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화
“돌아와서 안쓰럽구나.”
장태풍의 말에 차달자가 지었다.
“저는 외롭지 않아서 다.”
차달자의 답에 장태풍이 돌려 차연미와 이호남, 변대두를 보고는 고개를 다.
미소를 좋답니 고개를
그리고
끄덕였
“그래. 잘 왔다.”
“감사합니다.”
잔을 나눈 장태풍이 기분 좋다 는 듯 웃었다.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에서 좋 은 소식도 듣고, 좋은 사람도 보 니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장태풍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자네도 가끔은 지리산을 나와 세상 구경도 좀 하게나.”
“저는 지리산이 좋습니다. 밖에 나와 보면 시끄럽고 삭막한 콘크 리트만 널려 있고……
장태풍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에 비하면 지리산은 무척 좋 지요. 푸른 자연에 동물들도 많 고.”
“지리산의 기운이 좋기는 하 지.”
“그럼요. 아가씨도 지리산에 자 리 하나 잡으십시오. 제가 기운 좋은 곳 몇 자리 봐 둔 곳 있는
데 아가씨께서 오신다고 하시면 제가 잘 정리해 놓겠습니다.”
“나는 되었네.”
“마음 변하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고는 장태풍이 강진을 보았 다.
“자네는 어떻게, 할 만한가?”
“좋습니다.”
“좋다니 잘 됐군.”
고개를 끄덕인 장태풍이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지리산 한 번 놀러 와. 내가 산삼 농사를 많이 지었으니 오면 몇 뿌리 주겠네.”
강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며 되물었다.
“산……삼 농사요?”
“지리산이 기운이 좋아서 그런 지 산삼이 잘 자라.”
“그런데…… 산삼 농사를 어떻 게?”
“그게 뭐 어렵나? 사람들 안 오 는 심산에 산삼 씨 뿌려 놓으면 그게 산삼 농사지.”
“하지만 씨를 어떻게 뿌리세 요?”
장태풍은 “어험.”하고 목을 가 다듬고는 큰 비밀을 알려 준다는 듯 말했다.
“바람을 살랑살랑 불게 해서 산 삼 씨를 날리는 거지. 산삼은 하 늘이 내리는 거라 사람이나 귀신 손을 타면 약효가 크게 떨어지거 든. 그래서 바람을 일으켜서 씨
를 날려 보내는 거지.”
“아……
“그리고 짐승들이 못 먹게 잘 지키면 돼. 그럼 알아서 잘 자라 더라고.”
웃으며 장태풍이 말을 이었다.
“다음에 한 번 와. 산삼 좋은 놈으로 몇 뿌리 줄 테니까.”
“그럼 감사하죠.”
장태풍의 말에 강진이 웃다가 문득 물었다.
“혹시 오래된 도라지도 있나 요?”
“젊은 친구가 산도라지가 몸에 좋은 건 아나 보네?”
“이야기를 들어서요.”
“후! 오기나 해. 내가 한 가마 니 캐 가게 해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자! 그럼 이야기는 적당히 하 고, 일단 배부터 채우자고.”
웃으며 장태풍이 소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신음을 토했 다.
“크윽! 좋……
좋다는 말을 하려던 장태풍은 자신을 보며 눈을 찡그리는 김소 희의 모습에 웃었다.
“아직 여기까지는 편하지 않으 신 모양이군요?”
장태풍은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손을 옆으로 뻗었다.
화아악!
그녀의 검이 모습을 드러내자, 장태풍이 급히 자세를 바로했다.
“제가 농이 심했습니다. 송구합 니다.”
장태풍이 사과하자 그를 보던 김소희가 검을 스윽! 손으로 만 지며 말했다.
“나한테 가장 편한 것은 역시 검인 것 같군. 그렇지 않나?”
그 모습을 보며 안색이 나빠진 장태풍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장태풍이 거듭 사과하자 김소희 가 검을 탁자 옆에 내려놓았다.
“편히…… 아주 편히 먹게.”
“아, 알겠습니다.”
작게 답을 한 장태풍이 젓가락 으로 음식을 조심히 집어서는 입 에 넣고 작게 씹었다.
