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화
“많이들 드세요.”
“감사합니다.”
“할머니, 어묵국 맛이 너무 좋 아요.”
“고마워요.”
차달자가 웃으며 푸드 트럭 앞 에서 귀신들에게 음식을 덜어주 었다.
그녀의 푸근한 웃음과 인심에
귀신들은 모두 기분이 좋아 보였 다.
저승식당 출장 영업을 할 때면 귀신들은 모두 좋아했고 즐거워 했다.
푸드 트럭에 오는 손님들은 대 부분 한끼식당에 오지 못해 제대 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들 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정말 오랜만에 먹다 보니 대부분이 즐거워했고 좋아했다.
다만 지금과 같은 편안한 느낌 은 없었다. 마치 놀이동산에 온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느낌이랄 까?
그런데 지금은 마치 타지로 일 하러 갔다가 오랜만에 어머니가 차려 주는 밥을 먹는 그런 느낌 이었다.
그만큼 모두들 편안해하는 것이 다. 차달자가 있어서 생긴 변화 였다.
‘확실히 이모님 모신 건 나이스 한 선택이었어.’
즐겁고도 편안하게 음식을 먹는 귀신들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음식도 중요하지만 확실 히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음식점 의 느낌이 변한다는 것을 직접 보았으니 말이다.
강진이 귀신 손님들을 보며 미 소를 지을 때, 배용수가 말했다.
“고기 뒤집어라. 탄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급히 집 게로 삼겹살을 뒤집었다.
촤아악! 촤아악!
강진이 귀신들에게 잘 익은 고 기를 나눠 주고는 판을 닦았다.
‘계란말이라도 할까?’
고기만 먹으면 심심하니 말이 다. 그에 계란을 깨서 판에 넓게 펼친 강진이 그것을 조심스럽게 말았다.
‘확실히 판이 넓으니 계란말이 를 만들기 편하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옆을 보았다. 배용수는 푸드 트럭에 기댄 채 어묵을 씹으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가 힐끗힐끗 자신이 만드 는 음식을 보고 있었다.
“가서 술 마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음식 만드는 게 좋은데.”
손이 근질근질한지 주먹을 쥐었 다 펴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귀신이 양심 좀 있어라. 어떻
게 매일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하냐? 가서 좀 놀기도 하고 그 래.”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 았다.
“뭔가 말이 좀 이상하지 않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뾰로로는 놀아야지, 왜 일을 하려고 해. 우리 뾰로로 가서 마 시고 열심히 놀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고는 어묵을 입에 물고 여자
귀신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 겼다.
이혜미가 소주잔을 내미는 것을 받는 배용수를 보며 웃은 강진이 계란말이를 마저 만들었다.
한편, 귀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 술과 음식을 먹고 있었다.
차연미와 이호남은 여자 귀신들 과 함께 대화를 하고 있었고, 변 대두는 소주를 마시며 바둑을 두 고 있었다. 그 옆에는 바둑을 둘 줄 아는 귀신들이 태블릿 화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생각보다 바둑을 두는 귀신들 이 많네.’
다시 한 번 바둑이 재미있나 생 각을 하던 강진이 가스레인지 불 을 줄였다.
귀신 손님들도 먹을 만큼 먹었 으니 이제 남은 고기만 따뜻하게 하면 될 것이었다.
음식을 살핀 강진이 계란말이를 접시에 담아서는 귀신들에게 가 져다주었다.
“계란말이 좀 드세요.”
귀신들이 모여 있는 곳에 한 접 시씩 계란말이를 가져다준 강진 이 차달자의 옆에 자리를 잡았 다.
“출장 영업 어떠세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미소를 지었다.
“좋네요. 저도 식당 할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면 가게 오지 못하 는 여러 손님들과 만났을 텐 데…… 아쉽네요.”
차달자가 강진의 손을 잡았다.
“사장님이 좋은 생각을 하셨어 요.”
차달자에게 인정을 받는 것 같 아 뿌듯해진 강진이 웃으며 소주 를 마셨다.
술을 마셨으니 대리를 불러야 하지만, 일 끝날 때 이렇게 한잔 하는 것이 강진에게 있어서 낙이 었기에 감안하는 것이다.
소주를 마신 강진이 삼겹살을 김치에 싸서는 입에 넣었다.
“맛있네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귀신들을 보았다.
