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2화
점심 장사를 마무리한 강진이 홀을 정리할 때 가게 문이 슬며 시 열렸다.
그리고 문틈에서 작은 머리 하 나가 안으로 들이밀어졌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웃었다.
“종수구나. 들어와.”
가게에 머리를 들이민 아이는 최종수였다. 작년에 갈빗집 사장
에게 급여를 받지 못했던 최종훈 의 동생이었다.
강진의 말에 최종수가 웃으며 들어왔다. 그러고는 열린 가게 문을 향해 말했다.
“들어와.”
그러자 조금은 얼굴이 까맣고 이국적으로 생긴 남자 아이가 들 어왔다.
“안녕……하세요.”
작게 고개를 숙이며 어색해하는 아이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
했다.
“어서 들어와.”
그러고는 아이 뒤에 있는 남자 귀신을 보았다.
‘그쪽도 어서 들어오시고요.’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남자 귀신을 보았다.
그는 무척 나이가 많아 보였다. 한 60 정도 돼 보인다고 할까?
‘할아버지 수호령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일단
최종수를 보았다.
“어머니는 좀 어떠셔?”
최종수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슬픔과 지병으로 몸이 아주 안 좋은 상태였다.
“엄마 몸 많이 좋아지셨어요.”
“다행이네. 약은 잘 챙겨 드시 고?”
강진의 말에 최종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도 잘 챙겨 드시고, 형이 보
내 주는 돼지감자 차도 잘 챙겨 먹고 있어요. 그리고 계단도 자 주 오르셔서 의사 선생님이 건강 많이 좋아졌다 했어요.”
“그래. 당뇨에는 계단 오르는 것이 좋은 운동이니까 네가 잘 도와드려. 아, 너무 무리하면 저 혈당 올 수도 있으니 조심하고.”
“저도 잘 알아요.”
“종훈이는?”
“형도 학교 잘 다니고 있어요. 그리고 저녁에는 아르바이트하고
요.”
“그런데 왜 그동안 잘 안 왔 어?”
강진이 묻자 최종수가 머리를 긁었다.
“자주 오고는 싶은데…… 형이 미안하다고……
“에이!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자 주 와. 너 오니까 형 기분이 많 이 좋다.”
“헤! 알겠어요. 형한테 자주 가 자고 할게요.”
최종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물었다.
“밥 안 먹었지?”
“네.”
“형이 오늘 중국 음식 했는데,
자장면하고 짬뽕 뭐 먹을래?”
“아……
강진의 말에 최종수의 고민이 어렸다. 자장면과 고르는 것은 참 어려운 것이다. 얼굴에 짬뽕을 문제인
최종수가 답을 못 하고 끙끙대 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인생에 할 고민이 얼마나 많은 데 뭘 그런 걸 고민해.”
“하지만…… 둘 다 먹고 싶은 데.”
“정답! 그럼 둘 다 먹으면 되 지.”
“그럼 둘 다 먹을래요.”
환하게 웃는 최종수를 보며 웃 은 강진이 옆에 있는 남자아이를 보았다.
“종수 친구?”
“네.”
“형은 종수하고 친한 강진이 형 이야. 앞으로 자주 보자.”
“자주요?”
“그래. 자주 와. 밥도 먹고.”
“감사합니다.”
남자아이가 인사를 하자 최종수 가 웃으며 말했다.
“봐, 내가 그랬잖아.”
“뭐가?”
“아니에요.”
웃으며 답을 피하는 최종수를 보던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에서 배용수는 이미 면을 삶 고 있었다.
“재료 안 부족하지?”
“충분하지.”
그러고는 배용수가 홀을 보며 말했다.
“잘 됐다. 음식이 좀 남아서 어
쩌나 고민했는데 애들 주고 너 남은 것 먹으면 양 되겠어.”
“잘 됐네.”
말을 한 강진이 자장과 짬뽕을 보다가 차달자를 보았다. 그녀는 아이들을 귀엽다는 듯 보고 있었 다.
식당 근처는 아이들이 많이 오 는 곳이 아니라서 아이 손님들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이모님도 같이 식사하시죠.”
“그럴까요?”
차달자는 웃으며 아이들에게 다 가갔다.
“안녕.”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이들의 인사에 차달자가 인자 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할미도 같이 앉아서 먹어도 될까?”
