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화
강진의 핸드폰에 프로그램을 깔 은 이강혜가 화면에 새로 뜬 애 플리케이션을 눌렀다.
“지금 공원 갈 수 있어요?”
“공원요?”
“캐릭터가 공원 디지털 맵에 동 기화되어 있어서 여기서 보는 것 보다 거기서 보는 것이 더 실감 날 거예요.”
“근데 밤인데 괜찮나요?”
“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강진이 쇼핑백에 기기를 챙기고 는 차달자를 보았다.
“가게 좀 부탁드릴게요.”
“다녀오세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강 혜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이강혜가 나오자 도원규가 차 문을 열었다.
“타세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조수석 문을 열고는 올라탔다.
그렇게 두 사람을 태운 차가 공 원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정자가 있는 곳에 도착한 이강 혜가 강진의 핸드폰을 보며 말했 다.
“일단 여기에 있는 디지털 맵에 동기화를 하고……
이강혜가 핸드폰을 끼운 VR 기 기를 건네자 강진이 그것을 머리 에 썼다.
스윽!
그러자 눈앞에 영수가 보였다. 교복을 입고 있는 영수의 모습에 강진이 탄성을 내뱉었다.
“ 와.”
“어때요?”
“실감 나네요.”
영수 주위를 돌며 앞뒤로 보던
강진이 물었다.
“여자애 둘 더 있을 텐데요?”
“그건 캐릭터 교체해야 돼요. 디지털 맵 하나에 동선을 하나로 따서, 캐릭터 셋 소환하면 겹치 게 되거든요. 장갑 끼고 움켜쥐 는 시늉을 하면 캐릭터 선택 창 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 다른 캐릭터를 선택하면 돼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장갑을 끼고 살짝 주먹 쥐자 영수 옆에 최가은과 이예림의 모습이 나타 났다.
그 셋의 모습도 무척 실감 났 다. 물론 머리카락이 조금 어색 한 감이 있기는 했지만…… 얼굴 형태와 윤곽은 실제처럼 보였다.
“근데 걸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물론이에요. 캐릭터 클릭해서 선택하시고 머리를 손으로 쓰다 듬어 보세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영수를 선택하고는 손으로 머리를 쓰다 듬었다.
그러자 영수가 기지개를 켜듯이 몸을 크게 벌렸다. 그러곤 강진 을 보며 미소 지은 채 입을 벙긋 거렸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이 왔다.
“엄마…… 시간도 늦었는데 산 책이야?”
입 모양을 그대로 따라해 말한 강진이 이강혜를 보았다.
그리고 강진의 눈에 살짝 놀람
이 어렸다. 시선을 돌리자 영수 가 그 시선을 따라 걸어온 것이 다.
“움직이네요?”
“그럼요. 시선과 핸드폰의 움직 임에 따라 캐릭터가 움직여요.”
“말도 하던데.”
“AI가 현재 시간과 날씨를 확인 해서 그에 맞게 말을 해요. 날씨 가 좋은 날 아침에는 ‘엄마, 오늘 날씨 너무 좋다.’, 혹은 ‘엄마, 비 오는데 왜 나왔어?’ 이런 식으로
요.”
“대단하네요.”
“요즘 AI 발전 많이 했어요. 이 제 걸어 보세요.”
강진이 걸음을 옮기자 영수가 천천히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뒷짐 을 지거나 뒤를 돌아보거나 하는 영수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실감 나네요.”
엄지와 검지를 쥔 상태로 말하
면 짧은 대화 정도는 AI가 대답 도 해 줘요. 대신 입 모양은 표 현을 했는데 음성 지원은 아직 안 되고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엄지와 검지를 쥐고는 말했다.
“ 영수야.”
강진의 부름에 영수가 그를 보 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
그 미소를 본 강진이 마주 미소 지었다.
“좋네요.”
“그리고……
이강혜는 사용 방법을 간단히 알려 주었다.
그녀가 알려준 명령어를 사용해 영수를 움직이며 공원을 산책한 강진이 VR 기기를 벗었다.
그러고는 웃으며 이강혜를 보았 다.
“생각보다 더 현실감 있네요. 진짜 영수하고 같이 걸으면서 대 화하는 것 같아요.”
“긴 대화는 무리가 있지만, 짧 은 대화는 확실히 괜찮게 구현이 됐죠.”
“좋아요.”
고개를 끄덕이는 강진을 보며 미소 지은 이강혜가 주머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그리고 이거.”
이강혜가 주는 종이를 강진이 받아 펼쳤다.
종이에는 영어로 된 단어가 나 열되어 있었다.
“어머니 계정 비밀번호예요.”
“어머니 비번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서 미안 해요.”
