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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475화 (473/1,050)

475 화

손님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자 가게 안에는 마지막으로 온 원승 환과 황민성 테이블만이 차 있었 다.

보통 한끼식당 저녁 장사 시간 은 다섯 시부터 일곱 시 사이이 니 더 이상 저녁 손님은 없다 봐 도 무방한 시간대였다.

바쁜 시간이 지나 비교적 한가 해진 강진과 차달자는 황민성과

같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모님은 여기 일할 만하신가요?”

황민성이 소주를 한 잔 따라주 며 묻자 차달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이 편하게 해 주셔서 잘 하고 있습니다.”

차달자의 말에 황민성도 웃으며 말했다.

“강진이가 일 막 시키면 말씀하 세요. 제가 좋은 일자리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후! 사장님이 구박하면 말씀드 리겠습니다.”

차달자의 농에 강진이 웃으며 맞받아쳤다.

“에이! 제가 언제 구박을 했다 고 그러세요.”

“그러니까 ‘구박을 하면’이죠.”

차달자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놈이 구박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저를 어디에 취직시켜 주시려 고요?”

“음…… 마음 같아서야 저희 집 에서 같이 사셨으면 좋겠습니 다.”

“황 사장님 집에서요?”

차달자가 놀란 듯 보자, 황민성 이 머리를 긁으며 슬며시 말했 다.

“강진이가 이야기했는지 모르겠 지만……

황민성이 슬며시 원승환 쪽을 확인하고는 작게 속삭였다.

“저희 집에도 귀신이 몇 분 계 십니다.”

“그러세요?’’

“한 분은 저희 어머니 수호령이 시고, 두 분은 제가 구입한 집에 이전부터 사시던 지박령입니다.”

“아…… 지박령이 살면 집에 우 환이 있을 텐데.”

“그건 강진이가 잘 말해서, 집 안에는 안 들어오는 걸로 합의했

습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사람 들한테 최대한 시선 안 주기로도 했고요.”

“그렇군요.”

“그리고 강진이가 귀신분들 밥 아침에 꼭 챙겨 주라고 해서…… 지금은 그런대로 잘 지내는 것 같습니다.”

황민성은 직접 귀신을 보지는 못했지만, 집에 아픈 사람 없고 별다른 일 없는 것을 보아 잘 지 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황민성의 말에 차달자가 강진을 보았다.

“귀신들 밥 차려 주라 한 것은 잘 하셨네요.”

“저승식당에 오지도 못하고 그 곳에 발 묶여 있는 분들이라 배 고프실 것 같아서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다가 말했다.

“좋은 마음에 좋은 결과가 생겼 네요.”

“네?”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왜 제삿 밥을 거하게 차리는 줄 아세요?”

“귀신들 밥 먹으라고요?”

“맞아요. 사람이든 귀신이든 배 가 고프면 신경이 날카로운 법이 랍니다.”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 다.

“개도 밥 주는 사람은 안 무는 법이죠.”

“맞는 말이에요.”

맞장구치며 미소 지은 차달자가 황민성을 보았다.

“귀신들 밥 차려주면 복 받으실 거예요.”

“강진이도 그런 말 하더군요.”

황민성이 웃으며 하는 말에 차 달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 다.

“그럼 저를 황 사장님 집에 취 직시키려고 그러시는 건가요?”

“제 욕심일 뿐이죠.”

사실 황민성은 차달자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인성도 좋아 보 이고 음식도 잘 하고…… 그리고 귀신도 보고 말이다.

어머니 곁에 이런 분이 한 분 계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 욕심 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욕심일 뿐이 었다. 차달자는 저승식당이 어울 리니 말이다.

강하게 권하지는 않는 황민성의 모습에 차달자가 웃으며 몸을 일 으켰다.

“국물을 좀 내올게요.”

“이것도 많은데요.”

“소주 마시는데 국물이 있으면 좋지요. 혹시 좋아하는 국물 요 리 있으세요?”

“그럼 라면 부탁드리겠습니다.”

“ 라면요?”

많은 국물 요리 중에 굳이 라면 을 선택한 게 의아한 차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人}이, 강진이 주방을 향해 말했다.

“용수야, 형 라면 드신대.”

“ 알았다.”

