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화
점심 장사가 끝날 무렵, 영수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감사합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괜히 어머님의 아픈 상처 건든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좋아서,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지만…… 아픈 상처는 아니에 요.]
“제가 또 말실수를 한 것 같습 니다.”
[아니에요.]
잠시 조용하던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음성 파일 보내드리면 되 는 건가요?]
“아…… 그래 주시면 제가 감사
하기는 한데……
[메일 주소 알려 주시면 바로 보내드릴게요.]
“잠시만요.”
강진은 핸드폰을 얼굴에서 잠시 떨어뜨린 후 작은 목소리로 영수 를 불렀다.
화아악!
영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강진이 물었다.
“노래방 파일은?”
“내 컴퓨터에 노래방 파일 있어
요. 그것도 같이 보내달라고 하 세요.”
자신을 불러낸 이유를 아는 영 수가 빠르게 말하자, 강진이 핸 드폰에 대고 말했다.
“컴퓨터에 보시면 노래방 파일 이 있습니다.”
[노래방?]
“친구들하고 같이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른 것을 저장했다고 하더 군요. 검색하시면 있을 겁니다. 그 음성 파일도 같이 보내 주세
요.”
[아! 알겠어요.]
곧 핸드폰에서 음악 소리와 함 께 노래가 들렸다.
[이건 가은이 목소리인데.]
“가은이, 예림이하고 같이 노래 방 가서 녹음했다고 했어요.”
[아……』
노래를 앞으로 빠르게 당기는 듯 음악이 빠르게 바뀌었다. 그 러다 노래하는 영수의 목소리가
나오자 어머니가 흐느끼기 시작 했다.
그에 강진이 작게 한숨을 쉬고 는 전화를 끊었다. 또 우는 것을 보니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좀 진정되시면 전화 달라고 문 자를 보낸 강진이 핸드폰을 주머 니에 넣고는 일어났다.
“용수야, 밥그릇 챙기러 가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주방에서 나왔다. 그에 쇼핑백을 챙긴 강 진이 배용수와 함께 가게를 나왔
다.
공원에 가던 중, 영수 어머니에 게서 전화가 다시 왔다.
“여보세요.”
[제가 또…… 죄송해요.]
“아닙니다.”
[그, 가은이하고 예림이 엄마한 테 노래방 파일 보냈어요.]
“그러세요?”
[하아! 두 사람도 얼마나 좋아
하던지. 그리고…… 혹시 영수 캐릭터만 만드는 건가요?]
“아닙니다. 예림이하고 가은이 캐릭터도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이세요?]
“제가 따로 두 친구 부모님께도 말을 해서 양해를 구하려고 했는 데……
[아니에요. 제가 말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메일 주소 말씀해 주시
면 보내 드릴게요.]
“네.”
강진이 메일 주소를 말해주자 잠시 후 핸드폰에서 띠링 소리와 함께 메일이 온 것이 확인되었 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혹시…… 캐릭터 만드 는 데 돈이 필요한가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돈이 필요하시면 저희가 성의 표시를 좀 하고 싶은데.]
“아니, 정말 괜찮습니다. 사실 이건 L전자에서 도와줘서 가능한 일이거든요.”
[L전자? 거기서 왜요?]
“거기 사장님하고 제가 친분이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가 가족을 잃은 분들을 위한 기 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됐는 데…… 그걸 들으신 사장님이 저 를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아! 이렇게 감사한 일이…….]
“그러니 돈은 걱정하지 마세 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 다.”
[아! 죄송한데…… 혹시 서울 어디에서 식당을 하시는지.]
“서울 강남 논현에서 한끼식당 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명함 찍 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 인사를 하는 어머니 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전화 를 끊고는 지갑에서 이강혜의 명 함을 꺼냈다.
그러고는 이강혜의 명함에 있는 메일 주소로 영수 어머니가 보낸 음성 파일을 전달했다.
〈음성 파일 보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무척 좋아하시네요.〉
문자를 보낸 강진이 자신의 명 함을 핸드폰으로 찍어 영수 어머 니에게 보냈다.
그러고 다시 공원으로 걸음을 옮길 때, 이강혜에게 문자가 왔 다.
