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 화
계약서를 보던 예림 아빠는 볼 펜을 들고는 이강혜를 보았다.
“저희는 서명하겠습니다.”
이강혜가 마주 보자, 예림 아빠 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출연료가 천만 원으로 되어 있는데.”
“부족하십니까?”
예림 아빠는 고개를 젓고는 옆
에 놓인 VR 기기를 보았다.
“우리 아이들 캐릭터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듭니까?”
예림 아빠의 말에 이강혜가 직 원을 보자, 그가 그녀의 귀에 작 게 속삭였다.
그에 이강혜가 다시 예림 아빠 를 보며 말했다.
“저희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좀 가격이 많이 다운이 됐지만, 한 명당 이천만 원 정도는 필요 한 것 같습니다.”
“이천만 원……
이강혜의 말에 예림 아빠가 계 약서를 보며 말했다.
“저와 제 아내는 출연료를 기부 하겠습니다.”
“기부?”
“저희처럼…… 보고 싶은 아이 가 있는 부모들이 있으면 도와주 십시오.”
예림 아빠의 말에 다른 부모들 이 그를 보았다.
“예림 아빠.”
“저희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예림 아빠는 서명을 하고는 계 약서를 덮었다. 그에 예림 엄마 가 그의 어깨를 손으로 한 번 잡 아주고는 따라 서명을 했다.
그 모습에 영수 엄마가 이강혜 를 보았다.
“저희도…… 기부할게요.”
영수 엄마와 아빠도 서명을 하 자 최가은의 부모도 서명을 하고 는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보던 이강혜가 말했 다.
“여러분들의 마음 감사히 받겠 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기부하 신 육천에, 저희 L전자도 육천을 같이 지원하는 것으로 해서, 사 정이 딱하신 분들에게는 최대한 부담이 가지 않는 선으로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게 하겠습니다.”
물론 완전하게 무료로 할 수는 없었다. L전자는 자선 회사가 아 닌, 수익을 추구해야 하는 회사 이니 말이다.
이강혜의 말에 예림 아빠가 몸 을 일으켰다.
“좋은 기술 감사합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아서 다행 입니다.”
“그리고 이건 저희가 가져갈 수 있을까요?”
예림 아빠가 VR 기기를 보며 하는 말에 이강혜가 잠시 그를 보다가 말했다.
“VR 기기는 드릴 수가 있는 데…… 안에 있는 핸드폰과 기술
은 아직 출시되지 않은 것이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
이강혜의 말에 영수 엄마가 급 히 말했다.
“이거 우리 못 가져가는 건가 요?”
“전략 폰 출시 전이라 외부 유 출이 될 수 있어서 죄송합니다.”
“저희 유출 안 할게요.”
이강혜는 입맛을 다시고는 고개
를 저었다.
“여러분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 닙니다. 하지만…… 이 전략 폰 에 저희 회사 일 년 농사의 수확 여부가 달려 있습니다. 죄송합니 다.”
“아……
안타까움에 영수 엄마가 탄식을 토하는 사이, 이강혜가 뒤를 보 자 직원이 핸드폰을 들고 왔다.
“이건 이번 시즌 전략 폰은 아 니지만, VR 전용 보급형 폰
L90 입니다.”
부모님들이 보자, 이강혜가 말 을 이었다.
“전략 폰에 비하면 떨어지기는 하지만 VR 기능에 한해서는 세 계 최고 성능이라 자신합니다.”
“그 말씀은?”
“이걸로 보시면 문제가 되지 않 으실 겁니다. 다만 의상 교체와 대화에 관한 몇 가지 서비스는 제한이 될 겁니다.”
“아!”
다행이라는 듯 핸드폰을 받는 부모들의 모습에 이강혜가 말했 다.
“괜찮으시면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이강혜의 말에 부모들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여기에서 좀 더 있고 싶 습니다.”
“저희도 좀 더 있을게요.”
그들은 아이들과 잠시라도 있었 던 이곳에서 조금 더 있고 싶었
다.
그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이고 는 말했다.
“광고 영상이 나오면 연락드리 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 직원에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끼리 있어도 되는데요.”
영수 엄마의 말에 이강혜가 고 개를 저었다.
“핸드폰 설정이나 궁금하신 것 이 있을 겁니다.”
“아......" 네.”
영수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들을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 던 강진에게 이강혜가 다가왔다.
