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화
굳은 얼굴로 이강혜를 보던 황 민성은 작게 고개를 젓고는 말없 이 양배추 롤을 집어 먹었다.
‘무슨 일이 있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이 강혜가 오더니 말했다.
“음성 변환 다 됐어요.”
“그래요?”
“핸드폰 주세요.
강진이 건네주는 핸드폰을 받은 이강혜가 연결 포트를 끼우고는 USB를 연결했다.
그러자 핸드폰 화면이 한 번 깜 빡이더니 뭔가 프로그램이 깔리 기 시작했다.
“한 오 분 정도 걸릴 거예요.”
“그럼 여기 앉으시죠.”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황민성을 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이강혜가 앉자 강진이 젓가락을 가져다주 었다.
“이번에 만든 건데 좀 드셔 보 세요.”
“고맙습니다.”
이강혜가 양배추 롤을 하나 집 어 먹는 것을 보던 강진이 슬며 시 말했다.
“그런데 두 분 좀 서먹해 보이 시는데……
말함과 거의 동시에 황민성이 발로 강진의 발을 툭 쳤다. 그에 강진이 쳐다보자, 황민성이 고개 를 젓고는 이강혜를 보았다.
“곧 하반기 신규 모델 출시 시 기인데 잘 되십니까?”
“잘 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강진은 왜 이런 분위기인지 이제야 감이 왔다.
‘아! 주식.’
황민성이 투자하는 회사 중에는 L전자도 있다. 중소기업에 비해 대기업은 주식 변동 폭이 낮아 수익률은 높지 않지만, 안정적인 만큼 황민성도 투자를 하고 있었
다.
현재 그가 가진 L전자 주식은 대략 천억이었다.
그래서 작년에 이강혜가 강진과 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작지만 호의를 베푼 황민성이었다.
하반기 핸드폰 디자인 변경 건 이 논의되었을 때 이강혜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대신…… 황민 성이 가진 주식을 이강혜가 매입 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내년 하반기 저희 전략 폰이 출시되면 그때 오늘 종가에 10퍼 센트 더 쳐서 매입해 드리죠.
이강혜가 했던 말을 떠올린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반기 주력 핸드폰이 출시될 시기가 다가오니 황민성이 사무 적으로 그녀를 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이것이 황민성 의 본모습이었다.
상황을 이해하고 안심한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L전자에서 나오는 핸드 폰 잘 될 거예요. 기술이 얼마나 좋은데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곧장 입을 다 무는 황민성의 모습에 강진이 입 맛을 다시다가 문득 말했다.
“형 VR 해 보셨어요?”
“가상현실?”
“네.”
강진이 카운터에서 VR 기기를 가지고 왔다.
“이번 L전자에서 나온 신상인데 아주 좋더라고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VR 7] 7] 를 보다가 말했다.
“나도 몇 개 있어.”
“ 있으세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이강혜를 보자, 그녀가 말했다.
“대주주시니 상품이 나오면 몇
개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러고는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 다.
“해 보셨어요?”
고개를 끄덕이지만 뭔가 불편한 듯한 황민성의 모습에 강진이 물 었다.
“되게 좋던데?”
“부족한 것이라도 보이셨나요?”
이강혜가 묻자 황민성이 잠시
있다가 말했다.
“말 그대로 잘 만들어진 VR이 었습니다.”
“그게 문제가 되나요?”
“다른 회사에서 만든 것보다 조 금 더 현실감이 있고, 어지러운 것이 좀 적기는 했지만……
황민성이 VR 기기를 만지작거 리며 말했다.
“아직 이걸로 할 수 있는 콘텐 츠가 좀 부족해 보이더군요. 그 리고 핸드폰 성능에 따라서도 차
이가 많이 나는 것 같고.”
황민성의 말에 이강혜가 입맛을 다시며 기기를 보았다.
VR 기기에 전용 모니터를 설치 할 수도 있었다. 그럼 지금보다 더 실감 나는 VR을 볼 수 있었 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초반 구입 비가 올라가기 때문에 사용자가 사용하는 핸드폰을 끼워 쓰도록 만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기기만 팔아서는
수익이 나지를 않는다. 대중화를 위해 가격을 낮추고, 대신 애플 리케이션 판매를 통해 수입을 올 리는 것이 L전자의 VR 수익 루 트였다.
