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화
점심 장사를 마무리한 강진은 공원 으로 향하고 있었다. 애들 먹으라고 놓고 온 사료통과 물통을 챙기기 위 해서였다.
아직까지 강진에게 그런 경우는 없 었지만, 이강혜의 말에 의하면 애들 밥그릇을 엎어 버리거나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점심 장사 후에 가지러 가는 것이다.
정자에서 자신의 사료통과 물통을
챙긴 강진이 커피를 꺼내 마셨다.
점심시간에는 여러 가지 음식 냄새 를 맡아야 한다. 맛있는 냄새이기는 하지만 계속 맡고 있다 보니 속이 답답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이렇게 나와서 정자에 앉아 잠시 쉬는 것이 강진 나름의 힐링 방법이었다.
“날씨 좋다.”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고개 를 끄덕이고는 커피를 마저 마셨다.
“공원 한 바퀴 돌고 들어가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어슬렁거리 며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자, 강진이 그 뒤를 따랐다.
“이 동네 집값 비싼 이유가 있어.”
“공원 때문에?”
“그렇지. 이 공원이 있어서 집값이 일억은 뛰는 거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 였다.
“하긴, 이런 공원이 집이랑 가까운 건 참 복이다.”
공원이 가까우니 이렇게 잠시라도 여유도 즐기고 자연도 보는 것이다.
이런저런 말을 하며 걸음을 옮기던 강진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정장을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벤 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진돗개처 럼 보이는 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할아버지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 워 있었다.
여기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 이었다. 공원에 애완견들 데리고 산 책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으니 말이 다.
다만 벤치 옆에 기대어져 있는 상 자에 써진 문구가 일상적인 모습에 이질감을 주고 있었다.
〈개 가져가실 분.
진돗개 믹스로 똥, 오줌 잘 가립니
다.〉
박스에 써진 문구를 본 강진이 걸 음을 멈췄다.
‘개 분양하려고 하시는 건가? 하지
만 애가 커서 잘 안 될 텐데?’
유기견들에게 관심이 많다 보니 이 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잘 분양 되는 건 생후 얼마 되지 않은 아이 들이거나 체구가 작은 애들의 경우 라고 했다.
그와 반대로, 할아버지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있는 진돗개는 나이도 성년인 것 같고 체구도 커서 분양이 쉽게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강진이 할아버지와 진돗개를 볼 때, 배용수가 힐끗 그 시선을 따라 보고는 말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네.”
“양심?”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개 주인 새로 찾아 주려는 거잖아. 흰둥이처 럼 그냥 두고 가는 것보다는 낫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 며 개와 할아버지를 보았다. 할아버 지의 무릎에 머리를 올린 개는 눈을 감은 채 귀만 가끔 쫑긋거렸다.
그리고 그런 개의 머리를 할아버지 가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개나 주인이나 서로를 무척 좋아
하는 것 같은데…… 왜 새 주인을 찾아 주려는 거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멍하니 햇살을 받고 있던 할아버지가 문득 그를 보았다.
자신을 보는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 를 돌린 것이다. 시선이 마주치자 강진이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웃으며 작게 고 개를 숙였다.
“개 좋아합니까?”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진돗개를
보았다. 그러자 진돗개 또한 강진을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웃으며 할아버지 와 개에게 다가갔다.
“만져 봐도 됩니까?”
“그러세요.”
강진이 슬며시 손을 내밀자, 진돗 개의 꼬리가 휙 하고 올라갔다.
그리고 좌우로 살랑거리는 것을 본 강진이 슬며시 머리를 쓰다듬었다.
낯선 사람의 손길에도 진돗개는 눈
을 감은 채 얌전히 서 있었다. 마치 손길을 고스란히 느끼려는 것처럼 말이다.
“보통 진돗개들은 주인 아니면 경 계하고 그러지 않나요?”
“사람을 좋아합니다. 후! 도둑놈이 들어와도 만져 달라고 배를 깔 녀석 이지요.”
“특이하네요.”
