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1 화
부웅!
한끼식당 뒷골목에 푸드 트럭이 멈췄다. 골목 주차장에 푸드 트 럭이 주차되자 강진이 조수석에 서 내리며 대리기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이거 잘 먹을게요.”
대리기사가 웃으며 손에 들린 봉지를 들어 보았다. 봉지 안에 는 강진이 구운 삼겹살과 김치 등 장사하고 남은 음식들이 좀 들어 있었다.
“남은 음식 드려서 죄송합니다. 다음에 저희 식당 한번 와 주세 요.”
“누가 입 대고 놓은 것도 아닌 데요, 뭐. 정말 감사히 잘 먹겠습 니다.”
대리기사가 기분 좋은 얼굴로 봉지를 들고는 푸드 트럭 뒤에서
전동 킥보드를 꺼냈다.
“아! 명함 있으시면 한 장 부탁 드릴게요.”
대리기사의 말에 강진이 명함을 꺼내 주었다.
“감사합니다.”
대리기사는 다시 인사를 하고는 전동 킥보드를 타고 자리를 떠났 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배용수 를 보았다. 배용수와 여자 귀신 들은 푸드 트럭 안에서 짐을 내
리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짐을 하나씩 받아 내리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서는 TV 소리가 작게 들리고 있는 것 외에는 조용했 다.
‘다 갔나 보네.’
하긴, 시간이 늦기는 했다. 새벽 1시 30분쯤 됐으니 말이다.
강진이 들어오는 소리에 차달자 가 다가왔다.
“오늘 수고하셨어요.”
“수고야 이모님이 하셨죠. 혼자 괜찮으셨어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웃었다.
“저도 음식 장사를 오래 한 사 람이에요. 손님 몇 정도야 어렵 지 않죠. 예전 장사하던 생각도 나고 좋았어요.”
“다행이네요. 사람들은 갔어 요?”
“아까 열두 시 넘어서들 들어가 셨어요.”
‘생각보다 일찍 갔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차 달자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원승환 씨는 아버님과 친해진 것 같더군요.”
“그래요?”
“내일 아버님 모시고 경복궁 구 경 간다고 하더라고요.”
“잘 됐네요.”
잘 되지 않았다면 같이 가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민성 씨하고 상식 씨도 원승환 씨하고 합석해서 술 마시다가 갔 어요.”
“두 분도요?”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같은 술 집에 있는데 따로 술 마시는 것 도 이상하잖아요.”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그럼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뒷정리하고 퇴근할게요.”
“아니요. 여긴 제가 할게요. 피 곤하실 텐데 이만 들어가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차연미를 부르 자, 그녀가 웃으며 다가왔다.
“엄마, 지금도 늦었어. 이만 들 어가자.”
“그래도 이걸 두고……
주방에서 북적거리며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여자 귀신들을 보며 차달자가 미안해하자, 차연미가 웃었다.
“엄마 내일도 일찍 나올 거잖 아. 지금 가서 자도 다섯 시간도 못 자.”
차연미의 말에 강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먼저 들어갈게요.”
“죄송하기는요. 들어가세요.”
“이모 내일 봐요!”
귀신들이 웃으며 인사하는 것에 차달자가 카운터에서 가방을 챙 기자 그 뒤를 이호남과 귀신들이 따라나섰다.
“이 사장, 내일 보자고.”
변대두의 말에 강진이 손을 혼
들었다.
“내일 뵙겠습니다.”
“내일 봐요.”
인사를 하며 차달자 일행이 나 가자 강진이 잠시 그 뒷모습을 보다가 주방을 보았다.
여전히 설거지하는 소리로 요란 한 주방에 있는 배용수를 불렀 다.
“용수야.”
강진의 부름에 배용수가 얼굴을
내밀었다.
“왜?”
“할 말이 있다.”
그에 배용수가 밖으로 나오고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한 말 때문이면 신경 쓰 지 말라니까.”
“신경을 안 쓰기에는 신경이 쓰 인다.”
그러고는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요즘 네가 너무 한가해서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아.”
살짝 농을 담아서 하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었다.
“호남 씨가 워낙 프로고 손이 빨라서 내가 한가해지기는 했지. 그리고 달자 이모님도 음식 잘 하시고. 그래서 나 바쁘게 하려 고?”
