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화
김소희가 지옥송이를 먹을 때,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 사장님!”
기분 좋은 얼굴로 모습을 드러 내는 강두치의 모습에 강진이 고 개를 숙이다가 문득 그 뒤를 보 았다.
강두치의 뒤에는 뼈에 가죽을 두른 듯 아주 마른 남자가 환자
복을 입은 채 서 있었다.
전에 희미하게 본 적이 있던 두 준이 아빠였다. 두준이 아빠는 전과 달리 조금은 선명한 귀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강진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 자 두준이 아빠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전에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 했습니다. 두준이 아빠 장오명입 니다. 우리 두준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에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 고 행동도 어색했는데 지금의 장 오명은 행동도 말도 부드러웠다.
‘완전히 죽어서 그러신가.’
전에는 일시적으로 혼만 빠져나 온 상태였다면, 지금은 죽어서 완전한 귀신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강진입니다.”
둘이 인사를 나눌 때, 강두치가 김소희를 보았다.
“누님, 저 왔습니다.”
강두치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앉거라.”
김소희의 말에 강두치가 자리에 앉으며 지옥송이를 하나 집어 먹 었다.
그런 강두치를 본 김소희가 장 오명을 보았다. 김소희의 시선에 장오명이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두준이 살펴 주셔서 감 사합니다.”
장오명의 인사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승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두 려워할 것 없네. 죄를 지었다면 그 죗값 치르면 되는 것이고, 죄 가 없다면 이승보다 더 공평하고 살기 좋은 곳이 저승이라 하니 말이네.”
“말씀 감사합니다.”
장오명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 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두치를 보았다.
“시간은 얼마나 낼 수 있는가?”
“한 시간 정도입니다.”
강두치의 말에 김소희가 눈을 찡그렸다. 시간이 너무 짧은 것 이다.
그 모습에 강두치가 입맛을 다 시다가 지옥송이를 하나 집어 입 에 넣었다.
“누님 부탁이라 제가 힘들게 시 간을 낸 겁니다. 일반 귀신을 이 승에 한 시간이나 남게 하려면 제가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일곱
장입니다.”
삼일장이 끝나면 보통 귀신은 바로 스로 향한다. 하지만 예외 인 이들이 존재한다.
바로 VIP들이었다. 귀신을 데려 오는 JS 직원들의 마음이기는 하 지만, VIP인 경우는 보통 인근 저승식당에서 마지막 이승 음식 을 먹이고 저승으로 데려가곤 했 다.
아니면 VIP가 가고 싶다는 곳 이나 보고 싶다는 이들을 보게 해 주거나 말이다. 이것이 VIP의
특권이었다.
하지만 장오명은 VIP가 아니다. 그래서 강두치가 장오명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이 한계 였다.
그것도 김소희가 부탁을 했기에 들어 준 것이었지, 일반 귀신에 게 이런 편의는 안 될 말이었다.
강두치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 던 김소희가 슬쩍 지옥송이 상자 를 자신의 앞으로 당겼다.
“그만 먹게.”
“누님 치사합니다.”
“아니면 시간을 조금 더 주게.”
김소희의 말에 강두치가 입맛을 다시며 지옥송이를 보았다. 사실 지옥송이 정도는 회사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人} 먹으면 되었 다.
하지만 김소희가 이리 말을 하 니…….
“십 분. 그 이상은 저도 경위서 각오해야 합니다.”
강두치의 말에 김소희가 지옥송
이를 슬며시 그에게 밀었다.
“많。] 드시게.”
“에휴! 내가 어쩌다가 누님하고 이렇게 엮여서는……
강두치가 작게 투덜거리며 지옥 송이를 먹는 것에 강진은 살짝 놀랐다.
‘정말 많이 친한가 보구나. 하긴 소희 아가씨한테 누님이라고 부 르는데 안 친할 수가 없는 건 가?’
김소희에게 아가씨가 아닌 누님
이라고 하는 것은 강두치가 유일 하니 말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김소 희가 그를 보았다.
“식사 준비하게.”
“두준이가 아직……
“상 차릴 때쯤이면 도착할 것이 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강두치를 보았다.
“두치 씨도 뭐 좀 드릴까요?”
“저는 삼겹살 먹겠습니다.”
“소주도 한 잔 드릴까요?”
“하! 좋죠.”
