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442화 (440/1,050)

441 화

술을 마시는 오자명과 오기봉의 옆에 할아버지 귀신이 서 있었 다.

할아버지는 양손을 공손히 모은 채 오기봉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 었다.

그런 할아버지 귀신을 보던 강 진이 최호철을 보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답을 구하는 강진의 시선에 최 호철이 말했다.

“오기봉을 알더라고.”

최호철이 더 말을 하려 할 때,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제가 이 분의 아들을 차로 치 어 죽였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강진의 시선에 할아버지가 한숨

을 쉬며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할아버지를 보던 강진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어디를 가십니까?”

오자명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계란 프라이 드리려고요.”

강진의 말에 오자명이 웃었다.

“여기가 또 계란 프라이 맛집이 네.”

“계란 프라이라…… 저도 오랜 만에 먹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먹었다고 해도 비빔밥 먹을 때 올려주는 계란 프라이 정도였지, 하나의 음식으로서 계 란 프라이를 먹는 건 정말 오랜 만인 것이다.

“이 사장님이 그러는데 계란 프 라이는 남을 위해 하는 음식이라 고 하더군.”

“남을 위해 하는 음식?”

“자네 계란 프라이 해 본 적 있

나?”

“그야 있지요. 우리 아들 어렸 을 때 계란 프라이에 간장 넣고 밥에 비벼 주면 그렇게 잘 먹었 습니다.”

오기봉의 말에 할아버지 귀신의 얼굴에 슬픔과 미안함이 어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를 하는 할아버지 귀 신의 모습을 보던 강진이 오기봉 을 보았다.

오기봉은 계란 프라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누라 아파서 밥 못 차릴 때는 아들 아침 해 주느라 계란 프라이도 몇 번 했지요.”

“자네가 먹으려고는 해 봤나?”

“저요?”

“그래. 자네가 먹으려고 말이 네.”

오자명의 말에 오기봉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계란 프라이 먹고 싶

으면 아내한테 해 달라고 했 지…… 딱히 제가 해 본 적은 없 군요.”

“그럼 마누라 없을 때는?”

“혼자 밥을 먹는데 무슨 계란 프라이를 합니까. 그냥 김치에 적당히 먹는 거지요.”

오기봉의 말에 오자명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혼자 먹어도 밥은 잘 차려 먹 게. 자네나 나나 앞으로 밥을 먹 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 소중한

한 끼를 김치 하나만 두고 먹 나?”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음식을 잘하 셔서 밥은 잘 먹고 있습니다.”

“그런가?”

“일주일에 두 번씩 오셔서 청소 도 해 주시고 반찬도 해 놓으시 고 그래서 잘 먹고 삽니다.”

오기봉의 답에 오자명이 다행이 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 다.

“어쨌든 계란 프라이가 그래. 남의 프라이는 쉽게 만드는데 나 먹으려고 하기는 귀찮다는 말이 지. 그래서 엄마가 해 주고, 아내 가 해 주고, 아이를 위해 해 주 는 그런 음식인 것 같아.”

잠시 말을 멈춘 오자명이 강진 을 보았다.

“참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오자명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그냥 해 본 말일 뿐입니다.”

“말에 자기 평소 생각이 담기는

것이죠.”

오자명의 푸근한 미소에 강진이 살짝 웃고는 말했다.

“그럼 계란 프라이 맛있게 해 다 드리겠습니다.”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할 아버지가 오기봉에게 깊게 고개 를 숙이고는 그 뒤를 따라 들어 왔다.

할아버지 귀신이 따라 들어오자 강진이 그를 보았다.

“할아버지가…… 그 차 운전자

였군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 귀신이 한숨을 쉬었다.

“귀신은 꿈을 꾸지 않지만…… 가끔 그때의 꿈을 꾸는 것 같습 니다.”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저분 아드님은 그곳에 안 계세 요?”

강진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할아 버지 귀신이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그분은 승천을 하셨습 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 이 그를 보았다.

“승천을 한 것은 어떻게 아세 요?”

“제가 죽고 찾아온 JS 금융 분 에게 물었습니다.”

“그거 개인 정보라고 잘 알려주 지 않을 텐데?”

전에 강진도 최호철이 하도 한 끼식당에 오지 않아 걱정이 되어

그 행방을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강두치는 최호철의 행방이 개인 정보라 알려주지 못한다면 서 승천 여부만 확인을 해 주었 다.

