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화
할아버지와 여자 수호령을 보던 강진이 JS 햄을 자르며 말했다.
“그럼......"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이름을 모르니 뭐라 부르지 못하고 쳐다 보는 것이다.
그 시선에 여자 귀신이 말했다.
“임 미령이에요.”
“이강진입니다.”
이미 자기 이름을 아는 것 같지 만, 통성명한다는 것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 중 가장 기본이니 말이다.
“미령 씨는 남자분 수호령이세 요?”
“네.”
“가족은 아니신 것 같은데 아
“사랑하는…… 사이였어요.”
“아……
임미령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다가 문득 할아버지 귀신을 보았다.
“제가 어르신 함자를 아직도 모 르네요.”
“하하하! 이문흠입니다.”
“그동안 몇 번을 뵈면서도 성함 도 안 여쭤봤네요. 이강진입니 다.”
“하하하! 바쁘니까요. 그리고 이 사장님 이름은 자주 들어서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얼굴로 웃는 이문흠 을 보며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어르신 기분이 좋아 보 이시네요?”
강진의 물음에 이문흠이 웃으며 이아름을 보았다.
“좋은 남자를 만났으니까요.”
“변호사라서요?”
직업이 마음에 드느냐는 강진의 물음에 이문흠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아름이도 한의사인데 남
자 직업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남자가 백수면 집에서 살림하고 아름이가 밖에서 벌면 되는 건데 요.”
맞는 말이다. 남자보다 여자 직 업이 더 좋을 경우, 남자가 집에 서 살림을 하고 여자가 밖에서 일하는 집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 좋은 남자인 것을 어떻게 아세요?”
이문홈이 임미령을 보았다.
“아가씨한테는 미안하지만……
수호령이 되어 옆에 남을 정도라 면 좋은 남자 아니겠습니까.”
이문흠의 말에 임미령이 그를 보다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인호 씨는 좋은 남자예요.”
“보십시오! 하하하!”
이문흠이 기분 좋은 얼굴로 남 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꿀이 떨어지고 있었다.
상당히 흡족해하는 이문흠의 모 습에 강진이 임미령을 보았다. 이문흠이야 손녀에게 좋은 남자
가 생겼으니 좋을 테지만…… 임 미령의 입장에선 자신이 사랑하 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이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 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얼굴은 다시 굳어져 있었다. 그런 두 귀 신을 보며 작게 고개를 저은 강 진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는 파와 마늘을 넣었다.
촤아악! 촤아악!
파와 마늘이 볶아지며 특유의 향이 올라왔다. 향긋한 파와 마
늘의 향을 느끼며 강진이 기름에 햄을 넣었다.
촤아악!
햄이 기름에 볶아지자 그것을 프라이팬 한쪽으로 몰은 강진이 계란을 세 개 깨 넣었다.
그러곤 빠르게 뒤적여 찢어 놓 은 채로 익혔다.
계란이 잘 익자 그제야 햄과 섞 은 강진이 그 위에 JS 즉석밥 세 개를 넣고는 주걱으로 부순다는 느낌으로 눌러댔다.
주걱에 밥이 으깨지고 그 밑에 깔린 햄과 계란도 찢어졌다. 그 렇게 재료들이 찢어지며 서로 섞 이기 시작했다.
계란을 먼저 익히고 밥을 섞으 면 볶음밥이 눅눅해지지 않고 고 슬고슬해진다. 그래서 이런 방법 을 쓴 것이다.
재료들이 골고루 섞이도록 휘저 은 강진이 이문흠을 보았다.
“그런데 두 분 소개팅 하는 분 위기는 아니던데?”
두 사람 다 그냥 밥이나 먹으러 온 서먹한 사이 정도로 보인 것 이다.
“현희가 두 사람 모르게 자리를 마련했거든요.”
“현희 씨가요?”
밥을 볶으며 강진이 묻자 이문 흠이 미소를 지었다.
“현희 그 아이가 좋은 친구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이문흠 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그런데 전에 저 보고 잘 해 보 라고 하셨는데... 서운한데요.”
“험! 그때는 그랬는데…… 사장 님이 싫다고 하셨잖습니까?”
“농이에요.”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임미령 을 보았다.
“그럼 남자분도 현희 씨가 아는 분인가요?”
강진의 물음에 임미령이 고개를 저었다.
“인호 씨는 오늘 친구 만나는 줄 알고 나왔어요. 아마 그 현희 씨라는 분과 인호 씨 친구가 중 간에 연결을 해 준 모양이에요.”
임미령의 말에 이문흠이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름이도 현희 만나는 줄 알고 나왔습니다.”
“그럼 두 분 다 오늘 소개팅 하 는 줄 모르고 나온 거군요.”
