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436화 (434/1,050)

435 화

할머니가 좋아하던 반찬을 떠올 리며 한숨을 쉬는 할아버지를 보 던 강진이 차달자를 불렀다.

“이모님.”

그에 차달자가 쳐다보자, 강진 이 할머니 귀신을 힐끗 보고는 작게 고갯짓했다. 같이 오라는 의미였다.

고개를 끄덕인 차달자가 할머니 귀신을 데리고 다가왔다.

“혹시 김치죽 맛있게 만드는 방 법 아세요?”

“김치죽요?”

“어르신이 김치죽을 드시고 싶 다는데 만드는 방법을 잘 모르시 겠대요.”

강진은 차달자에게 말하면서도 시선은 할머니 귀신을 향해 있었 다.

강진도, 차달자도 김치죽은 충 분히 끓일 수 있다. 딱히 어려운 메뉴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먹고 싶은 것은 할머니의 김치죽이니 그녀 를 보는 것이다.

강진의 말에 할머니 귀신이 혀 를 찼다.

“죽을 때가 다 됐나? 왜 이렇게 김치죽을 해 먹는 거야?”

할아버지가 가끔 김치죽을 해 먹던 것을 할머니 귀신도 아는 것이다. 바로 옆에 붙어 있으니 말이다.

작게 투덜거리던 할머니 귀신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밥 하기 귀찮은 날 김치죽을 끓였는데…… 김치죽을 끓이면 그렇게 반찬 투정을 하더라고요. 그냥 맨밥에 김치 먹겠다고. 그 런데 요즘 김치죽을 가끔 끓여서 먹더라고요. 김치하고 밥 넣고 끓이면 다 되는 건 줄 아나?”

투덜거리는 할머니 귀신을 보던 강진이 입을 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할아버 지 좋아하는 반찬들 만드는 방법 을 알려주셨다고 하셨어요.”

“굶어 죽지 말라고 좋아하는 반 찬 만드는 법 알려줬지.”

할머니 귀신의 중얼거림에 강진 이 말을 이었다.

“요즘은 본인이 좋아하시던 반 찬보다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던 반찬들이 더 드시고 싶으신가 봐 요.”

“저런......"

안쓰러운 듯 작게 중얼거린 차 달자가 할머니 귀신을 보았다. 그녀는 살짝 놀란 듯 할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강진의 설명에 조금 민망한지 머리를 긁었다.

“늙어서 그런지 요즘 그 싫던 반찬들이 먹고 싶더군요.”

“노인네 죽을 때가 됐나.”

작게 투덜거리던 할머니 귀신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일단 육수를 내야 해요. 멸치 넣고 끓이다가 다시마 몇 장 넣 고 조금 더 끓여요. 그러다 다시 마가 흐물흐물해질 때쯤에 빼요.

오래 삶으면 다시마에서 끈적이 는 액체가 나오거든요.”

강진이 그것을 따라 말해주자 할아버지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받아 적다가 말했다.

“젊은 사장님이 김치죽도 끓일 줄 아네요.”

“아…… 보통 이렇게 먹으니까 요. 이모님, 혹시 팁이 있을까 요?”

강진이 자신을 보며 말하는 것 에 할머니 귀신이 웃으며 대답했

다.

“영감이 김 가루를 좋아하니까 김 가루 넣어서 먹으라고 하세 요. 아! 그리고 계란은 마지막에 먹기 전에 스르륵! 풀어야 해요. 그래야 걸쭉해지거든요.”

할머니 귀신의 말에 차달자가 강진에게 말했다.

“김 가루 넣어서 먹어도 괜찮아 요. 그리고 계란은 꼭 먹기 전에 스르륵 풀어 주세요. 그래야 걸 쭉해져요.”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가 미소 를 지었다.

“우리 마누라도 내 죽에는 김 가루를 많이 넣어 주었는데…… 고맙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 귀신이 슬며시 말했다.

“다른 건…… 안 먹고 싶대요? 이왕 얘기하는 거,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다 말하라고 하세요.”

할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할 아버지를 보았다.

“혹시 다른 음식 드시고 싶은 건 없으세요?”

“다른 음식?”

“저희 이모님이 요리를 참 세요. 말씀하시면 요리하는 자세하게 알려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시래기를 된장에 무쳐서 것 압니까?”

잘하

방법

잠시

만든

“시래기 된장 무침요?”

