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화
가게에 도착한 강진은 차달자가 미리 차려 놓은 밥상을 받았다.
“잘 먹겠습니다.”
강상식이 인사를 하자 차달자가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는 주방에 들어갔다.
“식사하시죠.”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수저를 들었다. 식사는 명란젓이 들어간
계란찜과 고등어구이, 젓갈과 밑 반찬이었다.
“집밥 같네요.”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재벌 집 집밥은 좀 다를 것 같 은데?”
강상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하고는 좀 다르기는 하지 만…… 사실 저는 이렇게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강진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힐끗 시계를 보았다.
‘빨리 먹어야겠네.’
이강혜를 보려면 서둘러 밥 먹 고 공원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 에 강진이 서둘러 밥을 먹기 시 작하자 뒤를 이어 음식을 먹던 강상식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무슨 바쁜 일 있으십니 까?”
“공원에 아이들 밥 주러 가야 하거든요.”
“아이들?”
“공원에 유기된 강아지하고 고 양이들이 있거든요. 그 녀석들 밥 챙겨 주고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눈을 찡 그렸다.
“유기된 아이들요?”
“네.”
“이런…… 그 녀석들도 생명인 데 입양을 했으면 잘 키울 것이 지.”
“그러게 말입니다.”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가족을 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죠.”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강상식이 강진 을 보았다.
“강진 씨는 참 좋은 일을 많이 하십니다.”
“어쩌다 보니…… 하게 됐는데 하다 보면 제가 힐링되는 느낌입 니다.”
“유기견 밥 챙겨 주는 거라
강상식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강진을 보았다.
“애들이 강진 씨 기다릴 테니 빨리 먹어야겠군요.”
“아닙니다. 천천히 드세요.”
강진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빠르게 밥을 먹자 피식 웃은 강 상식은 밥에 계란찜을 덜어 비비 고는 고등어를 올려 먹기 시작했 다.
그렇게 빠르게 식사를 마무리한 강진이 쇼핑백에 사료들을 챙기 자, 강상식이 다가왔다.
“식사 맛있게 했습니다.”
“괜히 식사하러 오게 해서는 급 하게 드시게 했네요.”
“아닙니다.”
강상식은 강진이 든 쇼핑백을 보고는 말했다.
“제가 일이 없으면 같이 가서 애들 밥 주는것 보고 싶은 데…… 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 시간 되실 때 한 번 같 이 가시죠. 아니면…… 강 이사 님 주위에도 도움이 필요한 애들 이 있을 겁니다.’’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을 열고는 나서자 강진이 그 뒤 를 따랐다.
“다음에 민성 형하고 한잔해 요.”
“기다리겠습니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 강
상식이 고개를 숙이고는 차로 향 하자 기사가 내려서는 문을 열어 주었다.
부웅!
강상식의 차가 사라지자 강진이 배용수와 함께 공원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공원에 도착한 강진은 아이들에 게 사료를 챙겨 주고는 주머니에 서 핸드폰을 꺼냈다.
‘엄마 계정을 어떻게 뚫지?’
싸이나라에서 아빠 계정은 들어 갔지만, 엄마 계정은 비공개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들어가려면 친구 추가를 승인받 아야 하는데…… 엄마 아이디는 알아도 비밀번호를 모르니 어떻 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돌아가신 엄마에게 물 어볼 수도…….
‘물어볼 수 있으려나?’
돈만 있으면 못 하는 것이 없는 게 저승이다. 비록 강진이 저승
에는 가지 못하더라도 메시지 정 도는 보내서 비밀번호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 다.
잠시 생각을 하던 강진이 핸드 폰에서 신수호의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십니까?]
딱딱한 신수호의 목소리에 강진 이 말했다.
“저 혹시 저승에 있는 어머니에 게 메시지를 전하고 받을 수 있 을까요?”
[안 됩니다.]
“아…… 돈을 많이 내도 안 되 는 겁니까?”
[안 됩니다.]
“혹시 이유가 있나요?”
