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화
“저 나중에 저승 가면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강진이야 저승식당 주인 이니 JS 금융 VIP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승이든 저승이든 돈은 많을수록 좋다. 나중에 저승에 갔을 때 배용수와 함께 작은 식 당이라고 하려면 더욱 그렇고 말
이다.
그러니 좋은 변호사를 만나 저 승에서 쓸 돈을 아끼는 것도 중 요했다.
물론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신수 호가 김소희를 보았다.
“소희 아가씨는 한국 귀신계에 있어 아주 중요하신 분입니다.”
뭔가 자신을 질책하는 것 같은 신수호의 목소리에 서천꿀물을 마시던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신수호가 자 세를 바로하고는 말했다.
“아가씨를 오래 보아온 동생으 로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신수호의 말에 김소희가 서천꿀 물을 내려놓았다.
“해 보게나.”
“자신의 몸을 돌보십시오.”
“그게 다인가?”
“말이 길다고 전할 수 있는 마 음이 더 많은 것도 아니라고 예
전에 아가씨께서 말씀하셨지요.”
신수호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지.”
김소희의 답에 신수호가 종이를 서류 가방에 챙겨 넣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인 신수호가 몸을 돌려 가게를 나섰다.
그런 신수호를 보던 강진이 김 소희를 보았다.
“신수호 씨가 소희 아가씨를 많 이 위하시는 것 같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작게 고 개를 저었다.
“어릴 때는 ‘누나, 누나’하고 졸 졸 따라다니던 귀여운 녀석이었 는데…… 커서는 늘 잔소리만 하 는군.”
“신수호 씨가 아가씨를 누나라 고 했습니까?”
“호도 어릴 때가 있었으니.”
작게 고개를 저은 김소희가 서
천꿀물을 입에 머금고는 초코볼 을 먹었다.
그렇게 서천꿀물에 초코볼을 녹 여 먹으며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 다.
“초콜릿이라는 음식은 참으로 대단한 음식이야.”
“네?”
갑자기 초콜릿에 대해 말을 하 는 김소희를 강진이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생긴 것은 한약 환처럼 검고
쓰디쓸 것 같은데 입에 넣으면 달콤하고 부드럽지 않은가. 겉과 속이 이리 다르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정말 대단한 음식이 야.”
웃으며 초콜릿을 하나 더 집어 먹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작 게 웃었다.
‘방금 전에 혼나신 분 맞아?’
신수호가 굳은 얼굴로 훈계를 한 지 1분도 되지 않았는데, 김 소희는 그저 초콜릿이 맛있다 하 고 있었다.
‘달달한 음식 좋아하시니 달달 한 디저트라도 좀 공부를 해야겠 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귀신들이 꿈에도 나오 고 하나요?”
“간절하게 이야기를 할 것이 있 는 귀신들은 사람의 꿈속에서 현 신을 하기도 하지.”
“그것도 돈이 빠지겠네요?”
“그것은 안 빠질 걸세.”
“안 빠지나요?”
“꿈에 나타나는 거니까. 현실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니.”
“꿈도 현실에 속하는 것 아닌가 요?”
“현실과 꿈은 다르네.’’
답을 해 준 김소희가 고개를 저 었다.
“하지만 귀신이라도 아무나 사 람의 꿈에 들어갈 수 없네.”
“간절해야 한다는 거군요.”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 을 이었다.
“귀신은 모두 간절한 한을 가지 고 있네. 아무 귀신이나 사람의 꿈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억울한 사연이 있는 귀신이 어디 있겠 나?”
“하긴......"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해 한이 하늘에 닿는 이혜미도 못 하는 것이니…… 정말 귀신이라고 해
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강진이 알아들었다 생각을 한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에는 손님들이 올 것 이니 준비해 주게.”
“손님요?”
“먼 길 오는 이들이니 부탁함 세.”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준비하겠습니다.”
강진은 오늘이 일요일이라 가게 가 쉰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김 소희가 부탁을 하는데 거절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김소희가 뭔가 를 생각하는 듯하자 이지선이 다 가왔다.
