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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498화 (496/1,050)

498화

강진이 향수를 뿌리자, 장태풍 이 한끼식당을 보았다.

“이제 시간도 된 것 같군요.”

장태풍은 가게 문을 잡고는 당 겼다.

끼이 익!

가게 문이 열리는 것에 강진이 놀란 듯 그를 보았다.

‘문을 열었다?’

저승식당 영업시간이라면 가게 안에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 다.

하지만 그것은 안에서 현신을 한 상태에서나 가능하지, 가게 밖에서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장태풍은 현신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가게 문을 잡고 열은 것이다.

강진이 놀란 듯 그를 볼 때, 장 태풍이 김소희를 보았다.

“들어가시지요.”

장태풍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기 시작했다.

화아악!

문턱을 넘어서는 것과 동시에 현신을 하는 김소희의 뒤를 이어 처녀귀신들이 가게 안에 들어갔 다.

처녀귀신들이 모두 들어가자, 장태풍이 강진을 보았다.

“사장도 어서 들어와.”

그러고는 먼저 문 안으로 들어

가 버리는 장태풍을 보던 강진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서자 김소희의 맞은 편 탁자에 앉는 장태풍을 볼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차달자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자, 장태풍이 그녀를 보다가 웃었다.

“달자 많이 늙었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요.”

차달자의 말에 장태풍이 그녀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았다. 그 시 선에 차달자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마음 편히 있어요.”

“그럼…… 되었다.”

장태풍이 차달자의 어깨를 손으 로 툭툭 치고는 말했다.

“하! 오랜만에 우리 달자 음식 좀 먹겠군.”

“음식 내겠습니다.”

차달자의 말에 장태풍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아 있는 귀 신들을 둘러보다 김소희를 보았 다.

“아가씨.”

장태풍이 부르자 김소희가 고개 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처녀귀신과 총각귀신이 이렇게 모인 것은 광복 이후 처음인 것 같군.”

김소희의 말에 몇몇 귀신들이 김소희와 장태풍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때 정말 기분 좋았는데.”

“그러게. 그때 일본 귀신 놈들 하고도 정말 미친 듯이 싸웠는 데.”

그들도 옛 기억을 떠올리며 이 런저런 말들을 내뱉었다.

나라를 뺏겨 슬프고 힘든 것은 산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귀신들 도 무척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 을 보냈다. 특히 김소희나 장태 풍처럼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이들은 더욱 고통이었다.

그래서 광복을 한 날 총각, 처 녀 귀신뿐만 아니라 조선의 귀신 들이 모두 기뻐했고 잔치를 했었 다.

저마다 이야기를 하는 귀신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장태풍이 손을 들었다.

“조용. 아가씨께서 이야기하신 다.”

장태풍의 말에 귀신들이 입을 다물었다. 삽시간에 조용해지자 김소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처녀와 총각 귀신은 기운이 상 극이라 서로 친하게 지내기 어렵 네. 하지만 오늘은 서로 좋은 일 이 있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니 기분 좋게 마시고 떠난 이들을 추모했으면 하네.”

김소희의 말에 장태풍이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무아미타불.”

장태풍의 불호에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 앉던 김소희가 그에게 눈 짓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의미였 다. 그 시선에 장태풍이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좋은 이야기 이미 하셨는데 제가 더 말을 보태 뭐 하겠습니까. 그리고 식전에 말이 많으면 애들이 싫어합니다.”

그러고는 장태풍이 강진을 보았 다.

“음식 내오게.”

“알겠습니다.”

강진은 본격적인 서빙을 위해

주방에 들어갔다. 이미 음식들은 다 준비되어 있었고 직원들은 그 것을 들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 었다.

살짝 긴장을 하고 있는 직원들 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긴장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세 요.

강진의 말에 직원들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 싶지만.. 방금

전 가게 앞에서 느껴지던 기운을 떠올리면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가게 귀신 중 가장 오래됐다고 할 수 있는 변대두도 두렵다는 기색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향수 뿌려서 괜찮잖아 요.”

강진의 말에 직원들이 작게 고 개를 끄덕이고는 음식들을 들고 홀로 나왔다.

직원들이 음식을 탁자에 하나씩 놓기 시작하자, 장태풍이 웃으며 말했다.

“이야! 연미도 이제 다 컸네.”

