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화
강진이 밖에서 몸을 말리는 사 이, 원승환은 이군송에게 세신을 해 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안 받으려고 했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보여드리고 싶다는 원승환의 말 에 따라온 것이다.
스윽! 스윽!
부드럽지만 강하게 자신의 몸을 미는 원승환의 손길에 이군송은
편안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끼 고 있었다.
몸은 무척 편안한데…… 마음이 불편했다.
자신이 반대하던 사윗감에게 지 금 알몸으로 때를 밀리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은 괜찮은 것 같은데……
일단 허우대가 멀쩡했다. 몸도 좋고 인상도 부드러운 것이 성격 도 좋아 보이고…… 게다가…….
‘여기로 나를 부를 줄이야.’
호텔 VIP 숙박권이 생겼다고 자신을 속여서 이곳으로 데려온 딸과 이 친구의 행동이 조금 괘 씸하기는 하지만, 딸이 얼마나 좋았으면 이런 방법을 썼을까 싶 어 흐뭇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는 달 랐다. 세신사라고 해서 동네 목 욕탕에서 보는 그런 것으로 생각 을 했는데, 직접 보니 그렇지 않 았다.
사우나 규모와 설비부터가 일반 동네 목욕탕과 비교하는 것 자체
가 무리인 듯했다.
‘하지만…… 세신사는 세신사 지.’
이군송이 한숨을 쉬고는 원승환 을 보았다.
‘세신사만 아니면 괜찮을 텐데.’
특히…… 딸 좋다고 이렇게 매 달리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기 에 더 안타까웠다.
잠시 원승환을 보던 이군송이 입을 열었다.
“태권도를 했었다고?”
“유미하고는 태권도 상비군하면 서 만났습니다.”
“운동하라고 보냈더니 연애를 하고 있었구먼.”
“죄송합니다.”
“아니야.”
고개를 살짝 저은 이군송이 다 시 물었다.
“태권도 상비군이었으면 태권도 학원을 차려도 될 텐데?”
왜 세신사냐는 질문을 돌려서 하는 이군송을 보며 원승환이 잠 시 손을 멈췄다.
그 모습에 이군송이 입맛을 다 시며 말했다.
“내가 괜한 것을 물은 건가?”
“아닙니다.”
답을 한 원승환이 이군송의 몸 을 다시 밀며 말했다.
“대회를 나갔는데…… 발차기를 잘못 맞았습니다.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는데 그 후로 발차기가 들
어오면 몸이 굳어졌습니다.”
“몸이 굳어져? 겁을 먹은 건 가?”
“육체 부상은 나았는데 마음에 입은 부상이…… 낫지를 않았습 니다. 그래서 태권도를 그만뒀습 니다.”
“힘들었겠군.”
“그때 유미가 많이 도와줬습니 다.”
“유미도 부상을 늘 달고 살았으 니……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일상이 죠.”
스윽! 스윽!
“물 붓겠습니다.”
“웅? 응.”
원승환이 이군송의 몸에 물을 끼얹어 때를 씻겨 내리고는 말했 다.
“마사지 시작하겠습니다.”
“때만 밀면 됐지.”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사지를 하게 해 달라는 말에 이군송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원승환은 손을 비벼 열을 올리 고는 오일을 바른 뒤 본격적으로 마사지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시작했습 니다.”
원승환의 말에 이군송이 그를 힐끗 보았다. 그 시선을 느끼는 지 아닌지 원승환은 그의 몸을
부드럽게 마사지하며 말했다.
“태권도 그만두고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질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술도 많이 마셨습니 다.”
운동을 하면서 쏟아붓던 에너지 를 쓸 곳이 없어서 노는 데 에너 지를 소모한 그였다.
스르륵! 스르륵!
근육의 결을 따라 힘 있게 문지 르자 시원한 듯 소리를 내는 이 군송을 보며 원승환이 입을 열었
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목욕탕을 갔습니다.”
“목욕탕?”
“동네 목욕탕이었습니다. 목욕 하고 마사지도 받을 겸 때를 밀 려고 하는데…… 세신사 분께서 문신이 있으시더군요.”
“문신?”
“저도 모르게 문신하면 아프냐 고 물었습니다.”
“그건 왜?”
이군송이 눈을 찡그리자 원승환 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친구들도 한두 군데씩 하고 있 기도 하고…… 그때 방황을 하던 시기기도 하고요. 자포자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문신 을 하면 운동 생각이 나지 않을 것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했나?”
