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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465화 (463/1,050)

464화

탓! 탓! 탓!

공격적인 수를 두는 상대에게 박서준 역시 공격적인 수를 두었 다.

속기로 이루어지는 바둑이고 둘 다 공격적인 수를 놨기에 화면 안은 순식간에 흑돌과 백돌로 어 지러워졌다.

그리고 수가 늘어날수록 박서준 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아빠는 치고받는 바둑이 좋다. 그리고 공격하다 보면 집은 저절 로 지어지더라고.

아빠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박 서준은 더욱 빠르게 상대를 몰아 쳐 갔다.

*  * *

탓!

박서준이 놓은 돌에 박만복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공격을 모두 끊어내고 죽이는 수였다.

“역시 우리 아들.”

작게 웃은 박만복이 패배를 인 정하는 버튼을 눌렀다.

〈신의국수: 한 판 더 두시겠어 요?〉

〈변어르신: 그래도 되겠습니

까‘?〉

〈신의국수: 그쪽하고 바둑을 두 니 재밌네요. 한 판 더 부탁드리 겠습니다.〉

신의국수가 재경기를 요청하자 박만복이 승낙 버튼을 눌렀다.

박만복이 기분 좋게 바둑을 두 는 것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재미있으신가 봐요.”

강진의 말에 박만복이 돌을 놓

으며 웃었다.

“오랜만에 아들하고 이렇게 바 둑을 두니 옛날 생각도 나고 좋 네요.”

웃으며 펜으로 화면을 클릭하던 박만복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 다.

“그런데 이 녀석 왜 이렇게 공 격적으로 나오는지 모르겠군요.”

“공격적요?”

“어릴 때야 제가 가르쳐서 제 기풍을 따라 공격적으로 갔지만,

어느 정도 기틀이 잡은 후에는 반대로 안을 굳건히 하고 단숨에 적진을 기습하는 기풍을 잡았는 데……

박만복의 말에 변대두가 웃으며 말했다.

“상대가 공격적인 만복 씨이니, 그것을 이기려고 수비를 굳건하 게 하면서 틈을 노렸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두 귀신의 대화를 듣던 강진이 말했다.

“정식 경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가볍게 하는 거겠죠.”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그러곤 바둑을 두는 박만복을 보던 강진이 힐끗 화면을 보았 다.

탓탓탓!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화면 속 에서는 빠르게 돌이 놓이고 있었 다.

그것을 보던 변대두가 문득 말 했다.

“이거 혹시……

변대두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네?”

변대두는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 다.

“지금 두는 건 너 죽고 나 죽자 는 식인데…… 저도 서준 선생과 바둑을 많이 두기는 했지만, 이 런 식으로 바둑을 두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변대두가 시선을 화면에서 박만

복으로 옮기며 말을 이었다.

“ 아마......"

변대두가 말꼬리를 흘리며 자신 을 보자, 박만복이 미소를 지었 다.

“그렇군요. 그래서 이렇게 두는 군요.”

박만복도 뭔가 깨달은 듯 미소 를 짓는 것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무슨 말이에요?”

강진의 물음에 변대두가 말을 했다.

“아까 기풍에 대해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기풍이면 바둑 두는 성향요?”

“맞습니다. 초보자야 기풍이라 고 할 것은 없지만, 바둑에 체계 가 잡히고 실력이 오르면 자신만 의 기풍이 생깁니다. 시간이 흐 르면서 기풍이 변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일 종의 지문과 같다고 생각하면 됩 니다.”

변대두의 말에 강진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박만복을 보 았다.

“서준 씨가 아버지의 기풍을 알 아본 거군요.”

강진의 말에 박만복이 미소를 지으며 돌을 놓았다.

“왜 이렇게 덤비나 했더니…… 어릴 때 제가 가르친 대로 두는 군요.”

웃으며 말을 한 박만복이 벤치 쪽에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박

서준을 보았다.

박서준은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환하게 미소 지은 채 화면을 클 릭하고 있었다.

그런 아들을 보며 박만복도 미 소 짓고는 바둑을 두었다.

“우리 아들이 오랜만에 아빠하 고 바둑을 두는 것이 즐거운가 보군요.”

“아저씨인 줄은 모를 겁니다. 비슷한 기풍이라고만 생각하겠 죠.”

“그럴 테지요.”

박만복은 펜을 슬며시 내려놓았 다. 그러고는 손을 깍지 낀 채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사람이라면 손에서 우두둑 소리 라도 나야 할 상황이지만, 박만 복의 손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나 지 않았다.

