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화
“할아버지.”
강진의 부름에 할아버지가 그를 보았다.
“ 나요?”
“식사하고 가세요.”
“나는 집에 가서……
“아직 저녁에는 쌀쌀하네요. 어 묵 국물에 국수 말아 드릴게요. 한 그릇 하고 가세요.”
강진이 웃으며 따뜻한 김이 모 락모락 나는 솥을 가리키자, 할 아버지가 입맛을 다시고는 슬며 시 리어카를 내려놓았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 다.”
“신세는요. 그냥 식사 한 끼 대 접하는 건데요. 이쪽으로 오세 요.”
강진이 앞을 가리키자 할아버지 가 푸드 트럭에 다가왔다. 그 모 습에 할머니 귀신이 눈을 찡그렸 다.
“집에서 밥을 먹지, 왜 국수 르... ”
할머니 귀신이 투덜거리는 사이 차달자가 슬며시 그녀의 손을 잡 았다.
“헉!”
깜짝 놀라는 할머니 귀신을 보 며 차달자가 작게 미소를 짓고는 그녀를 데리고 푸드 트럭으로 다 가갔다.
“어?”
차달자의 손에 이끌려 푸드 트
럭으로 다가온 할머니 귀신의 눈 이 커졌다.
“나를 어떻게?”
“이야기해 드릴게요.”
할머니 귀신은 당황스러운 눈으 로 차달자와 트럭을 번갈아보았 다.
그 사이 강진은 가게에서 삶아 온 국수를 비닐에서 꺼내고 있었 다.
미리 삶아오면 퍼지기는 하지만 금방 데워서 낼 수 있기에 출장
영업을 할 때에는 이런 식으로 국수를 준비를 해 오고 있었다.
어묵 국물에 국수를 넣고 몇 번 흔든 강진이 그것을 넓은 그릇에 담았다.
촤아악
면 위에 국물을 붓고, 그 위에 작게 썬 파와 고춧가루를 뿌렸 다.
그리고 육수를 붓고 어묵을 담 았다.
“어묵 국수입니다. 앞에 있는
볶음김치하고 같이 드세요.”
“고맙습니다.”
어묵 국수를 보고 미소를 짓는 할아버지를 보며 강진이 비닐에 서 국수를 꺼내 다시 한 그릇을 더 만들었다.
그것을 보던 할머니 귀신이 말 했다.
“김 가루 없나?”
강진이 할머니 귀신을 보자 그 녀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뭐야? 자네도 나를 봐?”
할머니 귀신이 놀란 눈으로 자 신을 보자, 강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배용수를 보았다.
그 시선에 배용수도 고개를 끄 덕이고는 할머니 귀신에게 사정 을 설명해 주었다.
그 사이 강진이 김을 꺼냈다.
“김 가루 드릴까요?”
“좋지요. 내가 또 김을 좋아해 요.”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비닐에 김을 넣고는 손으로 비볐다. 김 은 있는데 김 가루가 없으니 이 렇게 하는 것이다.
비닐 속에서 김이 잘게 부서졌 다. 그에 강진이 비닐을 할아버 지에게 내밀었다.
“여기 김 가루요.”
“고마워요.”
웃으며 할아버지가 김 가루를 조금 덜어내 어묵 국수에 넣었 다. 그것을 본 강진이 어묵 국수
를 한 그릇 더 말아서는 슬며시 차달자에게 내밀었다.
“이모.”
“그래. 고마워.”
웃으며 국수를 받은 차달자가 그것을 할머니 귀신 앞에 놓았 다.
“드세요.”
작게 속삭이자 할머니 귀신이 그녀를 보다가 배용수를 보았다. 그러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드셔 보세요. 귀신한테는 이 친구가 만든 음식이 가장 맛있습 니다.”
배용수의 말에 할머니 귀신이 젓가락을 들어서는 국수를 한 입 먹었다.
곧 그녀의 얼굴에 감탄이 어렸 다.
“너무 맛있어……
“이따 11시에는 현신해서 더 맛 있게 드실 수 있는데…… 아쉽네 요.”
“나는 못 먹나요?”
“11시 넘으면 여기에 귀신들이 바글바글하거 든요.”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 를 끄덕이는 할머니 귀신이 국수 를 먹었다.
후루룩! 후루룩!
할머니 귀신이 국수를 맛있게 먹는 사이, 할아버지가 슬며시 말했다.
“여기 술도 팝니까?”
“소주 한 병 드릴까요?”
“혹시 막걸리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럼 막걸리 한 병 주십시오.”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막걸리 를 꺼내 내밀었다. 그 모습에 할 머니 귀신이 눈을 찡그렸다.