[저승에 오신 영혼들은 재판을 치른 후 죄의 유무에 따라 형벌 을 받습니다. 그리고 재판을 모 두 받은 영혼들은 환생을 하거
나, 저승의 시민이 됩니다.]
“환생을…… 하신 건가요?”
[그건 말해드리기 어렵습니다. 대신 말해 드릴 수 있는 건…… 아무리 저승식당 사장이고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저승과 이승 의 경계는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작게 한 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강진의 답에 신수호가 전화를
끊었다. 강진은 핸드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엄마 비번을 알아야 할 텐 데……
강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핸드 폰에 떠 있는 엄마의 싸이나라 개인 홈페이지를 보고 있었다.
“이 사장님 온다.”
그러던 중 배용수의 말에 강진 이 옆을 보았다. 이강혜가 손수 레를 끌고 다가오고 있었다.
“오셨어요?”
강진의 인사에 이강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늘 을 보았다.
“요즘은 여름 겨울이라고 하니 이 좋은 날씨도 며칠 못 보겠습 니다.”
“하긴 요즘은 봄과 가을이 짧 죠.”
“올해 여름은 얼마나 또 더울지 무섭네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었다.
“아무래도 그렇죠. 요즘은 여름 마다 몇 년 만의 폭염이라고 하 니까요.”
“그리고 이거.”
강진이 USB를 내밀었다.
“이건?”
“어제 말을 한 아이 사진입니 다. 아! 그리고 아이가 한 명이 아니라 셋입니다.”
“셋요?”
이강혜의 물음에 강진이 말했 다.
“칠 년 전 경기도 수련원에서 자동차 사고로 아이 셋이 죽었습 니다.”
“아……
이강혜가 작게 탄식을 토하자, 강진이 말을 이었다.
“그 아이 셋은 저와 알고 지내 던 애들이었습니다.”
“ 친했나요?”
“많이 친했습니다.”
“하긴……
많이 친했으니 그 부모님을 위 해 아이들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 어 할 테고…….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아이 셋…… 되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USB 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일단 연구소에 보내 볼게요.”
그러고는 이강혜가 강진을 보았 다.
“그 가족에게는 허락받았나요?”
“일단 캐릭터 나온 것 보고 말 을 하려고요. 혹시라도 기대하고 있다가 생각보다 안 닮았으면 실 망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어요.”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USB 를 주머니에 넣자, 강진이 그녀 를 보다가 문득 물었다.
“저 혹시 싸이나라라고 아세
요?”
“싸이나라라…… 그리운 이름이 네요. 저도 옛날에 싸이나라에 홈페이지 운영했는데.”
이강혜가 아는 듯하자 강진이 급히 말했다.
“그럼 혹시 싸이나라 운영자 아 시는 분 있으세요?”
“운영자라……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던 이강 혜가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왜요?”
“사실은……
강진이 핸드폰을 꺼내 엄마의 홈페이지를 보여주었다.
“애들 사진 찾느라 SNS 접속했 다가 부모님 계정을 찾게 됐어 요. 그런데 아빠는 공개 계정이 라 사진 다 볼 수 있었는데 엄마 계정은 비공계라서요.”
“아……
강진의 말에 아쉽다는 듯 핸드 폰을 보던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
였다.
“싸이나라에 아는 사람은 없지 만, 못 찾을 것은 없죠.”
말을 하며 이강혜가 강진의 엄 마 계정을 메모하고는 말했다.
“제가 한 번 알아볼게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보통 이런 사이트에서는 개인 고객의 정보를 유출하지 않아
요.”
“그런가요?”
“그럼요. 사이트에서 개인 정보 를 함부로 유출하면 누가 그 사 이트에 접속을 하겠어요. 포털 사이트 개인 정보는 아무리 저라 고 해도 확인하기 어려워요. 하 지만 이미 고인이 된 분의 계정 이고 아들인 강진 씨가 요청하는 거라면 가능할 거예요. 제가 알 아보고 연락할게요.”
“감사합니다.”
강진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이강혜가 슬며시 수레에서 VR 기기를 꺼냈다.
“우리 애 좀 볼래요?”
“그 캐릭터화했다는?”
“네.”