“시골에서 기르던 진돗개하고 믹스 가 된 녀석이라 그냥 동네 황구입니 다.”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진돗개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미소를 지었다.
“애가 참 순한가 보네요.”
미소로 답하는 할아버지를 보던 강 진이 힐끗 종이 상자에 적힌 문구를 보았다.
“그런데 애 보내시게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 덕이며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난한 동네 개보다는 부자 동네 개가 먹기도 잘 먹을 것 같아서…… 새 가족이 될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
니다.”
강진이 다시 할아버지를 보며 물었 다.
“집이 여기 아니세요?”
“여기 살지는 않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진돗개를 보았다.
‘개 팔자도 주인 따라가는 건가?’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주인 이 부자라면 간식 하나를 먹어도 좋 은 것을 먹을 테니 말이다.
말없이 개를 쓰다듬는 할아버지를 보던 강진이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저에게는 왜 아무런 말씀 안 하세요?”
개를 분양시키려고 한다면 자신에 게 개 키울 생각 없냐고 물을 법도 한데,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는 것이다.
“유기견들 사료 챙겨주는 분 맞지 요?”
“어? 저를 아세요?”
“며칠 전부터 공원을 오가며 어떤
분들이 다니는지 봤거든요.”
“사전 조사를 하셨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 덕이고는 말했다.
“가끔 총각이 애들 사료 챙겨주는 것 봤습니다.”
“ 아......"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할아버지 가 말을 이었다.
“아이들 사료 챙겨주는 것 보면 동 물 좋아하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
만 유기견들을 챙겨주는 것을 보면 집에도 동물을 키울 것 같군요. 그 럼 집에 다른 아이를 데려오기 힘들 것 같아서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혹시 주위에 좋은 분 있으면 소개 좀 해 주십시오.”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 가 개를 쓰다듬었다.
“좋은 가족 만나기를 바라겠습니 다.”
할아버지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숙
이자 강진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 다.
어느 정도 멀어지고 나자 배용수가 힐끗 할아버지 쪽을 보고는 말했다.
“개 버릴 사람으로는 안 보이는 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도 할아버지를 보았다. 할아버지가 개의 입에 간식 을 물리는 것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사정이 있으신가 보지.”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그냥
키우시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 였다.
“네 말대로 그냥 키우는 것이 가장 좋겠지. 그런데……
강진이 할아버지 쪽을 보았다. 개 의 머리를 쓰다듬는 할아버지의 손 길과 눈빛에서는 애정이 뚝뚝 떨어 졌다.
“본인이 키우기 어려운 사정이 있 으시겠지.”
그런 할아버지가 개를 남에게 분양
시키려 한다는 건…… 그만한 이유 가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진돗개 는 가족과 헤어지는 슬픔을 느끼겠 지만 말이다.
강진은 잠시간 할아버지와 개를 보 고는 몸을 돌려 공원을 나서기 시작 했다.
강진은 저녁 장사 준비를 하고 있 었다. 요즘 직원들만 부려 먹는 느 낌이 들어, 오랜만에 혼자서 반찬도 만들고 저녁에 쓸 고기도 다듬고 있 었다.
콩나물무침을 만들고 나물도 하나 된장에 버무린 강진이 어묵을 볶았 다.
띠링!
어묵이 맛있게 볶아지던 와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강진이 힐끗 홀 쪽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 다.
“오셨어요?”
가게에 들어온 사람은 원승환이었 다. 그에 강진이 옆에 빈둥거리는 배용수를 보았다.
“용수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장갑을 끼고 는 어묵볶음이 담긴 프라이팬을 쥐 었다. 그에 강진이 손을 씻고는 홀 로 나왔다.
강진이 나오자 원승환이 가게를 둘 러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명함을 주고 가셨더군요.”
“이렇게 바로 오실 줄은 몰랐네 요.”
“연락도 없이 와서 죄송합니다.”
원승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 다.
“오시라고 명함을 주고 간 건데요, 뭐. 앉으세요.”
강진의 말에 원승환이 식당을 보다 가 자리에 앉았다. 그에 강진이 시 원한 오미자차를 따라 가져다주었 다.