배용수의 답을 들으며 강진이 차달자를 자리에 앉혔다.

“형한테 라면은…… 엄마의 음 식이에요.”

“라면이요?”

차달자가 여전히 의아한 듯 보 자, 황민성이 웃으며 강진에게 말했다.

“우리 엄마도 다른 음식 많이

해 주셨어.”

“말이 그렇다는 거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달자를 바라보았 다.

“어릴 때 어머니가 분식집을 하 셨습니다. 그래서 라면을 자주 먹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서 그런지 가끔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라면이 생각납니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강진의 어깨 를 손으로 잡았다.

“이 녀석하고도 그 라면 덕에 친해진걸요.”

“무슨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가 요?”

차달자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답했다.

“매운 라면에 고추 넣고 김치 국물 넣어요. 계란은 풀지 않고 수란처럼 만들면 되고요. 아! 그 리고 면은 살짝 퍼지게요.”

조리법을 듣고 있던 황민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 혹시 형이 했던 말 아니냐?”

“기억하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 었다.

“그럼. 분식집 가서 주문할 때 내가 늘 하던 말이니까. 그런 데…… 그렇게 잘 안 해 주더 라.”

“라면 한 그릇 파는데 그렇게까

지 해 주기에는 조금 귀찮죠.”

라면에 김치 국물 넣어주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지만, 수란처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은 꽤 귀찮은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가게에서 수란은 먹을 수 없었다.

보통은 그냥 계란 탁 깨서 넣고 저어 버리니 말이다.

물론 황민성이 오만 원을 내밀 었다면 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민성은 라면 하나에

오만 원이나 낼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드는 라면을 먹은 적이 드물었다.

어쨌든 황민성은 강진이 작년에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것에 살짝 감동한 듯 온화한 눈 빛으로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웃었다.

“형이 한 대사를 외운 것이 아 니라 그냥 음식 레시피를 외운 거예요.”

“그래?”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둘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핸드 폰 벨소리가 식당 안에 울려 퍼 졌다. 그 핸드폰의 주인인 이유 미가 급히 전화를 받았다.

“응. 아빠. 응. 나 지금 친구 만 나지. 응.”

이유미는 원승환을 한 번 보고 는 서둘러 가게를 나갔다.

“아니야. 안 만난다니까. 진짜 왜 그래? 나 선 안 본다고.”

가게 밖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원승환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소주를 마셨다.

그런 원승환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입구를 보았다.

‘아버님이 선 보자고 하시는 모 양이네.’

이유미의 사정을 알 것 같은 강 진이 입구를 볼 때, 문을 열리며 그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미안. 나……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그래. 데려다줄게.”

“그게…… 아빠가 이 근처래.”

“아버님이?”

“미안해. 나 먼저 갈게.”

서둘러 이유미가 가게를 나서자 원승환이 급히 일어나서는 그 뒤 를 따라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진이 한 숨을 쉬었다.

“연인들이 힘드네요.”

강진의 중얼거림에 황민성이 고

개를 저었다.

“원 실장님 잘생기고 몸도 좋아 서 남자로서 충분히 매력 있는 데…… 세신사라 싫어하는 거 지?”

황민성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양이에요.”

“남의 눈에서 눈물 안 뽑고 돈 잘 벌면 그게 좋은 직업 아니 냐?”

“사람들은 때밀이라는 직업이

더럽고 힘들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는 그 아버님은 때 안 미 신대?”

“미 시겠죠.”

“자기도 밀면서 왜 그러는 거 야?”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실 때, 원승환이 가게 문을 열 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원승환은 방금 전까지 식사하던 자리를 잠시 보다가 한숨을 쉬었 다. 그는 이유미가 앉아 있던 의

자를 손으로 한 번 짚고는 강진 을 보았다.

“계산하겠습니다.”

원승환의 말에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유미의 빈자리를 보고 는 말했다.

“오늘은 제가 서비스해 드리겠 습니다.”

“아닙니다. 먹었는데 계산해야 죠.”

“그럼......"

강진이 자리를 보았다.

“소주 세 병에 스테이크 해서 이만 육천 원입니다. 다른 메뉴 는 제가 서비스로 드린 거고요.”

“너무 조금 받으시는 것 같은 데……

“정가로 받는 겁니다.”