“좋네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도 귀신들을 보았다. 지붕도 없고 벽도 없는 길바닥에서 먹어야 하지만, 그럼 에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강 진도 기분이 좋았다.
“이런 것도 나름 운치가 있네 요.”
가로등의 약한 불빛을 받으며 화로를 가운데 두고 먹는 것은
나름 운치가 있었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차달자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도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밤하늘을 배경으 로 종이 두 장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강진이 손을 내밀자 종이가 빨 려 들어가듯 그의 손에 떨어졌 다.
종이를 받은 강진이 그 내용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가 가셨네요.”
“아까 그분요?”
“네.”
웃으며 강진이 종이를 내밀자 차달자가 그것을 받아 보았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사장님 덕에 우리 영감한테 밥 상을 다 받아 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이 음식 알려 주신 덕에 영감하고 마지막으로 따스한 밥 먹고 갑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 영감에게 따 스한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내용이 몇 번이나 반복된 편지를 읽은 차달자가 미 소를 지었다.
“따스한 마음이라……
겨우 식사 한 끼지만, 할아버지 에게는 따스한 마음이 전달된 것 이다.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보는 차 달자에게 강진이 수표를 내밀었 다.
“밥값 보내셨네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수표를 보았다. 2만 원이 찍힌 수표를 보며 차달자가 미소를 지었다.
“안 보내도 되는데. 그렇죠?”
“그럼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수표를 받으 면 땡 잡은 것 같고 좋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런 수표를 받으면 오히려 마음이 무거웠다.
이승보다 저승이 더 돈이 필요 하니 말이다. 자신이야 지금부터 벌면 되지만, 그분들은 앞으로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많을 테고 말이다.
수표를 보던 강진이 그것을 주 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차달자 를 보았다.
“식사하세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그를 보 았다.
“같이 드시죠?”
“손님들 필요한 것 있나 둘러보 고 올게요.”
자리에서 일어난 강진이 귀신들 사이를 오가며 필요한 것이 있는 지를 살폈다.
자리마다 필요한 것을 가져다준 강진이 변대두의 옆에 앉았다.
톡! 톡!
“이야, 상대방 엄청 잘 두네요.”
“그런 것 같아. 이거 프로야, 프 로.”
자기보다 잘 두면 다 프로라는 듯 중얼거린 변대두가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자 옆에서 훈수를 두던 젊 은 귀신이 삼겹살을 김치에 싸서 입에 넣어주었다.
“고마워.”
“그래서 말인데 전략을 바꾸시 죠.”
“바꿔?”
“지금 상대가 어르신 대마를 잡 으려고 유인하는 겁니다. 아마 여기, 여기, 여기로 둘 겁니다.”
딱!
그때 상대가 정말 그곳에 두었 다. 그에 변대두가 젊은 귀신을 보자, 그가 말했다.
“어르신은 여기다 두실 거죠?”
그가 한 지점을 가리키자 변대 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웅. 거기다 둬야지.”
“그럼......"
젊은 귀신은 손가락으로 여러 곳을 짚었다. 상대가 둘 곳과 변 대두가 둘 곳을 몇 수 앞서 보고 는 짚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르신 여기 가 다 죽어요.”
“아! 그럼……
고민을 하는 변대두를 보며 젊 은이가 한 곳을 가리켰다. 젊은 이가 가리킨 곳을 변대두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 의도를 알았는지 감탄을 토했다.
“오!”
그러곤 그 자리에 돌을 놓았다. 그러자 상대가 한참 동안 돌을 두지 않다가 아이템을 써서 시간 을 연장했다.
이때까지 변대두를 끌어들이려 고 함정을 짰는데, 그 함정이 오 히려 자신을 묶게 생겨서 당황한
것이다.
그 모습에 변대두가 막걸리를 다시 마시고는 젊은이를 보았다.
“자네, 바둑 좀 두는군.”
“한국기원 연구생이었습니다.”
“오! 정말?”
“네.”
“그럼 프로?”
“프로가 쉽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한국기원 연구생이면 거의 선생님이네. 이거! 선생님
을 몰라봤습니다.”
“아닙…… 아! 뒀습니다.”
상대가 돌을 두자 둘이 다시 화 면을 보았다. 그러다가 변대두가 태블릿을 젊은이에게 내밀었다.
“선생님이 두십시오.”
“제가요?”
“오랜만에 두시는 것 같으니 둬 보세요.”
