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화
“엄마와 아빠한테…… 잊어졌으 면 해요. 더는…… 나 때문에 울 지 않게.”
부모님에게서 잊어지고 싶다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 셨다.
이런 생각은 해 보지를 못 했 다. 하지만 이해는 되었다.
‘자기 때문에 슬퍼하는 부모님 보다는 자기를 잊고 평온하게 사
는 부모님이기를 바라는구나.’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다른 여자 귀신 둘을 보았다.
두 분은 어떠냐는 의미가 담긴 강진의 시선에 여자 귀신들이 이 혜미를 보았다.
처음 강진의 말을 들었을 때, 부모님들이 자신들을 그렇게라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혜미의 말을 들으 니…….
귀신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우리 캐릭터를 만나면 부모님 의 아물기 시작한 상처가 다시 벌어질 것 같아요.”
거절을 하는 여자 귀신의 모습 에 강진이 작게 한숨을 쉬며 고 개를 끄덕였다.
‘상처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안이 될 수도 있는데……
하지만 그에 대한 말은 하지 않 았다. 이건 당사자가 아니면 뭐 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말
이다.
강진은 그저 제안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마음 감사하고 고마워 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제가 한 말에 여러분들 상처 안 받았으면 합니다.”
“아니에요. 저희 생각해서 해
준 말인걸요. 늘 감사하게 생각 하고 있어요.”
이혜미의 답에 강진이 한숨을 쉬고는 힐끗 영수 쪽을 보았다. 그 시선에 이혜미가 말했다.
“슬픔을 맞이하는 방식이 다 다 른 것처럼, 저 아이들은 저희와 다를 수 있어요. 그리고 사장님 이 생각한 방법…… 저 아이들의 부모님에게는 위안과 위로가 될 수도 있어요.”
자신이 원하지는 않지만 저 아 이들은 원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
다.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영수 쪽으로 걸어갔 다.
지금은 영수가 VR 기기를 쓰고 있었다.
“와, 용연 폭포 좋다.”
용연 폭포 영상을 보고 있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영 수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어때?”
그에 이예림이 웃으며 말했다.
“재밌네요.”
“가은이는?”
“저도 재밌어요. 고개를 여기저 기 돌려도 다 화면이 보이는 것 이 특히 재밌네요.”
“그리고 현실감도 있지.”
이야기를 나눌 때 영수가 기기 를 머리에서 떼어냈다.
“근데 좀 어지럽네요.”
이예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옛날보다는 많이 낫네. 옛날에는 하다 보면 어지러워서 토할 것 같았는데.”
이예림의 말에 최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3D 영화만 봐도 어지럽 더라.”
“하긴, 그래서 네가 3D 영화 보자고 하면 질색을 하지.”
이야기를 듣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는
데.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결정 을 했으면 좋겠어.”
“뭔데요?”
강진이 영수가 벗어 놓은 VR 기기를 들고는 말했다.
“너희들의 모습을 바탕으로 VR 캐릭터를 만들면 어떨까 싶어.”
“저희 캐릭터요?”
“저희 캐릭터를 왜요?”
아이들이 의아한 듯 보자 강진 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너희 부모님 보여드리려고.”
대답을 들은 아이들이 멈칫했 다.
“부모님요?”
영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네 어머니는 네 핸드폰에 전화 를 거시고, 예림이 아버지는 네 가 하던 게임을 하시고, 가은이 부모님은 네 교복을 세탁하신다 면서.”
강진이 세 귀신을 차례대로 보
며 말하자 그들은 입술을 깨물었 다.
세 귀신이 시무룩한 얼굴로 입 술을 우물거리자 강진이 한숨을 쉬며 그들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 고는 말했다.
“동물 앱 봤어?”
“네.”
최가은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이 말했다.
진짜하고 비슷하지?”
“진짜 같던데요? 움직이기도 하 고.”
최가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너희들을 VR에 캐릭터 화해서 너희 부모님들에게 보여 드리면 어떨까 싶어.”
강진의 말에 영수가 입술을 깨 물었다. 그런 영수를 보며 강진 이 말했다.
“방금 네가 본 것처럼 실제와 아주 많이 닮은 모습일 거야.”
“하지만…… 진짜가 아니잖아 요.”
영수의 말에 이예림이 힐끗 그 를 보고는 손을 잡았다. 그에 영 수는 이예림을 한 번 보고는 강 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 영수를 보던 강진이 입을 열었다.