원래 다 컸거든요?”

“하하하! 그런가?”

크게 웃음을 터뜨린 장태풍이 변대두와 이호남에게도 고개를 돌렸다.

“대두 영감과 호남이도 잘 지냈 나?”

“저희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달자가 다시 이쪽에 온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 겠지만…… 그래도 가족이 같이 한자리에 있고 서로 위할 수 있

으니 좋은 일이군.”

생긴 것과 달리 부드럽고 인자 한 장태풍의 목소리에 차연미가 그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늘 먼 곳에서만 살짝 봤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뵙는 건 처음이네요.”

“하하하! 그럴 테지. 우리가 향 수를 뿌릴 일이 뭐 있어야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장태풍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는 말했 다.

“귀기를 죽여서 너희들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럼 내가 아 닌 것 같아서 말이야. 하하하!”

다시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장 태풍을 보며 강진은 속으로 중얼 거렸다.

‘웃음이 많은 스타일인가?’

생긴 것은 살짝 산적기가 보이 는데 그에 맞지 않게 웃음도 많 고, 하는 말에서 잔정이 많이 느 껴졌다.

그 사이 음식들이 깔리자, 처녀

와 총각 귀신들이 알아서 마실 술을 꺼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술판이 깔리자 강진이 김소희와 장태풍을 보았다.

두 사람만 다른 이들과 합석을 하지 않고 각각의 테이블을 썼 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슬며시 말을 꺼냈다.

“그렇게 떨어져 마주 보시지 마 시고 같이 합석하시지요.”

강진의 말에 장태풍이 웃었다.

“나야 늘 아가씨와 같이 하고

싶지만, 아가씨께서는……

“이리 와 앉게.”

자신의 말을 끊는 김소희의 말 에 장태풍이 놀란 듯 그녀를 보 았다.

거기에 살짝 시끄러울 정도로 이야기를 하던 총각 귀신들도 모 두 그녀를 보았다.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건 가?”

장태풍이 자신의 귀를 후비적거 리며 놀란 눈을 하자, 김소희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반상의 법도가 잊힌 시대에 내 언제까지 그런 구태의연한 법도 를 따질 것이라 생각했나?”

“네?”

장태풍은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 로 김소희를 보았고, 강진은 웃 으면서 그녀를 보았다.

‘많이 따지셨으면서.’

강진이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리 며 미소 짓자, 김소희가 그를 힐 끗 보고는 눈을 찡그렸다.

그에 강진이 시선을 슬며시 피 했다. 그런 강진을 보던 김소희 가 입을 열었다.

“편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편한 것일세. 와서 앉게.”

장태풍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 그녀를 쳐다보기만 할 뿐 이었다. 설마하니 김소희의 입에 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좋은 변화로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장태 풍이 몸을 일으켰다.

“그럼 많이 편하게 지내시는 듯 하니 저도 많이 편하게 하겠습니 다.’’

장태풍이 김소희의 옆 의자를 잡아당기려 하자, 김소희가 재빨 리 그 의자를 잡았다.

탁!

“그 정도로 편하게는 아니네.”

김소희의 말에 장태풍이 웃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나중에 더 편해지시면 그 옆자 리에 살짝 앉아 보겠습니다.”

“그 정도로 편해질 것 같지는 않네.”

“아가씨 앞자리 앉는데 사백 년 이니 한 이백 년 더 지나면 옆도 가능하겠죠.”

그런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처 녀, 총각 귀신들은 놀란 듯 작게 중얼거렸다.

“세상에. 아가씨가 태풍 오라버 니와 동석을 하다니.”

“헐! 내가 오래 귀신으로 있기 는 했구나. 이런 구도를 보게 될 날도 오고.”

“와……

그러다가 총각 귀신들 몇이 서 로를 보았다. 그러고는 저들끼리 속삭였다.

“그럼…… 우리도 합석해도 되 는 거 아냐?”

“그러게…… 윗분들이 저리 합 석을 했는데……

총각 귀신 몇이 힐끗 처녀 귀신

들을 볼 때, 일제 강점기 시절 입고 다녔을 것 같은 교복을 입 은 총각 귀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지선의 자리로 다가갔다.

“저…… 지선 씨.”

총각 귀신의 말에 이지선이 힐 끗 그를 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저…… 합석을 좀……

“자리가 없습니다.”