“우리 마누라가 시래기 된장 무 침을 해서 밥에 막 비벼 먹었거 든요. 개밥 같아서 그렇게 싫어 했는데.”

“그게 뭐 어렵다고……

할머니가 설명을 하자 강진이 종이를 꺼내 레시피를 적었다.

“또 뭐 있으세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몇 가 지를 더 말하자, 할머니 귀신이 조리법을 읊어주었다.

“고등어 김치조림 할 때는 쌀뜨

물에 담가 둬야 비린내가 안 나 요. 그게 중요해요. 고등어 잘못 다루면 비린내가 심하거든요.”

말하는 내용 대부분은 아는 것 이었고, 다른 조리 방법도 알고 있었지만 강진은 할머니의 말을 모두 빠짐없이 받아 적었다.

할아버지가 먹고 싶은 것은 자 신이 하는 음식이 아니라 할머니 귀신의 음식일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고등어 김치조림 조 리법까지 받은 적은 강진이 할아 버지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자세하게 적었으니 이대로 하 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종이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 할망구 이런 음식을 좋아 했군요.”

음식 레시피를 보던 할아버지가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다가 갑작 스레 몸을 떨었다.

“곧 여름 될 텐데…… 아직도 춥네.”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주위에는 귀 신들이 모여 있었다.

11시가 다가오자 모여들기 시작 하는 것이다. 가로등 불빛 밖에 줄을 맞춰 서 있는 귀신들을 보 던 강진이 할아버지를 보았다.

“막걸리를 먹어서 좀 추우신가 보네요. 이만 들어가셔야겠어요.”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을 하며 할아버지가 주머니에 서 돈을 꺼냈다. 만 원짜리 몇 장과 천 원짜리를 꺼낸 할아버지

가 강진을 보았다.

“얼마입니까?”

“칠천 원입니다.”

“삼겹살도 먹었는데.”

삼겹살 1인분만 해도 만 원이 넘는데 칠천 원이면 너무 저렴했 다.

“노점상이 가게처럼 받으면 되 나요. 그것만 주세요.”

“이거…… 고맙습니다.”

할아버지가 칠천 원을 내밀자

강진이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 다.

“그럼 잘 먹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 던 강진이 아차 하고는 할아버지 를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반찬들을 봉지에 담아 서 내밀었다.

“이거 드세요.”

“아니, 괜찮은데.”

“남으면 어차피 버려야 해요

가져가서 드세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그를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복 받으실 겁니다.”

“그럼요. 저 복 많이 받을 겁니 다.”

강진의 농에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잘 먹고 갑니다.”

할아버지가 몸을 돌릴 때, 강진 이 뭔가 생각이 든 듯 밑에 놓여

있는 비닐장갑을 챙겼다.

그러고는 서둘러 푸드 트럭에서 내린 강진이 리어카에 다가갔다.

“리어카가 오래됐네요.”

“나만큼 오래됐지요. 그래도 나 하고 다르게 기름칠만 잘 하면 부드럽게 잘 나갑니다.”

자신이 준 봉지를 리어카에 넣 는 할아버지를 보던 강진이 웃으 며 말했다.

“미신이기는 한데……

강진이 비닐장갑을 리어카 뒤에 묶었다.

“비닐을 뒤에 묶어 두면 사고가 안 난대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었 다.

“무슨 그런 미신이 있습니까?”

“미신이기는 한데 효과가 있을 거예요.”

웃으며 강진이 비닐장갑을 잘 묶고 매듭지었다.

“그럼 몸 건강하세요.”

“고마워요.”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잡자 강진 이 슬며시 할머니 귀신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자신이 묶어둔 비닐에 할머니 귀신의 손을 가져다 댔 다.

스륵!

자신의 손에 비닐이 만져지는 것에 할머니가 놀란 눈을 하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밀어 주세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연신 고개를 숙이던 할머니는 리어카가 앞으로 움직이자 서둘 러 비닐을 잡고는 뒤에서 밀었 다.

스륵!

“안 밀어 주셔도 됩니다.”

갑자기 리어카가 가벼워지는 느 낌에 할아버지가 뒤를 보며 말했 다. 하지만 강진이 리어카를 밀 지 않고 손을 흔드는 것에 할아

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밀어주는 것 같았는데?’

의아한 눈으로 리어카를 보던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또 봐요.”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자, 뒤 에서 할머니 귀신이 웃으며 리어 카를 밀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다시 한 번 뒤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게 가볍네?’