“물론 진짜가 아니야. 하지 만…… 이 기기를 통해 너희가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어.”
“저희가 하고 싶은 말요?”
영수의 물음에 강진이 말했다.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음성 데 이터만 있으면 너희가 말을 하는 것처럼 구현할 수가 있대.”
“스파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요?”
“스파이 영화?”
“그 스파이 영화 보면, 목소리 조작해서 다른 사람한테 그 사람 인 척하고 말을 하잖아요.”
최가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비슷한 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고는 강진이 아이들을 보았 다.
“너희가 하지 못했던 말…… 부 모님께 전할 수 있으면 좋지 않 을까?”
영수와 아이들은 말없이 서로를 보았다.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이 보이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처음에는 너희들이 좋아할 거 라 생각을 했어.”
강진의 말에 영수가 그를 보았 다.
“그런데……
강진은 이혜미 쪽을 보고는 말 을 이었다.
“생각을 해 보니…… 가상현실 속 너희를 보고 더 슬퍼하실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래서 너희가 결정했으면 좋겠
어.”
“형, 무슨 마음인지 알아요. 저 희 생각해서 말씀하신 거잖아 요.”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 다.
“너희를 생각해서 하는 내 행동 이 너희한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 잘 생각해 보고.”
“할래요.”
이예림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가짜고 뭐고…… 아빠한테 할 말은 해야겠어요. 그게 뭐야. 매 일 방구석에서 게임이나 하고 있 고. 게임할 시간에 엄마하고 동 생한테 잘 하라고 단단히 말을 해 줘야겠어요.”
이예림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영수와 최가은을 보았다. 그 시선에 두 귀신이 잠시 있다 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할게요.”
“저도요.”
두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들을 보다가 말했다.
“부모님들 많이 슬퍼할 수 있 어.”
“슬퍼하시겠죠. 하지만…… 한 번은 크게 울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나아가시죠.”
한숨을 쉬는 영수를 보던 강진 이 최가은을 보았다. 그녀도 고 개를 끄덕이는 것에 강진이 입을 열었다.
“알았어.”
강진의 답에 세 귀신이 서로를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저희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요?”
“사람이 살아 있으면 실제 3D 스캔을 해서 데이터를 만든다고 하는데... 너희는 그게 아니라
서 사진하고 동영상, 그리고 음 성 파일 모아서 만들어야 한대.”
“그럼 저희 집에서 자료를 받아 야 할 텐데.. 어떻게 받으시려
고요?”
“너희가 사고 난 것이…… 칠 년 전이지.”
강진의 말에 영수가 잠시 생각 을 하다가 말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 거예요.”
“그럼 내가 22살 때 사고가 난 건데…… 혹시 너희끼리 서울에 놀러 온 적 없어?”
“일 학년 때 애들하고 서울에 놀러 온 적 있어요.”
“그래?”
“네.”
“그럼…… 너희 그날 일정에 대 해 부모님도 잘 아셔?”
강진의 말에 영수가 고개를 저 었다.
“저는 그냥 놀이공원 다녀왔다 고만 했는데……
이예림과 최가은도 고개를 끄덕 였다.
“나는 영수하고 가은이하고 놀 고 온다고 했어.”
“ 나도.”
세 사람의 말에 강진이 잠시 생 각을 하다가 말했다.
“그럼 영수하고 친한 형이라고 하자. 너희가 서울 왔을 때, 영수 가 밥 사달라고 해서 밥 人} 준 걸로 하면 되겠다.”
7년 전에 죽은 아들과 친한 형 이라고 연락하기에는 조금 미흡 한 부분이 있지만, 부모님을 만 나 뵐 때 애들한테 정보를 더 들 으면 어떻게 해결이 될 것이다.
“형하고 저하고 친한 사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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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친한 사이라고 하려고 요?”
“너 게임 같은 거 해?”
“네.”
“너 무슨 게임 했어?”
“저는 던권 했어요.”
“던권…… 잘 됐네. 나도 그거 했으니까. 게임 내 길드에서 만 나 친해진 사이로 하고, 네가 서
울 온다고 하니 내가 밥 사 주면 서 예림이하고 가은이하고도 연 튼 걸로 하자.”
그러고는 강진이 핸드폰을 꺼내 며 말했다.
“그리고 심도 있는 질문은 너희 가 옆에 있다가 말해 주면 괜찮 을 거야.”
