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화
황민성의 차를 타고 가게로 향 하며 강진이 말했다.
“그런데 계약서 함부로 찢어도 돼요?”
“양쪽이 합의하고 찢으면 상관 없지.”
“만약 그쪽에서 안 찢으면요?”
“안 찢으면 내 주식을 계약한 날짜 종가에서 십 프로 더 받고
파는 거지. 하지만 내 계약서가 없어도 안 그럴 거야. 그쪽도 내 가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나 으니까.”
황민성은 강진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안 찢었어.”
“안 찢었어요? 아까 시켰잖아 요.”
“천억짜리 계약서를 직원들 손 닿는 곳에 두겠어? 나만 열 수 있는 금고에 잘 보관해 놨지.”
“그럼 아까 그 전화는?”
“그냥 시늉만 한 거야. 그렇게 라도 해야 그쪽도 기분 좋을 테 니까.”
“아…… 형이 계약서를 찢을 정 도로 이번 사업이 잘 될 거라고 확신을 준 거군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이 사장님이 계약서 가져 오면 찢어야지.”
“대단하네요.”
황민성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 고는 말했다.
“부모님 잘 설득해.”
“그래야죠.”
강진의 답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꼭 설득해.”
“광고 만들게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장이 말을 한 대로 가짜
가 진짜를 이길 수 없지. 만들어 진 스토리가 아닌 진짜 스토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 울리니까.”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수익 때문에요?”
L전자 광고가 잘 되어야 핸드폰 이 잘 팔리고, 그래야 L전자 주 식을 가진 황민성이 이득을 보게 되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힐 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할지 모르겠지만…… 형은 투자하는 사람이야. 수익을 포기 할 수 없어.”
“ 알죠.”
황민성이 강진의 어깨를 툭 치 며 물었다.
“실망했냐?”
“아니요. 일은 일이니까요.”
“맞지. 일은 일이니까. 하지만 꼭 수익 때문만은 아니야.”
“그럼? 다른 사람들도 위로를
받으라고요?”
“그것도 있고…… 그리고 이 사 장님한테 지원받아야 할 것도 있 고.”
“지원요? 여기에서 더 받을 것 이 있어요?”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이 사장님이 그랬잖아. 하반기 전략 폰이 VR에 특화돼 있다고.”
“그렇죠.”
“근데 지금 네 핸드폰이 그 전 략 폰은 아니잖아.”
“그야……
강진이 자신의 핸드폰을 보다가 말했다.
“하지만 아직 전략 폰은 안 나 왔잖아요.”
“전략 폰은 안 나왔지. 하지만 시제품은 나왔을 거야.”
“시제품요?”
“지금 시기면 L전자 전략 폰은
양산만 되지 않았지, 완성은 됐 을 거야.”
“그래요?”
“보안이 생명이라 시제품이라고 해도 밖에 함부로 풀지는 않았겠 지만.”
전략폰은 핸드폰 만드는 회사의 일 년 농사다. 혹시라도 유출이 돼서 다른 회사에서 먼저 출시를 하면 농사 망치는 일이니 보안은 필수였다.
“하지만 비숫한 것은 줄 수도
있어.”
“비슷한 거요?”
“기존의 핸드폰에 사양만 끼워 맞춰서 주면, 겉은 옛날 거지만 안은 전략폰이 되는 거지.”
“ O.. 아
"o’ * * •
“이 사장님이 전략폰 보내 주면 우리가 본 것보다 더 현실감 있 는 애들을 부모님이 볼 수 있으 니…… 잘 설득해 봐.”
“알았어요.”
황민성이 왜 설득을 하라고 하 는지 이유를 안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 수익을 위해서일 수도 있 지만, 황민성도 아이들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더 현실감 있는 애들 을 볼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날 저녁 강진은 아이들과 이 야기를 나눴다.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눈 끝에 일요일에 부모님들을 모시기로
결정을 했다.
* * *
다음 날 아침, 강진은 영수 어 머니와 통화를 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네.]