그것도 그나마 저승식당 주인이 고 VIP라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강진이 살짝 놀라며 물었다.

“VIP 세요‘?”

강진의 물음에 할아버지 귀신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운전을 그날 하지 마시지.”

강진은 할 말이라고는 그것밖에 는 없었다. 강진의 말에 할아버 지 귀신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날…… 날씨가 추웠습니다.”

할아버지 귀신은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3월이었습니다. 봄이었고……

아침에는 서늘해도 해가 뜨면 따 뜻한 날이라 옷을 좀 얇게 입었 습니다. 일을 보고 나오는데 비 가 오더군요. 주차장까지 가깝기 도 해서 그냥 조금 비를 맞았습 니다.”

한숨을 쉰 할아버지가 입맛을 다셨다.

“차에 탔는데 시트가 차가웠습 니다. 서둘러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차를 출발했습 니다. 주차장을 나오고 도로에

들어서서 신호에 차를 세웠는 데…… 갑자기 가슴이 아파오더 군요.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 고…… 하아! 제가 사람을 차로 치어서……

강진은 그날 일을 자세하게 설 명하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기억이 생생하시네요?”

귀신들의 기억은 조각이 빠진 퍼즐과 같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때의 일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과 표정을 보니 그때 의 감정과 고통까지 생생히 기억 하는 것 같았다.

“그날의 기억을 어떻게 잊겠습 니까. 내 잘못으로 한 젊은이가 죽었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서 아들을 앗아간 날인데……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나쁜 분이라면 지옥에 가라고 웃어 줄 텐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나쁜 분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죄의 무 게에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분이었다.

할아버지 귀신을 보던 강진이 입을 열었다.

“그건 사……

사고라고 말을 하려던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해 줄 말이 아니었다.

달리 뭐라 말을 해야 할지 고민 할 때, 배용수가 접시를 내밀었 다.

“가져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접시를 보았다. 접시에는 잘 익은 계란 프라이가 네 개 놓여 있었다.

탄 곳 하나 없이 하얗고 노랗게 익은 계란 프라이를 보던 강진이 할아버지 귀신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홀로 나왔다.

‘혹시 아드님이 남아 있으면 식 사라도 같이 하게 하려고 찾았더 니……

혹시라도 사고가 난 자리에 지

박령으로 남아 있으면 모시려고 했는데, 가해자인 할아버지가 온 것이다.

그것도 죄책감 때문에 지박령이 돼 있는 할아버지 귀신이 말이 다.

할아버지 귀신을 보며 고개를 저은 강진이 접시를 들고 홀로 나왔다.

“계란 프라이 나왔습니다.”

강진이 접시를 놓자, 오자명이 수저로 계란을 하나 떠서는 오기

봉의 밥 위에 올려놓았다.

“하나 먹어 보게. 부드러워서 술술 넘어간다네.”

오자명의 말에 오기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란 프라이를 입에 대고는 후루룩 먹었다.

부드럽게 입안에 빨려오는 계란 프라이에 오기봉이 고개를 끄덕 였다.

“맛이 아주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진이 소주를 따라주자 오기봉 이 그것을 마시고는 미소를 지었 다.

그런 오기봉을 보며 오자명이 웃었다.

“앞으로 혼자 밥 먹기 싫고, 먹 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여기 와 서 먹고 가. 여기 사장님이 바쁘 지 않은 시간에는 손님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주시니까.”

오자명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홍보 감사합니다.”

강진의 말에 오자명이 피식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맛있는 것 잘 부탁드리 겠습니다.”

“저희 가게는 언제나 맛있는 음 식을 해 드리지요.”

강진의 말에 오자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를 따라 한 모금 마시고는 김치찌개를 먹었다.

그 이후 오자명과 오기봉은 가 벼운 잡담과 선거 이야기를 하며 기분 좋게 소주를 마시고 있었 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갑작스러 운 한기를 느껴 몸을 떨었다.

“이거 술을 많이 먹었나? 좀 쌀 쌀해지는 것 같지 않나?”

오자명의 말에 오기봉도 고개를 끄덕였다.

“좀 추운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강진이 힐끗 시

간을 보았다.

<10:30>

저승식당 영업을 할 시간이 다 가오고 있었다. 귀신들이 문 열 리기를 기다리며 밖에 모이기 시 작하니 그 영향으로 두 사람이 추위를 느끼는 것이다.

팔뚝을 문지르는 두 사람에게 강진이 말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지금 일어나 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강진의 말에 오자명이 웃었다.