이강혜가 환하게 웃으며 기기에 자신의 핸드폰을 꽂고는 설정을 해서 내밀었다.
그에 강진이 주위를 한 번 보고 는 VR 기기를 머리에 썼다. 그 리고 앞을 본 강진은 어제 자신
이 썼던 것과는 다른 것을 알았 다.
일단 주위가 그대로 보였다. 이 강혜도 보였고 정자도 보였다.
마치 핸드폰을 사진 찍는 모드 로 한 채 주위를 보는 느낌이랄 까?
그리고 발밑에 개 한 마리가 꼬 리를 흔들고 있었다.
멍! 멍!
자신을 보며 짖으며 헥헥거리는 개를 본 강진의 얼굴에 순간 두
려움이 어렸다.
‘뭐가 이렇게 커?’
자신의 발밑에 있는 개는 엄청 컸다. 게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맣기가 이를 데 없는 것 이... 마치 지옥에서 온 개 같
았다.
“크죠?”
강진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 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크네요.”
“크지만 애가 얼마나 애굣덩어 리인데요.”
그러고는 이강혜가 말했다.
“둘둘아, 엎드려.”
멍!
이강혜의 말에 둘둘이가 커다란 몸을 숙여 엎드렸다. 잠시간 기 다린 이강혜는 둘둘이를 향해 손 가락을 들어 보였다.
“빵!”
그러자 둘둘이가 엎드린 상태에
서 옆으로 몸을 눕혀서는 죽은 시늉을 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이강혜를 보 았다.
“사장님 목소리에 반응하는 건 가요?”
“핸드폰에 제 음성이 들어가잖 아요.”
이강혜가 자신의 눈 쪽, 정확히 는 핸드폰이 있는 VR 기기 쪽을 가리키자, 강진이 “아.”하고는 머 리에 쓰고 있는 기기를 손으로
만졌다.
“그런데 이거 신기하네요.”
주위가 그대로 보이면서 둘둘이 도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둘둘 이를 내려다보던 강진이 이강혜 를 보았다.
“그런데 둘둘이가 보이세요?”
“저는 안 보이죠.”
“그런데 어떻게 둘둘이를 손으 로 가리켰어요?”
강진의 물음에 이강혜가 웃으며
말했다.
“착용자 앞에서 한 발 정도 앞 에 위치하게 설계되어 있거든 요.”
“아……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강혜 가 말했다.
“걸어 보세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앞으로 걸었다. VR 기기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시야가 그대로 보이는 편 이라서 걷는 데 불편하지는 않았
다.
잠시간 거닐던 강진의 얼굴에 감탄이 어렸다.
“내가 걷는 대로 따라 걷네요?”
자신이 걷자 둘둘이가 앞장서서 걸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멈추면 둘둘이도 멈추며 뒤를 돌 아보았다.
가상현실 캐릭터라 땅에 겹치거 나 흔들릴 것도 같은데 마치 진 짜 개가 땅을 걷는 것처럼 걸었 다.
“ 와.”
강진이 감탄을 하자 이강혜가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죠?”
“정말 대단하네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기는 하지만……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해요.”
그러고는 이강혜가 정자에 가서 는 지붕 쪽을 가리켰다. 그에 강
진이 보니 지붕 쪽에 안테나가 달린 작은 상자가 설치되어 있었 다.
“이 기술이 정밀하게 작동하기 위해선 GPS를 아주 정밀하게 감 지해야 해요. 그래서 공원 내에 이 장치를 여럿 설치해 놨어요. 그래서 디지털 맵이 깔린 이곳에 서만 이것이 가능하죠.”
상자를 보던 이강혜가 말을 이 었다.
“나중에 기술이 더 발전하 면…… 진짜 현실처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할 거예요.”
이강혜의 말을 들으며 강진이 둘둘이를 보았다.
그러다 슬며시 손을 내밀자, 둘 둘이가 알아서 머리를 들이밀었 다.
손에 느껴지는 감촉은 없었지만 둘둘이가 장갑을 감지하고는 알 아서 머리를 비비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둘둘이의 머리를 만지던 강진이 걸음을 옮기자, 둘둘이가 다시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 다.
