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화
조금 늦은 점심시간에 황민성이 가게에 들어왔다.
“오늘 점심은 늦으시네요.”
“밥 먹으러 온 건 아니고 할 말 있어서 왔어.”
강진이 쳐다보자 황민성이 웃으 며 말했다.
“오늘 원 실장 여자 친구 가족 이 호텔 간다고 하더라.”
“오늘이에요?”
“오늘 금요일이잖아. 오늘 일 끝나고 부모님 모시고 호텔에서 금, 토 이틀 편히 모시겠대. 같이 갈래?”
“형은 일 안 바쁘세요?”
“나야 엄청 바쁘지.”
“그런데 사우나 갈 시간이 되세 요?”
“사우나 갈 시간도 못 내겠냐?”
황민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물었다.
“몇 시에 사우나 가시는데요?”
“저녁에 호텔 한식당에서 식사 하고 여덟 시에 사우나로 모시기 로 했다니까, 우리는 여덟 시 전 에는 가야지.”
“여덟 시라……
강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 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죠.”
“오케이! 오늘 원 실장 장가보
내 보자고.”
환하게 웃는 황민성의 모습에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형 기분 좋아 보이네 요?”
며칠 전만 해도 원승환의 결혼 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서도 기분 나빠하던 황민성이 기분이 좋아 보이자 이상한 것이다.
“오늘 아침에 원 실장한테 때 밀었는데 그 마음이 느껴지더라 고.”
“정성껏 밀어 주셨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미소를 지었다.
“원 실장이야 늘 정성껏 하지. 근데 손길에서 고맙다는 마음이 느껴지더라고.”
“고맙다는 마음요?”
“어쨌든…… 오늘 기분이 좋더 라고.”
고개를 끄덕인 황민성이 말했 다.
“힘들어하는 연인을 도와준다 생각하니 보람되기도 하고.”
웃으며 황민성이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켰다.
“석류 마사지도 서비스로 해 줬 는데 어때, 좀 피부 좋아진 것 같냐? 원 실장 말로는 미백 효과 가 있다고 하던데?”
얼굴을 쓰다듬는 황민성의 모습 에 강진이 웃었다. 황민성과 우 윳빛 피부는 어울리지 않았다.
황민성은 남자다운 얼굴이니 말
이다.
“형 캐릭터가 좀 변한 것 같아 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셨다.
“그게 다 너 때문이야.”
고개를 저은 황민성이 피식 웃 었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지?”
“그럼요.”
“그럼 이따 저녁에 데리러 올
게.”
“저녁 먹지 말고 오세요. 여기 서 저녁 먹고 가게요.”
“ 알았다.”
황민성이 손을 들고는 가게를 나서자 강진이 그를 배웅해 주고 는 문을 닫았다.
“원승환 씨 결전의 날인가 보네 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될지 모르겠네요.”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나요? 잘 될 거예요.”
차달자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강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럼 오늘 출장 영업은 어떻게 하시 겠어요?”
“가야죠.”
그러고는 강진이 시간을 보았 다.
“여덟 시에 가서 적당히 분위기 보다가 열 시 전에는 나올게요.”
“그럼 제가 준비를 해 놓을까 요?”
“준비라고 할 것이 있나요. 그 냥 두세요. 제가 일찍 와서 할게 요.”
“제가 해도 되는데요.”
“아니에요. 푸욱! 쉬고 계세요.”
저녁 장사 준비하기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 쉬었다가 움직이면 될 것이다.
* * *
8시 50분쯤, 강진은 황민성과 함께 호텔 사우나에 들어서고 있 었다.
사우나 안에는 사람들이 꽤 있 었다.
“사우나 하기에는 어중간한 시 간 같은데 사람이 많네요?”
지금 시간이면 술을 마실 시간
이지, 목욕하러 올 시간이 아닌 것이다.
“여기는 아침보다는 저녁에 사 람이 더 많아.”
“술 마시러 나갈 것 같은데?”
“술 마시는 것도 좋지만 쉬고 싶은 사람들도 있는 법이지. 그 것이 아니면 사우나 하고 보송해 져서 술 마시러 나갈 수도 있 고.”
황민성이 상의를 벗으며 말했 다.
“어쨌든 이 시간에는 손님 많더 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옷을 벗을 때, 장은 옥이 슬며시 다가왔다.
“사장님.”
장은옥의 부름에 강진이 그쪽을 보고는 급히 벗던 것을 멈췄다.