“아닙니다. 안 했습니다.”
이군송이 보자, 원승환이 말을
이었다.
“아저씨가 그러더군요. 운동하 냐고. 그래서 어떻게 아셨냐고 했더니, 몸 보니 운동하는 녀석 같다고…… 어디 아파서 운동 그 만뒀냐고 묻더군요.”
“운동 그만둔 건 어떻게 알고?”
이군송의 물음에 원승환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운동 하는 녀석이 이 시간에 술 마시고 돌아다닐 정도로 정신 이 썩었겠냐고 했습니다.”
“아……
“그러시면서 본인은 유도를 하 셨다고 하더군요. 선수 생활을 하다가 어깨 부상으로 그만두고 저처럼 술 마시고 방황하다가 조 폭 쪽에 몸 담으셨다고 하더군 요.”
“조폭 하다가 세신사가 된 거였 군.”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운동하 다가 자기처럼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면 술도 먹고 방황도 많이 한다고요. 그러다 자기처럼 조폭
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고요.”
그러고는 원승환이 이군송을 보 았다.
“그분이 그랬습니다. 조폭 생활 할 때는 좋은 정장도 입고 좋은 차도 타고 다녔지만…… 지금이 더 좋다고요.”
“때를 미는 지금이 말인가?”
“사람들이 더럽다 하고 힘들다 고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물과 땀 뽑아내서 돈 벌던 것보다…… 내 땀 흘려서 번 돈으로 마누라
철마다 옷 한 벌 사 주고, 자식 들 입에 먹을 것 넣어 줄 수 있 는 지금이 더 좋고 뿌듯하다고 요.”
“그 말 들으니 그분이 멋져 보 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유 미와 사귀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그때…… 유미가 방황하는 저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원승환의 말에 이군송이 눈을
찡그리며 그를 보았다. 생각이 난 것이다.
착하고 운동 열심히 하던 딸이 5년 전인가? 한 번 힘들어하던 때가 있었다.
가끔 자기 방에서 울기도 하 고…… 운동하다가 부상당해서 들어오기도 했었다.
‘그게 이 새끼 때문이었어?’
이군송이 매서운 눈으로 보자, 원승환이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말을 했는데…… 진심
으로 이군송이 화가 난 것이다.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원승환의 사과에 그를 보던 이 군송이 말했다.
“그때 유미가 많이 힘들어했 어.”
“죄송합니다.”
다시 사과를 하는 원승환을 보 며 이군송이 작게 혀를 차고는 말했다.
“그래서?”
“제가 술 마시고 방황하는 것만 으로도 유미가 그렇게 힘들어하 는데…… 제가 나쁜 길로 빠지면 유미가 얼마나 더 힘들지 생각을 했습니다.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유미인데 더 힘들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쯥!”
이군송이 재차 혀를 차자 원승 환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는 말을 이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아내 옷 사 주고 자식들 입에 음식 넣
어 줄 수 있어 좋다는 말이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저씨 를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세신사 쪽에 발을 들인 건가?”
“운동만 하고 살아서 딱히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근데 세신사는 저에게 맞았습니다. 사 람 몸과 근육에는 좀 아는 바가 있었으니까요.”
말을 한 원승환이 미소를 지었 다.
“그리고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라도 땀 흘려서 돈 벌고 그 돈으 로 유미 맛있는 것 사 주고 가끔 씩 선물도 사 줄 수 있어서 저는 제 직업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원승환의 말에 이군송이 그를 보다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 시 있다가 말했다.
“그래서 일은 할 만한가?”
“힘들기는 하지만 보람이 있습 니다.”
“보람?”
이군송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 다.
“피곤한 얼굴로 들어오셨던 분 들이 때 밀고 마사지 받은 뒤 개 운한 얼굴로 나가시면 보람이 있 습니다.”
“아까 보니 손님들이 자네를 좋 아하는 것 같던데?”
“감사한 일이죠.”
“일이 힘들면 이직은 생각해 본 적이 없나?”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그만큼
벌이가 괜찮습니다.”
“돈 말인가?”
“돈도 그렇지만……
원승환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군송을 보았다.
“사실 오늘 탕에서 아버님과 대 화를 하신 손님들…… 다 제 사 정을 알고 계십니다.”