강두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 에서는 차달자가 음식 준비를 한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음식은 바로 만들어서 먹어야 맛이 있기에 준비만 해 놓은 것 이다.
“이제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 다.”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가스레인 지 불을 켜고는 홀을 보았다. 정 확히는 장오명을 보았다.
장오명은 김소희에게 감사 인사 를 하고 있었다.
“어린 자식 두고 가려니 얼마나 힘들고.”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장오명과 다르게 차달자 는 자식을 먼저 보냈다.
둘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자 식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은 같으
니 마음이 가는 모양이었다.
“이건 제가 할 테니 이모님이 가서 뭐 더 드시고 싶은 것이 있 는지 물어보세요.”
“그래야겠어요. 가는 길…… 먹 고 싶은 걸로 배불리 먹게 하고 보내야죠.”
고개를 끄덕인 차달자가 손을 닦고는 주방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장오명 을 보았다.
‘마지막 가는 길에 가족끼리 식
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시려는 거구나.’
김소희가 식사를 준비하라고 했 던 이유를 깨달은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 했다.
촤아악! 촤아악!
강진이 오징어볶음을 만들고 있 을 때 장오명이 차달자와 함께 주방에 들어왔다.
“드시고 싶은 것 있어요?”
차달자의 물음에 장오명이 음식
을 만드는 강진을 보다가 말했 다.
“저희 아들들이 오징어를 좋아 하는데……
“어머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아……
강진의 말에 장오명이 오징어볶 음을 보다가 말했다.
“계란말이하고 콩나물 참기름에 버무린 것 혹시 될까요?”
“계란말이하고 콩나물요?”
“계란말이는 두준이가 좋아하 고, 참기름으로 무친 콩나물과 오징어볶음을 같이 먹는 것을 명 준이가 좋아합니다.”
장오명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아저씨가 좋아하는 것은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안쓰러운 눈으로 장오명을 보았다.
“자식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 것이 부모이니…… 자 식이 좋아하는 것이면 부모도 좋
은 게지.”
차달자의 말에 장오명이 미소를 지었다.
“저도 좋아합니다.”
장오명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냉장고에서 콩나물과 계란을 꺼냈다.
식탁에는 음식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차돌박이 된장찌개, 오징 어볶음, 그리고 계란말이와 콩나 물무침이 놓여 있었다.
음식을 다 차려 놓을 때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띠링!
그 소리에 고개를 든 강진은 황 민성이 장두준과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장두준이 들어오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강진의 예에 장두준이 고개를 숙였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두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업 때문에 오늘 발 인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첫째 날과 어제도 장례식장에 다녀왔 다.
인사를 나눈 강진은 장두준이 안고 있는 나무 상자를 보았다. 그 시선에 장두준이 나무 상자를 보며 말했다.
“식당에 모셔 오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따로 두기도 그래 서…… 죄송합니다.”
“아……
장두준의 손에 들린 나무 상자 는 장오명의 유골이 담긴 함이었 다.
“그건 괜찮은데 납골당에 안 모 시고?”
강진의 물음에 장두준이 유골함 을 잠시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 다.
“황민성 사장님이 납골당을 알 아봐 주셨습니다.”
장두준의 말에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그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황민성은 장례식 비용뿐만 아니 라 병원비도 해결을 해 주었다.
그동안 친척들이 돈을 모아서 매달 병원비를 보내기는 했지만, 나가는 돈이 워낙 많다 보니 밀 린 병원비가 상당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척들을 원망 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 병원비 에 아버지 병원비까지 친척들은 도울 만큼 도운 것이다.
“그런데 왜 납골당에 안 모셨어 요?”
강진의 물음에 장두준이 유골함 을 보았다.
“아버지가 병상에서 삼 년을 보 내셨습니다. 삼 년 동안 좁은 병 상에 있으셨는데…… 돌아가신 뒤에도 좁은 납골당 케이스 안에 계시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날 좋은 날 어머니 모신 납골 당 근처 산에 모시려고요.”
장두준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드라마처럼 고인이 좋아하 던 곳에 유골을 뿌리는 것은 불 법이다. 하지만 장두준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일단 앉으세요. 식사부터 하시 죠.”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밥 은…… 집에 가서 먹겠습니다.”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 리가
없었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안고 있으니 말이다.