변대두의 말에 젊은이가 환하게 웃으며 태블릿을 받아 대신 두기
시작했다. 그것을 변대두가 옆에 서 지켜보는 동안, 강진이 막걸 리를 들어 잔에 따랐다.
쪼르르륵!
“고마워요.”
변대두가 화면을 보며 하는 말 에 강진이 말했다.
“한국기원 연구생이 뭐예요?”
“프로 예비 기사들이라고 생각 하시면 됩니다.”
“프로 예비 기사요?”
“프로가 될 가능성이 있는 영재 들을 모아 놓고 바둑을 두는 곳 입니다. 실력이 대단하지요.”
“어르신보다요?”
강진의 물음에 변대두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저보다 잘 두는 애들도 몇 있 기는 하겠죠.”
“진짜 잘 두나 보네요.”
바둑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넘치 는 변대두가 이렇게 말을 할 정 도라면 한국기원 연구생들의 실
력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오케이! 회심의 한수다. 이건 정말 못 받지.”
변대두가 웃으며 태블릿을 보았 다. 그리고 상대가 돌을 던지자 웃으며 막걸리를 마셨다.
“선생님, 방금 한 수 정말 좋았 습니다.”
“상대하신 분 정말 잘 두시네 요. 이 분은 정말 프로인 것 같 은데요?”
젊은이의 말에 변대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프로들도 와서 두는 모 양이더군요. 저도 깜짝 놀랄 정 도로 잘 두는 분들도 있어요.”
“예전에 컴퓨터로 바둑을 뒀는 데…… 핸드폰으로도 둘지는 몰 랐네요.”
말을 하던 청년이 태블릿을 가 리켰다.
“상대가 다시 두자고 초대했는 데요.”
그도 바둑을 두고 싶어 하는 걸
금새 눈치챈 변대두가 손을 내밀 었다.
“나는 막걸리 좀 할 테니 선생 님이 대신 두십시오.”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저도 옆에서 보면서 좀 배우겠습니다.”
변대두의 허락에 청년이 환하게 웃으며 상대방의 요청을 수락하 고는 채팅창을 눌렀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속기했으 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채팅과 함께 청년이 빠르게 바 둑을 두기 시작했다.
톡톡톡!
연신 들리는 효과음을 들으며 강진이 화면을 보다가 변대두를 보았다.
“바둑판을 하나 사 드릴까요?”
“ 바둑판?”
“태블릿으로 두는 것도 좋지만 바둑도 손맛이라는 것이 있을 텐 데 직접 두면 좋지 않겠어요?”
“가게에는 바둑 두는 사람이 없 는데?”
“오늘처럼 출장 영업 다니다 보 면 바둑 두시는 분들 있을 테니 그분들하고 두시면 되죠.”
“괜찮겠어요? 바둑판 비싼
데……
“응? 안 비싼데요.”
“그럴 리가. 쓸 만한 것은 백만 원이 넘는데?”
변대두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입맛을 다셨다.
“제가 본 건 이만 원 정도인 데……
“아......" 이만 원......"
“죄송합니다.”
강진의 사과에 변대두가 급히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바둑판이
아무리 좋아도 그냥 바둑일 뿐입 니다. 맨바닥에 선 긋고도 두는 데, 바둑판이 좀 싸면 어떻습니 까.”
변대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맛을 다셨다.
‘이만 원은 너무 싼가?’
접이식 나무 바둑판을 살 생각 이었는데, 아무래도 조금 비싼 걸로 사야 할 것 같았다.
그 사이에도 태블릿에서는 톡톡 톡 소리가 빠르게 들리고 있었
다.
그리고…….
“이겼다.”
청년의 중얼거림에 변대두가 그 를 보았다.
“이겼습니까?”
“네.”
“프로를 상대로 잘 두십니다.”
“할 것도 없고 매일 바둑만 두 니까요.”
청년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바둑을 어떻게 두세요?”
“귀신들은 머리로 외워서 바둑 을 둡니다.”
“아……
강진이 대단하다는 듯 청년을 보다가 태블릿에 떠 있는 바둑판 을 보았다.
‘저 바둑알을 다 기억한다고?’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나오 지 않는 기억력이었다. 물론 전 에 변대두가 한 말에 따르면 외 우기보다는 이해를 하는 것 같지
만 말이다.
‘어쨌든 대단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