그 모습에 장은옥이 슬며시 몸 을 돌려 멀찍이 서고는 말했다.
“안 볼게요.”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흠칫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주위를 두리 번거렸다.
“귀신이야?”
“아......" 네.”
황민성이 슬며시 벗던 옷을 다 시 입으려 하자, 강진이 그를 보 고는 장은옥이 몸을 숨긴 곳을 보았다.
“강상식 씨 오셨어요?”
“원 실장님 이야기 들었어요.”
“들었어요?”
“어제 원 실장님 결혼 이야기하 다가 알게 되셨어요.”
“그럼 원 실장님 도와주러 오신 건가요?”
“원 실장님 좋은 분이라고 이야 기해 준다고 오셨어요.”
장은옥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 다. 그러고는 강진이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도련님 뵐 때 저 때문에 쓰이실까 봐 옷 벗기 전에 드리러 왔어요. 저는 멀리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세요.” 신경 말씀 있을 씻으
그러고는 장은옥이 몸을 돌려
서둘러 밖으로 나가자 강진이 한 숨을 쉬고는 옷을 벗었다.
“갔어?”
“안 보신대요.”
“강상식 이야기하던데?”
“강상식 씨 수호령이에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 았다.
“강상식 씨한테 수호령이 붙어 있어?”
“아…… 말을 안 했구나.”
황민성이 의아한 듯 보자, 강진 이 다시 옷을 벗으며 말했다.
“강상식 씨 어릴 때 보살피던 가정부셨대요.”
“가정부가 수호령?”
“네.”
“수호령은 정말 아끼고 사랑하 는, 가족 같은 사람이 되는 것 아니야? 왜 고용인이 수호령이 돼?”
황민성이 묻자 강진은 그저 작 게 웃었다. 장은옥 씨가 사실은 강상식의 친엄마이기는 하지 만……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여겼다.
남의 슬픈 가정사이니 말이다.
옷을 다 벗은 강진이 말했다.
“그런데 강상식 씨도 원 실장님
도우러 왔네요?”
장은옥이 있으면 강상식도 있을 테니 말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우나에 서 아침을 시작하는 강상식이니 친하기로 따지면 나보다 더 친하 겠지.”
“하긴, 매일 보는 사이니 그럴 수 있겠네요.”
어느새 옷을 다 벗은 황민성이 로커를 닫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면 강상식도 사람 많
이 됐어. 사람 귀천 나누는 걸로 따지면 그 장인이라는 사람보다 강상식이 한 수 위였을 텐데 말 이야.”
“강상식 씨가 처음 보는 사람한 테는 좀 그런 면이 있는데…… 자기 사람이나 친하다 생각을 하 면 잘 해 주는 편이더라고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그래야 지.”
“그건 또 그렇죠.”
강상식과의 첫만남을 생각해봤
을 때, 사람 나누는 것으로는 그 도 남 못지않은 것이다.
그때의 강상식을 떠올린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처음 엘리베이터에서 봤을 때 와 비교하면 사람 많이 됐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 가자.”
황민성이 앞장서서 걸어가자 강 진이 그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탕 속에 있던 강상식이 손을 들 었다.
그에 황민성과 강진도 살짝 손 을 들어주고는 샤워 부스로 가서 몸을 씻고 탕 안으로 들어갔다.
“원 실장님 도와주러 온 겁니 까?”
“네. 오늘 아침에 원 실장이 이 야기를 하더군요. 원 실장 그런 고민이 있으면 나한테도 이야기
를 하지...
작게 고개를 저은 강상식이 황 민성을 보며 말했다.
“어쨌든 황 사장님이 원 실장을 위해 좋은 이야기 많이 해 주셨 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 이사님에게 감사 인사를 들 을 것은 없지요. 저도 원 실장 좋아하니까요.”
“사람이 착하니...... 주위에서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네요.”
강상식이 세신소가 있는 쪽을
한 번 보고는 말했다.
“원 실장이 상대하는 사람들로 장인 설득하려 한다 들었습니 다.”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몇 사람 더 불렀 습니다.”
강상식이 힐끗 한쪽을 보자, 강 진이 그 시선을 따라 냉탕 쪽을 보았다.
냉탕 쪽에서는 남자 둘이 천천 히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움직이
고 있었다.
“연예인이네요?”
“저 둘도 원 실장 단골입니다. 저하고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라 연락해서 오라고 했습니다.”
강진이 신기해하며 연예인을 보 는 사이, 사우나 문을 열고 원승 환이 안으로 들어왔다.