“아닙니다.”
강진은 비밀번호가 적힌 종이를 가만히 보았다.
“rkdwls0615.”
강진이 비밀번호를 중얼거리자 이강혜가 웃으며 말했다.
“영타로 강진 씨 이름을 친 거 예요.”
“아……
“그리고 뒤에 숫자는......"
“제…… 생일이네요.”
“그럴 것 같았어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VR 기기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싸이나라에 들어가 엄마 아이디를 치고는 비밀번호를 천 천히 입력했다.
로그인에 성공하자 사진첩을 눌 러 본 강진의 얼굴에 미소가 어 렸다. 엄마와 자신을 찍은 사진 들이 가득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역시 자신의 사진보다는 가족사진이 더 많이 있었다.
어렸을 적 자신의 모습과 엄마 의 모습을 보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강진의 모습에 이강혜가 말했다.
“원하시면 어머니 모습도 캐릭 터로 만들어 드릴까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잠시 사 진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 사진이면 됩니 다.”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이 엄마 사진을 보다가 그녀를 보았다.
“저희 가게 가시죠. 제가 맛있 는 것 해 드릴게요.”
“그럼 그럴까요?”
이강혜가 발걸음을 옮기자 강진 이 마지막으로 사진을 한 번 더 보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우리 엄마 예쁘네.’
저승식당 영업시간에 강진은 영
수와 최가은, 이예림과 앉아 있 었다.
그리고 세 귀신은 VR 기기를 쓴 채 캐릭터를 보고 있었다. 디 지털 맵이 없는 식당 내라서 캐 릭터가 의자와 탁자에 겹치기는 했지만 보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와……
셋 중 가장 마지막으로 VR 기 기를 벗은 영수가 탄성을 내뱉었 다.
“정말…… 대단하네요.”
“그렇지?”
“가은이하고 예림이는 정말 많 이 닮았어요.”
영수의 말에 이예림이 그를 보 았다.
“왜, 너도 많이 닮았던데?”
“그래? 내가 저렇게 해맑게 웃 어?”
“해맑게는 무슨. 바보 같이 웃 는 거지.”
그러고는 이예림이 강진을 보았 다.
“저는 좋은 것 같아요.”
“그래? 너희는?”
“저도 좋아요.”
“저도요.”
두 귀신도 좋다고 말을 하자 강 진이 그들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럼 내가 전화드리고 음성 파 일 받을게.”
“언제 가실 거예요?”
“빨리 받아야 음성 만드니까, 내일 전화드리고 일단 말을 잘 해야겠지.”
음성 파일이 있어야 캐릭터 목 소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최 대한 빨리 받는 것이 나았다.
다만…… 영수 부모님을 어떻게 잘 설득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부탁…… 드릴게요.”
“알았어.”
강진이 아이들에게 소주를 따라 주며 말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오라고 하면 너희들도 같이 가자. 너희들에 대해 물어보시면 입을 맞춰야 하 니까.”
“알겠습니다.”
아이들이 소주를 마시는 것을 보던 강진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슬며시 싸이나라에서 엄마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오 전 11시에 강진은 아이들과 함께 자리를 하고 있었다.
영수 부모님께 전화를 해야 음 성 파일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드리려 하는 것이 다.
“그럼 한다.”
강진의 말에 영수가 고개를 끄 덕였다. 그에 강진이 핸드폰 통
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 연결 음이 잠시간 들리더 니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어디시죠?]
모르는 번호라서 그런지 여자의 목소리에는 살짝 경계심이 있었 다. 스팸 전화가 워낙에 많은 요 즘이니 말이다.
“저는 서울에서 식당 하는 이강
진이라고 합니다.”
[서울요?]
식당이라는 말에 경계심이 살짝 풀림과 동시에 무슨 일인가 궁금 해하는 게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 껴졌다. 그에 답을 하려던 강진 이 슬쩍 앞에 앉은 영수를 보았 다.
엄마 목소리에 영수는 당장이라 도 울 듯 울먹거리고 있었고, 그 런 그를 이예림과 최가은이 다독 이고 있었다.
잠시간 영수를 보던 강진이 천 천히 입을 열었다.
“갑작스럽게 전화드려서 죄송합 니다. 어머니, 저는 영수하고 친 하게 지내던 형입니다.”
[……우리 영수를 알아요?]
“혹시 영수가 일 학년 때 예림 이, 가은이하고 서울에 놀러 갔 었던 것 기억하시나요?”
[일 학년 때? 아! 맞아요. 애들 셋이서만 서울을 갔다 와서 많이 걱정을 했었는데…… 그걸 어떻
게?]