“오미자 차입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일 끝나신 건가요?”
“네.”
“일 끝나고 바로 오지 않으셔도 되 는데.”
강진의 말에 원승환이 작게 웃었 다.
“초대해 주셨으니 바로 와야죠.”
“잘 오셨습니다. 어떻게, 식사 바로 준비해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원승환이 고개를 저었
다.
“오늘은 인사만 드리겠습니다.”
“하긴,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죠.”
강진의 말에 살짝 웃은 원승환이 주방 쪽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음식을 하시 나요?”
원승환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말 했다.
“맛있는 음식을 주로 합니다.”
강진의 말에 원승환이 피식 웃으며 오미자 차를 마실 때, 원희진이 슬 며시 말했다.
“여자 친구하고 데이트하러 가는 거예요.”
강진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쳐 다보자 원희진이 웃으며 설명했다.
“유미 아빠가 승환이 반대를 해도, 유미가 우리 승환이를 너무 좋아하 거든요. 그리고 승환이도 유미 너무 사랑하고. 에잉! 나쁜 인간! 둘이 이렇게 좋아하고 의지하는데 반대를 하기는 왜 반대를 해.”
원희진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 며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서로 좋아하면야……
강진은 원승환의 경우는 그나마 괜 찮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오 실장의 딸은 남자 집안의 반대 에 감정이 상해서 이별을 택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무시하는 집에 시집갈 생각이 없었고, 남자는 자기 아버지의 반대를 이겨내지 못 한 것이다.
“혹시 여자 친구 있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원승환의 얼굴에 미 소가 어렸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으시 겠네요.”
“사장님은 여자 친구 없으세요?”
“제가 지금은 여자를 만날 여유가 없어서요.”
강진의 말에 원승환이 가게를 보며 말했다.
“논현 길가에 이런 식당이 있으면 여유는 되실 것 같은데……
“금전적으로는 괜찮은데 아직 마음 의 여유가 좀 그렇네요.”
“좋은 여자 만나실 겁니다.”
원승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 이 물었다.
“혹시 데이트하러 가세요?”
“네.”
“그럼 이따가 같이 오세요. 저희 식당이 보기에는 이래도 여성 분들 이 좋아하는 음식들도 있고 맛도 있 다고 소문 많이 났어요.”
강진은 핸드폰으로 포털사이트 앱 을 켜고 검색창에 한끼식당이라고 쳐서는 보여주었다.
한끼식당 관련으로 뜨는 블로그나 카페 글들을 보며 원승환이 감탄을 표했다.
“오…… 맛집이었군요.”
원승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이런 곳에서 장사하려면 맛집이거 나 특색이 있어야 하죠. 아니면 가 게 팔아 버리는 수밖에 없고요.”
원승환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 다.
“그 말도 맞네요. 이런 곳 월세 감 당하려면 맛집이 아니면 감당이 안 되죠.”
웃으며 블로그 글들을 보던 원승환 이 말했다.
“찹스테이크가 인기가 많네요.”
“여자 분들이 좋아하더군요. 맛도 있고 보기도 좋습니다.”
“그럼 저녁에 여자 친구하고 같이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아! 혹시 드시고 싶은 메뉴 있으시면 문자 주세요. 맛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원승환이 고개를 끄덕 일 때, 원희진이 급히 말했다.
“액젓 소 불고기요!”
원희진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 다. 하지만 원희진이 뭐라 더 말을 하기도 전에 원승환은 자리에서 일 어났다.
“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 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네.”
웃으며 원승환이 가게를 나서자 강 진이 그를 배웅해 주었다.
원승환이 가는 것을 보며 원희진이 강진에게 말했다.
“승환이가 옛날에 내가 해 준 액젓 소 불고기를 너무 잘 먹었어요.”
“액젓 소 불고기?”
강진이 묻자 원희진이 웃으며 말했 다.
“양념을 액젓으로 하는 거예요.”
“소 불고기 양념을 액젓으로요?” 강진의 말에 원희진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레시피를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