곧 황민성을 발견하고는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런데 장인어른
“지금 엘리베이터 탔다고 하시 네요.”
그러고는 원승환이 냉탕으로 가 서 그 안에 있는 남자 둘과 인사 를 나눴다.
간단히 인사를 마친 그는 온돌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도 다 가갔다.
그 외에도 몇 분에게 더 다가가 인사를 하는 것을 본 강진이 황
민성을 보았다.
“원 실장님이 저희 말고도 부탁 을 하신 분들이 있나 본데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도 의외인 듯 사람들을 보았다.
“저 사람은 태양제과 윤 실장인 데……
황민성의 중얼거림에 강상식도 의외인 듯 말했다.
“원 실장님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 많은 줄 알았지만…… 대단하 네요.”
원승환을 돕기 위해 사우나에 온 사람들의 면면에 놀란 것이 다.
그렇게 말하던 강진은 황민성과 강상식을 보았다.
‘하긴…… 강남의 투자 귀재 민 성 형하고 오성그룹 재벌 3세 강 상식도 왔는데 다른 사람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
워낙 편하게 지내서 그렇지, 이 둘도 어디 가서 꿀리는 신분과 지위가 아니었다.
몇 사람과 인사를 나눈 원승환 이 세신룸 안에 들어갔다. 그리 고는 세신룸에 난 작은 창문으로 밖을 보았다.
그런 원승환을 보던 강진이 힐 끗 옆을 보았다.
옆에는 원희진이 있었다. 강진 의 시선에 원희진이 급히 말했 다.
“오늘은 안 나갈 거예요.”
강진이 눈을 찡그리자, 원희진 이 웃으며 말했다.
“뭐 어때요. 친누나다 생각하고 편하게 있으세요.”
‘어떤 미친놈이 친누나한테 알 몸을 보입니까?’
하지만 강진은 입 밖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귀신에 대해 모 르는 강상식이 혹시라도 들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귀신이 옆에 있다고 하면 귀신에 대해 아는 황민성도 불편해할 것이었다.
그에 강진이 차마 말하지 못하
고 불편한 눈으로 그녀를 보기만 할 때, 원희진이 입구를 보다가 급히 말했다.
“왔어요.”
원희진의 말에 강진이 입구를 보았다. 입구에서 백발의 중년인 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체구가 작네. 아 니, 일반적인 건가?’
당연하게도 옷을 벗고 들어오는 백발의 중년인을 본 강진이 입맛 을 다셨다.
“성격 강해 보이시는데요.”
강진의 중얼거림에 황민성도 동 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데.”
“생각보다 쉽지 않겠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강상식의 물음에 강진이 중년인 을 보며 말했다.
“대충…… 오십 중후반쯤 되시 는 것 같은데 머리가 백발이잖아 요.”
머리는 백발이지만 얼굴이나 몸 은 아직 그렇게 노쇠하지 않았으 니 말이다.
강상식이 보자, 강진이 말을 이 었다.
“요즘 오십 대면 한창 일할 나 이라 염색들을 많이 하죠. 아무 래도 백발이면 더 늙어 보이니까 요.”
“그건 그렇겠네요.”
“그런데 염색을 안 한다는 건 주위 시선보다는 자기 생각을 중
시한다고 할 수 있겠죠? 좋게 말 하면 주관이 뚜렷한 거고, 나쁘 게 말하면 고집이 센 건데…… 저런 분들은 자기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으세요.”
머리가 백발인 것만 가지고 이 렇다 말하는 건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지만, 장인을 본 순간 강 진은 고집스러운 그 성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황민성도 그걸 느낀 것이고 말 이다. 두 사람 다 사람을 많이 봐 왔기에 보는 순간 그의 성격
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장인을 보다가 눈을 찡그렸다.
“말 들으니…… 되게 깐깐해 보 이네요.”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그쪽을 볼 때, 원희진이 웃었다.
“좋은 사람이에요.”
뜬금없는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그의 시선에 원희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영감탱이가 우리 조카 괴 롭히나 해서 오늘 하루 종일 따 라다녀 봤는데…… 그냥 딸 고생 할까 봐 걱정하는 딸 바보였어 요.”
그러고는 원희진이 강진을 보았 다.
“승환이한테 가서 말하세요. 정 식으로 인사하고 진심으로 때 한 번 시원하게 밀어 주라고요. 그 럼 잘 될 거예요.”
원희진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샤워 부스
에서 몸을 씻는 장인을 보았다
‘진심으로 때를 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