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446화 (444/1,050)

445 화

날씨 좋은 일요일 공원엔 놀이 공원만큼이나 사람이 많았다. 그 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미세먼지가 없는 3월은 아주 드물다.

미세먼지 때문에 아파트 놀이터 에도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날은 집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날인 것이다.

그래서 공원에는 놀러 나온 아 이들과 인근 주민들이 모처럼 파

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주는 여 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와아아!”

“야아아아!”

의미 모를 소리를 지르며 뛰어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에 김소희 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몸을 이리 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라면 자신이 걷는 것만으로 도 사람들은 길을 열고 알아서 거리를 둔다.

하지만 어제 한끼식당에서 뿌린

향수로 귀기가 사라진 김소희에 게는 아이들이 미사일처럼 달려 들었다. 그 덕에 김소희는 무척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은 방향성이 있다. 보통 자신이 보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 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런 것이 없 다. 앞을 보다가도 옆으로 뛰고, 사방팔방 자기 가고 싶은 곳으로 갑자기 튀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김소희로서는 아이 들을 피하는 것이 왜란 때 조총

피하는 것처럼 힘들었다.

자신을 옆에서 덮쳐오는 아이를 피해 뒤로 한 걸음 물러선 김소 희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가씨.”

아이들을 피해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김소희가 그를 보고는 눈 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다시 자신을 스치듯 지나가는 아이를 피해 조심히 다 가왔다.

그 모습에 강진이 서둘러 그녀 에게 다가갔다. 눈에 안 보이는 김소희에게는 아이들이 막 달려 가겠지만, 자신이 근처에 있으면 그래도 아이들이 피해가든 조심 하든 할 테니 말이다.

강진이 자신의 앞에 와서 서자, 김소희가 눈을 찡그렸다.

“가게에 있지 않고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모처럼 날씨가 좋아서요. 이모 님 모시고 소풍차 나왔습니다.”

“나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있지 않은가.”

“열 시 될 때쯤에 제가 아가씨 를 모시려고 했는데……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다가 눈을 찡그렸다. 그런 김소 희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 다.

“제가 너무 편하게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불편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강진의 사죄에 김소희가 한숨을

쉬었다.

“가세.”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열자 김소희가 고 개를 저었다.

“앞에 서게.”

강진이 앞에 서자, 김소희가 그 의 뒤에 섰다. 강진을 방패로 앞 에 오는 아이들을 피할 생각이었 다.

그리고…….

꼬옥!

김소희가 자신의 옷을 뒤에서 잡는 것을 느낀 강진이 웃으며 차달자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 겼다.

“어이쿠! 뛰면 다쳐요.”

“이크!”

강진은 아이들이 올 때마다 소 리를 내 접근하지 못하게 하면서 김소희를 데리고 차달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김소희가 다가오는 것에 차달자

가 몸을 일으켰다.

“아가씨, 오셨어요?”

차달자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 는 것에 김소희가 그녀를 보다가 힐끗 하늘을 보았다.

“날이 좋아 소풍을 온 모양이 군.”

김소희의 말에 차달자가 미소를 지었다.

“날이 참 좋습니다.”

차달자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 안에만 있지 말고 날씨가 좋을 때 이렇게 산책도 하고 햇 살도 받게나. 사람은 햇빛을 보 아야 건강한 법일세.”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달자가 미소를 지으며 김밥을 가리켰다.

“김밥 좀 드시겠어요?”

차달자가 권유하자 김소희가 김 밥을 보다가 잔디밭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자 차달자가 젓가락을 내밀 었다.

스윽!

화아악!

반투명해진 젓가락이 김소희의 손에 잡혔다. 그 젓가락으로 김 밥을 집어 입에 넣는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슬며시 옆에 앉았 다.

“그런데 왜 걸어오셨어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힐끗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말했다.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피하 시면서 오시던데……

“사람의 몸이 귀신과 닿아서 좋 을 것이 없다.”

말을 하며 김소희가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았다.

“특히 영혼과 육신이 몸에 익지 않은 아이들 같은 경우 더더욱 좋을 것이 없고. 심하면 아플 수 있네.”

“그래서 피하면서 오셨군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처녀 귀신들이 하는 축지를 쓰셔서 휙 하고 오시면 되지 않나요?”

“힘이 있다고 해도 아무 때나 사용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네.”

“그래도 필요할 때는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자네를 만나러 오는 것뿐인데 굳이 힘을 쓸 필요는 없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시려면 힘 을 쓰셨을 텐데?’

한끼식당에 갔다가 자신이 없으 니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그럼 여기까지 오는 데 힘을 썼을 텐 데…… 이왕 쓴 것 조금 더 써서 바로 자신의 앞으로 와도 되지 않나 싶은 것이다.

하지만 강진은 그에 대해서 더 묻지 않았다. 김소희는 가끔 이 상한 행동을 할 때가 있으니 말

이다.

김밥을 먹는 김소희를 보던 강 진이 슬쩍 그녀의 옆에 떠다니는 검을 보았다.

귀신의 모습을 한 김소희는 검 을 들고 다닌다. 하지만 검을 직 접 들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지금처럼 검을 쥐고 있지 않아 도, 검이 스스로 떠다니며 그녀 주위를 맴도는 것이다.

‘말 그대로 귀검이라고 해야 하 나?’

어렸을 때 유행했던 소설, 퇴마 집의 주인공이 들고 다니던 검이 떠올랐다.

검을 보던 강진이 김소희를 보 았다.

“그 학생은 어디에 있습니까?”

“친구들하고 있다.”

“놀고 있나 보군요.”

“노는 것은 아니고…… 과외라 고 해야겠군.”

“과외요? 그 학생이 공부를 잘

하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다가 김밥을 하나 집어 입에 넣 었다.

