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424화 (422/1,050)

423 화

11시가 되자 강진이 가게 문을 열었다.

“들어들 오세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화아악! 화아악!

귀신들이 들어올 때마다 현신을 하는 것을 보던 강진이 마지막에 들어오는 최대식을 보았다.

사연을 들어서 그런지 그가 조 금 더 대단해 보였다. 자신도 춥 고 무서웠을 텐데 기절한 친구의 몸에 핫팩을 붙여 줬으니 말이 다.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

강진이 안쓰러운 눈으로 최대식 을 볼 때, 그가 웃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최대식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리 오세요.”

강진이 빈자리로 그를 데리고 갔다. 홀에는 이미 음식들이 모 두 차려져 있었다.

미리 귀신들에게 음식 주문을 받아두고, 시간 맞춰서 세팅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귀신들은 자신이 주문한 음식을 찾아가서 앉으면 될 뿐이 었다.

귀신들이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강진이 힐끗 문을 보았다.

‘소희 아가씨가 안 오시네.’

강진이 문 입구를 볼 때, 차달 자가 웃으며 다가왔다.

“소희 아가씨 기다리세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이모님이 힘들게 수제 두부를 만들었는데 안 오셔서요.”

차달자는 오늘 콩으로 수제 두 부를 만들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것이, 간장에 살짝 찍어 먹어도 맛이 있었다.

어제 김소희가 먹고 싶다고 해 서 만든 건데 정작 그녀가 오지 않는 것이다.

“부를까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저었다.

“바람을 부를 수는 없지요.”

“ 바람?”

“소희 아가씨는 바람과 같은 분 이에요. 오고 싶을 때 오시고, 가 시고 싶을 때 가세요. 누구도 그 분을 오라 가라 할 수 없어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멈칫했 다.

‘나는 불렀는데?’

가끔 물어볼 것이 있거나 도움 이 필요할 때 김소희를 불렀다.

전에 최가은과 이예림의 지박을 풀 때도 불러서 부탁을 했고 말 이다.

“저기, 소희 아가씨를 막 부르 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

“아가씨께서는 조선 제일의 처 녀 귀신이자 무신이세요. 조선에

있는 귀신 중에는 제일 높으신 만큼 쉽게 부를 분이 아니시지 요.”

한국 귀신계에서 김소희가 차지 하는 위치가 생각보다 더 높은 모양이었다. 아니, 차달자가 하는 말을 들으니…… 거의 최고봉이 아닌가.

‘이거…… 내가 실수한 건가? 아니, 실수한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자장 면을 먹고 있는 최대식을 보았 다. 최대식은 맛있게 자장면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짬뽕과 탕수 육도 놓여있었다. 최대식이 자장 면과 짬뽕을 두 개를 시킨 것이 다. 탕수육은 기본으로 차려져 있고 말이다.

흔히 자장면과 짬뽕 둘 중 하나 를 선택하는 것은 참 어렵다고 하는데, 최대식은 두 개를 같이 먹는 것으로 고민을 해결했다.

맛있게 자장과 짬뽕을 번갈아 먹는 최대식을 보던 강진이 자리 에 앉았다.

“사장님도 좀 드세요.”

최대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탕수육을 소스에 찍 어 입에 넣었다.

저녁에도 먹었지만 여전히 맛이 있었다.

‘고기 안 넣고 밀가루만 튀겨도 맛있을 것 같은데?’

밀가루 튀김만 먹어도 맛있겠다 는 생각을 하던 강진이 소주를 따서는 내밀었다.

그에 최대식이 잔을 들어 소주

를 받았다.

“크윽! 좋네요.”

웃으며 최대식이 강진에게 소주 를 따라주었다.

“제주도에서는 짬뽕 자주 먹어 요?”

“자주는 아니고 사장님이 짬뽕 먹고 싶은 날 가끔 하시죠. 근데 짬뽕이라고 하기는 그래요.”

“ 다른가요?”

“짬뽕이라기보다는 매운탕에 면

넣은 거라고 보면 됩니다.”

“그건…… 매운탕 아닌가요?”

“사장님은 짬뽕이라고 하시더라 고요.”

웃으며 소주를 한 모금 마신 최 대식이 말을 이었다.

“매운탕 집에서는 탕수육이 안 나오잖아요.”

“아…… 탕수육과 같이 나오니 짬뽕이라는 거군요.”

“그런 셈이죠. 일반적인 짬뽕하

고는 다른데 그래도 맛있어요. 사장님이 면도 잘 뽑으시거든 요.”

