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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497화 (495/1,050)

497화

강진은 저녁 손님을 맞이할 준 비를 위해 한끼식당 식구들과 함 께 마트에서 음식들을 사서 가게 로 돌아왔다.

장 본 재료들을 정리해 둔 강진 은 이호남과 배용수, 차달자와 함께 메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손님들을 위해 최선의 요리를 대접하지만, 오늘은 지방

에서 총각 귀신들까지 오니 최대 한 잘 대접할 생각이었다.

조선 귀신의 양대 세력이 모이 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메뉴 에 대해 간단한 회의를 하는 것 이다.

“일단 처녀 귀신 분들은 매운 음식과 닭발 좋아하시니 그에 맞 게 육개장과 매운 닭발, 거기에 계란찜하고…… 달달한 디저트를 좀 준비하겠습니다.”

처녀 귀신들의 식성을 잘 아는 강진이 말을 하자 뒤이어 차달자

가 말했다.

“총각 귀신들은 딱히 음식 가리 는 것 없이 술만 많으면 다 좋아 해요.”

“총각 귀신들 받아 보셨어요?”

“네. 태풍 오빠도 젊었을 때 몇 번 뵈었는데, 돼지고기와 닭을 좋아하세요. 거기에 과일 있으면 또 좋아하고.”

“이지선 씨도 과일 추천하던데, 과일을 많이 좋아하시나 보네 요?”

차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시대 양민에게 과일은 쉽 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요.”

“아……

강진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조선시대가 헬이기는 하 죠.”

자랑스러운 선조의 역사라고 하 기는 하지만…… 조선 시대는 평 민의 고혈을 쥐어짜는 시기였다.

어떤 드라마에서는 평민 꼬마가 엿 하나 먹고는 너무 달다고 울 기도 했었고 말이다.

‘조선시대에 안 태어나기를 정 말 다행이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차달자 를 보았다.

“그리고 중국 음식 좋아한다고 하던데요?”

“중국 음식을 먹으면 원수 갚는 느낌이라고 좋아하세요.”

“원수라……

‘하긴, 호란 때 그 고생을 하셨 으니 중국 음식을 말 그대로 씹 어 드시나 보네.’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이번엔 이호남을 보았다.

“그럼 중국 음식은 호남 씨가 몇 개 하는 걸로 하죠.”

“알겠습니다.”

“자! 그럼 메뉴는 준비가 됐고, 과일도.”

강진이 고개를 돌려 한쪽에 있 는 과일들을 보았다. 귤, 딸기,

사과, 배,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준비했으니 지리산 총각 귀신들 도 만족할 것이다.

“일단 저녁 먹고 연습도 할 겸 음식 좀 만들어 볼까요?”

“그러시죠. 어차피 육개장은 육 수 오래 끓여야 하니까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에 들어갔다. 그 리고 커다란 통에 물을 넣고는 끓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호남을 보았다.

“저 중국 음식 좀 알려주세요.”

“네?”

“우리가 먹을 건 제가 하려고 요.”

“제가 해도 되는데……

이호남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들이 먹을 건데 제가 해 야죠. 좀 알려 주세요.”

이호남의 음식이 훨씬 맛있지 만, 저승식당 영업시간이 아닐

때 귀신이 먹는 음식은 강진이 만든 것이 더 맛있다.

그래서 강진이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호남은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작자소 육이라는 음식을 해 보죠. 만드 는 방법도 간단하고, 중화요리 느낌이 날 겁니다.”

“작자소육요?”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겨서 바

삭하게 먹는 음식입니다. 거기에 파와 장 소스를 곁들여서 밀전병 에 싸 먹으면 됩니다.”

“처음 들어보는 음식이네요.”

“한국 사람들이야 탕수육, 양장 피, 깐풍기 정도만 알지, 다른 중 화요리는 잘 모르시죠.”

“그건 그렇죠.”

“중국 음식은 같은 식재라도 조 리 방법,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이름이 수십 개로 나뉩니다.”

“그럼 밀전병도 여기에서 만들

어야 하나요?”

“만들기 그리 어렵지 않습니 다.”

웃으며 이호남이 요리 방법을 알려주기 시작하자, 강진이 그에 맞추어 식재를 손질하기 시작했 다.

밤 10시 50분쯤 될 무렵, 가게

문을 뚫고 이혜선이 들어왔다.

“언니 오셨어요.”

이혜선이 말하자 강진이 배용수 를 보았다. 김소희가 도착한 걸 눈치 못 챘냐는 눈빛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침에 향수 뿌리셨잖아.”