“괜찮아요. 근데 할머니 여기서 일하세요? 전에는 못 뵈었는데?”
“나보다 더 오래된 단골인가 보 구나? 할머니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단다.”
“그러시구나.”
차달자는 웃으며 아이들과 이야 기를 나누다가 슬며시 아이의 뒤 에 있는 귀신을 손으로 잡았다.
흠칫!
자신을 붙드는 손길에 귀신이 놀란 눈을 하자, 차달자가 웃으 며 주방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귀신이 뭐라 말을 하
려 하자, 차달자가 아이를 힐끗 보고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에 귀신이 잠시 멍하니 그녀 를 보다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강진의 말에 귀신이 흠칫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사람이 자 신에게 말을 거니 놀란 것이다.
그에 옆에서 바둑을 두던 변대 두가 귀신을 툭 치고는 이곳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여기는……
변대두가 친절하면서도 조금은 빠르게 설명을 하자 귀신이 놀란 눈으로 주방과 강진을 번갈아보 았다.
그리고 옆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배용수와 설거지를 하는 여 자 귀신들까지 보던 귀신이 물었 다.
“그럼 여기 귀신들은?”
“저승식당 직원들일세.”
“아…… 귀신이 식당에서 일을 하는 겁니까?”
“그런 셈이지. 그리고 나는 그 냥 여기 얹혀사는 식객이고.”
“그럼…… 혹시 여기에서 월급 받아서 가족에게 보낼 수도 있습 니까?”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귀신 의 모습에 변대두가 고개를 저었 다.
“그건 안 되지. 귀신이 인간 일 에 관여할 수는 없으니까.”
“아…… 그렇군요.”
작게 한숨을 뱉은 귀신이 주방
밖에 있는 아이들을 보다가 한숨 을 쉬었다.
“하아!”
고개를 젓는 귀신의 모습에 강 진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제가 손주분 식사 챙길 테니 어르신도 여기서 식사하세요.”
“손주?”
강진의 말에 그를 보던 귀신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대강이 아빠 임호영입니
다.”
“아빠..요‘?”
강진이 놀란 듯 그를 보았다. 무척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아빠라니?
“아…… 죄송합니다.”
강진이 급히 사과하자 임호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늦게 결혼을 해서... 외견만 보고 할아버지
인 줄 아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임호영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아이 두고 가셔서 힘드시 겠어요.”
강진의 말에 임호영이 작게 고 개를 저었다.
“애가 크든 작든…… 자식 두고 가는 신세 누가 안 힘들겠습니 까.”
“그게…… 정답이네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음식이 완성되자 강진이 짬뽕을 크게 한
그릇 담아 임호영에게 내밀었다.
“식사하고 계세요. 저는 아이들 식사 챙겨 줄게요.”
“감사합니다.”
임호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음식을 챙겨서는 홀로 나 왔다.
“자장 먹자.”
그러고는 아이들에게 자장 두 그릇과 그 중간에 짬뽕을 한 그 릇 놓았다.
“자장도 먹고 짬뽕은 나눠 먹 어.”
“형 고마워요. 맛있겠다.”
최종수가 웃으며 자장면을 비비 자, 앞에 앉은 임대강이 어색하 게 강진을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밥 먹자.”
말을 하며 강진도 자장면을 비 비기 시작하자, 임대강이 기어들 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돈이 없는데……
“괜찮아. 형은 돈 안 받아.”
강진은 최종수의 머리를 쓰다듬 으며 말했다.
“돈을 안 받는 것이 아니라, 나 중에 받을 거야.”
“나중요? 돈 받는 거였어요?”
눈을 동그랗게 뜬 최종수를 보 며 강진이 웃었다.
“지금이야 너희가 어려서 안 받 는 거지. 나중에 너희 돈 벌고
성공하면 형 가게 와서 바가지도 좀 써.”
“알았어요! 나중에 내가 성공하 면 밥 한 그릇 만 원 주고 먹을 게요.”
최종수가 웃으며 하는 말에 고 개를 끄덕인 강진이 임대강을 보 았다.
“많이 먹어. 모자라면 더 먹고.”
“감……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임대강이 자장면을 빠르게 비비다가 슬며시 말했다.
“저…… 고춧가루 없나요?”
“녀석, 먹을 줄 아네.”
