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화
계단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던 학 생들이 밑에 모였다. 그 앞에서 수호령을 달고 있는 학생이 뭐라 고 말을 하더니 학생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추가로 이야 길 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김소희 에게 물었다.
“뭐하는 거예요?”
“과외네.”
“과외요?”
강진이 되묻자 김소희가 학생들 을 보며 말했다.
“과외가 뭔지 아나?”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공부하 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네. 저 아이들은 마음이 약 한 아이들이네. 그래서 마음을 강하게 해 주는 과외를 받는 것 이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마음이 약한 아이들요?”
“저 아이들은 마음이 약해서 다 른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곤 했네. 두준이는 그런 아이들에게 마음이 강해지는 과외를 해 주는 것이네.”
쉽게 말을 하면 애들에게 괴롭 힘당하는 애들을 모아 놓고 단련 을 시켜주고 있다는 말이었다.
“싸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건가 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싸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네. 정신 수양을 시키는 것이네.”
그러고는 김소희가 강진을 보며 말했다.
“자네는 애들이 왜 맞고 다니는 것 같나?”
“그야 싸움을 못해서요?”
“아무리 싸워도 애들일 뿐이네. 애들이 싸움을 잘하면 얼마나 잘 하고 못하면 얼마나 못하겠나? 그저 먼저 때리고 상대 코에서
피가 터지면 이길 뿐이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코피 터뜨리면 이기는 단계는 넘은 것 같은데요?”
고등학생 정도 되면 코피가 났 을 때 더 흥분해서 날뛸 수도 있 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네.”
그러고는 김소희가 말을 이었 다.
“두준이는 누가 자신을 위협했 을 때 그에 대항할 수 있는 강한 마음을 키워주려는 것이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학생들을 보았다. 학생들은 물을 마시고는 다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마음을 강하게 해 주려고 계단 을 오르게 한다고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계단을 오르는 아이들을 보며 물었다.
“자네 계단 올라 본 적 있나?”
세상에 계단을 안 올라본 사람
은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 히 강진은 남 못지않게 계단을 많이 오른 사람 중 하나였다.
“제가 현장에서 일할 때 시멘 트, 모래 짊어지고 20층까지도 오른 사람입니다.”
허풍이 조금 섞여 있기는 하다.
아파트 공사할 때에는 층이 높 아지면 간이 엘리베이터를 이용 해 화물을 옮기니 말이다.
하지만 강진이 짐을 들고 계단 을 엄청 오르락내리락한 것은 사
실이었다. 그 덕에 강진의 허벅 지는 지금도 차돌처럼 단단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허연욱조차도 허벅지가 좋아서 당뇨 걱정은 없겠다고 했을 정도 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말했다.
“계단을 오르는 것은 쉽네. 그 저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 되는 일이니 말이야. 하지만 그 계단 이 백 개가 되고 이백 개가 되면 아주 힘들어지지. 그때는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오를 수밖에
없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포대를 짊어진 채 4증을 두 번 오르내리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힘이 들기 마련이다.
그 이후부터는 정신력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 오늘의 일당이 걸 려 있고 내일도 와서 일해야 한 다는 그런 생각에 이 악물고 오 르는 것이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할 만 하겠구나.’
처음이야 할 만하겠지만 지친 상태에서는 계단 하나하나가 자 신과의 싸움인 것이다.
저렇게 자신과의 싸움을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라면 머지않아 두 려움이라는 적도 이겨낼 것이다.
김소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 달은 강진이 학생들을 보았다. 학생들이 몇 번이나 계단을 올랐 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은 꾸준히 계 단을 올랐다. 고통을 참으면서 계단을 오르는 학생들을 보던 강 진이 김소희를 보았다.
“그런데 저 학생 이름이 두준입 니까?”
“장두준이 저 아이의 이름이 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장두준을 보다가 말했다.
“유도 잘한다는 것 보면 싸움도 좀 할 것 같은데…… 그럼 두준
이가 괴롭히는 애들에게 직접 말 하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면 쥐 어패든가.”