“아.. ”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차달자와 함께 밖으로 나 왔다.

가게 밖에는 처녀 귀신들이 있 었다. 김소희를 필두로 이지선과 처녀 귀신들이 마치 조폭처럼 모 여 있는 것을 본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오셨어요?”

“준비는 잘 되었는가?”

“말씀하신 대로 준비했습니다.”

강진의 답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밀었다.

스르륵!

그러자 김소희의 옆에 떠다니던 검이 그녀의 손에 잡혔다.

탓!

검을 가볍게 땅에 댄 김소희가 몸을 기댔다.

그리고 말없이 눈을 감은 김소 희의 모습에 강진이 그녀가 향하 는 곳을 보았다.

스윽! 스윽!

향수로 귀기를 지웠다고는 하지 만 김소희의 기운을 느껴서인지 사람들은 다가오다가도 방향을

바꿔서는 피해갔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처녀 귀신 들 근처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 지였다.

일정 범위 안으로는 사람들이 접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 서 처녀 귀신들이 있는 곳만 빈 공간이 형성되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갸 웃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가씨.”

강진의 부름에 김소희가 살짝

눈을 떠서는 그를 보았다. 그 시 선에 강진이 물었다.

“지금 아가씨는 귀기를 지우셨 잖아요.”

“자네가 아침에 직접 향수를 뿌 리지 않았는가.”

왜 아는 것을 묻느냐는 표정의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말을 이었 다.

“그럼 귀기는 숨겨지신 거잖아 요.”

“맞네.”

왜 같은 것을 계속 묻느냐는 듯 보는 김소희에게 강진이 다시 물 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가씨와 다 른 분들을 피해 가시네요?”

“사람들과 부딪힐 수는 없는 것 이 아닌가?”

“그 말씀은 지금 뭔가 하고 계 신다는 건가요?”

강진의 물음이 무슨 의미인지 안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가린 게 귀신이라면 숨 을 쉬듯이 자연스럽게 뿜어지는 기운이라면…… 지금은 숨을 강 하게 쉬고 있다 생각을 하게.”

“숨을 강하게요?”

“향수로 가려지지 않는 귀기라 생각을 하면 될 듯하군.”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 대충 비 유하는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또 물었다.

“저기……

“자네는 참 궁금한 것이 많군.”

그러고는 김소희가 그를 보았 다. 물어보라는 의미였다. 그 시 선에 강진이 말했다.

“전에 향수를 뿌리고 공원에 가 셨을 때 사람들하고 안 부딪히려 고 이리저리 피하셨는데…… 지 금처럼 숨을 강하게 쉬셨으면 사 람들이 알아서 피하지 않았겠습 니까? 왜 굳이 사람들을 피해 다 니셨는지요?”

강진이 궁금한 것은 이것이었 다.

일전에 김소희가 공원에 갔을

때, 아이들이 갑자기 달려드는 통에 아주 난감해했었다. 지금처 럼 했더라면 아이들이 알아서 피 했을 텐데 왜 그런 불편함을 감 수했는지 이해가 잘 안 되는 것 이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다가 눈을 감았다.

“자네는 늘 뛰어다니나?”

“네?”

“뛰면 목적지에 빨리 가고, 요 즘 말하는 유산소 운동이라는 것

도 해서 건강에도 좋지. 그런 데……

잠시 말을 멈춘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자네는 늘 뛰어다니느냐는 말 일세.”

“그건…… 아닙니다.”

강진의 답에 김소희가 앞을 보 았다.

“힘이란 건 있다 하여 쓰는 것 이 아니고, 써야 할 곳이 있기에 키우는 것이네. 그런 힘을 필요

한 곳에 써야지, 내가 쓰고 싶을 때 함부로 쓰는 것은 소인배나 하는 짓이라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럼 지금은 힘을 써야 하는 때입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는 말을 하 지 않았다. 대신 뒤에 있던 이지 선이 나섰다.

“이 사장, 질문이 많군.”

“아…… 죄송합니다.”

그만 물으라는 이지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옵니다.”

이지선의 말에 김소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혹시 기싸움을 하는 건가?’

김소희에게서 이때까지 보지 못 했던 낯선 모습에 강진이 의아해 할 때, 사람들이 좌우로 벌어지 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커다란 웃음소리와 함께, 사람 들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건장한 체구……를 가졌다고 하긴 조금 은 무리가 있는 체격에 머리는 산발한 남자가 다가왔다.

‘이 분이 장태풍?’

