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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503화 (501/1,050)

503 화

가게에서 히어로 영화도 한 편 보고, 요즘 강진이 연습으로 만 들고 있는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 며 놀은 아이들은 4시가 넘자 자 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집에 가야 돼요.”

최종수가 일어나서 하는 말에 강진이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주 방에서 쇼핑백을 두 개 들고 왔 다.

“짬뽕하고 자장 좀 넣었어.”

“고맙습니다.”

“자장은 그냥 먹어도 되고, 짬 뽕은 안에 있는 면 삶아서 말아 먹으면 돼. 근데 어머니는 당뇨 있으시니까 이건 너하고 형만 먹 고, 안에 반찬은 어머니한테 드 리면 돼.”

최종수가 웃으며 쇼핑백을 볼 때, 강진이 임대강에게도 쇼핑백 을 내밀었다.

“어머니 당뇨 있으셔?”

“ 없는데요.”

“그럼 맛있게 먹으면 돼.”

“어…… 저도 주시는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강진이 웃으며 쇼핑백을 임대강 에도 들려주고는 말했다.

“또 놀러 와.”

“정말…… 놀러 와도 돼요?”

“그럼. 돈 걱정하지 말고 와서 밥 한 끼 먹고 가. 형이 음식 장 사 하는데 밥 한 끼 못 주겠어?”

“가…… 감사합니다.”

임대강이 눈물을 글썽이자 강진 이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 다.

“편히 와.”

“네.”

눈가를 닦으며 고개를 숙이는 임대강이 최종수와 함께 가게를 나서자, 강진이 임호영을 보았다.

임호영은 강진에게 깊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이한테 잘해 주셔서 감사합 니다.”

“배고프다는 아이한테 밥 한 끼 주는 건데…… 이건 다른 사람도 다 하는 겁니다.”

사건 사고도 많고, 인심이 나빠 졌다는 뉴스가 많이 나오는 요즘 이지만…… 일면식 하나 없는 아 이가 배고프다고 하면 밥을 사 주는 어른들은 여전히 많았다.

전에 여자 귀신들이 보던 유트 브 관찰 카메라 영상에서도 교복 입은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하자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 도시락을 사 주던 어른들이 많이 나왔었 다.

‘일부 쓰레기들만 아니라면……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정이라는 것을 베풀고 있으니까.’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임 호영이 고개를 숙이며 가게를 나 섰다.

“감사합니다.”

재차 감사하다 인사를 하는 임 호영을 배웅한 강진은 아이들이

먹었던 간식 그릇들을 치우기 시 작했다.

최종수가 다녀가고 며칠 후, 저 녁 장사를 하고 있을 때 문 열리 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식사 시간인 만큼 손님이겠거니 하고 입구를 본 강진은 삼십 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가 최종수 와 임대강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 오고 있는 것에 살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여자의 모습에 강진이 마주 고개를 숙였 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강이 엄마예요.”

여자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으 로 그녀와 임대강을 번갈아 보았 다.

두 아이가 동갑내기라면 임대강 이 열여섯일 텐데, 여자는 삼십 대 초반에서 많아야 중반 정도밖 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임대강은 조금 까무 잡잡한 피부인데, 어머니는 뽀얀 피부에 그냥 한국 여자 같았다.

강진이 놀란 눈을 하자, 임대강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좀 시집을 일찍 가서요.”

임대강 어머니의 말에 강진이 힐끗 뒤에 있는 임호영을 보았

다.

‘이런…… 도둑을 보았나.’

딱 봐도 임호영의 딸 뻘로밖에 보이는데…… 아내라니?

강진의 표정이 살짝 굳자, 임호 영이 머리를 긁었다.

“저희가…… 좀 나이 차이가 나 기는 합니다.”

‘좀이 아닌데요?’

강진이 눈을 찡그리는 것에 임 대강 어머니가 의아한 듯 말했

다.

“저기……

강진이 그녀를 보다 아차 싶어 서는 눈을 손으로 비볐다.

“잠시 눈에 뭐가 들어가서요.”

“아, 네……

눈을 비비는 강진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던 임대강 어머니가 입 을 열었다.

“오늘 온 건 대강이가 사장님 이야기를 많이 해서 인사드리려

고 왔습니다. 애한테 잘 해 주셔 서 감사합니다.”

임대강 어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젓다가 말했다.

“오셨으니 식사하시죠.”

“네.”

그렇지 않아도 음식 팔아주려고 온 듯 임대강 어머니가 빈자리에 앉자, 아이들도 맞은편에 앉았다.

셋이 모두 자리에 앉자 강진이 물었다.

“식사는 어떻게 드릴까요?”

그러자 최종수가 웃으며 말했 다.

“강진 형이 음식을 참 잘해요.”

“전에 짬뽕하고 자장면 먹으니 맛있더라.”

임대강 어머니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희 식당 은 점심시간 외에는 손님이 원하 는 음식을 해 드리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시면 준비

해 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임대강 어머니가 아이들을 보았다.

“너희 둘은 뭐 먹을래?”

“나는 김밥하고 계란말이.”

최종수의 말에 임대강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김밥?”

“난 김밥 좋아해. 그리고 강진 형이 해 주는 김밥 맛있어.”

“그럼 저도 김밥 먹을게요.”

“다른 것도 맛있는데.”

“종수가 맛있다고 하니까요.”