웃으며 강진이 주방에서 고춧가 루 통을 가지고 왔다.
먼저 임대강의 그릇에 고춧가루 를 뿌려준 강진이 자신의 자장면 그릇에도 뿌리고는 차달자를 보 았다.
“이모님도 뿌려 드릴까요?”
“좋지요.”
차달자의 그릇에도 고춧가루를
뿌린 강진이 곧 자장면을 비벼서 는 먹기 시작했다.
후루룩! 후루룩!
크게 집어 먹은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자장면은 크게 집어서 크게 먹어야 맛있어. 그렇지?”
“네.”
최종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주방에서 배용수가 외쳤다.
“작자소육 됐다!”
그에 강진이 주방에 들어가 작 자소육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자, 최종수 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음식을 보았다.
“와, 이건 뭐예요?”
“작자소육이라고 하는 중국 요 리야.”
강진이 밀전병을 하나 집어 손 에 올리고는 고기 한 점과 파, 그리고 소스를 올린 뒤 임대강에
게 내밀었다.
그에 임대강이 밀전병을 받자, 강진이 밀전병을 하나 더 집어 말아서는 최종수에게 내밀었다.
“방금 싼 건 땅콩 소스고, 이건 쌈장 소스. 먹어 봐.”
강진의 말에 최종수와 임대강이 서로를 보고는 밀전병을 입에 넣 었다. 곧 둘의 얼굴에 미소가 어 렸다.
“맛있어요.”
“고기 싼 이거…… 되게 쫄깃하
네요.”
밀전병을 모르는 듯 ‘이거’라고 하는 최종수를 보며 강진이 말했 다.
“밀전병이라는 거야. 입에 맞으 면 많이 먹어.”
그러고는 강진이 자장면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그에 최종수가 임대강에게 밀전병을 주자, 그도 받아서는 고기와 소스를 넣어 먹 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파를 빼고 소스만 넣
어 먹는 것에 강진이 피식 웃었 다.
‘애들은 애들이네.’
지금이야 파의 단맛과 싸한 맛 을 즐길 줄 알게 됐지만, 어릴 때는 강진도 파의 매운맛을 싫어 했으니 말이다.
아이들을 보면서 자장면을 얼추 다 먹은 강진이 빈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맛있게 먹어.”
“형 더 안 드세요?”
“형은 주방에서 일해야지.”
그러고는 강진이 최종수를 보았 다.
“고기 더 줄까?”
“네.”
최종수의 말에 강진이 주방에서 고기를 접시에 담아 가지고 나왔 다.
“근데 오늘 학교 안 갔어?”
“오늘 개교기념일이라 쉬어요.”
“그래서 맛있는 것 먹으러 왔구
나?”
“네.”
“잘했어. 아! 밥 먹고 할 것 있 어?”
“ 없어요.”
“그럼 형이 영화 틀어 줄 테니 까 볼래?”
“우리야 좋죠.”
최종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주방에 들어왔다.
임호영은 멍하니 임대강이 밥을
먹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입에 맞으셨어요?”
“아주 맛이 좋았습니다. 감사합 니다.”
“그냥 밥 한 끼 드린 건데요, 뭐.”
강진의 말에 임호영이 머뭇거리 다가 말했다.
“우리 애가…… 다문화 가정 아 이입니다.”
“그런데요?”
강진이 그게 무슨 문제냐는 듯 보자, 임호영이 쓰게 웃었다.
“사장님 같은 반응이 일반적인 반응이어야 하는데……
임호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몰랐는데…… 애 옆에 붙 어 있다 보니 아이가 상처를 많 이 받았더군요.”
“차별 같은 건가요?”
임호영이 한숨을 쉬다가 아이들 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그래도 대강이가 종수 를 알게 돼서 다행입니다.”
임호영은 흐뭇한 얼굴로 최종수 를 보았다.
“우리 대강이를 집에 데려간 친 구는 종수가 처음이라고 하더군 요.”
“그래요?”
“네. 그런데 종수 어머니가 다 음에 또 놀러 오라고 했을 때…… 대강이가 울더군요.”
“울어요?”
“친구 집에 놀러 간 것도 처음 이고, 친구 엄마가 또 놀러 오라 고 한 것도 처음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잠시 임대강을 보던 임호영이 한숨을 쉬었다.
“펑펑 울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