웃으며 최대식이 짬뽕과 자장을 맛있게 먹었다. 곧 두 그릇 다 깨끗이 비운 최대식이 입을 닦으 며 소주를 마셨다.

“좋네요.”

미소를 짓는 최대식을 보던 강 진이 슬며시 핫팩을 테이블에 놓 았다.

스윽!

테이블에 핫팩이 놓이자 최대식 이 의아한 듯 그것을 보았다.

“핫팩이 네요?”

“고경수 씨가 가지고 왔습니 다.”

“경수가요?”

강진의 말에 최대식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핫팩을 쥐었다.

“아……

핫팩을 만진 최대식은 순간 멍 해졌다. 그러고는 한동안 표정이

없던 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핫팩을 만지는 순간 사라졌던 기억들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 었다.

자신이 죽던 날의 그 기억 들...

“경수가 핫팩을 늘 가지고 오기 에 뭔가 했더니……

최대식이 핫팩을 손으로 쓰다듬 었다.

“기억하고 있었군요.”

“기억이 나세요?”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핫 팩을 만지니 기억이 나네요.”

최대식의 말에 강진이 핫팩을 보았다.

보통 귀신들은 자신이 죽은 순 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배용수나 최호철은 자신이 죽은 이유나 원인을 알지 못한다.

알았다면 최호철은 이미 자신을 죽인 자들을 수사해서 잡았을 것 이다.

귀신인 그는 누가 봐도 지독한 폭행을 당한 후 죽은 걸 알 수 있을 만큼 처량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심한 폭행을 당하고도, 자신을 죽인 범인이 누군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 정도로 죽음에 대한 기억이 돌아오기란 쉽지 않은데, 최대식 은 지금 돌아온 것이다.

‘자신의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 는 것을 만지면 기억이 나는 건 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최 대식이 미소를 지으며 핫팩을 만 지작거렸다.

“그날…… 고민을 많이 했어 요.”

최대식이 입맛을 다시자 강진이 소주를 따라주었다. 그에 최대식 이 소주를 한 번 보고는 입을 열 었다.

“팔과 다리가 부러져서 너무 아 팠어요. 그리고 춥기는 어찌나 추운지……. 그러다가 주머니에 넣어 둔 핫팩이 떠올랐어요. 그

래서 핫팩을 꺼내는데 경수가 보 이더라고요. 나 잡으려다가 같이 비탈길로 구른 녀석……

강진이 말없이 최대식을 보자 그가 소주를 마시고는 입을 열었 다.

“깨우려고 했는데 일어날 생각 을 하지 않더라고요. 이러다 경 수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 핫팩을 뜯어서 걔 몸에 붙였어요.”

말을 하던 최대식이 웃었다.

“그런데 핫팩 들고 엄청 고민했 어요. 손에 들고 있는 핫팩이 너 무 따뜻하더라고요.”

“당연한 겁니다.”

강진의 말에 피식 웃은 최대식 이 말을 이었다.

“한 손으로 이거 뜯는데 얼마나 힘이 들던지. 그때 손발이 다 부 러져서 움직일 때마다 진짜 아프 더라고요. 그래서 이빨로 뜯고 어떻게 움직여서 몸에 붙여 줬어 요.”

“한 손으로만 봉지 뜯는 건 어 렵죠.”

강진의 말에 최대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잠이 오더라고 요.”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 세요?”

최대식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핫팩을 그냥 내 몸에 붙일 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요.”

최대식이 핫팩을 보다가 손으로 봉지를 뜯었다. 봉지를 뜯은 최 대식이 핫팩의 중심을 손으로 눌 렀다.

따악

가벼운 소리가 나자 핫팩에서 슬며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핫팩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최대

식이 미소를 지었다.

“따뜻하네요.”

웃던 최대식이 자신의 겉옷을 살짝 올리고는 티셔츠에 그것을 붙였다.

그러고는 잠시 있다가 미소를 지었다.

“정말…… 따뜻하네요.”

화아악!

희미한 빛과 함께 최대식이 사 라졌다. 그 모습에 강진이 미소

를 지었다.

“그곳에 가면 내복 꼭 사 입으 세요. 그거 정말 따뜻합니다.”

작게 중얼거리며 빈자리를 보는 강진의 어깨를 차달자가 손으로 짚었다.

그에 강진이 보니 차달자가 미 소를 지었다.