이강혜가 기기를 볼 때, 강진이 말했다.
“이거 다 된 것 같은데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핸드폰을 잠깐 조작하더니 기기에 꽂고는 내밀었다.
“이제 해 보세요.”
강진이 건네받은 VR 기기를 머 리에 쓰고는 앞을 보았다.
앞에는 영수가 서 있었다. 비록 하체가 탁자에 끼인 상태기는 했 지만 말이다. 강진은 가상현실 속 영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날씨 어때?”
강진의 부름에 영수가 웃으며 말했다.
“날씨 선선하고 좋네.”
영수의 목소리에 강진이 이강혜 를 보았다.
“목소리 잘 나오네요.”
“옛날 목소리하고 비슷한가요?”
“네. 근데 반말을 하는데요?”
“요즘 애들이 부모님한테 존대 하나요? 거의 반 존대로 말을 하 죠.”
“아……
이강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영수에게 다시 말을 걸었 다.
영수와 나름 무난하게 대화를
이어간 강진은 이예림과 최가은 으로 캐릭터를 바꿔 대화를 해 보았다.
그러고는 강진이 VR 기기를 벗 어서는 황민성에게 내밀었다.
“써 보세요.”
“나 해 봤는데.”
“전에 하던 것과 다를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이강혜가 보이지 않게 살짝 눈을 찡긋하자 황민성 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VR 기 기를 머리에 썼다.
그러곤 자기도 모르게 “어!” 하 며 놀랐다. 저승식당 영업시간에 몇 번 보았던 여학생 귀신이 눈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뭐야? 이거 귀……
강진이 슬쩍 손가락을 들어 입 에 대자, 황민성이 입을 다물었 다.
그는 강진에게 ‘이거 귀신이 보 이게 하는 장치야?’라고 물을 셈 이었다.
애들을 캐릭터화했다는 것을 알
지 못하는 황민성으로서는 최가 은이 보이니 그렇게 생각을 한 것이다.
“제가 예전에 알고 지내던 애들 을 가상현실 속 캐릭터로 만든 겁니다.”
“캐릭터?”
놀란 눈으로 의자에 겹쳐 있는 최가은을 보는 황민성에게 강진 이 말했다.
“시선 옆으로 돌려 보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최가은이 걸어서 이동하는 것에 황민성이 탄성을 내뱉었다.
“시선에 따라 움직이는구나.”
강진은 그가 쓰고 있는 VR 기 기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그 설명을 들은 황민성은 캐릭터에 게 말을 걸어 간단한 대화를 나 누고는 기기를 벗었다.
그러고는 잠시 기기를 멍하니 보다가 이강혜를 보았다.
“공원에서는 더 자연스럽게 움
직인다고요?”
“네.”
“그럼 같이 가서 한 번 봐도 되 겠습니까?”
“그러세요.”
황민성이 기기를 들고는 가게를 나서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 나 가다가 차달자를 보았다.
“가게 좀 부탁드릴게요.”
“다녀오세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황민성의
뒤를 따라 나갔다.
“제가 강진이 데리고 가겠습니 다.”
“네.”
이강혜가 차에 타고 먼저 출발 하자 황민성이 자신의 차에 강진 을 태우고는 출발했다.
“이거…… 네가 부탁한 거지?”
“네.”
“가은이 보고 깜짝 놀랐어. L전 자에서 귀신 보는 장치를 만든
줄 알았다니까.”
“그러셨어요?”
“그럼. 옷은 달라도 처녀귀신이 딱 보이는데…… 진짜 놀랐어.”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아까 그래서 놀라셨군요.”
고개를 끄덕인 황민성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만든 거야?”
강진은 황민성에게 그동안 있었 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 사장님이 동물을 좋아한다 는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키우던 애 보려고 이런 기술까지 만들 줄은 몰랐네.”
“그만큼 보고 싶었던 거겠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래서, 애들 캐릭터 부모님에 게 보여드리려고?”
“그러려고 만들었어요. 그리 고…… 혹시라도 애들 승천할 수 있으면 더 좋고요.”
