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 화
고개 숙인 강진을 보며 미소를 짓던 아빠의 혼이 흩어졌다.
화아악!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지는 것에 김소희가 몸을 일으키며 두 수호 령을 보았다.
“마중을 가겠는가?”
김소희의 말에 오미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김소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 다.
“원래라면 진작에 가도 가야 할 사람…… 오래 버텼네.”
“그래도 이렇게 버틴 사람인데 이렇게 쉽게?”
오미진의 중얼거림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라 이때까지 버틴 것이 네.”
스윽!
김소희가 오미진을 보았다.
“JS 직원들을 보는 것보다 자네 둘의 얼굴을 가장 먼저 보는 것 이 그 사람에게는 좋을 듯한데.”
김소희의 말에 오미진이 굳은 얼굴을 하고 있다가 장두준을 보 았다.
“하지만 저희가 어떻게?”
수호령인 둘은 장두준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자네가 원한다면 마중을 할 시 간 정도는 내가 만들어 주겠네.”
김소희의 말에 오미진이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남편이자 아이들 의 아버지가 죽은 모습을 보기 위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남편이 귀 신으로서 눈을 떴을 때, 그 자리 에 있고 싶었다. 그에게 하고 싶 은 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었 다.
왜 이리 일찍 왔냐고…… 조금 더 살아서 애한테 힘이라도 되어
주지, 왜 이리 일찍 왔냐고…….
아니면 모진 목숨 이때까지 잘 잡았다고, 이제 다 놓아두고 같 이 저승 가서 살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숨 만 쉬던 오미진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그리 하겠습니다.”
답변을 들은 김소희가 손을 내 밀어 오미진과 장명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스으윽!
세 귀신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
강진이 놀란 눈으로 빈자리를 볼 때, 차달자가 작게 입을 열었 다.
“말 그대로 귀신같은 분이시 죠.”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작게 속 삭였다.
“수호령을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갈 수도 있는 건가요?”
수호령은 지박령처럼 ‘묶인’ 존 재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는 있어도 그 거리를 벗어 날 수는 없는 것이다.
“저는 처음 보지만…… 아가씨 이니 당연히 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건…… 그러네요.”
김소희라면 뭘 해도 그런가 보 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차달
자가 안쓰러운 눈으로 장두준을 보았다.
“이제 정말 혼자가 되는군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장두준을 보았다. 장두 준의 옆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같 이 있어준 친구도 있고, 앞으로 운동할 때 후원을 해 줄 황민성 도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믿고 의지할 선생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장두준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두준에게는 그래도 병상에 있 는 아빠가 가장 큰 의지가 될 텐 데……
병상에서 눈도 뜨지 못하고 누 워만 있는 아빠지만, 장두준에게 는 그런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할 것이었다.
중얼거리던 강진은 고개를 젓다 가, 무언가 떠올리곤 문 쪽을 보 았다.
‘그런데 아까 그 혼 들어올 때 풍경이 울렸던 것 같은데?’
귀신들이 오고 갈 때는 한 번도 울리지 않던 풍경이 왜 울렸나 싶었다.
강진이 풍경을 볼 때, 황민성이 장두준을 보았다.
“내일 그 선생님하고 같이 보기 로 하시죠.”
“선생님요?”
“후원이라는 것은 돈으로만 되 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두준 선수의 훈련에 대해 선생님과 이 야기를 해 보고 후원에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일 만날 때는 저 외 에도 유도를 좀 아는 친구도 한 명 데리고 갈 테니 지금보다는 대화하기 쉬울 겁니다.”
황민성이 명함을 꺼내 내밀었 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 주시 고, 앞으로 맛있는 것이 먹고 싶 으면 이곳에 와서 드십시오.”
“여기에서 요?”
“두준 선수를 저에게 맡겼으니 강진이도 선수 식사 정도는 책임 져야지 요.”
황민성의 말에 풍경을 보고 있 던 강진이 그를 보았다. 그러고 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지 와요. 학생 하나 정 도는 내가 책임질 수 있으니까.”