“일단 전화드린 이유는요. 일요 일에 캐릭터를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일요일요.]
떨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강진 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보고 마음에 안 드실 수 있으 니 인사는 일요일에 해 주세요. 그리고 인사를 받을 사람은 제가 아니고 L전자 사장님이고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른 부모님들에게도
이 야기하셨나요?”
[다들…… 너무 감사해하고 있 어요.]
다행히 다른 아이들 부모님들도 캐릭터화를 좋게 생각하는 모양 이었다.
연신 감사 인사를 하는 영수 어 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심호흡을 하고는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음…… 일단 이건 그냥 제안일 뿐이고, 부모님께서 아이들 캐릭 터 보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요?]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L전자 사장님께서 이번 일을 영 상화 하고 싶어 하세요.”
[영상화? 광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L전자 사장님께서는 보고 싶어
도 볼 수 없는 가족들에게 이 기 술이 위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세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만나는 장면을 영상화해서 다른 분들에게도 이 기술을 알리고 싶 어 하세요.”
[광고라면…… 저희가 TV에 나 오는 건가요?]
아무래도 일반인이다 보니 TV
에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좋은 일도 아니고…… 죽은 자식을 VR로 만나는 것이 니 말이다.
망설이는 기색이 느껴지자 강진 이 슬며시 말했다.
“제가 핸드폰으로 링크 하나 걸 어 드릴 테니 그거 좀 봐 주시겠 어요?”
[링크요?]
“일단 봐 주세요.”
[아…… 알겠어요.]
전화를 끊은 강진은 예전에 이 강혜가 자신에게 보여줬던 광고 를 검색했다.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남기 세요.〉
광고를 찾은 강진이 영상 링크 를 영수 어머님에게 문자로 보냈 다.
문자를 보내고 강진은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영수와 아이들도 굳은 눈 으로 핸드폰을 보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광고 봤습니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셨어요?”
[광고가…… 무척 따뜻하고 위 로가 됐어요. 그리고……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는 무척 공감이 될 거예요.]
“그러셨어요?”
[광고 보니까…… 저도 우리 영 수 동영상으로 많이 찍어 놓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디에 놀러 가거나 무슨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가족을 찍은 경 우는 드물다.
영수의 어머니도 아들의 일상이
담긴 사진이나 동영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광고를 보 니 너무 아쉬운 것이다.
[슬프기는 했는데…… 그 광고 에선 슬픔보다 남은 사람에게 위 로를 주려는 마음이 느껴졌어 요.]
“그러시군요.”
[이런 광고를 만든 회사라면 믿 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가은 엄마, 예림 엄마와 이야
기를 해야겠지만…… 저는 할게 요.]
“아버님하고 상의를 하시고 말 씀해 주셔도 됩니다.”
[아니요. 할게요……. 저희 같은 아빠 엄마들에게 이 기술이 많이 알려져서 위로가 됐으면 해요. 그래서 저희가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럼…… 언제 가면 되나요?]
“일요일 10시쯤 저희 가게에서
어떠세요.”
[사람들하고 이야기한 후에 연 락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안 도의 한숨을 쉬고는 이강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진 씨.]
반갑게 받는 이강혜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말했다.
“부모님들이 광고 촬영에 응하
셨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 데…… 감사하네요.]
“그런데 영수 어머니는 허락하 셨고, 가은이와 예림이 가족분들 껜 아직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 다. 영수 어머니가 두 어머니에 게 말해서 허락을 받아준다고 하 시긴 했는데 아직 확정은 아닙니 다.”
[한 가족만 허락해도 괜찮아요. 그럼 언제 촬영할 건가요?]
“이번 주 일요일이 날씨가 좋다 고 해서 그날 하려고요.”
[주말에 날씨 좋으면 공원에 사 람들이 많을 텐데…….]
“그래서 더 좋을 것 같아요. 사 람이 없는 것보다 사람이 많으면 더 현실감 있을 것 같고요.”