그 모습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 다.
‘이 정도면…… 부모님들의 마 음에 위안이 되겠구나.’
캐릭터가 제대로 준비된다면,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솜사탕 처럼 떠다니는 날…… 아이들의 부모님들을 모셔야 할 것 같았 다.
4기화
강진이 점심 장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가게 문이 열렸다.
띠링!
11시가 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았던 터라 강진은 의아한 얼굴로 문 쪽을 보았다. 그러자 두 명의 중년인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점심으로는 조금 이른 시간이지 만, 손님이 왔으면 그게 영업시
간이었기에 강진은 마중을 나갔 다.
“어서 오세요.”
강진의 인사에 두 중년인이 슬 며시 가게를 보고는 말했다.
“혹시 이강진 사장님?”
“저를 찾아오셨나요?”
중년인 중 한 명이 지갑에서 명 함을 꺼내 내밀었다.
“대강금속 차장진입니다.”
중년인이 준 명함을 받아 든 강
진이 그것을 보았다.
〈대강금속
사장 차장진〉
명함을 본 강진이 차장진을 보 았다.
“대강금속?”
“저희 회사 아신다고 들었습니 다.”
“상섭 형, 아니 이상섭 대리님
에게 들었나요?”
“네.”
차장진의 말에 강진이 그 옆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 시선에 남자가 굳은 얼굴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고문수라고 합니다.”
〈대강금속
상무 고문수〉
고문수의 명함도 받아든 강진이 그를 보았다.
‘혹시 이분이 오 실장님 딸 결 혼 반대한 분인가?’
그를 유심히 보던 강진은 자리 를 가리켰다.
“일단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슬며시 차장진과 고문수가 자리 에 앉자 강진이 따뜻한 야관문차 를 가지고 나왔다.
“차 좀 드세요.”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공손한 자세로 잔을 잡는 것을 보던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기…… 황민성 사장님하고 친하시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민성 형요?”
“황민성 사장님께서 저희 고 상 무에 대해 뭔가 오해하시는 게 있는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사
과를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저희가 쉽게 뵐 수 있는 분이 아 니라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 니다.”
차장진의 말에 그를 보던 강진 이 고문수를 보았다.
이제야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이상섭이 자신과 나눈 이야기를 전했을 것이고, 그제야 큰일이 벌어졌다 생각한 두 사람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요.”
“맞습니다. 황 사장님께서 저희 에게 뭔가 오해를……
차장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해는 그쪽에서 하 시는 것 같습니다.”
“네?”
차장진의 시선에 강진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왜 오셨는지 알 것 같네요. 이 번에 부품 납입 틀어진 게 민성 형이 손을 쓴 거라 생각해서 오 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게 오해가 있으셔서……
“그게 오해입니다.”
차장진과 고문수가 자신을 보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민성 형은 오 실장님 따님의 결혼이 틀어진 게 오히려 잘됐다 생각을 하십니다.”
강진의 말에 차장진이 고문수를
노려보았고, 고문수는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강진이 말 을 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민성 형은 그 쪽 대강금속에 대해 아예 신경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네? 그럴 리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이때까지 부품 납품을 했던 회사에서 아무런 이 유도 없이 거래를 끊었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는 저도 모르겠 지만 일단 민성 형은 아닙니다.”
자신의 말에 두 사람이 아직도 의심을 품은 듯한 시선을 보내자 강진은 말을 덧붙였다.
“이상섭 대리님이 대강금속의 일을 본다는 말에 제가 혹시 민 성 형이 손을 썼나 싶어서 물어 봤는데…… 민성 형은 그런 일이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야 말은……
말만 그렇게 하고 뒤로 손을 썼
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차장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민성 형이 그러더군요. 마음 같아서야 대강금속 밥줄 끊어 버 리고 싶다고.”
꿀꺽!
차장진과 고문수의 얼굴이 굳어 졌다. 중소기업 하나 날려 버리 는 것은 황민성에게는 일도 아니 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지방에서 여기 로 뛰어 온 것이고 말이다.
