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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456화 (454/1,050)

455 화

귀신들로 북적거리는 식당에서 강진은 황민성을 보고 있었다. 황민성은 탁자에 머리를 떨어뜨 린 채 졸고 있었다.

장두준이 가고 나서 황민성은 술을 마셨다. 아무래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아빠에 대한 기억이 나서인지 술을 마시기 시작하더 니 저승식당 영업시간인 지금까 지 마신 것이다.

그러다 결국 취해 이렇게 식탁 에 머리를 박고 쓰러진 것이고 말이다.

잠들기 직전인 황민성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앞을 보았 다.

김소희는 오징어볶음을 오물거 리며 먹고 있었다.

“민성 형 아버지는 살아 있습니 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그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인간의 생사야 나 말고 두치한 테 물어야지.”

“아가씨도 모르시는 건가요?”

아는지 모르는지, 김소희는 말 없이 소주를 마셨다.

‘아실 것 같은데?’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황민성을 힐끗 보고는 물었다.

“민성 형이 지었다는 죄가 혹시 전생의 죄입니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말이 없 다가 입을 열었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엄하지만 인자한 아버지와 자수보다는 검 을 휘두르는 것이 좋았던 소녀가 살고 있었네.”

강진이 자신을 물끄러미 보자 김소희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소녀에게는 용돈을 모 아 노리개를 사주는 마음 착하고 듬직한 오라버니가 있었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문득 그 녀의 가슴께에 달린 노리개를 보 았다.

-오라버니가 노리개를 사 주셨 던 것이 떠오르는군.

예전에 자신이 사 준 노리개를 보며 했던 말이었다.

스윽!

김소희가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는 입을 열었다.

“어느 날 나쁜 자들이 쳐들어왔 네.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셨네. 소녀도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돕 기 위해 열심히 싸웠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소녀가 아가씨군요.’

지금 김소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님과 오라버니는 수하들을

이끌고 적들과 싸웠네. 그런데 적과 같이 싸우기로 한 관군이 오지 않는 것이야.”

“관군요?”

“오지 않는 관군을 기다리며 아 버님과 오라버니, 그리고 소녀는 열심히 싸웠네. 그러다 소녀는 큰 상처를 입었고 오라버니의 지 시로 수하들의 보호를 받으며 전 장을 벗어났네.”

“아……

강진이 작게 탄식을 토할 때,

김소희가 황민성을 보았다. 그 시선에 뭔가 애잔함을 느낀 강진 이 놀란 눈으로 황민성을 보았 다.

‘설마 그 오라버니가?’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황민성 의 죄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김소 희는 자신의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강진이 놀란 눈으로 황민성을 볼 때 김소희가 말을 이었다.

“수하들의 도움으로 상처를 회

복한 소녀는 아버지와 오라버니 를 찾아 전장에 돌아왔지만 두 분의 소식은커녕 시신조차 찾지 못했네.”

“그렇군요.”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김소희 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쪼르륵!

술을 받던 김소희가 작게 한숨 을 쉬고는 황민성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쪼르륵!

자고 있는 황민성을 잠시간 보 던 김소희는 물끄러미 강진을 보 며 물었다.

“자네 아나?”

“무엇을요?”

“왜란은 두 번이 있었네.”

“임진년과 정유년 말씀하시는 거죠?”

“ 아는군.”

“배우니까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유년에 왜군은 전라도로 진 격을 하였네. 그리고 그때 전주 가 함락되었네.”

그때 기억이 나는지 김소희가 작게 한숨을 쉬며 허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시 나는 부산에 있었네.”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에 김소희가 왜적들과 싸우기 위 해 부산으로 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왜군이 전라도 진격했다는 이 야기에 나는 수하들을 이끌고 전 라도로 향했네. 그리고 전주에서 오라버니를 다시 만났네.”

“살아 계셨군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밀었다.

스르륵!

허공에 그녀의 검이 모습을 드 러냈다. 검을 쥔 김소희가 잠시 그 검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검을 들고 계시더군.”