[하긴 일리가 있네요. 게다가 산책 나오는 사람들이라 놀이공 원처럼 북적거리지도 않을 테고. 알겠어요. 그럼 일요일에 준비하 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장님.”
[말씀하세요.]
“그…… 전략 폰이 VR에 특화 되셨다고 하셨잖아요.”
[맞아요.]
“그럼 혹시…… 일요일에……
강진이 황민성과 나눈 이야기를 하자, 이강혜가 잠시 말이 없다 가 피식 웃었다.
[강진 씨 핸드폰에 이미 깔려 있어요.]
“깔려 있어요?”
[제가 USB로 핸드폰에 프로그 램 깔아 놨어요.]
“아! 그래요?”
[전략 폰에 비해 스펙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지만, 일단은 이번 에 사용되는 프로그램을 깔아 놨 어요. 그래서 다른 핸드폰에 비 해 VR이 더 실감 나게 구현이 되죠.]
“아……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
을 보았다. 이강혜가 미리 다 생 각을 해서 프로그램을 깔아 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날 오시는 분들이 여 섯 분이시니…… 그에 맞게 저희 가 핸드폰을 준비해 갈게요. 대 신 이 핸드폰들은 사용하고 다시 회수해야 해요.]
“전략 폰이어서요?”
[전략 폰이긴 한데 외형은 일반 핸드폰의 모습일 거예요. 강진 씨가 말을 한 대로 전략 폰은 극 비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러니 강진 씨도 핸드폰 잃어 버리지 말아요.]
“제 핸드폰요?”
[저희 전략 폰 출시되고 나면 상관없지만, 그전에는 거기에 깔 린 프로그램도 극비거든요.]
“이런 중요한 것을 제 핸드폰에 까셔도 되는 건가요?”
[강진 씨가 다른 곳에 팔 사람 은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죠.”
[그리고 프로그램 깔면서 바이 러스도 같이 심었거든요.]
“바이러스요?”
강진이 놀란 눈으로 핸드폰을 보자, 이강혜가 웃으며 말했다.
[프로그램 복사하거나 내려 받 기 하려고 하면 자동으로 삭제되 는 프로그램이에요.]
“아…… 그럼 제 핸드폰에 뭐 문제 생기거나 하는 건 아니죠.’’
[해커예요?]
“해커? 저야 아니죠.”
[그럼 괜찮아요. 일반인은 그 프로그램 어디에 있는지도 못 찾 으니까요. 그 프로그램 건들지만 않으면 아무런 이상 없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일요일에 봐요.]
“네.”
그걸로 전화를 끊은 강진이 영 수와 애들을 보았다.
“일요일이다.”
강진의 말에 아이들이 작게 한 숨을 토했다. 긴장이 되는 것이 다. 진짜 자신들은 아니지만, 자 신들의 모습을 바탕으로 만들어 진 캐릭터가 부모님과 만나는 것 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아이들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형이 생각을 해 봤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가슴이 철 렁 하네요.”
영수의 말에 강진이 무슨 말이 냐는 듯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영수가 웃었다.
“형이 생각을 하면 꼭 뭔가 생 기더라고요.”
그에 피식 웃은 강진이 카운터 에서 종이 세 장과 펜을 들고 왔 다.
그리고 배용수가 주방에서 비닐 장갑을 들고 나왔다.
“ 자.”
배용수가 장갑을 주자 아이들이
뭐냐는 둣 강진을 보았다.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못 했던 말…… 너희를 대신해 VR 캐릭터가 전해 줄 거야.”
“아……
아이들이 탁자에 놓인 종이를 보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 을 일으켰다.
“VR 캐릭터는 너희를 닮은 가 짜지만…… 그 마음만은 진짜를 보냈으면 해.”
편히 글을 쓸 수 있도록 강진이
자리를 비켜주자, 아이들이 서로 를 보다가 비닐장갑을 끼고는 멀 찍이 떨어져 앉은 채 글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