그런 둘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말을 들으니 대강금속에 하청 주는 회사의 위에, 위에, 위에 또 그 위에 있는 원청이 민성 형이 투자하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 래서 전화 한 통이면 그쪽에 들 어가는 일들 모두 끊어 버릴 수 있다고 했죠.”
강진의 말에 차장진과 고문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들은 피 라미드의 가장 밑이나 마찬가지 였다.
자신들이 납품을 하는 회사의
과장만 해도 갑질이 엄청 심한 데…… 그보다 한참 위에 있는 원청을 건드렸다간 손가락만 빨 아야 할 게 뻔했다.
차장진은 급히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살려 주십시오.”
그러고는 차장진이 급히 고문수 를 향해 눈짓했다. 그에 고문수 도 급히 일어나 고개를 숙이려 하자, 강진이 급히 그 두 사람을 말렸다.
“이러지 마세요.”
“황 사장님한테 한 번만 용서를 해 달라고 해 주십시오. 제가 고 상무에게 잘 이야기해서……
차장진의 말에 강진이 다시 고 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일단 앉으세 요. 그리고 들으세요.”
강진이 몇 번이나 더 앉으라고 하고 나서야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굳은 얼굴인 두 사람에
게 강진은 차근히 말했다.
“하지만 민성 형은 하지 않았습 니다. 이쪽 분이 오 실장님에게 무례하기는 했지만, 이분의 잘못 으로 회사에서 일하는 다른 가장 들의 밥줄을 끊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시니까요.”
“그렇다는 건……
“민성 형이 그쪽 회사를 망하게 하려고 손을 썼다는 건 오해입니 다.”
“정말입니까?”
“그럼요. 제가 두 분에게 거짓 말을 할 이유가 없죠. 그리고 민 성 형 역시 저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요.”
강진의 말에 두 사람이 서로를 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고 묻는 듯한 눈빛의 차장진과 여전히 침울한 표정을 짓는 고문 수를 보던 강진이 말했다.
“그리고…… 저희는 오해를 하 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네?”
“자기 자식이 좋은 집, 좋은 사 람과 연을 맺기 원하는 것은 부 모로서 당연한 겁니다. 그리고 아빠로서 반대를 할 수도 있지 요.”
“네?”
“그리고 운전기사를 하는 오 실 장님의 딸이 며느리로서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고문수가 급히 뭔가 말을 하려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여기서 저희가 오해하는 것이 있나요?”
“아…… 아닙니다.”
고문수의 답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저희는 오해하는 것이 없습니 다. 있는 그대로 알 뿐입니다. 그 리고 어차피 다시 볼 사이도 아 닌데 굳이 이런 대화를 할 필요 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황 사장님한테 죄송해
서…… 사과라도 좀 드려야
고문수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 그리곤 한숨을 토했다.
“후우!”
딱 봐도 기분이 나쁜 듯한 강진 을 보며 고문수는 안절부절못했 다. 그런 그를 똑바로 보며 강진 이 물었다.
“왜 사과를 민성 형한테 하세 요?”
“네?”
“사과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 을 한 오 실장님에게 하셔야죠. 오랫동안 종사해 온 자신의 직업 때문에 딸의 결혼이 망쳐졌다는 자괴감을 갖게 된 오 실장님에게 요.”
“그건......"
고문수의 얼굴이 굳어지자 강진 이 고개를 저었다.
“차 사장님도 고 상무님도 한 가정의 가장이시겠죠.”
강진의 말에 두 사람은 서로를
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도 말했듯, 민성 형이 화 가 나도 대강금속에 손을 대지 않은 이유는…… 가족을 먹여 살 려야 하는 가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기 때문입니다. 가장 이란 어떻게든 가족을 먹여 살려 야 한다는, 책임감이란 이름의 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야…… 그렇지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산 가장 의 직업이 천하다 말을 하면
강진은 말을 더 잇지 않았다.