“장례식 치르는 동안 식사 못 하셨잖아요. 일단 배를 채웁시 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식사부터 하자.”
황민성이 말하는 것을 듣던 강 진이 그를 보았다.
‘말을 놓으셨네?’
친한 사람이 아니면 말을 놓지 않는 그인데, 며칠 본 게 다인 장두준에게 말을 놓은 것이다.
황민성의 말에 작게 한숨을 쉬 던 장두준은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는 조금 얼떨떨해 하더니 곧 미소를 띠었다.
“마음에 들어요?”
강진의 말에 장두준이 유골함을 안고는 식탁에 다가갔다.
“저희 집 식사 자리 같아서요.”
“그래요?”
장두준의 말에 강진이 오미진을 보았다. 오미진은 남편인 장오명 과 손을 꼬옥 잡은 채 장두준의 뒤에 서 있었다.
강진의 시선에 오미진이 슬며시 식탁에 놓인 음식들을 보고는 미 소를 지었다.
“우리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 들이 모두 모여 있어서 그런가 봐요.”
오미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를 당겨주었다.
“밥 먹어요.”
강진의 말에 장두준이 유골함을 안은 채 의자에 앉았다. 그런 장 두준을 보며 강진이 슬며시 옆의 의자를 빼냈다.
그리고 장두준의 앞에 있는 의 자들도 모두 살짝 빼내고는 말했 다.
“식사하세요.”
강진의 말에 장두준이 수저를 들다가 문득 비어 있는 자리를 보았다.
“형님들은 식사 안 하세요?” 장두준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나한테 형이라고 한 거예요?”
“그게…… 네.”
장두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라고 불렀으니까, 앞으로
동생이라고 해도 되지?”
“그럼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럼 앞으로는 형 동생처럼 편
하게 말을 할게.”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슬며시 장두준의 품에 있는 유골함에 손 을 가져다 댔다.
“아버님은 옆에 모시자.”
장두준이 의아한 듯 그를 볼 때, 강진이 두 손으로 조심히 유 골함을 잡아서는 장두준의 옆 의 자에 놓았다.
스윽!
그러고는 강진이 유골함을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 장오명이
옆에 버젓이 두 눈 뜨고 보고 있 지만, 이건 장두준에 대한 예의 였다.
“영혼이 있다고 믿어?”
“네‘?”
강진의 말에 장두준이 그를 보 았다.
“나는 영혼이 있다고 믿어.”
강진은 장오명과 오미진, 그리 고 장명준을 보았다.
강진의 시선에 장오명 가족들이
식탁을 보았다. 식탁에는 네 개 의 밥이 있었다.
즉 네 명이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자 리는 강진과 황민성을 위한 자리 가 아닌, 장두준의 가족들을 위 한 자리였다.
귀신들이 작게 한숨을 쉬며 자 리에 앉자, 강진이 장두준을 보 았다.
“밥 맛있게 먹어.”
강진의 말에 장두준이 텅 빈 세
자리를 보았다. 강진이 만든 이 자리가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이 해한 것이다.
장두준은 여러 감정이 담긴 눈 으로 강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 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 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 다.
그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 이고는 옆으로 자리를 피해주었 다. 그러자 장두준이 입술을 깨 물고는 빈자리를 보았다.
‘엄마.’
평소 밥을 먹을 때 엄마가 앉았 던 곳을 보고, 이번엔 아빠가 앉 았을 곳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옆자리를 보았 다. 자신의 옆에는 늘 형이 앉아 있었다.
만약 살아 있었다면 앉았을 곳 을 보던 장두준의 눈가에 슬며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스르륵!
눈물로 흐려진 시야 속에서 문
득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엄마, 아빠, 형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 다.
그에 자세히 보기 위해 눈가를 닦은 장두준이 다시 입술을 깨물 었다.
주루룩!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듯 했던 가족의 모습은 눈물과 함께 사라 지고 없었다.
빈자리를 멍하니 보던 장두준이 떨리는 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스윽!
옆에 있는 아버지의 유골함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장두준이 입 을 열었다.
“있지.”
잠시 말을 멈춘 장두준이 입술 을 깨물었다.
“엄마도 보고 싶고, 아빠도 보 고 싶고…… 형도 보고 싶은 데…… 나 있지…… 너무 무서 워.”
장두준이 반대 손으로 흘러내리
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빠…… 나 너무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