 외침에 이호남이 크게 답을 하고는 조리 준비를 시작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