할아버지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다시 리어카를 당기며 앞으로 나 아가자, 할머니 귀신이 뒤를 돌 아보고는 강진에게 고개를 숙인 뒤 다시 리어카를 밀기 시작했 다.

할아버지가 끌고, 할머니가 밀 어주는 리어카가 천천히 멀어져 가는 것을 보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보기 좋네요.”

차달자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저게 부부인 것 같아요. 두 사 람이 함께 가족을 끌고 밀면서 나아가는 것……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미소를 지었다.

“총각이 부부에 대해 어떻게 그 리 잘 알아요?”

“책을 많이 봐서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피식 웃 었다. 그러고는 귀신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자, 강진은 푸드 트럭에 올라타고는 불판에 삼겹 살과 닭고기를 올렸다.

이제 곧 영업시간이니 미리 고 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  *  *

할아버지는 봉지를 든 채 자신 의 집에 들어서고 있었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선 할아버지가 불을 켜고는 거실에 있는 할머니 사진을 보았다.

“갔다 왔어.”

사진 앞에는 양갱과 사과 하나 가 놓여 있었다. 봉지에서 오늘 새로 산 사과를 꺼내 영정 앞에 놓은 할아버지가 외투를 벗으며 말했다.

“사과가 무척 예쁘더라고. 오늘 좋은 사람을 만났어. 밥도 주고 술도 주고…… 이야기도 좀 했는 데 좋은 사람이더라고. 젊은 사

람이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할아버지는 강진이 준 봉지를 열 었다.

봉지에서 음식들을 꺼낸 할아버 지가 그것을 들어 보였다.

“그 총각이 음식도 줬어. 맛있 더라고. 당신이 살아 있었으면 같이 가서 야식이라도 먹을 텐데 말이야.”

웃으며 반찬통에 음식들을 담은 할아버지가 통들을 냉장고에 넣

었다.

그러고는 봉지에서 다른 식재들 을 꺼내 놓았다.

봉지에서 나온 것은 시래기와 고등어, 파와 같은 식재들이었다.

“자네 생각이 나서 자네가 좋아 하는 음식들 재료를 좀 샀어. 내 가 금방 해 줄 테니 기다려.”

할아버지가 웃으며 영정을 보고 는 재료들을 싱크대에 놓은 뒤 강진이 적어 준 레시피를 보았 다.

“어디 보자…… 일단 육수부 터.”

할아버지는 솥에 물을 가득 붓 고는 거기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 고는 불을 켰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할머니가 탄식을 내뱉었다.

“아이고! 이 영감아! 멸치하고 다시마를 같이 넣으면 어떻게 해! 다시마를 나중에 넣어야지.”

그리고…….

“이 영감아, 다시마를 빼야지.

계속 끓이면 진물 나와.”

“쌀뜨물에 고등어 더 담가야 해. 그렇게 담갔다 바로 뺄 거면 왜 담가.”

“냄비 끓어.”

“아이고, 이 영감이 오늘......

할아버지가 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듯 계속 투덜거리는 할머니 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남편이 자신을 생각하며 요리하 고 있으니 말이다.

들리지 않는 잔소리와 함께 음 식을 다 만든 할아버지가 영정이 있는 안방에 밥상을 차렸다.

“이거 몇 개 만드는데 12시가 넘어 버렸네.”

웃으며 할아버지가 김치죽에 수 저를 담갔다.

“마누라는 밥상 차리기 귀찮다 고 하던 음식들인데 이렇게 어렵 고만.”

웃으며 할아버지가 밥상에 놓인

반찬들을 보았다. 생긴 것은 마 누라가 하던 것과 달랐지만…… 그래도 마누라가 좋아하던 음식 들이었다.

잠시 밥상을 보던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미안하네. 자네 살 아 있을 때 내가 밥을 한 번도 차려 준 적이 없네.’

속으로 영정에 있는 할머니에게 말을 한 할아버지가 웃으며 수저 를 들었다.

“먹어 보자고.”

할아버지가 김치죽을 한 술 떠 서 먹고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했지만 꽤 자네가 만든 것하고 비슷하네.”

할아버지가 김치죽을 먹는 것을 보며 할머니 귀신이 한숨을 쉬고 는 죽을 떠먹었다.

“비숫하기는 개뿔. 맛도 더럽게 없네.”

투덜거린 할머니 귀신은 미소를 지은 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