강진의 말에 장두준이 그와 황 민성을 천천히 번갈아 보더니 한 숨을 쉬었다.
“꿈…… 같습니다.”
황민성의 반문에 장두준이 미소 를 지었다.
“어머니 아프시고…… 아버지 사고로 쓰러지시고. 형은 돈 벌 겠다고 학교 그만두고 아침저녁 으로 일하다가 사고로 죽었습니 다.”
잠시 말을 멈춘 장두준이 입맛 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그런 저에게 이런 행운이 생겼 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장두준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행운이라는 건 세상에 없어 요.”
“네?”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있는 데 감이 입안으로 떨어질 경우 보통 운이 좋다고 하는데…… 사 실 그것도 감나무 밑에서 입 벌 리고 기다려야 하는 노력이 필요 하죠. 감나무 밑에서 입도 안 벌 리고 있는데 그 입에 감이 들어 오겠어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입 다물고 있는데 감이 들어오지는 않죠.”
“맞아. 사람들이 흔히 복권 당 첨되는 행운을 원하는데, 그런 행운을 이루려면 복권을 사기라 도 해야 하는 거지.”
그러고는 황민성이 장두준을 보 았다.
“운이라는 것도 준비가 되어있 어야 받을 수 있는 법입니다. 행
운이 생긴 건 두준 학생이 그동 안 해 온 노력의 성과일 뿐이지 요. 두준 학생은 지금까지 잘 준 비했고 노력했으니 저와 강진이 를 만난 겁니다.”
황민성이 장두준의 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소주를 따라 주 고 싶은데…… 그건 나중에 학생 이 컸을 때 따라주기로 할게요.”
물을 따라 준 황민성이 장두준 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희는 두준 학생에게 행운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행운입니다.”
장두준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와 강진이는 두준 학생에게 있어 행운이 아닙니다. 저희는…… 기회입니다.”
황민성이 장두준을 보았다.
“기회는 왔을 때 잡지 못하면 사라집니다.”
황민성의 말에 장두준이 고개를 끄덕였고, 최영만은 놀란 눈으로 황민성을 보았다.
“그 말씀은 후원을 끊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건......"
황민성이 답을 하려 할 때, 장 두준이 그를 보았다.
“잡을 겁니다.”
장두준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장두준은 이글이글 타오 르는 눈빛을 한 채 말했다.
“저는 반드시 이 기회 잡을 겁 니다.”
장두준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최영만 을 보았다.
“아까 조폭한테 나섰다고요?”
“그건......"
최영만이 부끄러워하며 아까 있 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처 음에는 부끄럽게 이야기했지만, 뒤로 갈수록 최영만의 목소리에 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웃었다.
“학교 선배였으면 그 선배 소문 도 있었을 텐데?”
“우리 학교 일진 클럽인 몬스터 대장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조폭 밑에서 일한다고 선생님들 도 손을 못 댈 정도로 아주 무서 운 선배였어요.”
“안 무서웠어요?”
황민성의 물음에 최영만이 머리 를 긁었다.
“무서웠는데…… 두준이 혼자 둘 수가 없었습니다.”
최영만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 공부는 좀 해요?”
“그냥 보통입니다.”
“반에서 몇 등?”
“제가 영어를 못 해서…… 영어 를 잘 찍으면 이십 등 안으로 들 어가고, 못 찍으면 이십 등 밖으 로 밀려납니다.”
최영만의 말에 황민성이 잠시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요!”
딱!
가볍게 탁자를 친 황민성이 명 함을 꺼내 내밀었다.
“오늘 기회라는 놈을 내가 한 번 많이 베풀어 봅니다.”
“네?”
최영만이 의아한 듯 보자, 황민 성이 명함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그에게 밀었다.
“난 의리 있는 사람이 좋아요. 학생 의리 있어서 마음에 드네.”
“의리라고 할 정도까지는……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위해 나 서는 것, 그게 바로 의리입니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최영만을 보 았다.
“기회를 드리죠.”