설명을 듣던 이예림이 입맛을 다셨다.
“우리 죽고 칠 년이나 지나서 연락을 한다는 것부터가 좀 이상
한데?”
“이상하기는 해도 죽은 너 희하고 친하다고 하면 믿어 주실 거야. 그리고 내가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사진이나 받으려는 거니까.”
강진의 말에도 이예림은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 웃거렸다.
“그럼 너희 집 주소하고 전화번 호 알려 줘. 일요일에 가서 말씀 드리고 사진하고 동영상 같은 것 받게.”
강진의 말에 영수가 문득 그를 보았다.
“근데 굳이 가서 안 받아도 될 것 같은데요?”
“왜?’’
“저희 SNS 계정 남아 있을 거 예요.”
“SNS?”
영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 다.
“형 핸드폰 좀요.”
강진이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다 “잠시만.” 하고는 주방에서 JS 비닐장갑을 챙겨 나왔다. 그렇게 핸드폰과 비닐장갑까지 건네주자 영수가 화면을 휙휙 넘기더니 말 했다.
“형 페이스나 스타 안 해요?”
“어렸을 때는 만들었는데…… 지금은 안 해.”
“그래서 안 깔려 있구나.”
말을 한 영수가 페이스를 깔고 는 자신의 계정을 찾아 들어갔
다. 그리고 자신이 올렸던 사진 들을 클릭해 보던 영수가 미소를 지었다.
“왜 웃어?”
영수의 미소에 이예림이 고개를 내밀어 핸드폰을 보았다.
“응? 네 페이스네?”
“동구가 아직도 내 페이스에 들 어온다.”
말을 하며 영수가 핸드폰을 테 이블에 놓았다. 그에 강진이 핸 드폰을 보았다.
〈박동구: 취직 드럽게 안 된다. 잘 지내냐?〉
〈박동구: 제대했다. 썩을 놈의 군대. 어머니가 나 제대했다고 한상 거하게 차려 주셨다. 잘 먹 고 간다.〉
〈박동구: 군대 간다. -T-T 어쨌 든 간다.〉
“오! 동구 의리 있네.”
“지금도…… 페이스에 글을 남 길 줄 몰랐네.”
핸드폰을 보던 영수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박동구가 남긴 글을 마저 보았다.
영수가 죽고 일이 년 동안은 친 구들이 가끔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금까지 글을 남긴 사람은 박동구가 유일 했다.
“좋은 친구네.”
“그러게요.”
웃으며 핸드폰을 보던 영수가 강진을 보았다.
“여기에 보면 제 사진하고 동영 상들 있어요.”
강진이 영수의 페이스의 사진과 동영상 파일을 확인하고는 나머 지 두 귀신에게 물었다.
“너희 둘도 이거 있어?”
“그럼요.”
최가은과 이예림의 답에 강진이 여자 귀신들에게 핸드폰을 받아 와서는 아이들의 계정으로 접속
했다.
오랜만에 자신들의 페이스를 확 인한 두 귀신은 영수처럼 웃었 다.
혹시나 했는데…… 자신들의 페 이스에도 친구들이 아직도 글을 남기고 있었던 것이다.
“와! 희숙이 결혼한대.”
“희숙이? 그 순둥이?”
“맞아. 걔 결혼한다네. 너 왔으 면 좋았을 텐데, 라고 글 남겼 다.”
“희숙이 그 순둥이가 무슨 결혼 을 벌써 한대?”
“얌전한 것들이 하여튼 이런 쪽 으로는 빠르다니까.”
보라는 사진은 안 보고 친구들 이 남긴 메시지를 보며 이야기하 는 아이들을 보던 강진이 문득 자신의 핸드폰을 보았다.
‘SNS……
강진은 페이스 어플을 켜고 자 신의 아이디를 입력했다.
하도 페이스를 안 한지 오래돼
서 그런지 비밀번호를 틀린 강진 이 비밀번호 찾기로 겨우 로그인 을 할 수 있었다.
강진의 페이스는 중학교 때에서 멈춰 있었다. 고등학교 들어가면 서 시간 낭비인 것 같아 페이스 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크롤을 주욱 내리던 강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자신이 올린 게시글 안에…… 엄마 아빠 와 찍은 사진들이 남아 있었다.
‘엄마…… 아빠
정말 오랜만에 보는 엄마와 아 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