“애들 서울 놀러 왔을 때 제가 밥도 사 주고 구경도 시켜주고 했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잠시 조용하던 어머니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런데 우리 영수가…….]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에 강 진이 말했다.
“저도 칠 년 전 사고 알고 있습
니다.”
[아…… 아시는군요.]
“사고 난 것을 나중에 알아서 장례식에 참석도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렇게라도……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 영수하고는 어떻게 알고 지내셨 는지?]
“영수가 하던 게임이 있었는데 거기서 친해졌습니다.”
[게임을 자주 해서 혼을 냈었는
데…… 좋은 형을 사귀었네요.]
“아닙니다.”
그 뒤로 별다른 말이 없자, 강 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어머님.”
[네.]
“제가 영수가 너무 보고 싶어 서, 아는 분께 부탁해서 3D 캐 릭터로 영수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영수를요?]
“일단…… 어머니 허락도 받지
않고 캐릭터를 만들어서 죄송합 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아들 캐 릭터를 만들었다는 건가요?]
“네. 혹시라도 어머니 마음이 상하셨다면…… 삭제하도록 하겠 습니다.”
[혹시 저도 볼 수 있을까요?]
“당연히 보여 드려야죠.”
[지금 볼 수 있을까요?]
“그게, 아직 완성이 된 것은 아
니라서요.”
[아…….]
아쉬움이 가득한 어머니의 목소 리에 강진이 말했다.
“혹시 영수 컴퓨터 그대로 있나 요?”
[영수 컴퓨터요?]
“네.”
[있어요. 그런데 영수 컴퓨터는 왜 물어보시는지?]
“제가 알기로 컴퓨터에 영수 음
성 파일이 있습니다.”
[음성 파일?]
“혹시 모르시나요?”
[그…….]
잠시 머뭇거린 어머니가 말했 다.
[남자 고등학생 컴퓨터 뒤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어머니의 말에 영수가 놀라 소 리쳤다.
“엄마! 무슨 그런 쓸데없는 소
리를 해!”
영수의 외침에 이예림이 웃었 다.
“오! 영수 컴퓨터 안에 뭐가 있 기에 어머니가 손도 못 대는 거 야?”
이예림의 말에 영수가 급히 고 개를 저었다.
“있기는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다니까!”
최가은이 눈을 찡그린 채 쳐다 보자 영수가 테이블을 내리치며
부정했다.
“아니, 진짜 아무것도 없다니 까!”
영수의 외침에 강진이 슬쩍 손 가락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대고 는 말했다.
“영수가 예전에, 자기는 외우는 과목 공부할 땐 음성을 녹음한다 고 했었거든요.”
[아…… 그럼 아들 목소리가 컴 퓨터에 있는 건가요?]
“네.”
[그럼 잠시만요.]
그러고는 전화기 너머로 뭔가 소리가 들렸다.
[아들 컴퓨터 켰어요.]
“제가 찾아뵙고 찾아 드리려고 했는데……
[우리 아들 목소리라면서요. 어 디에 있어요?]
다급함이 묻어나는 어머니의 목 소리에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온 영수가 핸드폰을 보았다.
“내 컴퓨터 파일 찾기 누르고 기말고사라고 치면 나와요.”
영수의 말에 강진이 핸드폰을 보며 그 말을 따라했다.
“내 컴퓨터 누르시고요. 거기 오른쪽 위에 보시면 검색 있거든 요? 거기에 기말고사라고 치세 요.”
강진의 말에 핸드폰에서 키보드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신라의 민정 문서, 촌락의 호
구, 전답, 가축의 수…….]
핸드폰에서 영수의 목소리가 흘 러나왔다. 그리고…….
[아…… 우리 아들…… 우리 아 들 여기에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이런 것도 모르고…….]
영수의 목소리와 함께 들리는 어머니의 흐느낌에 강진이 슬며 시 핸드폰을 껐다.
“좀 진정할 시간을 드리자.”
강진의 말에 영수가 한숨을 쉬
고는 몸을 일으켰다.
“저 집에 다녀올게요.”
“지금?”
“축지법 익혀서…… 금방 가 요.”
말과 함께 영수가 고개를 숙이 고는 가게를 나가자 최가은과 이 예림이 급히 그 뒤를 따르다가 강진에게 말했다.
“통화할 때 부르세요.”
“그래.”
세 귀신 모두 가게를 나가자 강 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어머니에 게 문자를 남겼다.
〈진정 좀 되시면 전화 주세요.〉 문자를 보낸 강진이 한숨을 쉬
고는 몸을 일으켰다.
“저 옆에 핸드폰 가게 좀 다녀 올게요. 금방 오니 손님 오시면 부탁 드리겠습니다. ”
“그렇게 하세요.”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핸드폰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