“나이를 먹은 것이 이렇게 티가 납니다.”

“아직 정정하신데요.”

“아닙니다. 젊었을 때는 날 새 도록 술 마셔도 다음날에 멀쩡히 일했는데 이제는 11시도 안 됐는 데 몸이 못 버티는군요.”

오자명의 말에 오기봉이 웃었 다.

“가는 세월 누가 막겠습니까.”

오기봉이 몸을 일으키며 지갑을 꺼냈다.

“얼마입니까?”

오기봉의 말에 오자명이 웃었 다.

“가는 세월 못 막아도 동생 술 값 내는 것은 내가 막아야지. 넣 어둬. 내가 낼 테니까.”

“형님, 아닙니다. 제가 내겠습니 다.”

“후원회 유지하느라 돈도 쓸 텐데 이런 술값이라도 내야지요. 회장님은 지갑 두세요.” 많이 내가 넣어

오자명의 농에 오기봉이 다. 웃었

“알겠습니다. 형님이 낸다고 하 시니 잘 얻어먹겠습니다.”

“그래.”

웃으며 오자명이 강진을 보았 다.

“얼마입니까?”

“김밥 한 줄에 1500원씩 해서 25줄 37500원, 김치찌개에 술까 지 4만 원해서 77500원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치찌개는 3인분이었지만, 술 값이 꽤 많이 나왔다.

둘이서 술을 정말 많이 마신 것 이다.

“대리 불러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두 사람 다 고개를 저었다.

“저는 택시 타고 다닙니다.”

오기봉의 말에 오자명이 그를 보고는 말했다.

“기봉이는 작년에 운전면허증을 반납했습니다.”

“ 반납요?”

“운전면허증을 취소하는 것이라 고 보면 됩니다.”

오자명의 말에 오기붕이 웃으며 말했다.

“남이 제 차 받아서 낸 사고 아 니면 무사고 사십 년입니다. 하 지만 저도 나이를 먹으니 반응

속도도 떨어지는 것 같고, 브레 이크를 밟아도 밀리는 것 같더군 요. 그래서 작년에 운전면허증을 반납했습니다.”

오기봉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노인이 되면 반응 속도가 느려서 응급 상황에 서 제대로 대처하기가 힘들 것이 다.

브레이크 밟는 것이 1초만 느려 도 몇 미터에서 10미터 넘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으니…… 확실히 위험하기는 했다.

“운전 안 하고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굳이 반납까 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강진의 말에 오기붕이 고개를 저었다.

“면허증을 가지고 있으면 급할 때 차를 몰 생각이 들 것 같더군 요. 하지만 면허를 반납하면 무 면허라 운전을 할 생각을 하지 않잖습니까.”

“그렇군요.”

“지금 생각하면 반납을 잘 한

것 같습니다. 가끔 차 끌고 나오 면 주차하는 것부터 스트레스 받 았는데 이제는 대중교통 이용하 면 되니 참 편합니다.”

“출퇴근 시간만 아니면 대중교 통이 편하죠.”

“맞습니다.”

이야기를 나눌 때 오자명이 카 드를 내밀었다.

“계산해 주십시오.”

카드를 받은 강진이 카운터에서 결제를 했다. 그것을 보던 오자

명이 문득 카운터에 있는 바둑판 을 보고는 물었다.

“바둑을 두십니까?”

“제가 두는 건 아니고 손님 중 에 바둑을 좋아하시는 분이 있어 서요.”

“호오! 여기에서 바둑을 두기도 하는 겁니까?”

“가끔 두십니다.”

강진의 말에 오자명이 바둑판을 보다가 오기봉을 보았다.

“바둑판 있는 줄 알았으면 같이 한 판 둘 것을 그랬군.”

“선거 끝나고 한 번 두시죠.”

“그래. 다음에 같이 한 번 두자 고.”

오자명이 문을 열고 나가자 오 기봉이 그 뒤를 따라나섰다. 둘 을 배웅하고자 따라 나온 강진은 문 앞에 서 있는 귀신들을 보고 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에 귀신들이 급히 좌우로 벌 어지며 길을 터 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이 길가로 나와 지나가는 택시를 잡고는 강진에게 손을 흔 들었다.

“또 보세.”

“또 오세요.”

강진의 인사에 두 사람이 웃으 며 택시에 올라타고는 곧 출발했 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옆을 보 았다. 어느새 따라 나온 할아버 지 귀신이 멀어지는 택시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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