“그렇게 하면 두준이가 있는 곳 에서는 안 때리겠지.”
“아......"
“그리고 두준이는 남을 지켜주 는 것보다 스스로 맞고 다니지 말라고 애들에게 저걸 시키는 거 네.”
“착하네요.”
“강하면서도 남을 배려할 줄 아
는 착한 아이지.”
잠시 말을 멈춘 김소희가 미소 를 지었다.
“작년 가을이었을 것이네. 두준 이가 계단을 오르게 하던 애 한 명이 자기를 괴롭히던 애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지.”
“주먹을요?”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녀석이 참으로 성격이 더 러웠어. 자기 잔다고 앞에 있는 애 허리 펴게 하고, 툭 하면 때
리고 매점 가서 먹을 것 사 오라 고 하고. 그 애한테 당하던 아이 였는데…… 맞으니까 맞받아치 더 군. 참으로 통괘했네.”
그러고는 김소희가 학생 중에 한 아이를 가리켰다.
“저기 네 번째로 서 있는 아이 네.”
“몸 좋은데요?”
“몸은 좋은데 소심한 아이라 남 을 때릴 줄은 몰랐던 게지. 주먹 이 어찌나 정확하게 들어갔는지
이 하나가 그대로 나갔지.”
“이빨이 나갔으면 징계 먹었을 텐데요?”
“치아 값이야 물어 준 것 같지 만, 맞은 애는 늘 맞던 애고 때 린 애는 늘 때리던 애라 학교에 서는 조용히 넘어간 모양이네. 그리고 다행히 맞은 애 부모도 자기 아들이 어떤 애인지 알기에 일 키우지 않았고 말이네.”
그때 일이 꽤 통쾌했는지 김소 희가 웃었다.
“자네 그거 아나?”
“뭐가요?”
“부모란 자기 아들이 맞고 오면 화를 내지만, 자기 아들이 남을 때리고 오면 화를 내면서도 고기 반찬을 해 준다네.”
“이빨 값을 물어줬는데도요?”
“내 자식 맞아서 합의금 받아 오는 것보다, 때리고 합의금 물 어 주는 것이 부모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네. 물론 아무 일도 생 기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말이네.”
김소희의 목소리에 어린 따뜻함 을 느낀 강진이 장두준을 보았 다.
‘소희 아가씨께서 무척 마음에 드셨나 보구나.’
장두준을 보던 강진이 입을 열 었다.
“오래 지켜보신 모양이네요.”
“수호령들의 사연도 신경이 쓰 이고 아이도 신경이 쓰이더군.”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장두준을 보다가 몸을 비틀었다.
우두둑! 우두둑!
몸을 가볍게 풀고 앉았다 일어 났다를 몇 번 하던 강진이 걸음 을 옮겼다.
“자! 그럼 인연 만들어 볼까 요?”
“어떻게 인연을 만들 생각인 가?”
“일단 물부터 한 잔 얻어 마시 고요.”
“물?”
“물을 시작으로 관심 분야를 만 들어 가야죠.”
강진이 걸음을 옮기며 하는 말 에 김소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후우! 후우!”
장두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유도로 단련된 몸이지만 계단을 여러 번 오르는 것은 힘들었다.
게다가 그는 물통이 든 가방까 지 메고 있었다. 친구들 정신력 강화를 위해 주말 아침마다 하는 것이지만, 장두준은 자신의 체력 훈련을 위해서 가방에 물통까지 담아 오르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던 장두준이 힐끗 뒤를 보았다. 뒤에서는 친구들이 천천히 그 뒤를 따라 오르며 거 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웃은 장두 준은 다시 계단을 오르다가 멈춰 서고는 맨 뒤를 보았다. 친구들
의 맨 뒤에 낯선 남자가 계단을 오르는 걸 발견한 것이다.
‘누구지?’
자신들을 따라 계단을 오르는 남자를 보던 장두준은 다시 계단 을 오르기 시작했다.
곧 계단 끝에 도착한 장두준이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홉! 후우!”