“맞습니다. 약속 장소에 와서야 소개팅인 줄 알았습니다.”
“서로는 어떻게 알아보고요?”
강진의 물음에 이문흠이 웃었 다.
“손 들어 보라고 해서 아름이가 손을 드니까, 한쪽에서 저 친구 도 손을 들더군요. 둘이 손을 들 어서 그제야 소개팅인 줄 안 겁 니다.”
두 사람 다 소개팅인 줄 모르고 커피숍에서 서로 만나기로 한 사 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둘이 동시에 각자의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고, 손을 들어 보라는 말에 의아해하며 손 을 들었다.
그리곤 주위에 손 든 여자, 남 자가 있을 것이니 잘 만나 보라 는 말에 황당하게도 소개팅이 이 루어진 것이었다.
원하지 않던 소개팅이라 자리에 서 일어나고도 싶었지만, 소개를 해 준 사람들의 낯이 있으니 일 단 자리를 한 것이다.
커피 한 잔과 가벼운 이야 기…… 하지만 둘 다 사람을 만
날 생각이 없었다.
이아름은 아직 사람을 만날 여 유가 없었고, 유인호는 마음에 새로운 사랑을 담을 자리가 없었 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으니 말이다.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은 서로 가 소개팅을 할 생각이 없으며, 친구들의 수작에 이 자리에 나온 것을 알았다.
그러자 자리가 가벼워졌다. 상
대가 소개팅을 생각하고 나왔다 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최소한 의 배려는 해야 한다.
하지만 서로 소개팅에 관심이 없다면 가볍게 보고 가면 되는 것이다.
그 이후로 다소 편해진 분위기 로 이야기하다가 이왕 만난 거 식사나 하자고 해서 커피숍을 나 오게 된 것이었다. 너무 일찍 헤 어지면 소개를 해 준 사람들에게 한 소리 들을 것이 뻔하니 말이 다.
메뉴를 고민하던 중 이아름이 그를 데리고 한끼식당으로 오게 되어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다. 소개팅이라면 조금 분위기 있는 곳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편하 게 밥을 먹기에는 한끼식당이 좋 았다.
이문흠이 하는 말을 들으며 강 진이 그릇에 볶음밥을 덜어서는 조리대에 놓았다.
“식사하세요.”
강진의 말에 이문흠이 입맛을 다시며 JS 수저와 젓가락을 집었
다.
귀신의 손에 잡히는 수저와 젓 가락의 모습에 임미령이 눈을 크 게 뜨자, 이문흠이 웃으며 말했 다.
“아가씨도 어서 먹어. 맛이 아 주 좋아.”
이문흠의 말에 임미령이 슬며시 젓가락과 수저를 들고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볶음밥을 보았다.
그때 강진이 JS 볶음김치를 뜯 어 그릇에 담아 놓았다.
“김치하고 같이 드세요.”
“고맙습니다.”
이문흠이 볶음밥에 김치를 올려 먹으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살았을 때는 이런 볶음밥 을 안 좋아했는데…… 이건 진짜 맛있군요.”
“많이 드세요.”
웃으며 강진이 홀을 보았다.
“어르신은 확실히 남자분이 마 음에 드시는 모양이네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시종일관 흐뭇해하는 이문흠의 모습에 강진이 임미령을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홀을 보고 있었다.
임미령은 이아름과 마주 앉아 있는 유인호를 보며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그녀는 물론 그가 평 생 혼자 살기를 바라는 것은 아 니다.
오히려 자신을 잊고 행복하게 가족을 이루어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마음 이 좋지 않았다.
착잡한 얼굴로 홀을 보던 임미 령에게 강진이 조심스레 말했다.
“식사하세요.”
“아......" 네.”
임미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 저로 볶음밥을 떠서 입에 넣었 다. 곧 그녀의 얼굴에 놀람이 어 렸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보는 맛이 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맛있다.’
정말 간단하게 만든 햄볶음밥인 데…… 너무 맛이 좋았다. 입에 서 녹는 것처럼 사라져 버리는 햄볶음밥에 임미령이 미소를 지 었다.
방금 전까지 유인호 생각으로 마음속이 복잡했던 그녀였지만, 그 복잡함을 날려 버리는 맛에 표정이 바뀐 것이었다.
내내 굳어져 있던 임미령의 얼 굴에 미소가 어리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복잡해서 입맛이 없으 실까 했는데 다행이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마음 이 복잡하면 입에 대고 싶지 않 을 수 있다. 그런데 임미령은 맛 있게 먹는 것이다.
하긴, 아무리 속이 복잡해도 귀 신으로 몇 년을 지낸 그녀다. 제 대로 된 음식을 먹어 보지 못했 으니 JS 음식이 정말 꿀맛 같을 것이었다.