이지선이 단호히 선을 긋자 총

각 귀신은 그녀 옆에 있는 처녀 귀신을 힐끗 보았다.

그리고 살짝 눈을 굳히자 처녀 귀신이 움찔했다. 그에 이지선이 한숨을 쉬고는 총각 귀신을 보았 다.

“오진수 씨.”

“지선 씨.”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오진수가 환하게 웃었다. 생긴 것은 고등 학생 정도지만, 그는 처녀 귀신 이지선과 비슷한 포지션이었다.

바로 총각 귀신 서열 2위인 것 이다.

“불편합니다.”

“아…… 네.”

이지선의 말에 잔뜩 풀 죽은 오 진수는 처연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같은 테이 블 총각 귀신들이 웃었다.

“형님은 참 여자를 모릅니다.”

“너희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잖

아.”

총각 귀신이 여자를 알면 총각 귀신으로 죽었을 일이 없으니 말 이다.

“그런 말이 아니라……

총각 귀신이 슬며시 말했다.

“밥도 뜸을 들여야 하는데…… 무슨 다짜고짜 합석입니까?”

“무슨 소리야.”

“형님은 술 먹으면 기분 좋죠?”

“그렇지.”

“그럼 기분이 좋아진 다음에 접 근을 해야죠.”

“아!”

오진수가 감탄을 토하자, 총각 귀신이 고개를 저으며 그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일단 술 좀 들어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그 뒤에 합석을 하자는 겁니다.”

총각 귀신의 말에 오진수가 고 개를 끄덕이며 소주를 마셨다.

옆에서 총각 귀신들이 하는 말 을 듣던 강진이 힐끗 이지선을 보았다.

그녀는 소주를 마신 뒤 육개장 건더기를 떠서 입에 넣고 있었 다.

‘그런데 지선 씨가…… 취한 적 이 있던가?’

김소희와 다른 처녀 귀신들은 가끔 취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 지만, 이지선만큼은 취한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술을 안 마시 는 것도 아니다. 잘 마신다. 그런 데도 취하지 않고 언제나 바른 자세로 있는 것이다.

즉 이지선은 술을 아주 잘 마시 는 귀신인 것이다. 아니면 자제 력이 아주 강하던가 말이다.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장 태풍이 강진을 보았다.

“동생도 이리 와 앉게.”

“네? 아, 네.”

강진이 자리를 하자, 장태풍이

차달자를 보았다. 그 시선에 차 달자도 웃으며 김소희의 옆에 자 리를 했다.

“그래, 달자는 지낼 만하더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고개를 끄덕인 장태풍이 한숨을 쉬고는 김소희를 보았다.

“네가…… 가게를 그만둔 후 아 가씨께서 네 걱정을 많이 하셨 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김소희가 살짝 눈을 찡그리며 하는 말에 장태풍이 웃었다.

“걱정을 한 것은 사실이지 않습 니까.”

김소희가 말없이 소주병을 들려 하자, 강진이 급히 병을 대신 잡 아서는 그녀의 잔에 따라주었다.

쪼르륵!

잔에 따라진 소주를 잠시간 쳐

다보던 김소희가 그것을 마시고 는 닭발을 한 점 집어 입에 넣고 는 씹었다.

묵묵히 음식을 먹는 김소희를 보며 피식 웃은 장태풍이 소주잔 을 들어 내밀자, 강진이 따라주 었다.

“어쨌든 아가씨의 말이 아니더 라도 우리 동생 어찌 지내는지 걱정이 돼 몇 번 찾아갔었네.”

“연미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후! 그나저나 이렇게 얼굴 보

면서 이야기하니 너무 좋군. 내 가 찾아가도 모른 척하니 얼마나 서럽던지.”

장태풍이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웃었다.

“요즘 말로 나 마상 입었어.”

“ 마상요?”

“이거 이거, 사람이 귀신인 나 보다 줄임말을 몰라서야. 마음의 상처 말이야 줄여서 마상”

장태풍의 말에 차달자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모른 척한 것이 아니라…… 볼 수가 없었으니까요.”

차달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장태풍이 웃으며 소주병을 들었 다.

“돌아와서 좋으나……

쪼르륵!

차달자의 잔에 소주를 채워주던 장태풍이 작게 한숨을 토했다.

“돌아와서 안쓰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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