“오늘 많이 도와줘서 고마워 요.”
“아닙니다.”
강진이 여전히 부모들을 보고
있자, 이강혜도 부모들을 보고는 말했다.
“부모님들은 여기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낸다고 하시네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강 혜를 보았다.
“사장님은요?”
“회사 가서 오늘 자료 확인하고 마지막에 프로그램 버벅거린 것 점검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 다.”
‘버벅거린 거 에러 아닌데.’
김소희가 개입을 해서 생긴 일 이니 말이다. 하지만 처녀 귀신 이 나서서 그런 겁니다, 라고 말 을 할 수는 없으니…….
“저희 가게에서 식사라도 하시 면 좋을 텐데요.”
“그건 다음에 해야 할 것 같습 니다. 저희 직원도 어서 가서 일 해야 주말에 쉬죠.”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다들 모시고 한 번 들 러 주세요. 정성껏 모시겠습니 다.”
“사장님 가게야 늘 정성이 가득 하죠.”
“감사합니다.”
“오늘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한 이강혜 가 황민성과 그의 가족들에게도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철수 준비를 하는 직 원들과 함께 공원을 나서기 시작 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황민성 을 보았다.
“형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모처럼 나왔으니 나는 여기서 햇볕이나 더 쐬려고.”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하늘을 보았다.
“확실히 오늘 햇볕이 좋기는 하 네요.”
“사월 지나고 오월만 돼도 햇볕 이 뜨거워질 텐데, 오늘 같은 날 많이 받아야지.”
강진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봄, 여름의 구분이 무 색하게도 오월부터 더워지니 말 이다.
“올해도 엄청 덥겠죠?”
“더워야 여름이니까.”
“맞는 말인데…… 너무 더워서 그렇죠.”
웃으며 고개를 저은 강진이 차
달자를 보았다. 차달자는 조순례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 다.
아무래도 나이가 비슷한 데다 조순례는 분식점을, 차달자는 음 식점을 했다 보니 음식에 대한 관심사가 있어서 잘 통하는 모양 이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던 강진이 자신이 가지 고 온 찬합을 들고 와서는 돗자 리에 깔았다.
“이것도 같이 드세요.”
“그래. 고맙구나.”
찬합을 열어 음식들을 꺼낸 강 진이 차달자를 보았다.
“저 가게에 좀 다녀올게요.”
“소희 아가씨요?”
“네. 저희 가게에 7} 계신다고 했으니 제가 좀 갔다 와야 할 것 같아요.”
“그건 그렇죠. 주인 없이 손만 있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요. 그럼 같이 갈까요?”
“아니요. 오랜만에 나오셨는데 햇볕도 쬐고 좀 쉬세요.”
차달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 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저 가게 갔다 올게요.”
“그래, 다녀와.”
“그리고 혹시 부모님들이 저 찾 는 것 같으면 말씀 좀 해 주세 요.”
가기 전에 인사를 하고 싶었지 만, 부모들에게는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다녀와.”
강진이 서둘러 걸음을 옮기자, 배용수가 따라붙었다.
“너도 가게?”
“식당에 메인 셰프가 없으면 되 겠어? 같이 가.”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주차장에 서 푸드 트럭을 타고는 곧 공원 밖으로 나왔다.
가게에 들어서려던 강진은 배용 수가 몸을 떨고 있는 것에 말했 다.
“들어가서 향수 뿌릴 테니까, 기운 좀 줄어들면 들어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급히 고 개를 끄덕였다. 가게 안에 처녀 귀신들이 가득 모여 있으니 일반 귀신인 배용수가 두려움을 느끼 는 것이다.
그에 급히 차에서 내린 강진이
서둘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뒷문을 열고 들어선 강진은 신 수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 소희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 앉아 있는 처 녀 귀신들도 말이다.
“오빠.”
이혜선이 다가와 작게 속삭이는 것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예림이가 저승 그리 안 무섭다 고 전해 달란다.”
강진이 주머니에서 이예림이 보 낸 쪽지를 내밀자, 이혜선이 그 것을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내가 언제 무섭다고 했다 고……
입맛을 다신 이혜선이 고개를 저을 때 강진이 그녀의 손에 들 린 저승 과자를 보고는 물었다.
“이건 어디서 찾았어?”
“카운터에 있던데? 왜, 먹으면 안 돼?”