“과일을 좋아합니다.”
“아! 그랬던가?”
“그때는 과일이 귀한 음식이었 으니까요. 특히 귤을 좋아할 것 입니다.”
“귤이라. 하긴, 귀한 음식이기는 했지.”
김소희의 중얼거림에 이지선이 강진을 보았다.
“오늘 모임에는 총각 귀신들이 올 것이네.”
“총각 귀신요?”
총각 귀신은 영수 빼고는 본 적 이 없는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
를 보•자, 이지선이 말했다.
“지리산 장가가 무리와 함께 올 것이네.”
“지리산 장가라면 장태풍 씨?”
장태풍이라면 병자호란 때 의병 을 했던 총각 귀신의 이름이었 다.
그 당시 그는 나라에 받는 것도 없고 오히려 핍박을 받던 평민이 었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 병으로 싸웠다.
죽을 고생 다 이겨내고 병자호
란에서 살아남았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청나라로 끌려 가는 것을 구하려다가 자신이 지 키려던 조선 관군의 화살에 맞아 죽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영수의 스승이자, 조선 총각 귀신의 대장이며 조선 귀신 중 서열 2위쯤 되는 인물이었다.
“자네가 생각하는 장가가 맞 네.”
“아……
강진이 탄식을 토하자, 이지선
이 말했다.
“장가와 그 무리는 돼지고기를 좋아하니 수육과 탕수육, 오향장 육과 중국식 만두, 중국식 꽃빵 을 준비해 주게. 아! 짬뽕도 좋 아하네.”
이지선이 말하는 메뉴들을 듣던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병자호란에 의병을 하셨는 데…… 중국 음식을 좋아하시네 요?”
“이유는 모르네. 그저 장가는
중국 음식을 좋아하더군.”
“씹는 맛이 있어서 그런가?”
음식이 아니라 중국을 씹는다는 의미인가, 하고 강진이 추측할 때 이지선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모르네.”
이지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중국 음식과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준비하겠습니다.”
마침 중국 음식을 잘하는 이호 남도 있으니 음식을 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과일을 준비하게.”
“귤 말씀이지요.”
“귤을 특히 좋아하지만 그냥 입 에 넣을 수 있는 과일이면 다 좋 아하더군.”
“과일 준비하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지선이 김소희에 게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자리 로 가서 앉았다.
그에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다.
“잘 준비해 주게.”
“그런데 처녀 귀신하고 총각 귀 신하고 사이가 안 좋은 것 아니 었습니까?”
“사이가 나쁠 것은 없네. 그저 서로의 기운이 반대라 가까이하
기 힘들 뿐.”
서천꿀물을 한 모금 마신 김소 희가 말을 이었다.
“처녀 귀신은 그리 많지 않네. 해서 처녀 귀신이 승천을 하면
우리끼리 모여서 추모를 하지. 그것은 총각 귀신도 마찬가지인 데…… 처녀와 총각 귀신이 같이 승천을 했으니 함께 추모하려는 것이네.”
총각과 처녀는 다른 귀신들이 불편해하고 무서워한다. 그래서 다른 귀신들보다 더 외롭다.
다른 귀신들과 어울리지를 못하 니 말이다. 그래서 처녀, 총각 귀 신들은 서로 같이 어울려 다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유대감도 있고 서로
챙겨주는 편이었다. 그러니 그들 끼리 승천을 한 아이들을 추모해 주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강진이 답을 하자, 김소희가 자 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들 나지.”
강진이 따라 일어나며 물었다.
“가시게요?”
“자네도 쉬어야 할 터……. 내 가 여기 오래 있는 것도 아니
지.”
“이따 저녁에 오실 텐데…… 어 디를 가시려고요?”
“듣자 하니 이번에 재밌는 영화 가 나왔다고 하더군. 아이들과 같이 영화나 몇 편 보고 오려 하 네.”
“ 영화요?”
“이번에 외국에서 상을 많이 받 아 국위선양을 한 영화가 있다고 하더군. 그것도 보고 그 영화 촬 영지에도 가 보려 하네.”
“재밌겠네요.”