“이 검은 왜검인데?”

의아한 듯 중얼거리던 강진이 놀란 눈으로 황민성을 보았다.

‘왜구의 앞잡이가 되신 거였 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김 소희가 입을 열었다.

“놀라면서도 화가 났네. 어찌 왜구의 앞잡이가 되어 자신의 고 향이자 아버님과 내가 살던 고을 을 공격하는지 말이네.”

“그러셨겠죠.”

“그래서 물었네. 왜 이리 되었 냐고, 목숨이 그리 아까웠냐고.”

강진이 보자 김소희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오라버니가 그러더군. 관군이 오지 않았던 게 아버님을 질시한 조선 장수의 짓 때문이었다고.”

“지원군이 오지 않은 것이?”

“당시 아버님이 이끄시는 의병 의 기세는 관군의 것을 넘어섰 지. 연전연패하던 관군들과 달리 아버님의 의병을 다루는 용병술

은 대단하였고, 오라버니와 제자 들은 일당백의 전사들이었네. 우 리가 벤 왜구의 목만 해도 수백 이 넘으니 그 공이 적지 않았 네.”

“그래서 그 나쁜 장수 놈이 군 사를 보내겠다는 약속을 안 지켰 군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님은 그날 싸움에서 아 버지를 지키다가 적에게 붙잡혔 네.”

그날이라면 김소희가 크게 다친 날일 것이다. 강진이 보자 김소 희가 입을 열었다.

“당시 우리를 공격했던 왜구의 적장이 오라버니의 용맹을 좋게 보았는지 죽이지 않고 치료를 해 주었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 고 해야 할지 몰라 강진이 입맛 을 다셨다.

결론적으로는 왜구의 앞잡이가 되어 김소희의 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리고 여러 일이 있었다는군. 포로로 잡혔지만, 항복하지 않은 채 탈출을 하려고 여러 차례 시 도하다 잡히길 반복하고, 다른 포로들을 돕고……

말을 하던 김소희가 한숨을 쉬 며 소주를 마시자 강진이 물었 다.

“그럼 변절을 하신 이유는 그 장수의 일을 알아서입니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 장수로 인해 아버님이 죽었 지만, 그거야 그 장수 놈의 개인 적인 일탈이었으니 원한은 그자 에게 풀어야 할 것이지, 조선에 게 풀 것은 아니었네.”

“그럼 왜?”

김소희는 바로 말을 잇지 못했 다. 그녀는 한참을 침묵하고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망을 하였더군.”

“실망?”

“조선의 군주라는 자의 무능함 과 조정의 행태에 말이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하긴 선조가 무능하기는 했지. 욕심만 많고.’

임금에게는 조와 종이라는 단어 가 들어간다. 태조, 선조, 세조, 선조처럼 말이다.

조는 국난을 이겨내거나 나라에 큰 공을 세운 뛰어난 임금에게 붙고, 종은 덕이 있는 왕에게 붙

는다.

조선의 임금에게는 기본적으로 종이 붙었고, 뛰어난 임금에게만 조가 붙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바로 세종대 왕과 선조가 그렇다.

세종대왕은 대왕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반면 선 조의 경우 임진왜란을 이겨낸 것 은 조선의 의병과 뛰어난 장수들 이었지, 그의 업적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임진왜란을 다룬 드라

마에서 나오는 선조를 시청자들 이 발암 덩어리라고 하겠는가.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선조가 이순신과 의병들을 믿고 잠만 자 고 있었어도 왜란이 더 일찍 끝 났을 수도 있었다.

‘왜란 때만큼 조선에 인재들이 넘쳐났던 적도 없었는데.’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김소희 를 보았다.

“그래서 변절을 하신 겁니까?”

“그 외에도 여러 이유를 댔네.

이 싸움은 왜가 이길 수밖에 없 으니 조선을 빨리 무너뜨리는 것 이 백성들의 피해를 줄인다든 지……

작게 말을 하던 김소희가 고개 를 저었다.