“이놈의 영감탱이, 그렇게 술 먹지 말라고 했는데 또 마시네.”
할머니 귀신의 말에 차달자가
웃었다.
“말을 참 안 들어요.”
차달자가 작게 속삭이고는 강진 을 보았다.
“삼겹살 좀 구워주세요.”
“네.”
그러고는 할머니 귀신을 데리고 한쪽에 깔아 놓은 목욕탕 의자에 가서 앉았다.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옆에 있으 니 할머니 귀신과 이야기하기 불
편할 것 같아 자리를 피한 것이 다.
한편 강진은 불판에 삼겹살을 올렸다.
촤아악! 촤아악!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가볍게 소금을 툭툭 쳤 다.
후루룩! 후루룩!
그 사이 할아버지는 국수를 먹 으며 삼겹살을 보고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를 본 강진이 다 익은 삼겹살을 잘라 접시에 담아 그의 앞에 내밀었다.
“같이 드세요.”
“미안해서……
“음식 장사 하면서 음식 아끼면 안 되죠. 드시고 맛있으면 여기 맛있는 푸드 트럭 있다고 소문 좀 내 주세요.”
“하! 알겠습니다. 제가 또 여기 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웃는 할아버지를 보며 강진이
남은 삼겹살을 잘라 접시에 담고 는 푸드 트럭에서 내렸다.
삼겹살 옆에 볶음김치를 담은 강진이 차달자가 앉아 있는 곳에 다가갔다.
차달자는 국수 그릇을 가운데 두고 할머니 귀신과 이야기를 나 누고 있었다.
“삼겹살요.”
강진이 삼겹살을 화로에 놓인 석쇠에 올렸다.
화로에는 숯 몇 개가 붉은 빛을
띠며 조용히 타고 있었다. 그것 을 볼 때, 할머니 귀신이 강진을 보았다.
“저승식당이라는 곳 처음 듣 네.”
“할아버지 수호령이시라 저희 가게에 오기 어려우셨을 겁니 다.”
“에잉! 살아서 저 늙은이 뒤치 다꺼리만 했는데 죽어서도 이러 고 있네. 하여튼 귀찮은 영감이 라니깐.”
할머니 귀신이 마음에 안 든다 는 듯 투덜거리는 것에 강진이 작게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본심은 다 를 것이다. 할아버지를 귀찮게만 생각했다면 이렇게 수호령이 돼 서 남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할아버지가 귀찮게 하셨나 보 네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 귀신이 고 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놈의 노인네,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평생 밥 한 번 해 주지를 않고 빨래도 해 본 적이 없어. 지가 무슨 어디 공주야? 손에 물 이라고는 지 씻을 때 빼고는 묻 히지를 않아. 게다가 성격은 또 얼마나 꼬장꼬장한지……
한숨을 크게 쉰 할머니 귀신이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내가 저런 인간 믿고 한 평생 을 살았으니 그 고생을 했지.”
욕을 하면서도 할머니 귀신의 눈빛은 부드러웠다. 말은 거칠지 만 잔정은 넘치는 그런 분인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은 집에 가서 밥도 해 드시는 모양인데요?”
아까 집에 가서 밥 해 먹는다고 했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할 머니 귀신이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나 죽으면 이놈의 영 감탱이 빨래도 못 해서 옷도 더 럽게 입고 다닐 것 같고, 밥도 못 해서 굶을 것 같더라고. 그래 서 하나씩 가르쳤지. 빨래하는 방법, 밥 하는 방법 등 말이야.”
말을 하던 할머니 귀신이 피식 웃었다.
“가르칠 때 얼마나 투덜거리던 지. 망할 놈의 영감탱이.”
“그래도 잘 배우셨나 보네요.”
“배우기는 배웠는데 어설퍼.”
할머니 귀신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빨래 돌리고 난 후에는 꼭 털어서 말리라고 했는데, 대 충 널어서 다 주름지고 말이야. 그리고 수건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삶으라니까 그렇게 안 삶아.”
말을 하던 할머니 귀신이 재차 한숨을 쉬었다.
“내가 그것 때문에 승천을 못 하고 이러고 있는 것 같아.”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젓 는 할머니 귀신을 보며 강진이 웃었다.
“그래도 해 드시는 게 다행이 죠.”
“굶어 죽지 않으려고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은 어떻게든 해서 먹 기는 하는데…… 휴!”
할머니 귀신이 길게 한숨을 토 하고는 삼겹살을 집어 입에 넣었 다.