잠시간 스트레칭을 한 박만복이 채팅창을 눌렀다.

〈변어르신: 이번 판은 제가 진

것 같습니다.〉

〈신의국수: 아직 몇 수 남았는 데요.〉

〈변어르신: 한 판 더 부탁드리 고 싶습니다.〉

〈신의국수: 그러시죠.〉

〈변어르신: 그리고 이때까지는 제 기풍에 맞게 하신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쪽의 진짜 실력대로 바둑을 두고 싶습니다.〉

〈신의국수: 지금도 최선을 다해 두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봐 주

면서 했다 여기셨으면 죄송합니 다.〉

〈변어르신: 아닙니다. 실력 차 이가 나는데 봐 주는 것이 당연 하죠. 하지만 이번 판은 지도 대 국이 아니라 진짜 경기처럼 한 판 둬 보고 싶습니다.〉

〈신의국수: 괜찮으시겠습니까?〉

〈변어르신: 괜찮습니다.〉

〈신의국수: 알겠습니다.〉

박만복이 패배 버튼을 누르자, 박서준이 대국 신청을 걸었다.

그에 박만복이 미소를 지으며 승낙을 눌렀다. 그러고는 이번에 는 신중하게 첫 수를 두었다.

탓! 탓!

박만복의 수가 끝나기가 무섭게 박서준이 수를 놓았다. 그에 박 만복도 조금씩 페이스를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박만복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며 페이스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 강하다.”

변대두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그 를 보았다. 변대두는 굳은 얼굴 로 수를 살펴보고 있었다.

“내가 몇 번 이겨서.. 내 실

력이 프로와 비슷할 거라 생각을 했는데…… 이거……•”

변대두는 작게 한숨을 토했다.

“하아! 진짜는 굉장하군요•”

변대두의 한숨에 강진이 화면을

보았다. 변대두의 중얼거림에도 박만복은 온 신경을 집중해 화면 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돌을 놓으면…… 박서준이 번개처럼 뒤를 따라 돌 을 놓았다.

탁!

말 그대로 박서준은 봐주는 것 하나 없이 전력을 다해 박만복을 압박하고 있었다.

탁! 탁!

탁! 탁!

상대의 수가 끝나기가 무섭게 수를 놓은 박서준의 얼굴에는 미 소가 어려 있었다.

‘아버지.’

지금 바둑을 두는 상대가 아버 지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런 데…… 아버지 같았다.

공격적인 수와 함정을 만드는 것까지…… 자신이 알던 아버지 의 바둑이었다.

이렇게 기풍이 같은 사람이 또

있나 이상할 정도였다.

탁!

상대가 돌을 놓자 박서준이 미 소를 지었다. 상대의 돌에서 뭔 가 마음이 느껴졌다.

이 정도밖에 안 되냐고, 더 강 하게 자신을 부셔 보라고…….

마치 자신을 도발하는 듯한 느 낌이었다. 자신의 돌에 밀리고 밀리는 주제에 말이다.

‘아버지와 지금 바둑을 두면 이 런 느낌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박서준이 돌 을 놓았다.

탓!

“예전의 내가 아니에요.”

자신이 놓기가 무섭게 뒤따라 놓이는 박서준의 수에 박만복이 미소를 지으며 변대두를 보았다.

“우리 아들…… 아니, 박서준 선생님 정말 강하지 않습니까?”

“정말 강하군요.”

변대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박만복이 화면을 보다가 말했다.

“마주하고 두는 것도 아닌데 화 면을 통해 서준 선생의 기백이 느껴집니다. 내 아들이지만…… 정말 무섭군요.”

웃으며 박만복이 돌을 하나 놓 았다.

탓! 탓!

그리고 그 뒤를 쫓아 박서준이 돌을 놓자, 박만복이 피식 웃으 며 채팅을 쳤다.

〈변어르신: 정말…… 대단합니 다. 졌습니다.〉

〈신의국수: 한 수 잘 배웠습니 다.〉

박서준의 채팅에 박만복이 미소 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스윽!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박서준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런 아들을 잠시간 보던 박만 복이 미소를 지었다.

“제 꿈이…… 프로가 된 아들하 고 바둑을 두는 거였는데……

그러고는 박만복이 크게 웃었 다.

“이렇게 발릴 줄은 몰랐군요. 하하하하...

환하게 미소 짓던 박만복의 모 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화아악!

박만복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 자 강진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들한테 발렸는데 그리 기분 좋게 승천을 하십니까?”

