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453화 (451/1,050)

452화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 황 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학생들이 나이가 있으면 한잔 할 텐데…… 아쉽군요. 자! 오늘 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들 집에 가서 쉬세요.”

황민성의 말에 장두준과 최영만 이 몸을 일으켰다. 그런 두 사람 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조금 더 있다가 가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지금도 시간이 좀 늦었는데?’

밥 먹고 이야기하다 보니 8시가 넘었다. 성인에게 8시면 저녁의 시작이지만, 고등학생에겐 늦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지금 출발해도 집에 도 착하면 9시가 넘을 테고 말이다.

황민성의 의문에 찬 시선에 강 진이 작게 고개를 젓고는 말했 다.

“밥 먹었는데 차라도 한 잔씩 하고 가요.”

“괜찮은데……

“나 혼자 심심해서 그래요.”

웃으며 강진이 쟁반을 가져다가 식탁을 치우자, 장두준과 최영만 이 그릇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에 강진이 그릇들을 쟁반에 담아 주방으로 옮기자, 황민성이 슬며시 그 뒤를 따라왔다.

“애들이 괜찮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만 학생 마음에 드신 모양이 네요.”

“두준이보다 나는 영만이가 마 음에 든다.”

“의리 있어서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리 있는 애들은 배신을 하지 않지. 지금부터 잘 키우면 나중 에 내 목숨 한 번 구해 줄지도

모르지.”

“잘 안 크면요?”

“그럼 한잔할 돈으로 학생 장학 금 한 번 줬다고 생각하면 되지. 술 먹는 것보다는 참 건설적이지 않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왜 웃어?”

“형은 참 돈을 건설적으로 쓴다 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는 불량학생들 모아 놓은 학 교를 만들고, 치매를 치료하기 위한 의학 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보육원에 기부도 하고 말이다.

이런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사업가라 고 하지만, 강진이 아는 사람 중 에 이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없었다.

강진의 말에 그를 보던 황민성 이 도마 한 쪽에 있는 김밥을 하 나 집어 먹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애들 남긴 거야?”

물음에 강진이 답을 하려 할 때, 홀에서 벨 소리가 들렸다.

그에 강진이 홀을 보았다. 장두 준이 전화를 받는 것을 본 강진 이 입맛을 다셨다.

“저 전화 때문에요.”

“전화?”

황민성이 홀을 볼 때, 장두준이 벌떡 일어났다.

“아…… 아버지가요?’’

으득!

장두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네.”

“두준아, 왜 그래. 병원이야?”

최영만의 물음에 장두준이 주방 을 보았다. 이미 황민성과 강진 이 홀로 나오고 있었다.

“저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 습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장두준이 숨을

크게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내일 약속은……

장두준의 말에 황민성이 외투를 집으며 말했다.

“갑시다.”

“네?”

“병원 가려는 거죠?”

“네? 네.”

“갑시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 다.

“갔다 올게.”

“저도 같이 가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네 사람은 급히 식당을 나와서는 대리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병원에서 온 전화는 장두준 아버지의 급환에 관한 것 이었다.

다행히 장두준은 늦지 않게 병 원에 도착해 아버지의 임종을 지 킬 수 있었다.

점심 장사를 마무리한 강진이 홀을 정리할 때 김소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윽!

“오셨어요?”

강진의 인사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녹차 한 잔 주게나.”

‘차?’

평소라면 소주나 막걸리를 달라 고 할 김소희가 차를 달라고 하 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 다가 고개를 숙이고는 차를 가져 왔다.

“아가씨께서 차를 즐기시는 줄 알았으면 좋은 걸로 준비를 할

것을 그랬습니다.”

녹차 티백을 내놓는 것이 미안 한 강진이 하는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어렸을 때 마셨던 녹차가 마시 고 싶을 뿐, 녹차의 질은 중요하 지 않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에 앉았다.

“잘 보내주시고 오신 건가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설마?”