〈파일 확인했어요. 음성 입히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 요.〉
〈그래요?〉
〈짧으면 몇 시간 이내에도 가능
하다고 하니까, 끝나면 연락드릴 게요.〉
〈그렇게 빨리요?〉
〈그렇다네요.〉
〈근데 영수는 그냥 말하는 목소 리가 있지만, 여자 애들은 노래 를 부르는 건데 괜찮을까요?〉
〈파일에서 음악, 잡음은 떼어내 고 음성만 따로 뽑아서 쓰면 괜 찮대요.〉
〈L전자 기술력 대박!〉
〈고마워요! 그럼 앞으로도 저희 가전제품 많이 이용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L전자만 쓰겠습니다.〉
그렇게 문자를 끝낸 강진이 미 소를 지었다.
“잘 됐네.”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핸드폰으 로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이번 주는 날씨가 다 좋네. 내
일 아침에 한번 확인해 보고…… 괜찮으면 부모님들 초대해야겠 다.’
대략적인 일정을 정리하며 걸어 가던 강진은 어느새 공원에 도착 했다. 공원 곳곳에 놓인 애들 사 료 통을 챙긴 강진은 오늘도 나 와 있는 할아버지에게 인사한 뒤 카스를 만져주었다.
‘민성 형한테 물어봐야겠다.’
카스를 쓰다듬은 강진이 할아버 지를 보았다.
“저, 저기 밑에서 한끼식당이라 는 식당을 합니다.”
“그러십니까?”
“한 번 식사하러 오세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아이하고 같이 다녀서 식당 에 가기가 쉽지 않군요.”
“아……
강진이 카스를 보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카스하고 있으면 식사는 어떻 게 하세요?”
“김밥을 사 와서 애하고 공원에 서 같이 먹습니다.”
“그럼 매일 김밥을 드세요?”
할아버지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가끔은 빵도 사 와서 먹고, 입맛 없을 때는 두유를 먹기도 하고…… 후! 메뉴는 자주 바꿉니다.”
“그래도 그렇게 사 드시면
“경치 좋은 곳에서 먹으니 맛이 아주 좋습니다. 매일 소풍 나온 느낌이랄까요.”
“그건 그렇겠지만…… 영양가 있는 걸로 잘 드셔야죠.”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카스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자제분들하고는 안 사세요?”
“나이 먹어서 애들하고 같이 살 면 좋을 것 같지만…… 제가 하 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는데 자
유가 있겠습니까? 며느리 눈치도
봐야 하고.”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시면 내일부터는 11시에 저희 가게 한 번 오시겠어요?”
“식당에 폐를 끼칠 수는 없지 요.”
“저도 카스 좋아하고 동물에 대 한 거리감은 없지만…… 카스를 저희 가게에 들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식당이고 음식을 먹는 곳이라 위생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손님들이 싫어할 수도 있고 말이다.
“대신 도시락 만들어 드릴게 요.”
“그렇게 신세를 끼칠 수는 없습 니다.”
“공짜라는 말은 안 했는데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그를 보다가 웃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내일 11
시에 도시락 사 먹으러 가겠습니 다.”
“11시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연락 주시고 오세요. 십 분이면 도시락 만드니까요.”
강진이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그리고 혹시 가리시는 음식이 나 병원에서 먹지 말라는 음식이 있으셨나요?”
“그런 것 없습니다. 그냥 입에 맞는 걸로 잘 먹고 부담되지 않
게 먹으라 하더군요.”
“그럼 좋아하시는 음식은?”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 를 숙였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조심히 가요.”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 기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노약자 건강식은 뭐를 하면 좋 을까?”
“그야 소화 잘 되는 걸로 해야 지. 그리고 영양가 있는 걸로 해 야 되고.”
강진이 쳐다보자, 배용수가 잠 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양배추 말이 괜찮겠다.”
“양배추에 뭘 말을 건데?”
“먹는 재미가 있게끔 전복도 말 고, 오징어도 말고, 소고기도 말 고…… 가게에 재료는 많으니까. 골고루 말아 드리면 되겠어.”
“그러네. 양배추는 위에 좋고
소화도 잘 되니 괜찮겠다.”
“거기에 양념은 된장으로 하면 좋겠네. 연세가 좀 있으시니 구 수한 맛을 더 선호하실 테니까.”
말을 하던 배용수가 웃었다.
