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 화
강진은 음식이 든 쇼핑백을 들 고 정자에 도착했다. 정자 근처 풀밭에서는 여전히 황민성 가족 과 차달자가 함께 음식을 먹으며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다만 아이 부모들은 보이지가 않았다.
강진이 정자 쪽을 보고 있자, 황민성이 말했다.
먼저 가셨어.”
“가셨어요?”
“아이들 납골당에 가신다고 하 셔서 안 잡았어.”
“아……
“나중에 따로 인사하러 가게에 들르신다고 하셨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들고 온 쇼핑백에서 음 식이 담긴 통들을 꺼냈다.
통들을 보던 황민성이 웃었다.
“형도 김밥 많이 했는데.”
강진의 통에서 나온 김밥의 양 이 꽤 많은 것이다. 황민성의 말 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 다.
“애들 부모님들하고 같이 먹으 려고 했는데…… 많기는 하네요. 그래도 여러 맛으로 했으니 골고 루…… 아!”
말을 하던 강진이 번뜩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다가 말했다.
“저 손님 한 분 더 초대해도 될 까요?”
“누구?”
“공원에 자주 오시는 좋은 할아 버지세요.”
“여기가 내 땅도 아닌데 뭐. 어 서 모셔.”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이 음식들을 펼치고는 말했다.
“콩나물국도 해 왔으니 같이 드 세요. 김밥만 먹으면 체하세요.”
“그래. 고마워.”
조순례의 말에 미소로 답한 강
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걸음 을 옮겼다.
할아버지가 늘 앉아 있는 벤치 에 도착한 강진이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다 한쪽 풀밭에 앉아 샌드 위치와 두유를 먹고 있는 할아버 지를 볼 수 있었다.
“그래, 너도 먹고 싶어?”
할아버지가 샌드위치에서 빵 조 각을 떼어 카스 입에 내밀자, 카
스가 조심히 빵을 먹었다.
마치 할아버지의 손은 소중해서 물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 강진이 할아버지에게 다가 갔다.
“할아버지.”
강진의 부름에 할아버지가 그를 보았다.
“왔어요?”
“식사 가지러 저희 식당 계속
오시라 했는데 왜 안 오세요.”
“자주는 미안하지요.”
처음 강진이 가져다준 양배추 롤을 먹은 이후로 할아버지가 도 시락을 가지러 오지 않는 것이 다.
“그런 생각 하지 마시고 자주 오세요. 그리고 돈도 내고 가져 가시잖아요.”
“삼천 원에 가져가기에는 너무 좋은 도시락이라……
“원가는 그 정도니까요. 꼭 오
세요.”
“알겠습니다.”
강진은 어느새 발밑으로 다가온 카스를 보았다. 카스는 꼬리를 좌우로 크게 흔들며 그를 반기고 있었다.
“카스 안녕.”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카 스가 그의 손에 머리를 비비적거 렸다.
“정자 있는 곳에서 저희 식구들 식사하는데 같이 가서 드시죠.”
“괜찮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같이 가세요. 저희 어머니도 나이가 있으셔서 동년배 분하고 이야기하는 거 좋 아하세요.”
“가족들하고 소풍을 나오셨나 보군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잠시 망설이다가 카스를 보았다.
“근데 카스가 있어서……
“괜찮습니다. 어머니도 카스 보 면 귀여워하실 겁니다. 같이 가
시죠.”
강진의 권유에 할아버지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샌드위치를 다시 비닐에 싸서 주머니에 넣었 다.
“그럼 신세 지겠습니다.”
강진이 카스를 쓰다듬으며 걸음 을 옮기자, 할아버지가 카스의 목줄과 박스를 챙겨서는 뒤를 따 라왔다.
그렇게 함께 걸음을 옮길 때,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날이 좋아서 도시락 가지고 소 풍 나오신 모양입니다.”
“날이 너무 좋잖아요.”
“맞습니다. 오늘은 무척 날이 좋습니다.”
그러고는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럼 혹시 아까 여기 다니는 사람들 좀 보았습니까?”
“사람들요?”
“얼굴에 막 이런 것을 쓰고 다 니는 사람들이 있던데……
할아버지가 얼굴 앞에 양손으로 네모난 모양을 만들자 강진은 그 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VR 기기를 쓰고 있는 분들 보 셨군요.”