“좋은 아이라 저승에서는 따뜻 하고 배부르게 잘 지낼 거예요.”

“그렇겠죠.”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승에서는 타인을 위해 희생 한 사람을 좋아해요.”

차달자의 말에 고개를 재차 끄 덕이던 강진은 문득 가게 안이 조용해진 것을 느끼고는 주위를 보았다.

귀신들은 먹던 것을 멈추고 물 끄러미 이쪽을 보고 있었다. 자 신들 앞에서 구천을 떠돌던 귀신 이 승천을 했으니…… 부러운 것 이다.

귀신들이 말없이 이쪽을 보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들도 어서 승천들 하세 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없이 소주잔을 들어 서는 마시기 시작했다.

“잘 가요.”

“오늘 처음 본 양반인데…… 잘 가쇼.”

귀신들이 최대식이 앉아 있던 곳을 향해 한 마디씩 하는 것을

보며 강진이 웃었다.

강진이 최대식이 앉아 있던 자 리를 정리할 때, 핸드폰이 울렸 다.

우우웅! 우우웅!

핸드폰이 울리는 것에 강진이 번호를 보았다.

“박 사장님?”

삼다식당 박문수의 번호에 강진 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대식이가 거기서 갔나?]

거기 갔나? 가 아니라 거기서 갔나? 라는 물음에 강진이 말했 다.

“방금 승천하셨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음…… 거기서 승천을 했구 만…….]

잠시 말이 없던 박문수가 입을 열었다.

[저승 가서 쓰지…… 돈을 보냈 더군.]

“아!”

‘수표를 박문수 사장님이 받으 셨구나.’

그렇지 않아도 최대식이 가고 종이가 떨어지지 않아 의아했는 데…… 박문수에게 보낸 모양이 었다.

하지만 그것이 서운하지는 않았 다. 자신과는 이틀이지만, 박문수 와는 13년이니 말이다.

[나하고 자네 둘로 수표를 썼으 니 내가 JS 금융 통해서 계좌 이 체 해 주겠네.]

“알겠습니다.”

[음…… 잘 갔나?]

“잘 가셨습니다.”

[그래, 잘 됐군. 그리고 자네에 게 고맙고 감사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네. 다음에 내 한 번 찾아가 겠네.]

“편하신 날 아무 때나 찾아 주 세요.”

[그래…… 그리고 고맙네. 우리 식구 보내줘서.]

최대식을 우리 식구라 칭하는 박문수의 목소리에는 감사함이 느껴졌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 덕였다.

“고마우시면 다음에 오실 때 물 고기나 몇 마리 가져다주세요.”

[하하하! 알겠네. 내 물 좋은 놈 으로 직접 잡아다 주겠네.]

“감사합니다.”

그걸로 전화를 끊은 강진이 미 소를 짓다가 몸을 일으켰다.

“뭐 더 필요하신 것들 있으면 주문하세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먹고 싶 은 것을 하나둘씩 주문했다.

* * *

점심 장사를 마무리하고 정리를 하던 강진이 차달자를 보았다.

“어떻게, 일하기 괜찮으세요?”

“아주 편하고 좋아요.”

“불편하신 것 있으면 언제든 이 야기하세요.”

“알겠어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강진은 그녀가 와 서 너무 편하고 좋았다.

차달자가 일을 도와주는 것도 있지만, 마음 편하게 저승식당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 람이 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

이 좋았다.

황민성이 저승식당에 대해 좀 알기는 하지만, 그와도 나눌 수 없는 저승의 이야기라는 것이 있 으니 말이다.

차달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정리 를 할 때 문에서 띠링 소리가 들 렸다.

그에 강진이 귀신들을 보자 같 이 정리를 하던 직원들이 서둘러 쟁반을 들고는 주방으로 들어갔 다.

그에 강진이 문을 열었다.

띠링!

문 너머에 여자 셋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김승희 씨?”

문 앞에 서 있는 여자 셋은 김 승희와 승무원들이었다.

“영업 끝나신 건가요?”

김승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몸을 돌렸다.

“들어들 오세요.”

강진의 말에 김승희가 살며시 고개를 숙이고는 안으로 들어가 자 후배 승무원들도 그 뒤를 따 랐다.

승무원들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하는 것에 강진이 따라 고개를 숙이다가 마지막에 들어 오는 귀신, 김승태를 보았다.

“어서 오세요.”

강진이 작게 속삭이자 김승태가 미소를 지었다.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승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닫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