“그럴 생각인데…… 어떻게 하 면 좋겠냐?”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웃었
다.
“야,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나야 음식 장사 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러니 오래 한 너에게 물어야지. 자! 그럼 너를 바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 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요리사가 바쁘려면 당연히 식 당이 잘 되어야지.”
“그건 나도 알지. 근데……
강진이 가게를 보며 말했다.
“우리 식당은 점심하고 저녁 식 사 장사가 주잖아. 그리고 테이 블 수도 한정적이라 손님을 더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고 말이 야.”
“그건 맞지.”
배용수도 식당을 둘러보며 고개 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지금 도 점심시간에는 손님들로 가득 차서 더 받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우리 가게가 술손님
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배용수의 말에 이번엔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 손님들을 상대로 하는 저 승식당은 술이 주다. 귀신들이 술을 미친 듯이 마시기 때문이었 다.
반대로 사람을 상대로 한 한끼 식당 장사에는 술을 마시러 오는 손님들은 적다. 대부분 밥 먹으 면서 간단하게 반주를 하는 손님 들이지, 한잔하겠다고 오는 손님 들은 드물었다.
황민성과 강상식과 같이 강진을 보러 오는 사람들 빼고는 말이 다.
강남이다 보니 술 마시러 가는 사람들은 한끼식당보다는 골목 하나 더 들어가면 있는 번화가에 서 술들을 하는 것이다.
술은 음식 맛도 중요하지만 분 위기라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확실히 우리 가게하고 술손님 은 어울리지 않지. 그럼 어떻게 하면 네 손을 바쁘게 할 수 있을 까?”
“가게에서 손님을 더 받기 어려 우면 밖에 손님들을 챙겨야 하는 데……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다.
“도시락이나 반찬 장사할까?”
“도시락과 반찬?”
강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 했다.
“괜찮은 것 같은데…… 근데 그 거 하면 사람들이 너무 자주 찾 아오지 않을까?”
귀신들이 가게 안에서 핸드폰과 태블릿을 쓰곤 한다. 그래서 평 소에는 영업시간이 끝나면 가게 문을 잠가 두는데…… 반찬 장사 를 하면 손님들이 불쑥불쑥 들어 오게 되니 불편할 것이었다.
언제 사람들이 올지 모르니 가 게에서 편히 쉬지도 못할 테고 말이다.
“음…… 그럼 반찬 빼고 도시락 만 하자. 아무래도 반찬 장사하 면 사람들이 너무 들락날락 거려 서 직원분들 불편하실 거야.”
“도시락만?”
“아침에 도시락 만들고, 손님들 이 사 가지고 가는 방식이면 괜 찮을 것 같아. 여덟 시부터 아홉 시까지 딱 한 시간만 팔면 되니 까.”
“너 공원 가는 건?”
“여덟 시 전에 갔다 오면 되 지.”
“그럼 이강혜 씨는 자주 못 보 겠네.”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이 사장
님이야 따로 보면 되는 거고.”
그러고는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 다.
“그럼 도시락을 할까?”
“일단 손님들 오면 의견 좀 묻 고 하자. 시장 조사도 안 하고 바로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좋은 식당에서 배워서 그 런지 이런 것도 잘 아네.”
강진의 말에 고개를 저은 배용 수가 말했다.
“올라가서 자. 뒷정리는 우리가 할 테니까.”
“그럼 부탁한다.”
직원들에게 맡겨 놓기만 하는 것이 미안하기는 하지만…… 귀 신들은 잠을 자지 않고, 사람은 잠을 자야 한다.
그리고 솔직히 피곤하기도 하고 말이다.
몸을 일으킨 강진이 2층으로 올
라가다가 말했다.
“내 방은 언제나 열려 있다.”
“그게 뭐……
말을 하던 배용수가 행주를 휙 하고 그에게 던졌다.
덥석!
“나이스!”
행주를 낚아챈 강진이 웃으며 그걸 탁자에 툭 하고 던지고는 올라갔다.
“수고해!”
“잘 자라.”
강진이 2층으로 올라가자 배용 수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에 서는 여자 귀신들이 설거지를 하 고 있었다.
설거지를 하던 이혜미가 배용수 를 힐끗 보았다.
“불편하세요?”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속이 좁은가 봅니다.”