그러고는 소주를 한 잔 따라서 는 조용히 마셨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강진이 속으로 웃었다. 겉으로는 장태풍이 김소희에게 완전 겁을
먹어서 조심하는 것 같지만, 그 의 눈에 어려 있는 장난기를 보 니 이것 역시 즐기고 있었다.
마치 김소희의 이런 반응을 즐 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강 진은 한 가지 더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장태풍이 김소희를 무척 아끼고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방식이 장난스럽게 툭툭 건드는 것이 조금 문제지만 말이다.
‘조선 제일 귀신에게 이렇게 장 난도 치시고…… 죽어서 무서울
것도 없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장태 풍이 따라주는 소주를 받아 입에 털어 넣었다.
* * *
음식을 다 먹은 귀신들은 1시가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또 맛있는 음식으로 모 시겠습니다.”
김소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 을 돌려 가게를 나섰다.
그 뒤를 장태풍이 따라붙으며 말했다.
“저와 저 녀석들은 한 잔 더 하 고 가겠습니다.”
“더 마실 생각인가?”
“좀 편히 먹으려고요.”
장태풍의 말에 김소희가 눈을 찡그리며 그를 보았다.
“나와 먹는 것이 불편했던가?”
“그럴 리가요. 아주 편했습니다. 그저 남자들끼리 술 한 잔 더 하 려는 것입니다. 아가씨와 마시는 술도 무척 편했습니다. 무려 동 석까지 하고 마신 술 아니겠습니 까. 하하하!”
크게 웃는 장태풍을 보던 김소 희가 고개를 저었다.
“이 사장 내일 영업도 있으니
적당히 마시고 가게.”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김소희가 다시 걸음을 옮기자, 처녀 귀신들이 그 뒤를 따라나섰 다.
그 모습에 오진수가 소리쳤다.
“지선 씨! 다음에 같이 한잔해 요!”
이지선의 기분이 취기가 오르면 합석을 하려고 했는데 전혀 취하 지를 않다 보니, 결국 합석을 할
수가 없어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다.
오진수의 외침에 처녀 귀신들이 힐끗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지선 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걸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오진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실 때, 장태풍이 그 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파이팅 이다.”
장태풍의 농기 가득한 목소리에 오진수가 한숨을 쉬고는 멀어져
가는 이지선 쪽을 향해 손을 흔 들었다.
“지선 씨! 다음에! 꼭 한잔해 요!”
* * *
처녀 귀신들이 가고 난 자리를 치우기가 무섭게 가게 안에는 다 시 술판이 벌어졌다.
그리고 강진은 정말 시끌벅적한
귀신들의 술자리를 볼 수 있었 다.
김소희와 처녀 귀신들이 있어서 조용히 마셨던 총각 귀신들이 본 격적으로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드 는 것이다.
물론 현신한 것과 달리 귀신 상 태에서는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 하지를 않는다. 하지만 취하든, 취하지 않든 상관없다는 듯 총각 귀신들은 술을 마실 뿐이었다.
탁자 세 개를 붙인 곳에서 강진 은 총각 귀신들과 합석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양반인 김소희의 영향 으로 조금은 조용한 분위기를 유 지하는 처녀 귀신들과 달리, 평 민인 장태풍이 이끄는 총각 귀신 들은 격의가 없어 비교적 편히 어울릴 수 있었다.
강진은 장태풍과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소희 아가씨께 농을 많 이 하시던데.”
“후! 재밌으니까.”
“재미로 그랬다 쳐도…… 너무 위험한 것 아닌가요?”
장태풍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 를 따라 마시고는 말했다.
“그게 또 별미인 게지.”
“목숨 걸고 하는 장난이요?”
강진이 묻자 장태풍이 작게 웃 고는 말했다.
“소희 아가씨의 반옹은 목숨을 걸고 볼 만큼 재미가 있지. 자네
도 봤겠지만…… 속은 여린 분께 서 강한 척하며 하는 반응이 재 미가 있지 않은가.”
“그야…… 조금 그런 감이 있 죠.”
강진의 말에 장태풍이 손을 들 었다.
부들부들!
손을 살짝 떠는 장태풍의 모습 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 다.
“중독이야/’
“중독요?”