“자네 사정?”
“그…… 결혼이 힘들다는 것 말 입니다. 그리고 오늘 아버님 모
신다는 것을 알고 저에 대해 좋 은 말 해 주신다고 와 주신 분들 입니다.”
“하! 그럼 작당을 했다는 건 가?”
“죄송합니다.”
“그럼 아까 그분들 다 가짜인 건가?”
“가짜?”
“직업 말이네.”
이군송의 말에 원승환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들 자기 직업 이 야기하신 겁니다.”
“무슨 투자 회사 대표와 오성 이사라는 것도?”
“맞습니다.”
원승환의 답에 이군송이 그를 보았다.
‘그래도…… 사람들한테 인정은 받는 모양이군.’
내심 원승환이 조금은 마음에
든 이군송이 몸을 일으켰다.
“끄응!”
편안한 마사지를 받고 있다가 일어나려 하자 몸에 힘이 들어가 지 않았다.
그에 원승환이 그를 일으켰다. 원승환의 손길을 받으며 몸을 일 으킨 이군송이 자신의 몸에 번들 거리는 오일을 슬쩍 손으로 만지 고는 말했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르던 이군송이 한
숨을 쉬며 말했다.
“때밀이라는 직업은 솔직히 마 음에 들지 않네.”
스윽!
이군송이 원승환을 보았다.
“나는 그저 딸이 평범하지만 행 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네.”
“알고 있습니다.”
“자네가 방금 돈을 잘 번다고 했지만……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도 아니고.”
원승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 군송이 말을 이었다.
“이직하는 것이 어떤가? 유미하 고 같이 태권도 학원을 차린다든 지 해서. 모아 놓은 돈이 부족하 다면 내가 좀 도와줄 수도 있 네.”
이 정도면 허락을 한 것이나 마 찬가지였다. 하지만…… 원승환 이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 저는 제 직업이 부끄 럽지 않습니다.”
이군송이 쳐다보자 원승환이 입 을 열었다.
“제가 이 일을 하지 않았다 면…… 아마 서울 변두리에서 조 폭 생활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 리고…… 유미와도 헤어졌을 겁 니다.”
“유미와?”
“저도 양심이 있는 놈입니다. 조폭 생활 하면서 유미를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 땀 홀리며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 이 직업이 너무 감사하
고…… 고맙습니다.”
“자네 말은 이직을 할 생각은 없다는 것인가?”
“죄송합니다.”
“유미와 헤어지라고 해도?”
“유미와 헤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반대를 해도 말인가?”
“설득하겠습니다.”
원승환의 답에 이군송은 잠시 말을 하지 않다가 한숨을 쉬었 다.
“ 당당하군.”
“나쁜 짓 하지 않고 제 땀 흘리 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정당하게 살았으니 부끄러울 이 유가 없었다. 그러니 원승환은 당당한 것이다.
“하아!”
긴 한숨을 뱉은 이군송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이게 끝인가?”
“네?”
“때 미는 것 지금 이게 끝인가 하는 말이네.”
“아! 오일 닦아 내야 합니다.”
“그럼 마저 하게.”
이군송이 베드에 다시 눕자, 원 승환이 거품을 내서는 그의 몸을 닦아주었다.
그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이 군송이 입을 열었다.
“이 근처에 술 마실 곳이 있 나?”
술이라는 말에 원승환의 눈빛이 반짝였다.
“저희 호텔 바가 좋습니다.”
“그런 데 말고. 편하게 한잔할 곳 말이야.”
“있습니다.”
“유미한테는 말하지 말고…… 따로 한잔 하세.”
이군송의 말에 원승환의 얼굴에 밝아졌다. 그런 원승환을 보고는 이군송이 눈을 찡그렸다.
“허락한 건 아니야.”
“아......" 네.”
고개를 숙인 원승환이 조심히 이군송의 몸을 닦아내기 시작했 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보던 원 희진이 활짝 웃었다.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던 원희진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곧 사라졌다.
한편, 소파에서 쉬고 있던 강진 의 눈에 종이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펄럭! 펄럭!
천장에서 떨어지는 종이를 강진 이 쥐었다.
〈나 승천합니다! 하하하!〉
아주 짧은 메시지에 강진이 피 식 웃으며 천장을 보았다.
‘확실히…… 밝아.’
메시지에서 원희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에 강진이 미소 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