“이것 때문에 승천할까?”
“승천이라는 것이 별것 아닌 일 로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도는 해 보는 거죠.”
말하는 사이 도착한 공원 입구 에 차를 세운 황민성은 미리 와 있던 이강혜와 만나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공원 안에서 황민성은 VR 7] 7] 를 쓴 채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보거나 가끔 손을 들어 허공을
만졌다.
그리고 가끔씩 말도 하던 황민 성은 공원을 한 바퀴 다 돌고 나 자 걸음을 멈추고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강혜를 보았다.
“이 프로그램 만드는 데 며칠이 나 걸리셨습니까?”
“자세히는 말해 줄 수는 없지 만, 꽤 오랫동안 공들여 만들었 어요.”
“기본적인 시스템은 어느 정도 완성된 것 같은데…… 추가 콘텐
츠를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 은 아니겠군요?”
“그렇겠죠.”
말없이 이강혜를 보던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기를 벗어 강진에게 내밀었다.
강진이 그것을 받자 황민성이 이강혜에게 말했다.
“하반기 전략 폰에 쓰겠군요?”
황민성이 확신을 담아 말하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희가 만든 하반기 핸드폰에 이 VR 기기를 사용하 면 더 현실감 있는 이미지를 구 현해요.”
“그 앱에 연예인도 넣습니까?”
황민성의 말에 이강혜가 미소를 지었다.
“한류 연예인들이 전 세계적으 로 인기가 있죠. 지금 한류 아이 돌 및 배우들과 협상 중이에요.”
“내일 시간 되시면 따로 뵀으면 합니다.”
“작년에 작성한 계약서 가져오 시는 건가요?”
이강혜의 말에 황민성이 그녀를 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전에 사인한 L전자 계 약서, 찢어 버리세요.”
그러고는 황민성이 전화를 끊자 이강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 계약서는 내일 뵐 때 찢 어 드리겠습니다.”
“내일 전화 주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진을 보았다.
“부모님들은 언제 모실 생각이 세요?”
“이번 주 날씨가 좋더군요. 내 일이나 내일 모레 연락을 드리려 고 합니다.”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잠시 망 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영상을 찍고 싶어요.”
“ 영상요?”
“전에 이야기했지요? 저희가 좋 은 기술을 개발했다고.”
“네.”
“그리고 뒤에 한 말 기억하세 요?”
“무슨?”
“저도 이익 보고 장사하는 기업 인이라고요.”
“그야…… 혹시 광고를 찍을 생 각이세요?”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이 입맛을 다셨다.
이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 다. 그녀가 착하기만 해서는 살 아남을 수 없는 기업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에 들어간 돈도 한두 푼이 아닐 것이다. L 전자의 연구팀 인건비만 따져 봐 도 상당한 돈이 들어갔을 터였 다.
“부모님이 싫다고 하시면......"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싫다고 하시면…… 뭐 어쩔 수 없죠.”
“네?”
강진이 보자 이강혜가 웃었다.
“이미 만든 프로그램인데 삭제 해 버릴 수는 없잖아요.”
“그건 그렇죠.”
“일단 물어는 봐 주세요. 싫다 고 하시면……
이강혜가 핸드폰과 VR 기기를 가리켰다.
“이건 강진 씨 것이니 부모님에 게 보여주시면 돼요.”
“그럼 안 해도 되는 건가요?”
“남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돈 벌 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리고 실제 사례가 아니더라도 이 기술 이면 광고 잘 뽑을 수 있을 테고 요.”
“그건 그렇겠네요.”
“하지만…… 저는 그분들이 허
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강혜는 기기를 보며 말했다.
“제가 생각해도 참 좋은 기술이 에요. 가짜라고 해도 그리운 사 람을 눈앞에서 보게 해 주니까 요. 저는 이 기술로 사람들이 슬 픔이 아니라 위안을 얻었으면 해 요.”
그러고는 이강혜가 강진을 보았 다.
“그래서 저는 진짜를 원해요.”
“일단 물어보고 답해 드릴게
요.”
“그러세요.”
그러고는 이강혜가 다시 VR 기 기를 보며 말했다.
“정말 좋은 기술이에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