“VR? 그걸 VR 이라고 하는군 요.”
호기심 어린 눈을 한 채 말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강진이 가상현 실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가상현실이라…… 뭔지 몰라도 참 재밌어 보입니다.”
“재미도 있고……
‘슬픔도 있고.’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할 아버지가 말했다.
“그런데 눈에 그런 것을 쓰고도 앞이 보입니까?”
“물론 보이죠. 이를테면 카메라 를 든 상태로 앞을 보는 겁니 다.”
“그래도 눈에 그런 것을 쓰고 걸으면 어지러울 것 같은데.”
“그다지 어지럽지는 않더라고
요.”
사실 조금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내 시야가 아닌 핸드폰 카 메라로 보는 시야이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그를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행복한 것을 봤나 봅니다.”
“네?”
“울고 있더군요.”
“아…… 보셨어요?”
강진이 묻자 할아버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만 본 것이 아니라 다른 사 람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다 큰 어른이 VR 기기를 착용 한 채 울고 있다 보니,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많이 수군거렸었 다. 그 덕에 할아버지도 알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그를 보았다.
“그런데 울고 있었는데 왜 행복 한 것을 봤다 생각하세요?”
“그야……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었다.
“울면서도 미소가 가득하더군 요. 울 정도로 행복했던 게지요.”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하셨을 겁니다.”
“울 정도로 행복한 영상이 라…… 저도 한 번 보고 싶군
요.”
웃으며 할아버지가 카스의 머리 를 쓰다듬자, 카스가 작게 짖었 다.
멍!
아주 작은 울음소리에 강진이 카스를 보았다.
“목이 아픈가요?”
“안 아픕니다.”
“근데 울음소리가 되게 작은 데?”
강진의 물음에 할아버지가 웃으 며 카스를 쓰다듬었다.
“공원에서 너무 크게 짖으면 사 람들이 싫어해서 작게 짖는 것을 연습시켰더니 곧잘 하는군요.”
“울음소리를요?”
개가 짖는 것은 본능인데…… 그것을 가르쳤다니.
그것도 아예 안 짖게 하는 것도 아니고 크기를 줄이는 걸로 말이 다.
강진이 놀라 묻자,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카스가 아주 똑똑해요. 하지 말라는 것도 몇 번 말하면 알아듣거든요.”
“그래요?”
“우리 카스가 똥오줌 가리는 것 도 정말 빨랐어요. 아! 그리고 다른 집 개들은 집에서 전기선도 물고, 소파도 문다고 하는데 우 리 카스는 그런 것도 안 하지 요.”
“애가 딱! 봐도 무척 똑똑해 보
여요.”
“하하하! 맞습니다. 아주 똑똑하 죠.”
마치 자기 자식 자랑하는 것처 럼 좋아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피 식 웃은 강진이 그와 함께 정자 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강진이 할아버지와 함께 다가오 자 황민성이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황민성이 인사를 하자 할아버지 가 머리를 살짝 긁었다.
“선생님이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해서 염치없이 따라왔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제 형입니다.”
강진이 자신을 소개하자 황민성 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강진이 형 황민성입니다.”
“저는 오동민입니다. 선생님에 게 신세 많이 지고 있습니다.”
인사를 나눈 오동민에게 황민성
이 자신의 어머니와 차달자를 소 개 했다.
“이쪽은 저희 어머니시고, 이쪽 은 이모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동민의 인사에 조순례가 웃으 며 말했다.
“밥 한 끼 같이 하자고 청했는 데 계속 서 있게만 하네요. 앉으 세요.”
조순례가 자리를 가리키자 오동 민이 카스를 앉히고는 자리에 앉
았다.
얌전히 자리에 앉는 카스를 본 조순례가 웃으며 말했다.
“개가 참 잘생겼네요.”
“개 좋아하십니까?”
“젊었을 때 제가 식당을 해서 개를 키우지는 못했는데…… 음 식 남으면 동네 돌아다니는 애들 먹으라고 챙겨주고는 했어요.”
“그러셨습니까?”
“그런데 TV 보니 애들한테 사
람 먹는 것 주면 안 된다고 하더 라고요.”
조순례의 말에 오동민이 웃었 다.