잠시 고민하던 원승환이 지갑에 서 삼만 원을 꺼내 내밀었다. 그 에 강진이 아크릴 통에 돈을 넣 고는 사천 원을 거슬러 주었다.

계산이 끝나자 가게를 나서려는

원승환을 황민성이 불러 세웠다.

“원 실장님.”

황민성의 부름에 원승환이 급히 그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황 사장님.”

“호텔도 아닌데 그렇게 예의 차 리지 마세요.”

“아닙니다.”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는 원승환 을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내가 원 실장님하고 알고 지낸

지 한 삼 년 됐죠?”

“그런 것 같습니다.”

“밖에서 이렇게 사적으로 보는 건 처음인데…… 괜찮으면 소주 한잔 같이 하겠어요?”

“아닙니다.”

“그러지 말고 한잔 같이 해요.

내가 원 실장님 소주 한잔 사 줄

나이와 인연은 되는 같은

데……

원승환이 망설이는 듯 잠시 머 뭇거리자, 황민성이 소주잔을 내

밀었다.

“그리고 지금 딱 한잔 하고 싶 어 하는 얼굴입니다. 숙소에서 혼자 소주 까지 마시고 저와 같 이 한잔합시다.”

황민성이 거듭 권유하자 원승환 이 잠시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원승환이 슬며시 자리에 앉으며 황민성이 준 잔을 두 손으로 잡 았다.

그러자 황민성이 소주를 따라주

었다.

쪼르륵!

잔에 소주가 채워질 때 주방에 서 배용수의 외침이 들렸다.

“라면 다 됐어!”

그에 강진이 주방에서 라면을 들고 와 테이블에 놓았다.

강진이 라면을 놓자, 황민성이 원승환을 보았다.

“라면 좀 먹어 봐요.”

“배부릅니다.”

“배가 불러도 남이 먹는 걸 보 면 먹고 싶은 것이 라면 아니겠 어요?”

웃으며 황민성이 원승환의 그릇 에 라면을 덜어 주고는 수저로 계란을 떠서 그 위에 얹어주었 다.

“내가 라면에서 계란은 남 안 주는데 원 실장님이라 특별히 드 리는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그릇을 받는 원승환

을 보던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 다.

“너도 앉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의 옆 에 앉았다.

“먹어 봐요. 여기 라면이 참 맛 있어요.”

“음식점에서 라면이 맛있다고 하면 이상하잖아요.”

“맛있는 걸 맛있다고 하지, 그 럼 뭐라고 하냐?”

황민성이 라면을 후루룩 먹자, 원승환이 입맛을 다시고는 젓가 락을 들었다.

천천히 한 젓가락 먹은 원승환 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면이 맛있습니다.”

그런 원승환을 보며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결혼 준비가 잘 안 되나 봐 요?”

“네?”

“사우나 분들한테 이야기 들었 어요. 원 실장님 결혼 준비한다 고.”

“아……

“그런데 잘 안 되시는 것 같습 니다.”

손님들이 원승환을 좋아하는 건 때를 잘 밀기만 해서는 아니다.

상대가 편히 말할 수 있게끔 배 려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 문이었다.

편하게 대화하다 보면 친분이

쌓여서 선을 넘을 수도 있지만, 그는 선을 넘지 않으니 손님들이 더 좋아하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손님들하고 편히 대화하는 원승환이다 보니, 그의 결혼 소식을 모르는 손님이 드물 정도였고 이는 황민성도 마찬가 지였다.

물론 결혼이 비틀거린다는 것은 강진에게 들어서 알게 된 것이지 만 말이다.

원승환은 빈자리를 보고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 과 행복하게 살면서 딸 둘에 아 들 하나 해서 셋 정도 낳고 싶었 는데……

원승환이 한숨을 쉬고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단숨에 소주를 마신 원승환이 재차 한숨을 쉬었다.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자조 섞인 원승환의 목소리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소주를 따

라주었다.

“내가 사업적인 조언 하나 해 드릴까요?”

“사업적인 조언요?”

원승환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 다. 그 시선을 받으며 황민성이 자신의 소주잔을 들었다.

그에 원승환도 다시 잔을 들어 살짝 부딪쳤다. 그러곤 그대로 쭉 들이켜는 원승환을 보던 황민 성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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