호란 때 싸운 의병이라고 해서 덩치가 큰 남자를 생각했던 강진 은 생각보다 작은 장태풍의 모습 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니지. 조선 시대면 지 금보다 평균 신장이 작았지.’

평균 신장이 지금처럼 커진 것 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조선 시대 사진은 그리 없지만, 일본 의 사무라이 사진만 봐도 중학생 정도의 체격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장태풍의 키가 작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조선 시대에 서는 저 키가 평균 키일 수도 있 으니 말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장 태풍이 김소희에게 허리를 숙였 다.

“아가씨를 뵙습니다.”

“오랜만이네.”

김소희의 말에 장태풍이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

“그나저나 뭘 또 이렇게 분위기 를 잡고 계십니까?”

분위기라는 말에 김소희가 눈가 가 살짝 찡그러졌다.

어무

무슨. 평소의 나일 뿐

이네.”

“하하하! 그러십니까.”

김소희의 말에 장태풍이 귀엽다

는 둣 그녀를 보았다. 그 시선에 김소희의 얼굴이 살짝 굳어질 때, 장태풍이 웃으며 말했다.

“자! 얘들아 뭐 하냐! 어서 아 가씨께 인사드리지 않고!”

장태풍의 외침에 어느새 그의 뒤에 모여 있던 총각 귀신들이 일제히 김소희에게 고개를 숙였 다.

“아가씨를 뵙습니다.”

“아가씨를 뵙습니다.”

총각 귀신들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조폭이 절로 연상되는 총각 귀신들의 모습을 보던 김소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 였다.

“고개 들게.”

김소희의 말에 총각 귀신들이 고개를 들었다.

“자네들도 오랜만이네.”

총각 귀신들이 웃으며 김소희를 보다가 그녀의 뒤에 있는 처녀 귀신들을 향해 살짝살짝 손을 흔 들었다.

“지선아, 안녕?”

“한나 씨.”

총각 귀신들이 말을 거는 것에 처녀 귀신들이 별꼴이라는 듯 고 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도 총각 귀신들은 웃 으며 손을 흔들 뿐이었다. 그 모 습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총각 귀신들이 처녀 귀신들을 좋아하나 보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에게 김 소희가 말했다.

“저들에게도 향수를 뿌리게.”

“네.”

강진은 향수를 든 채 장태풍에 게 다가갔다. 장태풍은 160 정도 되어 보이는 키에 몸이 무척 큰 스타일이었다.

아주 단단하고 몸이 굵은 스타 일 이 랄까?

하지만 뚱뚱하다기보다는…… 마블리라는 애칭을 가진 유명한 한국 배우와 비슷한 스타일이었 다.

온몸이 근육인 것처럼 보였고 목둘레는 어지간한 남자 허벅지 처럼 두꺼웠다.

다만…… 등과 팔 여기저기 화 살이 여러 발 박혀 있어 무섭게 느껴졌다.

강진의 시선이 화살에 닿자 장 태풍이 웃었다.

“사람 하나 잡는 데 무슨 화살 을 이렇게 쏘는지.”

“네?”

강진이 보자, 장태풍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호란 때 의병이라는 것을 했는데 혹시 들었나?”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때는 화살도 귀해서 청나라 놈들한테 화살 한 발 이상을 안 쐈거든…… 한 번 쏘면 목을 뚫 든 심장을 뚫든 바로 쓰러뜨렸단 말이야.”

옛 기억이 난다는 듯 화살을 쏘 는 시늉까지 한 장태풍이 말을 이었다.

“근데 이 무능하고 멍청한 관군 놈들은 나 하나 잡겠다고 화살을 몇 발이나 쏘던지. 쯔쯔쯧! 한심 하기 짝이 없어. 내 몸에 꽂힌 것도 그놈들이 쏜 것 중 극히 일 부에 불과해.”

“그렇습니까?”

“관군이 이렇게 무능하니 나라 가 짓밟힌 게지.”

“아......"

강진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 지 모를 얼굴로 그를 보자, 장태

풍이 웃으며 팔을 벌렸다.

“자, 배고프니까 빨리 뿌려. 오 랜만에 한끼식당 음식 맛 좀 봐 야지.”

싱긋 웃는 장태풍의 모습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향수를 뿌렸다.

화아악! 화아악!

그러고는 장태풍 뒤에 있는 총 각귀신들에게 다가가 향수를 마 저 뿌렸다.

장태풍과 같이 온 총각 귀신은

일곱이었다. 조선시대 귀신도 있 었고, 일제 때 입었을 것 같은 교복과 옛날 군복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신분을 가졌던 총각 귀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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