귀신이 된 건가 싶어 강진의 얼 굴이 굳어지자 김소희가 다시 고 개를 저었다.

“귀신은 되지 않을 것이네.”

“그런데 왜?”

“아직 삼일장이 끝나지 않았 네.”

“아……

오늘은 삼일장의 마지막 날이니 발인이 진행될 텐데, 아직 식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다.

“식사를 좀 차려주게.”

“음식 무엇으로 해 드릴까요?”

“집밥이었으면 좋겠군.”

“집밥요?”

“두준이가 먹었던 음식으로 차 리게나.”

“두준이가 오는 건가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강진이 주방에 들어가 음 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차돌박이 된장찌개와 오징어볶음을 준비하 는 강진에게 차달자가 슬며시 말 했다.

“아가씨와 차를 좀 드세요.”

“괜찮아요. 음식 제가 하겠습니 다.”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께서 뭔가 기분이 안 좋 으신 것 같습니다. 가서 말동무

라도 해 주세요.”

차달자의 말에 음식을 만들던 강진이 멈칫해서는 홀을 보았다.

김소희는 조금은 씁쓸한 얼굴로 찻잔을 만지고 있었다. 평소 차 가운 얼굴엔 표정 변화가 드물었 는데 지금은 딱 봐도 뭔가 외로 움이 느껴졌다.

그런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차달자를 보았다.

“저보다는 이모님이 말 상대를 해 주시는 것이?”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와 편히 대화를 하는 사 람은 사장님뿐이세요.”

“저요?”

“저나 다른 저승식당 사장님들 은 모두 아가씨를 어려워하거든 요.”

말을 한 차달자가 미소를 지으 며 김소희를 보았다.

“아가씨께서 겸상을 하시는 것 을 보고 정말 많이 놀랐답니다.”

“늘 혼자 지내시는 것이 외로워 보이셔서요.”

“저는 아가씨를 수십 년 보았지 만…… 음식을 대접할 생각만 했 지, 사장님처럼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음식 부탁드릴게요.”

“네.”

차달자가 식칼을 잡자 강진이 선반을 열어 으에서 사 온 지옥

송이를 꺼냈다.

지옥송이는 이승에 있는 버섯 모양 초콜릿 과자를 바탕으로 만 든 것이었다.

이승의 초콜릿 과자는 막대 비 스킷에 버섯 갓처럼 생긴 초콜릿 이 달려 있는 한편 지옥송이는 불꽃 모양의 초콜릿이 달려 있었 다.

어쨌든 지옥송이를 꺼낸 강진이 김소희의 앞에 놓았다.

“과자 좋아하세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지옥송이 를 보았다.

“이런 과자는 먹어 본 적이 없 네.”

“ 없으세요?”

“나 때엔 이런 과자는 없었으 니.”

강진이 웃으며 봉투를 뜯고는 알맹이를 과자 상자 안에 부었 다.

빨간 초코, 검은 초코 등 여러 색이 있는 지옥송이를 김소희가

보자 강진이 상자를 그녀에게 밀 었다.

“맛있는데 왜 아가씨에게는 안 드렸나 모르겠네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강진은 답 을 알고 있었다. 어른들도 과자 를 좋아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른 은 음식이고 아이는 과자다.

그러니 저승식당 주인들이 김소 희에게 과자를 주지 않은 것이 다. 하늘같은 조선 제일 귀신에 게 감히 과자를 줄 수 없었던 것 이다.

그래서 강진도 김소희에게 정성 을 들인 음식을 대접했지, 과자 를 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제주도 삼다식당의 주 인, 박문수가 했던 말을 떠올리 며 과자를 내민 것이다.

귀신들도 과자를 좋아한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김소희가 귀신으로 서의 연령은 오래됐어도 사람으 로서 산 나이를 생각한다면 한창 과자가 당기고 좋아할 나이였다.