그는 눈으로는 계단을 올라오는 친구들을 살피면서 손으론 가방 에서 물을 꺼냈다. 곧 뒤늦게 친
구들이 도착하자 물을 건넸다.
“많이 마시지 말고 한 모금만 마셔.”
“두준아, 고마워.”
친구들이 물을 마시는 사이, 장 두준은 크게 가슴을 벌려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면서도 몸 움직 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사이, 아이들의 뒤를 따라 올라온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휴!”
그러고는 밑을 내려다보았다.
“아! 높다.”
밑에서 봤던 것보다 계단은 훨 씬 많았고 높이도 훨씬 높았다. 밑을 내려다보며 감탄하던 강진 은 장두준에게 다가갔다.
“학생, 미안한데 나 물 한 모금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강진의 말에 장두준이 물통을 꺼내 내밀었다.
“여기요.”
“고마워요.”
웃으며 물을 한 모금 마시는 강 진에게 장두준이 물었다.
“그런데 저희 따라 계단 오르시 는 건가요?”
“운동하는 것 같아서 나도 오랜 만에 운동 좀 하려고 같이 올랐 어요. 혹시 실례가 됐나요?”
“아닙니다. 이 계단이 저희 것 도 아닌데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 요.”
웃으며 강진이 몸을 비틀다가 말했다.
“확실히 혼자 오르면 힘들어서 멈추는데 앞에서 사람들이 같이 오르니 힘들어도 어떻게 오르게 되는군요.”
“형 말대로 운동은 같이해야 으 쌰으쌰 해서 더 오래 할 수 있 죠.”
장두준이 자신에게 형이라고 하 는 것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친화력도 있네.’
장두준을 보던 강진이 입을 열 었다.
“예전에 현장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는 1층에서 20층까지도 모래 지고 단숨에 올랐는데…… 오랜 만에 이렇게 계단을 오르니 힘드 네요.”
“현장 아르바이트 많이 해 보셨 어요?”
막노동 아르바이트에 관심을 가 지는 장두준을 보며 강진이 고개 를 끄덕였다.
“현장 아르바이트 말고도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 많이 해 봤죠.”
“그 현장 아르바이트 돈 많이 주나요?”
“작년에는 일용직이 13만 원 정 도 받았죠.”
“13만 원……
13만 원이라는 말에 장두준이 잠시 뭔가 생각하는 것 같자, 강 진이 웃으며 말했다.
“현장 알바에 관심 있어요?”
“그…… 아무나 가서 해도 되는 건가요?”
“현장 팀에 소속이 되면 일이야 늘 있지만, 학생인 것 같은데?”
“고2입니다.”
“고2면 학생이라 타지 생활해야 하는 현장 팀은 안 되겠고, 인력 사무소 가야 하는데…… 인력 사 무소에서는 자주 오는 사람들 위 주로 일을 줘서 학생이 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아
강진의 말에 장두준이 입맛을 다시고는 친구들을 보았다.
“내려가자.”
«으 «
친구들이 힘겹게 답하고는 하나 둘씩 줄을 서자, 장두준이 앞장 서서 계단을 내려갔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가는 게 더 위험한 것 알지? 다리에 힘 잘 주고 내려와.”
장두준의 말에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히 계단을 내려왔
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 그건 계단도 마찬 가지였다.
특히 지금처럼 몇 번이나 계단 을 오른 상태에서는 하체가 풀려 서 다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앞에서 장두준이 있는 것이다. 혹시 애들이 구르기라도 하면 앞에서 잡아 주려고 말이 다.
장두준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는
학생들의 모습에 강진이 작게 웃 었다.
“애가 카리스마가 있네요.”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장군 감일세.”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옆을 보았다. 어느새 그 녀 옆에는 장두준의 수호령인 어 머니와 형 귀신이 서 있었다.
김소희가 온 것을 보고는 장두 준을 따라가지 않고 옆에 선 것 이다.
강진이 고개를 숙이자, 두 귀신 은 살짝 놀랐다가 마주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