그에 고문수는 입술을 깨물었 고, 차장진은 그를 노려보았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강진이 고 개를 저었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세요. 오 실장님이나 민성 형이나 결혼 이 틀어진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고 상무님 께서 오 실장님 집 무시하고 있 었는데 결혼을 했다면 그 이후로 편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강진의 말에 고문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직업의 귀천을 따진 게 이렇게 대놓고 드러나게 되니 부끄러웠다.
얼굴이 붉어진 고문수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그러니 민성 형이 그쪽 회사에 손을 댈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럼요. 남자가 고문수 씨 아 드님 한 명만 있는 것은 아니잖 아요?”
자신의 말에 입맛을 다시는 차 장진과 고문수를 보며 강진이 말 을 이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 만…… 민성 형은 무서운 사람입 니다.”
강진의 시선에 차장진이 침을 삼켰다. 그도 황민성에 대한 이 야기 정도는 들어 알고 있었다.
“민성 형이 그쪽 회사에 손을 써서 망하게 하려 했다면…… 두 분은 지금 제 앞에 있지도 못할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보는 차 장진에게 강진이 말했다.
“저도 태광무역 수출 대행 2팀 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저희 부 서에서 일을 맡긴 걸 보니 중소 기업 중에서도 소규모일 테 고…… 그럼 자금도 늘 부족하시 겠죠?”
“그야 중소기업이 다……
말을 하던 차장진은 눈을 부릅 떴다.
황민성 정도 되는 사람이 운영 하는 자금은 몇 천억이 넘는다. 아니, 조 단위가 넘을 수도 있 다.
그런 사람이 은행에 전화 한 통 넣으면 대강금속 같은 중소기업 대출 막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 다.
그리고 은행에서 대출이 므]■히면 회사는…… 자금난에 부딪혀 바 로 부도가 날 것이다.
아까보다 더 창백해진 차장진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
했다.
“제가 한 말이 이해가 되셨다 면, 그쪽에서 하고 있는 오해가 풀렸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강진의 말에 차장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민성이 정말 보복을 하는 것 이라면 자신들은 이곳에 올 정신 도 없이 회사 부도 막으려고 이 리저리 뛰고 있었을 테니 말이 다.
그러니 황민성이 손을 쓰지 않
은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해가 풀리신 것 같으 니……
강진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 다.
저승식당 규칙상 주인이 손님을 쫓아낼 수는 없다. 그러니 그들 이 알아서 나가 줬으면 해서 눈 치를 주는 것이다.
강진이 일어나는 것에 차장진이 슬며시 말했다.
“황민성 사장님에게 사과를 드 리고 싶은데……
강진은 한숨을 쉬고는 그를 보 았다. 그는 황민성과 어떻게 인 사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긴, 중소기업 사장으로선 황 민성과 안면을 뜨고 인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회일 것이다.
“민성 형과 어떻게 연을 맺고 싶은 모양인데…… 괜히 만나봤 자 악연만 생길 뿐입니다.”
“그건 저희가……
“그리고…… 사과를 할 거면 오 실장님에게 하세요. 민성 형이 아니라.”
강진이 단호하게 말하자 차장진 이 입맛을 다시고는 고문수를 보 았다. 그 시선에 고문수가 고개 를 숙이자, 차장진이 강진을 보 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 실장님에 게 사과를 드리죠.”
차장진이 고개를 숙이고 가게를 나서자, 고문수가 상체를 다 펴 지도 못한 채 그 뒤를 따라나섰
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이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사과할 대상도 모르면서…… 누구한테 사과를 하겠다는 거 야?”
강진이 고개를 저을 때, 차달자 가 슬며시 홀에 나와서는 가게 문을 연 뒤 밖에 뭔가를 뿌렸다.
툭툭툭!
“뭐 하세요?”
“소금 뿌려요.”
“ 소금?”
“장사 시작도 안 했는데 이상한 사람들이 왔잖아요. 음식 장사에 서 첫손님이 얼마나 중요한 데……
고개를 저은 차달자가 다시 소 금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은 피식 웃 었다. 그녀가 두 사람 때문에 나 빠진 자신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고자 이렇게 한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기분이 조금 풀린 강진 은 차달자에게 다가가 그녀가 들 고 있는 소금을 살짝 집어서 가 게 밖에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