“문무겸전이라고 하지만 문이 뛰어난 자는 무가 떨어지기 마련 이고, 무가 뛰어난 자는 문이 떨 어지기 마련이네.”

“그 말씀은 머리는 별로라는 건 가요?”

“맞네.”

“그럼 무슨 과외를?”

“자신이 잘하는 것을 가르친다 고 보면 되네.”

그러고는 김소희가 김밥을 하나 더 집어 천천히 씹다가 입을 열 었다.

“김밥 맛이 좋군.”

스윽!

말을 하며 김소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차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답했다.

“저녁에 드시도록 김밥을 준비 하겠습니다.”

“그리 하게.”

김소희가 강진을 보며 물었다.

“차 어디에 있나?”

“차 타시게요?”

“자네가 뛰어올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달자를 보았다.

“일 보고 오겠습니다. 여기 잠 시 계시면 제가 모시러 오겠습니 다.”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택시 타고 갈게요.”

“아닙니다. 학생 좀 보고 오면

되니 시간 그리 안 걸릴 겁니

다.”

“알겠어요. 편하게 하세요.”

차달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김소희를 보았다.

“이쪽으로

강진이 안내를 하자 김소희가

걸음을 옮겼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도착한 강진이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타시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차를 물 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 드라마를 보았네.”

“드라마요?”

“드라마에서는 귀한 사람이 뒤 에 타더군.”

말을 하며 김소희가 뒷좌석을

보자, 강진이 조수석을 닫고는 뒷문을 열었다.

“아가씨 타시지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뒷좌석에 올라탔다.

탓!

강진이 문을 닫자, 김소희가 슬 쩍 자동차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런 김소희를 보며 차에 탄 강 진이 말했다.

“제 차는 처음 타 보시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차를 타는 것 자체가 처음이 네.”

“응? 차 안 타 보셨어요?”

“차라는 것은 먼 거리를 가야 할 때 타는 것이나…… 차보다 내 다리가 더 빠르니 굳이 타야 할 이유는 없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축지를 할 수 있는 처녀

귀신이니 차를 탈 필요가 없었겠 네.’

배용수와 같은 귀신들은 먼 거 리를 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한 다.

모든 귀신이 영화처럼 파파팟! 하고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것 은 아니니 말이다.

순간이동이나 특별한 힘을 쓸 수 있는 것은 처녀나 총각 귀신, 혹은 수십 년 이상 묵은 오래된 귀신들 정도였다.

특히 김소희는 처녀 귀신이자 오백 년 묵은 귀신이라 차를 타 지 않아도 더 빠른 이동이 가능 했다.

‘게다가 아가씨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스타일도 아니고.’

개인차라면 모를까, 김소희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 같지가 않 았다.

“그럼 차는 처음이시네요?”

“그렇네.”

“그럼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웃으며 강진이 시동을 켰다.

부릉!

시동이 걸리고 작은 진동이 느 껴지자 김소희가 슬며시 문 쪽을 잡았다.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누…… 누가 긴장을 했다는 것 인가.”

살짝 떨리는 얼굴로 말을 하는 김소희를 백미러로 본 강진이 웃 었다. 처녀 귀신의 정점이자 무 신인 그녀가 차의 진동에 긴장하

는 것이다.

그런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물 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동네 이 름을 말해주었다. 그에 강진이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는 차 를 출발시켰다.

부릉!

차가 살짝 흔들리며 출발하는 것에 김소희가 호기심 어린 눈으 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차를 처음 타 본 그녀다 보니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신기한 것 이다.

그런 김소희의 모습을 백미러로 힐끗 본 강진이 작게 웃었다.

“신기하시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운전석 쪽을 보았다. 그러다 백미러로 자신을 보는 걸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혹여 자네가 오해할까 싶어 하 는 말이네만…… 내 차는 처음이

나 가마는 여럿 타 보았네.”

“ 가마요?”

“이것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내 타던 가마도 이런 네모난 곳 에 타서 먼 곳을 이동하는 것이 니 차와 비슷한 것이 아니겠나?”

말을 한 김소희가 차 실내를 보 며 말했다.

“내 꽃가마에 비하면 이건 초라 하기 짝이 없군.”

“아가씨 꽃가마가 무척 좋으셨 나 보네요.”

“물론일세. 가마에 있는 방석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안에 는 솜도 풍성히 들어 있어 그 위 에 앉으면 구름에 앉은 것처럼 편하기 이를 데가 없었네. 거기 에 겨울에는 작은 화로를 실어 따뜻하게 오갈 수 있었지.”

말을 하던 김소희가 작게 고개 를 저었다.

“내 가마에 비하면 자네 차는 참 삭막하기 이를 데가 없군.”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삭막보다는 깔끔한 편 아닌 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내비게 이션의 안내에 맞춰 운전을 이어 나갔다.

부우웅!

용산에 도착한 강진은 김소희가 이끄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기 있군.”

김소희가 보는 방향에는 운동복

을 입은 학생들이 줄줄이 서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꽤 가파르고 높 은 계단이었다.

학생들을 보던 강진은 그 맨 앞 에 있는 학생을 보았다.

“저 학생이군요.”

김소희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강진은 그녀가 돕고 싶다고 한 학생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맨 앞에 있는 학생의 옆에 그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학생 귀신

과 아주머니 귀신이 수호령으로 있었으니 말이다.

‘수호령이 둘이라……

사람한테 수호령이 붙어 있는 건 자주 보았다. 하지만 한 사람 에게 수호령이 둘이나 붙어 있는 것은 저 학생이 처음이었다.

먼저 계단을 올라간 학생이 뒤 를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소리를 치고는 천천히 계단을 내 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곤 다 내려오자마자 다시

올라가는 학생의 모습을 보던 강 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운동을 여기서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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