“먹으라고 사 놓은 건데 못 먹
을 이유는 없지. 잘 찾아 먹었 네.”
“그럼! 귀신들은 어디 가서도 먹을 건 잘 챙겨 먹어야 하는 법 이지.”
이혜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귀신들을 보았다. 이혜선 이 찾아서 나눠 줬는지 처녀 귀 신들은 저승 과자와 음료수를 마 시며 작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 다.
평소라면 크게 웃거나 떠들겠지 만 아무래도 김소희가 신수호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그러지 않는 것이다.
강진은 카운터에서 향수를 찾아 처녀 귀신들에게 뿌려주었다.
그리고 강진이 김소희에게 다가 갔다.
“아가씨.”
향수를 들고 있는 강진을 보며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 목을 내밀었다.
화아악!
살짝 손목에 향수를 뿌리자, 김 소희가 양 손목을 맞대어 비비고 는 귀밑에 살며시 문질렀다.
“이건 어디서 배우셨어요?”
“드라마 보니 향수를 이렇게 바 르더군.”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배용수가 가게 안으 로 들어왔다.
“음식이라도 좀 해 드릴까요?”
“나는 되었네.”
강진이 다른 귀신들을 보자 그 들도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이 과자면 돼. 과자 맛 있네.”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현신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이승 음식보 다는 저승 과자가 더 맛있는 것 이다.
그에 강진이 김소희를 보았다. 김소희의 앞에는 저승 커피 캔과 초코볼이 놓여 있었다.
다만 초코볼은 다 먹었는데 커 피 캔은 뚜껑도 따지 않은 상태 였다.
‘소희 아가씨가 커피를 드실 일 이 없지.’
강진도 저승 커피는 입에 맞지 않아서 마시지 않는다. 일반 커 피보다도 훨씬 더 쓰기 때문이었 다.
그러니 김소희가 JS 커피를 마 실 리가 없었다. 그녀는 초등학 생 입맛이니 말이다.
그에 강진이 주방 냉장고에서 서천꽃물 캔을 꺼내왔다.
“아가씨에게는 이 음료가 맞을 듯싶습니다.”
강진이 뚜껑을 까서 내려놓자, 김소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 갔다.
그녀는 서천꽃물을 한 모금 마 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향이 좋군.”
‘향이 좋기도 하지만 달달하죠.’
살짝 웃은 강진이 신수호를 보 았다. 신수호는 종이에 써진 글 을 읽고 있었다.
“이야기는 잘 되었나요?”
강진이 묻자 신수호가 종이를 보다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쳤다.
그러고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일단 상황 설명은 들었는 데…… 사람들을 상대로 영향을 끼친 것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해
야 할 것 같습니다.”
“벌금이 많이 나오는 겁니까?”
신수호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벌금을 많이 내고 법대로 처벌 을 받을 거라면 저 같은 변호사 가 있을 이유가 없지요.”
신수호는 다소 냉랭한 어조로 말했지만, 더할 나위 없이 믿음 직스러웠다.
“그럼 방법이 있군요.”
신수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
를 보았다. 종이에는 당시 상황 에 대한 것이 적혀 있었다.
김소희가 말을 한 것부터 이혜 선과 이지선들이 말을 한 것도 종이에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 내용들을 보던 신수호가 말 했다.
“변론할 때 부모들이 그들을 실 제로 보지는 못했다는 점, 그리 고 부모들은 아바타가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어 귀신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짚고 넘어가야겠죠. 귀신 중 일
부는 후손들이나 지인들의 꿈에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일도 있습 니다. 그에 비하면 VR, 즉 가상 현실을 통해 일어난 이번 일은 아주 경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 다.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 서 벌어진 일인 만큼 귀신이 ‘현 실에 관여’하였다는 것은 억측이 되니 말입니다.”
종이를 보며 이야기하던 신수호 가 강진을 보았다.
“VR은 아직 이승에서도 개발을 하는 기술이니 저승에서는 이것
에 대해 제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을 겁니다. 잘하면 무 죄가 될 것이고, 잘못해도 벌금 이백 정도로 막을 수 있을 겁니 다.”
‘‘이 백 2”
이백도 큰 금액이 아닌가 싶어 묻는 강진에게 신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원래라면 몇 억은 나갈 사안입 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나중에 저승 가면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