“쌈장에 우렁이도 넣으면 되겠 어. 그리고 땅콩도 좀 갈아서 넣 고.”
“우렁이요?”
“우렁이가 영양가가 높고 몸에 좋거든. 칼슘하고 철분도 많고 간에도 좋지.”
“오! 많이 아네.”
“한식 요리사는 반쯤 한의사라 고 했잖아.”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그와 함께 걸음을 옮겼 다.
* * *
강진은 저녁 영업을 준비하던 중, 황민성이 가게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오셨어요?”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는 것으 로 인사를 대신한 황민성이 차달 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모님, 저 왔습니다.”
“어서 와요.”
차달자와 인사를 나눈 황민성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형수가 좋아하더라.”
“네?”
“네가 알려 준 액젓 소불고기하 고 명란 계란말이 해 줬거든. 너 무 좋아하더라.”
“양념은 잘 맞추셨어요?”
“그럼. 너한테 배운 그대로 잘 맞춰서 넣었지. 어머니도 맛있다 고 하셨어.”
기분이 좋아 보이는 황민성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아들이 해 주는 음식이니 맛이 없어도 맛있다고 하셨겠죠.”
“하하하! 그런가?”
가볍게 웃어넘긴 황민성이 물었 다.
“혹시 다른 쉬운 음식들 좀 더 알아?”
“왜요? 더 배우시게요?”
“좋아하니까 더 해 주고 싶더라 고.”
“형수님하고 어머니 좋아하신다 니 제가 열심히 알려 드려야겠네 요.”
“그래. 좀 알려줘라. 나중에 형 이 요리할 테니 너도 좀 먹고.”
웃는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말 했다.
“형 혹시 동물 좋아하세요?”
“동물?”
“개요.”
“글쎄…… 가끔 보는 건 좋아하 지.”
“길러 본 적은 없으세요?”
“개 키우는 것이 어디 쉽나? 그 리고 기를 여건도 안 됐고.”
“그럼 혹시 개 키워 보실래요?”
황민성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 다.
“글쎄. 지금은 딱히 생각이 없 네.”
황민성의 반응을 본 강진은 더 권하지 않았다. 생명을 키우는 건데 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접시 하나가 두둥실 떠서 다가왔다. 배용수가 접시를 들고 오는 것이 다.
“형, 이거 드셔 보세요.”
배용수가 접시를 놓자, 강진이 그것을 가리켰다.
“용수가 형 드시래요.”
“그래? 고마워.”
말을 하며 접시를 본 황민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배추 롤이네?”
“안에 전복도 있고, 오징어도 있고, 소도 있고 돼지도 있 고…… 어쨌든 맛있는 것을 좀
넣었어요.”
내일 할아버지 드시라고 만들 양배추 롤을 배용수가 시험 삼아 만들어 본 것이다.
“맛있겠네. 근데 소스 없이 그 냥 먹으면 돼?”
“안에 적당히 된장 소스 들어 있으니 그냥 드시면 돼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양배추 롤을 하나 집어 입에 넣고는 씹 었다.
“흐읍!”
입술 사이로 물기가 새어 나오 자 황민성이 급히 입가를 닦았 다.
“즙이 많아요?”
“……음. 아니, 괜찮아. 달달하 고 좋네.”
잠시간 우물거리던 황민성이 고 개를 끄덕였다.
“이건 낙지인가 보네. 맛있다. 고소하면서 쫄깃쫄깃하네.”
황민성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 며 강진이 냉장고를 가리켰다.
“맥주 한 잔 드려요?”
“오늘 형수 나 기다리는 날이 다.”
“형수가 형 기다리는 날이 따 로…… 아!”
말을 하다가 뭔가를 눈치챈 강 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황민성이 웃었다.
“오늘 같은 날 술 마시고 들어 가면 혼나.”
“파이팅!”
“파이팅은 무슨…… 형은 늘 파 이 팅이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을 때, 가게 문이 열리며 이강혜가 안으 로 들어왔다.
“사장님.”
강진이 웃으며 일어나자 이강혜 가 들어오다가 황민성을 보고는 멈춰 선 뒤 작게 고개를 숙였다.
반면 황민성은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이강혜를 보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
고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왜 이러지? 처음 보는 사이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