어쨌든 임미령이 맛있게 먹는 것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역
시 사람이든 귀신이든 음식을 맛 있게 먹는 것은 보기 좋은 일이 었다.
임미령을 보던 강진은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는 한창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얼마나 걸려?”
“거의 다 됐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쟁반에 밑반찬들을 올렸다. 그 사이 배 용수가 삶은 오징어를 냉수에 담 가 표면을 탱글탱글하게 만들어
서는 꺼냈다.
그러고는 막 썰려고 할 때, 임 미령이 말했다.
“저기.”
칼을 멈춘 배용수가 그녀를 보 았다. 그 시선에 임미령이 잠시 망설이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 다.
“제가 요리사기는 하지만 제 취 향이 손님의 취향이라고는 할 수 없죠. 손님이 원하는 취향 아시 면 말씀하세요.”
그에 임미령이 말했다.
“인호는 오징어 머리 안 썰고 그냥 초장에 찍어 먹는 것 좋아 해요.”
임미령의 말에 배용수가 오징어 를 보다가 도마를 그녀 쪽으로 밀며 비닐장갑을 내밀었다.
“이건?”
“유인호 씨가 좋아하는 오징어 스타일이 있는 것 같으니 직접 만드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 다.”
“제가요?”
“사람마다 좋아하는 스타일이 다르니까요.”
배용수의 말에 임미령이 잠시 망설이다가 수저를 놓고는 말했 다.
“그런데 비닐장갑은 왜……
“이걸 끼면 이승 물건을 만질 수가 있습니다. 장갑이 저승 물 건이거든요.”
“아!”
임미령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비닐장갑을 보자, 배용수가 강진 에게 장갑을 주고는 새 장갑을 낀 채 계란말이를 만들 준비를 했다.
다른 음식은 다 됐지만 계란말 이는 바로 만들어 먹어야 맛있으 니 일부러 지금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강진이 장갑을 받아 임미 령에게 내밀었다.
“일단 껴 보세요.”
임미령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장갑을 끼자, 강진이 칼도 건네 고는 오징어를 가리켰다.
“하시던 대로 해 보세요.”
강진의 말에 임미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징어 머리 부분을 칼로 잘라냈다.
스륵!
날카롭게 오징어 머리를 떼어낸 임미령이 몸통을 얇게 썰기 시작 했다.
스윽! 스윽! 스윽!
임미령의 손길을 따라 오징어가 얇게 썰리기 시작했다. 오징어 몸통 반 정도를 얇게 썬 임미령 이 남은 오징어를 좀 두껍게 썰 어서는 네모나게 잘랐다.
다리는 하나씩 자르고 빨판이 붙어 있는 부분은 잘라냈다.
“접시 좀.”
강진이 접시를 주자 임미령이 부위별로 담았다.
“그리고 초장 좀 담아 주세요.”
그에 강진이 초장을 덜어 주며
말했다.
“근데 오징어 숙회를 이렇게 얇 게 썰어 드세요?”
보통 오징어 숙회는 손가락 두 께 정도로 썰어서 찍어 먹는데, 임미령이 썬 것은 거의 국수 면 발처럼 가느다랬다.
“국수처럼 얇고 가늘게 썬 걸 한입에 먹는 것을 좋아해요.”
임미령의 말에 강진이 오징어를 보다가 냉장고에서 오징어를 두 마리를 더 꺼냈다.
자기도 이렇게 썰어서 한 번 먹 어 보려는 것이다.
빠르게 오징어를 손질한 강진이 냄비에 소금과 식초를 넣었다.
오징어를 삶을 때 식초와 소금 을 넣으면 더 쫄깃하고 맛이 좋 은 것이다.
“음식 다 됐다.”
그 사이 배용수가 음식들을 그 릇에 담아 쟁반에 놓자, 강진이 오징어를 가리켰다.
“저거 좀 봐 줘.”
“ 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쟁반을 들고는 조심히 홀로 나갔다.
“음식 나왔습니다.”
강진이 음식들을 내려놓는 것을 도와주던 이아름이 미소를 지었 다.
“오징어 숙회네요.”
“남자분께서 오징어를 썰어 달 라고 하셔서 남은 오징어 초장 찍어 드시라고 가져왔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아름이 맛있겠다 는 듯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 다.
“그런데 오징어를 너무 얇게 써 신 것 아니에요?”
“면처럼 얇게 썰어서 먹어도 맛 있다고 하더군요.”
강진의 말에 유인호가 잠시 오 징어를 보다가 말했다.
“이렇게 먹으면 맛있습니다.”
유인호의 말에 이아름이 그를 보았다.
“이렇게 드셔 보셨어요?”
이아름의 물음에 유인호는 그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