“그거야 요즘 이야기고, 저희 때야 저희 먹던 것 같이 먹었지 요. 그리고…… 길거리에서 먹을 것 없어서 쓰레기통 뒤지는 것보 다야 사람 먹던 거가 낫겠지요.”
“그런가요.”
웃던 조순례가 음식을 가리켰 다.
“식사하셔야 하는데 계속 말만 시키네요. 어서 드세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그가 수저를 들자, 김이슬이 국 그릇에 콩나물국을 떠서는 내밀 었다.
“고맙습니다.”
오동민이 음식을 받아 하나씩 입에 넣자 카스가 하악! 하악! 하며 그것을 보았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이거 양념된 거라 네가 먹으면 안 돼.”
강진의 말에 카스가 하악! 하 악! 거리다가 풀밭에 엎드렸다.
그러고는 양발을 베개 삼아 머 리를 대고는 눈을 감아 버리는 카스의 모습에 조순례가 미소를 지었다.
“먹을 것 보고 달려들지도 않 고, 애가 참 착하네요.”
조순례의 말에 오동민이 작게 웃으며 카스의 머리를 쓰다듬었
다.
그 손길에 길게 하품을 한 카스 가 고개를 숙이고 있자, 다시 김 밥을 입에 넣은 오동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맛이 좋습니다.”
“많이 드세요.”
황민성도 김밥을 하나 집어 먹 으며 카스를 보던 중 그 옆에 놓 인 박스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 렸다.
그러다 박스에 무언가 적혀 있
는 것을 발견한 황민성이 오동민 을 보았다.
“애를…… 입양 보내려고 그러 십니까?”
황민성이 묻자 오동민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사정이 있어서 아무래도 더는 같이 못 있을 것 같아서 요.”
“이런......"
오동민의 말에 황민성이 살짝 눈을 찡그리고는 카스를 보았다.
“이렇게 착한데.”
황민성의 중얼거림에 오동민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김밥에서 햄을 살짝 꺼냈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돌려 카스를 보며 말했다.
“ 카스야.”
오동민의 부름에 눈을 뜬 카스 가 그의 손에 들린 햄을 보고는 몸을 일으켰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햄을 보는 카스를 보며 오동민이 웃었다.
“짖어.”
멍!
크게 짖는 카스를 보며 오동민 이 말했다.
“조금 더 작게 짖어.”
멍.
카스가 작게 짖자, 오동민이 웃 으며 다시 말했다.
“조금 더 작게.”
멍…….
아주 작게 속삭이듯이 짖는 카 스를 사람들이 놀란 듯 보았다.
“어머!”
“와…… 무슨 말을 이렇게 잘 들어?”
“어쩜.”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사이 오동 민이 햄을 내밀었다.
“잘 했어.”
카스는 살짝 입술을 올려서는 앞니로 햄을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곤 고개를 몇 번 흔들어 햄 을 입 안으로 넣어 먹는 카스를 보며 오동민이 웃었다.
“사람 먹는 것 개한테 주면 안 된다고 하는데…… 후! 그럼 사 람들은 담배를 왜 피우고 술을 왜 마시겠습니까.”
“자주 먹는 것도 아니고 가끔인 데 뭐 어떻겠어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오 동민이 다시 김밥을 먹자, 카스 가 슬며시 기어서는 그의 무릎에 자신의 머리를 올렸다.
그리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 다보자, 오동민이 웃으며 김밥을 조금 뜯어 개의 입에 넣어주었 다.
“그런데…… 왜 강아지를 분양 하려는 건지 물어도 되나요?”
오동민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제 몸에 나쁜 것이 자라서요.”
“나쁜 것?”
조순례가 의아한 듯 보자, 오동 민이 고개를 저으며 카스의 머리
를 쓰다듬고는 작게 말했다.
“그래서 좋은 가정에 보내려고 합니다.”
뒤늦게 그가 한 말의 의미를 눈 치챈 조순례가 안타까운 듯 그를 보았다.
“아…… 미안해요.”
“아닙니다. 제 나이면 슬슬 준 비할 때도 됐지요. 후!”
오동민의 말에 조순례가 작게 한숨을 토했다. 그의 처지가…… 자신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슬슬 준비할 때라…… 그 게…… 쉽지가 않은데. 잘 준비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