귀신이니 촬영지에 들어가도 아 무도 제지를 안 할 것이니 확실 히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저 아이들이 가자 하니 같이 가는 것일세.”
말을 한 김소희가 가게를 나서 자 처녀 귀신들이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녀들을 배웅한 강진이 가게로 들어오자, 배용수가 얼떨떨한 얼 굴로 말했다.
“그래서 오늘 총각 귀신 보스하 고 처녀 귀신 보스가 여기에서 모인다는 거지?”
“그런 모양이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오늘 영업 다 했네.”
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일요일은 영업 쉬는 날 이다.”
“그래도…… 처녀와 총각 귀신
이라…… 게다가 소희 아가씨와 맞먹는 총각 귀신 보스가 오는 거면…… 이거 헬 아니냐?”
“걱정하지 마. 두 분이 서로 오 래 알고 지냈다는데 사고라도 나 겠어? 그리고 오면 바로 향수 뿌 릴 거야.”
“부탁 좀 하자.”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주방으로 향하며 말했다.
“민성 형 어머니 소풍 나오셨으 니 음식이나 만들자. 그리고 부
모님들 드실 음식도 좀 만들고.”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으로 따라 들어 왔다.
“음식 뭐 만들 거야?”
배용수가 묻자 강진이 재료를 하나씩 꺼내며 말했다.
“소풍은 김밥이지.”
“김밥 좋지.”
그러다가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 다.
“계란 김밥 맛있다고 하던데 그 거나 할까?”
“계란 김밥?”
“계란 지단하고 단무지 들어간 김밥이야.”
“다른 건 안 들어가고?”
“그렇던데.”
“맛이 있으려나?”
“TV 에서는 사람들이 줄 많이 서서 먹던데?”
“레시피는?”
“계란 김밥에 레시피는 무슨. 그냥 TV에서 본 대로 계란 지단 만들어서 말아 버리는 거지.”
간결한 답에 강진이 피식 웃었 다.
“하긴, 네가 하는데 맛이 없겠 냐.”
말을 하며 강진이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자, 배용수가 볼을 꺼내 계란을 받아 까기 시작했 다.
“그럼…… 나는 고춧가루 넣은
콩나물국하고, 겉절이 좀 해야겠 다.”
차갑게 식어도 좋고, 따뜻해도 좋은 국이 콩나물국이다. 여러모 로 김밥하고 같이 먹으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겉절이는 개운하 게 먹기도 좋으니 말이다.
콩나물국을 끓일 육수를 만들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달달한 디저트 좀 할 줄 알 아?”
“많이 알지. 전에 팬케이크도
달달했잖아.”
전에 배용수가 했던 팬케이크를 떠올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달달했지.”
그러고는 강진이 말했다.
“소희 아가씨가 달달한 것 좋아 하시니 디저트를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긴 사람이면 너무 달게 먹는 것 몸에 안 좋지만…… 귀신이니 달게 먹든, 짜게 먹든 별 상관없 겠지.”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배용수가 “아.”하고는 말을 이었다.
“해각황이라고 중국 음식이 있 는데 그게 괜찮겠다.”
“ 해각황?”
“밀가루를 발효시켜서 기름에 튀긴 음식인데, 노란 떡이 바삭 바삭하고 그 안에 뭘 넣느냐에 따라 달거나 짜게 먹는 거야.”
“그럼 달게 먹자고?”
“그렇지. 밀가루에 찹쌀도 좀 섞어서 쫄깃하게 해서…… 꿀하
고 설탕에 절이면 달면서 맛있겠 네.”
“달기는 하겠네.”
“거기에 표면을 살짝 구우면 설 탕이 굳어서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쫄깃하니…… 맛있겠다.”
배용수가 즉석에서 레시피를 짜 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소희 아가씨도 좋아하시겠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란을 프라이팬에 부었다.
촤아악
계란이 익어가자 배용수가 빠르 게 계란지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배용수의 손에서 계란지 단이 잔뜩 들어간 김밥과 다른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김밥들이 한 줄 한 줄 만들어지기 시작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