“좁기는요. 용수 씨도 달자 이 모님이나 호남 씨 싫어하시는 건 아니잖아요.”
“좋아하죠. 달자 이모님은 좋은 분이시고, 보고 있으면 복래 할 머니 뵙는 것 같아서 반갑고 좋 아요. 그리고 호남 씨는 같은 요 리사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 력자고 같이 있으면 배우는 것이 있어요.”
그러고는 배용수가 웃었다.
“그냥 제 일이 줄어드는 것 같 아서 좀……. 제가 참 속도 좁고
양심도 없고 그런 것 같네요.”
배용수의 말에 이혜미가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외할머니가 아프셔서 어머니가 가끔 내려가서 지내고 오셨거든요.”
배용수가 보자 이혜미가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없으니까 내가 집안 살림 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쉽 겠어요? 어머니가 시골 갔다 올 때마다 잔소리를 막 하시는 거예
요. 빨래를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냐? 설거지하는 수세미 다른 건데 왜 이걸로 했냐. 청소를 한 거냐, 만 거냐. 먼지 봐라. 하면 서요.”
“어머니 눈에는 다 부족해 보이 시니까요.”
“그래서 아빠하고 나하고 힘을 합쳐서 엄마 오기 전에 대청소를 했어요. 빨래도 싹 해서 넣어두 고, 설거지부터 청소까지 완벽하 게 했어요.”
“어머니가 좋아하셨겠네요.”
“좋아하셨죠. 근데…… 몇 번 그렇게 하니까 엄마가 서운해하 더라고요.”
“서운?”
알아서 집안일을 다 해 놨는데 왜 서운한가 싶었다.
“나중에 아빠가 그러는데…… 엄마가 애들이 다 큰 것 같아서, 자기가 챙겨 줄 것이 없어서 서 운해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요.”
“아……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혜 미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다음에 엄마가 내려가 셨을 때, 일부러 청소도 안 하고 설거지도 쌓아 놨어요.”
“혼나셨을 것 같은데.”
“혼나기야 많이 혼났죠. 등짝도 엄청 많이 맞고. 근데…… 엄마 가 웃으면서 때리더라고요. 애는 다 커서 이렇게 해 놓고! 시집은 어떻게 가려고 그래! 하는데 기 분 좋아 보이는 것이 티가 나더 라고요.”
그러고는 이혜미가 팔을 허리에 착 올리고는 말했다.
“이놈의 집구석, 하여튼 내 손 이 닿지를 않으면 돌아가지를 않 아요! 돌아가지를 않아!”
엄마가 했던 말을 따라하는 이 혜미의 모습에 배용수가 웃었다.
그런 배용수를 보던 이혜미가 다시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며 말 했다.
“용수 씨도 그런 마음인 것 같 아요. 전에는 식당에 용수 씨 손
이 닿지를 않으면 돌아가지를 않 았는데…… 지금은 좀 다르니까 요. 하지만 용수 씨는 여전히 우 리 식당의 메인 셰프예요.”
이혜미의 위로에 배용수가 그녀 를 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 다.
“그렇죠. 저는 여전히 우리 한 끼식당의 메인 셰프죠.”
그러곤 2층 계단이 있는 곳을 보며 중얼거렸다.
“위로를 해 줄 거면 이렇게 해
줘야지. 강진이 저놈은 자기 방 문 열어 놓겠다는 개소리나 하 고……
이혜미가 깜짝 놀란 눈으로 그 를 보았다.
“방문을 열어놓겠다고요?”
“그러더라니까요.”
“어머…… 두 분 그런 사이셨어 요?”
“네? 아니, 그게 아니라……
배용수가 당황해하자 이혜미가
살짝 웃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는 사장님과 우리 셰프님의 사이 응원합니다.”
“아니, 혜미 씨까지 왜 그러세 요.”
“왜요. 잘 어울리시는데. 파이 팅!”
이혜미의 농에 배용수가 울상을 짓다가 피식 웃었다.
“응원 감사합니다.”
무엇에 대한 응원인지는 모르겠
지만…… 어쨌든 이혜미의 응원 과 위로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 지는 배용수였다.
이혜미나 강진이나 둘 다 자신 을 위해 말을 해 주는 그 마음이 감사하고 고마운 것이다.
‘오래오래…… 같이 했으면 좋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