“벌써 금단 증상이 일어나는 것 이지. 어서 아가씨께 장난을 치 라고 말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장태풍이 옆에 놓인 통에 잔에 있던 소주 를 부었다.
쪼르륵!
“이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병 이야 병.”
그러고는 장태풍이 강진의 잔에 도 소주를 따랐다.
쪼르륵!
그 모습에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보통 귀신들은 이 런 물건들 못 만지던데요?”
“우리가 보통 귀신은 아니지.”
장태풍의 말에 총각 귀신들이 웃으며 소주잔을 들어 보였다.
“그럼요. 우리가 어디 보통 귀 신입니까?”
“살아서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 봤는데…… 죽어서 이런 물건이
라도 만져야지.”
“총각 귀신을 위하여!”
총각 귀신 하나가 외치자 다른 총각 귀신들이 잔을 높이 들고 후창한 뒤 반투명한 상태의 소주 를 마셨다.
그러고는 그대로 남아있는 소주 를 통에 부어 버린 뒤 새로 따랐 다.
일반적으로 현신하지 않은 귀신 이 술을 마실 때, 강진이 그들의 잔을 비워주고 새로 따라주곤 했
다. 귀신은 같은 잔의 술을 두 번 마시지는 못하는 데다 술병을 들지 못하니 말이다.
그런데 총각 귀신들은 자신들이 알아서 병을 잡아 술을 따르는 것이다.
“그 처녀 귀신 분들은 이런 물 리력을 행사 안 하시던데요.”
“그건 소희 아가씨가 힘을 함부 로 쓰는 것을 싫어하셔서 그렇 지.”
“그럼 총각 귀신들은요?”
“술을 따라 마시는 것 정도는 자기 손으로 해야지. 산 사람에 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굳 이 남의 손을 빌릴 필요가 있 나?”
장태풍은 강진의 잔을 채워주며 말을 이었다.
“못 하면 어쩔 수 없지만, 할 수 있으면 하는 거지. 안 그런 가?”
장태풍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잔에 따라지는 소주를 보았다.
‘산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힘을 쓰는 것에 망설이 지 않는다. 처녀와 총각…… 단 어도 정반대지만 기질도 정반대 구나.’
힘이 있어도 필요한 곳,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쓰지 않는 김소 희와 처녀 귀신.
반면 자신이 필요하다 생각하면 힘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총 각 귀신.
서로 기질이 많이 달랐다. 그리 고 그 기질의 차이는 아마도 수
장의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 다.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걸 우선시한다는 건 같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문득 장태풍을 보았다.
“소희 아가씨와는 오래 알고 지 내셨죠?”
“이래저래 사백 년 정도 알고 지냈지.”
“장태풍 씨가……
강진의 말을 듣던 장태풍이 잔 을 들었다. 그에 강진도 잔을 들 자, 잔을 가져다 댄 장태풍이 웃 으며 말했다.
“씨가 뭐야. 형이라고 해.”
“네? 아니,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형이라고 해.”
싱긋 웃는 장태풍의 모습에 강 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형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 뭐야?”
“소희 아가씨 옛날에는 어땠어 요?”
“옛날이라……
장태풍은 잠시 옛 기억을 떠올 리는 듯 허공을 보다가 입을 열 었다.
“그때 아가씨는 무척 날카로웠 어.”
“그래요?”
임진왜란 때 목숨까지 버리면
서 지킨 나라가 정신을 못 차리 다가 30년 후 정묘호란을 겪고 또 10년 후에는 병자호란을 겪었 어. 40년 동안 난을 세 번이나 겪었으니 아가씨께서 무척 날카 로웠지.”
장태풍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아가씨는 한 자루 날카로 운 검이나 다름없었어.”
이야길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문득 그를 보았다.
“그런데 아가씨와는 어떻게 만 나게 되셨어요?”
강진이 묻자 장태풍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죽어서 처음 본 분이었 지.”
“네?”
“말 그대로야. 죽고 나서 눈을 떴을 때…… 나를 보며 울고 있 으셨어.”
-가여운 아이야. 오랑캐와의 싸 움도 이겨낸 네가. 어찌 조선
의 관군에게 목숨을 잃더란 말이 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