“하지만 그것은 변명일 뿐…… 오라버니는 조선의 배신자일 뿐 이네.”

김소희가 한숨을 쉬며 황민성을 보았다.

“그래서 내 손으로 죽였네.”

“아……

강진이 놀란 눈으로 김소희를 보았다. 그 시선에 김소희가 검 을 잠시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때 내 원망이 한이 되었는 지…… 오라버니의 전생들은 그 리 좋지 않더군.”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그녀를 보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도 서리가 내린다는데……

조선 제일의 처녀 귀신이자, 무

신인 김소희가 한을 품었으 니…… 태어나자마자 죽지 않는 것이 행운이었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김 소희가 황민성을 보며 입을 열었 다.

“하지만…… 이번 생은 그나마 따뜻하게 지내는 것 같군.”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예전에는 이보다 더 안 좋았습 니까?”

황민성의 이번 생도 돈이 많은 것 빼고는 그리 좋은 인생은 아 니었다.

아니, 아무리 돈이 많아도 황민 성 같은 삶은 마다하고 싶었다.

“지금 황민성의 삶에서 자네가 없었을 것을 가정해 보게. 그것 이 황민성의 전생들이었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그러고는 곧 입맛을 다 셨다.

자신과 만나기 전의 황민성……

그저 돈 벌어서 치매 연구에 투 자하는 것만 할 줄 아는 인생이 었다.

차갑고, 친한 사람도 없고, 부드 럽지도 않은…….

강진이 황민성을 볼 때, 김소희 가 말했다.

“앞으로도 좋은 친구가 되어 주 게.”

“이제 원망하지 않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원망하네.”

그러고는 김소희가 몸을 일으켰 다.

“허나…… 그 원망을 받아야 할 사람은 오백 년 전에 죽었으 니…… 더 이상 원망을 해서 무 엇을 하겠는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그럼 혹시 민성 형이 다시 애 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았다.

“자네는 내 원망이 황민성이 애 를 갖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 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 아닙니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황민성이 불우한 것은 나와 관 련이 있을 수 있네. 하지만 아이 를 갖지 못하는 것은 나와는 관 련이 없네.”

그러고는 김소희가 몸을 일으키

자 강진이 따라 일어나며 물었 다.

“한 시까지는 시간이 있는데 벌 써 가시게요?”

“전주에 가려 하네.”

말과 함께 문을 열고 나가는 김 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그녀를 따 라 밖으로 나갔다.

그러곤 서서히 사라져 가는 김 소희의 뒷모습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아가씨께서도 한이 무척

깊으시군요.”

자신의 친 오라버니, 그것도 자 신의 용돈을 아껴가며 노리개를 사주고 시장에서 간식을 사주던 다정다감한 오라버니를 죽여야 했던 김소희는 한이 무척 깊은 것이다.

고개를 저은 강진이 가게 안으 로 들어왔다. 그리고 여전히 탁 자에 머리를 대고 자고 있는 황 민성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오라버니라……

고개를 저은 강진이 소주를 한 모금 마시다가 황민성을 일으켰 다.

“끄응!”

작게 신음을 토하는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형, 올라가서 주무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슬쩍 눈 을 뜨고는 그를 보다가 웃었다.

“흐! 귀여운 내 동생.”

“귀엽지는 않죠.”

“아니야.”

웃으며 황민성이 강진의 머리를 손으로 잡고는 말했다.

“너를 만나고…… 너와 친해진 것이 내 인생에서는 최고의 행운 이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올라가서 주무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다가 주섬주섬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형이 용돈 줄게.”

“아이고! 내일 정신 차리고 후 회하려고 하세요.”

“야, 형 돈 많아.”

“알죠. 그러니까 올라가서 주무 세요.”

웃으며 강진이 지갑을 도로 넣 어주고는 황민성을 2층으로 데리 고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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