중얼거리던 강진은 하늘에서 종 이가 떨어지자 그것을 받았다.

〈이강진 씨와 변대두 어르신 감 사합니다.

두 분 덕에 제 소원을 이뤘습니 다.

그리고…… 제 아들 정말 바둑 을 잘 두지 않습니까?〉

쪽지에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자식 자랑하는 아빠의 흐뭇한 마 음이 담겨 있었다.

강진이 편지를 읽을 때, 변대두 도 옆에서 그 내용을 읽고는 미 소를 지었다.

“아빠 입장에서 아들이 자신을 뛰어넘는 것을 보는 것만큼 기쁜 것도 없지요. 후! 잘 가시오!”

변대두가 하늘을 향해 손을 흔 들 때, 태블릿에 박서준의 채팅 이 들어왔다.

〈신의국수: 한 번 뵙고 싶습니 다. 변어르신하고 한 번 같이 뵈 었으면 합니다.〉

신의국수의 채팅에 강진이 변대 두를 보았다. 그 시선에 변대두 가 채팅을 읽 고는 메시지를 작성 했다.

〈변어르신: 방금 그 친구 갔습 니다.〉

〈신의국수: 갔어요? 어디를?〉

〈변어르신: 잠시 저 보러 왔다 가 집으로 갔습니다.〉

〈신의국수: 아…… 서울에 안 사시나요?〉

〈변어르신: 아주 먼 곳에 삽니 다.〉

〈신의국수: 제주도요?〉

〈변어르신: 한국이 아니라 외국 살아요. 그 친구 만나느라 오늘 모임에 못 나온 거였습니다. 공 항에서 비행기 기다리다가 잠시 바둑을 둔 거였습니다.〉

〈신의국수: 그렇군요.〉

그 뒤로 잠시간 멈춰 있던 채팅 이 올라갔다.

〈신의국수: 그분한테 제가 감사 해한다고 전해 주세요.〉

〈변어르신: 감사요?〉

〈신의국수: 방금 그분 바둑 기 풍이…… 저희 아버지하고 많이 비슷했습니다.〉

박서준의 채팅에 변대두가 하늘 을 보았다.

“아들이 만복 씨 기풍을 여전히 기억하는군요.”

변대두가 미소를 지을 때, 채팅 이 다시 올라왔다.

〈신의국수: 아버지 꿈이 제가 프로가 되면 같이 바둑 두는 거 였는데…… 방금 그분과 바둑을 두니 마치 저희 아버지와 바둑을 두는 느낌이었습니다.〉

〈신의국수: 아버지 소원을 이뤄 드린 것 같아서 기분이 무척 좋 습니다.〉

그 뒤로도 채팅은 빠르게 올라 갔다. 그에 강진이 벤치 쪽을 보

니 박서준은 정말 기분 좋은 미 소를 지은 채 채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 박서준을 보던 강진이 채 팅창에 글을 적었다.

〈변어르신: 강남 논현역 앞에 한끼식당이라고 있습니다. 제 단 골집인데 한 번 들러 주십시오. 아주 맛이 좋습니다.〉

강진이 쓴 채팅에 변대두가 놀

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사장님?”

“식사 대접 한 번 해 드리려고 요.”

“아…… 감사합니다.”

변대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채팅창을 보았다. 답변은 금방 돌아왔다.

〈신의국수: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여기 모임이 있어서요.〉

* *  *

〈신의국수: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여기 모임이 있어서요.〉

채팅창을 내린 박서준이 기분 좋은 얼굴로 핸드폰을 손에 쥐었 다.

“하아!”

후련한 한숨을 토하는 박서준의

모습에 옆에서 바둑을 구경하고 있던 남자가 그를 보았다.

“뭔가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 다.”

“아버지를 만난 것 같아서요.”

“아버님?”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있는 남자가 의아한 듯 보 자, 박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하 늘을 보았다.

‘제가 너무 안 봐 준 것 아닌지 모르겠네요.’

하늘을 보던 박서준이 피식 웃 으며 옆에 놓인 바둑판을 꺼내 벤치에 펼쳤다.

“다면 바둑 한 판 하시죠.”

“그러면 저희야 좋지요.”

박서준의 말에 사람들이 웃으며 바둑판 뒤로 자리를 잡았다. 다 면 바둑은 일 대 다수로 동시에 두는 바둑이었다.

즉 박서준 혼자서 여러 사람과 동시에 바둑을 두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돌을 놓

자, 박서준이 빠르게 바둑판에 돌을 놓기 시작했다.

탓! 탓!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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