천천히 고기를 씹던 할머니 귀 신이 강진을 보았다.
“저기……
“말씀하세요.”
“이 볶음김치가 맛이 좋던 데……
“할아버지 좀 싸 드릴게요.”
“그래 줄 수 있어?”
“그럼요. 볶음김치야 이따 고기 구울 때 또 볶아도 되니까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 귀신이 해 맑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저놈의 영감탱이가 밥 은 어떻게 해서 먹는데 반찬은 귀찮아서 그런지, 그냥 물에 밥 말아서 김치에다가만 먹어.”
“볶음김치 좀 많이 드려야겠네 요.”
“정말 고마워. 그리고…… 영감 불러줘서 고마워.”
할머니 귀신의 말에 고개를 끄 덕인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일어 났다.
“손님 너무 혼자 뒀네요. 저는 할아버지 말동무라도 좀 해 드릴 게요.”
“고마워. 나중에 복 받을 거야.”
“그럼요. 저 복 많이 받을 겁니 다.”
웃으며 강진이 음식을 가리켰 다.
“많이 드세요.”
“그래. 많이 먹을게.”
환하게 웃는 할머니 귀신을 보 며 강진이 다시 푸드 트럭 위로 올라왔다.
할아버지는 어느새 삼겹살을 다 먹고는 볶음김치에 막걸리를 먹 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불판에 고기를 더 올리며 말했다.
“삼겹살 맛있죠?”
“아주 맛이 좋네요. 고기 좋은 것 쓰시나 봐요.”
“저희가 좋은 삼겹살을 쓰거든 요.”
“그런데 삼겹살은 왜……
“냄새가 풍겨야 손님들이 오지 않겠어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조금 아쉬운 듯 삼겹살을 보았다. 염 치가 있으니 더 달라고 말은 못 하지만, 내심 조금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푸드 트럭 주위를 보았다.
“아까 저분에게 이야기했지만, 여기는 자리가 안 좋아요. 이 밑 으로 좀 가면 사거리 있는데 거 기가 사람들이 좀 다녀서 장사가 될 텐데?”
“다음에는 그래 봐야겠네요.”
웃으며 강진이 삼겹살을 뒤집고 는 어묵꼬치를 잡아 내밀었다.
“어묵 좀 드세요.”
“계속 신세를 지는 것 같아서.”
“그냥 맛있게 드세요.”
웃으며 강진이 어느 정도 구워 진 삼겹살을 잘라서는 불판 가장 자리에 놓았다.
“삼겹살도 드세요.”
강진의 말에 어묵을 먹던 할아 버지가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이건 돈 내고 먹겠습니다.”
“편한 대로 하세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조금은 편한 얼굴로 삼겹살을 집어서는 볶음김치에 올려 먹었다.
무료로 먹는 것도 좋긴 하지만, 확실히 내 돈 내고 먹겠다고 하 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삼겹살에 막걸리를 먹던 할아버 지가 푸드 트럭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음식을 파 는 건가요?”
“어묵하고 삼겹살, 닭갈비와 소 고기도 좀 팔고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그를 보다가 말했다.
“혹시 김치죽이라고 아나요?”
“김치죽요?”
“가끔 먹고 싶은데…… 내가 하 면 할망구가 해 주던 맛이 안 나 더라고요.”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멸치 육수 낸 다음에 김 치 넣고 쌀이나 밥 넣고 팔팔 끓 이면 될 텐데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맛이 안 나요.”
그러고는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
했다.
“할망구가 죽기 전에 요리 방법 을 알려줬어요.”
“그러세요?”
말을 하며 강진이 차달자 옆에 있는 할머니 귀신을 보았다. 그 사이,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자기 죽으면 굶어 죽지 말라고 알려 줬는데…… 나중에 생각을 해 보니까, 다 내가 좋아하는 반 찬들만 알려줬더군요.”
“그야 어르신이 좋아하는 반찬
이니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었 다.
“그런데 요즘은 제가 좋아하던 반찬보다 마누라가 좋아하던 반 찬이 생각납니다.”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할머니께서 김치죽을 좋아하셨 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밥 하기 싫은 날에는 김치죽을 끓여서 주더군요. 그때는 그게 그리 싫었는데……
할아버지가 웃었다.
“할망구 생각이 나서 김치죽을 해 먹어 봤는데 그 맛이 안 나 요. 이럴 줄 알았으면 할망구가 좋아하는 반찬도 몇 개 배울 걸 그랬습니다.”
웃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 다.
“망할 할망구, 자기 좋아하는
반찬들도 좀 알려주고 가지. 나 좋아하는 것만 알려주고 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