“기회요?”
“지금 반에서 이십 등이라고 했
죠?”
“네.”
“반에서 오 등 안에 들어요.”
“오…… 오 등요?”
황민성의 말에 최영만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최영만의 성적은 반에서 20등 정도였다.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그저 그런 평범한 성적이었다.
어떻게 노력하면 10등 언저리까 지는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5등
안은 다르다.
5등 안에 들어가는 애들은 서로 등수가 바뀔지라도 5등 안이라는 점은 항상 같았다. 반에서 공부 잘한다는 애들이 바로 그 애들인 것이다.
일종의 급이 다르다고 할까?
“반에서 오 등은…… 어려운데 요.”
“기회란 것을 사람들이 쉽게 잡 으면 그게 기회겠습니까?”
황민성은 최영만의 반응이 재밌
었다. 수십억 수백억이 오가는 사업과는 다른 재미라고 할까?
“근데 무엇에 대한 기회입니 까?”
“아!”
황민성이 웃었다. 재미를 느끼 느라 5등 안에 들면 뭘 해 주겠 다는 말을 안 한 것이다.
“두준 학생처럼 장학금을 지원 해 드리죠.”
“장학금요?”
장학금이야 받으면 좋지만, 학 교가 사립도 아니고 비싼 학비 내는 곳도 아니라서 그리 큰 금 액도 아니었다.
얼마 안 되는 장학금 받자고 반 에서 5등을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곧 최영만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나한테는…… 나쁜 것이 없잖 아?’
5등을 하는 것이 어려워서 그렇 지, 5등도 하고 장학금도 받으면 최영만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그
의 부모님도 좋아할 테고 말이 다.
“그리고……
황민성이 최영만을 보았다.
“요즘 취업 어려운 것 알죠?”
“네? 네.”
“오 둥 안에 들면 학생이 원하
는 직장에 취업시켜 주죠.”
“제가 원하는 직장요?”
“물론 그 전에 회사에서 원하는 능력을 갖춰야겠지만, 능력만 맞
추면 취업을 시켜 드리죠.”
황민성의 말에 최영만이 명함을 보다가 말했다.
“그 제가 능력이 되면 제가 알 아서 취업하면 되는 것 아닌가 요?”
“하!”
최영만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 다.
“주위에 취업 준비하는 사람들 있으면 영만 학생한테 제가 한 제안이 얼마나 좋은 건지 물어보
세요.”
웃으며 황민성이 명함을 손가락 으로 툭 쳤다. 그에 최영만이 슬 며시 명함을 보았다.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지만 5 등 안에만 들면 장학금도 주고 취업도 시켜 준다고 하니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
다만 5등 안에 들 수 있을지 모 르겠다는 게 문제지만…….
최영만이 명함을 볼 때, 황민성 이 말했다.
“당장 오 등 안에 들라고는 안 하겠습니다.”
황민성이 최영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일 학기 기말고사면 괜찮겠습 니까?”
“일 학기요? 몇 달 안 남았는 데……
최영만의 말에 장두준이 그의 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 하자.”
“뭐? 야, 나는……
“난 사월 대회에 나갈 거다.”
“너 그거 안 나간다고 했잖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기량 올 리기 어려워서 그랬지. 하지 만.... ”
장두준이 황민성을 보았다.
“운동에만 전념하게 해 주신다 면 좋은 결과 만들겠습니다.’’
유도에 관해서는 자신만만하던 장두준이 우승이 아닌 ‘좋은 결
과’라고 말하자 황민성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좋은 결과? 우승이 아닙니까?”
“유도는 땀을 더 많이 홀린 자 가 이깁니다. 저는 다른 선수들 처럼 그만한 땀을 흘리지 않았습 니다. 그래서 사월 대회에는 좋 은 결과밖에 못 냅니다.”
자신감 넘치면서도 자만하지는 않는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 였다.
“다른 선수들처럼 땀을 홀리면
안 진다는 거군요?”
“제 땀은…… 진합니다.”
장두준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