지옥송이를 보던 김소희가 살며 시 그것을 집었다. 그러고는 초 코 부분을 입에 넣고는 씹었다.

아득! 아득!

딱딱한 초콜릿이 입에서 씹히는 소리를 들으며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초콜릿이라는 것이군.”

“초콜릿 처음 드셔 보세요?”

“처음 먹는군.”

“입에 맞으시면 제가 챙겨 놓겠

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지옥송이 를 하나 더 집어 먹더니 재차 미 소 지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좀 나아지신 모양이네.’

방금 전까지 좀 우울해 보였는 데 지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확실히 우울할 때는 초콜릿인 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김 소희가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달콤함과 녹차의 씁쓸함이 잘 어울리는군.”

“쓴 음식과 초콜릿이 의외로 잘 어울리지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두준이에게 신경을 쓰 는 줄 아는가?”

“안쓰러워서 그러신 것이 아닙

니까?”

귀신치고 사연 없는 이 없지만, 장두준의 사연은 좀 많이 안쓰러 운 편이었다.

거기에 수호령이 둘이나 붙어 있고 말이다.

“안쓰러운 것도 있고…… 인연 일세.”

“인연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잠시 있다가 옆에 떠 있는 검을 보았 다.

“그 아이는 왜란 때 노비였네.”

“왜란 때? 전생을 보세요?”

강진이 놀라 묻자 김소희가 고 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집 노비였네.”

“아가씨 집에도 노비가 있었군 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만인이 평등하고 귀천 이 없지만, 그때는 귀천이 당연

한 것이었으니. 부끄럽지만 우리 집에도 노비가 있었네.”

강진이 보고 있자 김소희가 작 게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그 아이는 노비로 태어났으 나…… 죽을 때는 세상 그 누구 보다 용맹한 장수로서 죽었네.”

잠시 찻잔을 보던 김소희가 고 개를 작게 저었다.

“그런 이의 현생이 너무 안타까 움이야.”

스윽!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다.

“그 안타까움에 자네와 연을 맺 게 했네.”

“소희 아가씨에게 중한 사람이 라면 저에게도 중한 사람입니다.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겠습니다.”

강진의 답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와 황민성 그가 준 기회면 되었네.”

“그래도 소희 아가씨와 전생에 연이 있는 사람인데……

더 도울 것이 있으면 돕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 만 김소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와 나의 연은 전생에서 끝이 났네. 지금 그 아이는 나와는 관 련이 없는 아이일세.”

“그럼 왜…… 돕는 것입니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찻잔을 손으로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아이를 돕는 것은 나 를 위해서네.”

“아가씨요‘?’’

“못난 주인을 만나 고생을 했던 이들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것이 지. 그저…… 내 자기만족이고 나에 대한 위로일 뿐이네.”

김소희가 작게 한숨을 토했다.

“내 조선에 대한 그리움이라 해 야겠군.”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오백 년의 그리움이라……

강진이 안쓰러운 눈으로 김소희 를 보았다.

‘승천을 하셔야 할 텐데……

다른 귀신도 안쓰럽지만, 김소 희는 500년이다. 기나긴 시간 동 안 홀로 구천을 떠도는 것…… 참으로 고되고 힘들 것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김소 희가 입을 열었다.

“나는 자네가 그 아이에게 좋은 형이 되어 주었으면 하네.”

“형이요?”

“가끔 쉬어가는 곳이 되어주게 나.”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 밥집이 쉬어가는 곳입니 다.”

“고맙네.”

김소희가 희미한 미소로 답하자 강진이 말했다.

“아가씨도 언제든지 쉬러 와 주 십 시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지옥송이 를 집었다.

“그리 하지.”

그러고는 입에 넣고 아드득! 아 드득! 씹는 것에 강진이 웃었다.

‘초코과자를 몇 종류 더 사 놓 아야겠구나.’

김소희가 초콜릿을 잘 먹으니 준비를 더 해 놓아야 할 것 같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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