임대강의 말에 강진이 잠시 생 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김밥하고 어묵국 끓여 줄 게.”

“계란말이도요.”

“그래. 계란말이도.”

웃으며 강진이 임대강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님은요?”

“저도 아이들이 먹는 것 먹을게 요.”

“그러지 마시고 평소 드시고 싶 었던 음식 말씀해 보세요. 재료 가 되는 대로 음식 해 드리겠습 니다.”

“괜찮은데……

임대강 어머니가 웃으며 괜찮다 하자 임호영이 급히 말했다.

“우리 아내가 볶음밥을 좋아합 니다.”

강진이 힐끗 보자, 그가 말을

덧붙였다.

“제가 베트남에서 볶음밥을 해 주면 그리 좋아했습니다.”

임호영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 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제가 음식 하나를 알아서 더 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진은 임호영에게 눈짓을 하고 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임호영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갔 다.

임호영이 주방에 들어오자 강진 이 대단하다는 듯 그를 보았다.

“와…… 사모님이 무척 젊으시 네요.”

강진의 말에 임호영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었다.

“어쩌다 보니 연애를 하게 돼 서.”

“ 연애요?”

강진이 의아한 듯 보다가 배용 수를 보았다.

“김밥 한 열 줄하고 어묵국, 그 리고 혹시 베트남 볶음밥 할 줄 알아?”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그를 볼 때, 임호영이 급히 말했다.

“우리 와이프는 김치볶음밥을 좋아합니다.”

“김치볶음밥요?”

“지금이야 베트남에도 한식 음 식점이 꽤 있지만, 이십 년 전에 는 제가 해 주던 것이 아니면 한 국식 김치볶음밥을 먹기 어려웠

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김치볶음 밥을 해 주면 무척 맛있게 먹었 습니다.”

베트남에서 먹던 볶음밥이라고 해서 베트남식 볶음밥인 줄 알았 는데, 김치볶음밥이었던 모양이 었다.

“레시피는 어떻게 되는데요?”

김치볶음밥이야 김치에 밥만 볶 으면 되지만, 사람마다 디테일이 조금씩 다른 법이니 묻는 것이었 다.

“저는 기름을 좀 넉넉하게 넣 고, 마늘을 편 썰어 볶고, 거기에 돼지고기를 볶고 김치를 자잘하 게 썰어서 볶았습니다. 그리고 찬밥 넣고 볶은 후에 마지막으로 계란을 볶았습니다.”

“요리는 좀 하셨나 봐요?”

“노총각으로 자취를 오래 하다 보니…… 후! 어지간한 음식은 다 할 줄 알았습니다.”

임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배용수를 보았다.

“김밥하고 계란말이, 어묵국은 네가 해라. 볶음밥은 내가 할 테 니까.”

“그런데 열 줄이나 싸?”

사람이 셋밖에 안 되는 데 무슨 열 줄이나 싸냐고 묻는 배용수를 보며 강진이 웃었다.

“한 여섯 줄은 포장해서 보내 드리려고.”

“하긴…… 알았어.”

배용수가 재료를 준비하자, 강 진이 마늘을 썰며 임호영에게 말

했다.

“제가 하는 것 보다가 고칠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감사합니다.”

임호영의 말에 강진이 재료를 손질하며 말했다.

“그런데 사모님이 베트남 분이 신데 연애결혼을 하셨어요?”

강진의 물음에 임호영이 어색하 게 머리를 긁었다.

“그…… 험! 제가 베트남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때 베트남 말 을 알려 준 선생님이었습니다.”

“사모님이 한국말을 잘하셨나 보네요?”

“정식으로 한국어를 배운 것은 아닙니다. 기숙사에서 먹는 밥이 지겨워서 근처에 밥을 먹으러 갔 는데, 제가 하는 말을 알아듣더 니 짧지만 대화가 되더군요.”

“그럼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 신 건가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자주

봤다 했는데, 그 때문에 귀가 열 렸는지 잘 듣더군요. 저도 베트 남에 일하러 간 거라 베트남어 배우러 학원 다니기도 멀고 시간 도 그렇고…… 해서 과외 제안을 했는데, 하겠다고 하더군요. 나중 에 물어보니 자기도 한국어 공부 도 하고 좋을 것 같다 생각해서 승낙했다 하더군요.”

말을 하며 임호영이 미소를 지 었다.

“어쨌든 저는 아내에게 베트남 어를 배우고, 아내는 저에게 한

국어를 배우고…… 그렇게 2 년 정도 매일 두 시간씩 만나서 이 야기하다 보니..厂

임호영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는 것이 조금은 쑥스러운 듯 머 리를 긁었다.

“어쨌든…… 그렇게 결혼해서 살다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휴우!”

임호영이 한숨을 토하는 것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죽고 사는 건 어쩔 수가 없지

요.”

“그건 맞는데…… 제가 없으니 우리 영지가 힘들군요.”

“영지?”

“베트남 이름은 따로 있는데 한 국에서 살려면 한국 이름이 나을 것 같아서 개명했습니다. 김영지 로요.”

“아…… 개명하셨구나.”

강진의 말에 임호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름 예쁘지요? 영지(英紙). 꽃 부리 영에 종이 지 자를 써서 영 지입니다.”

“이름에 종이 지 자를 쓰는 건 흔하지 않은데.”

“우리 영지가 종이처럼 피부가 하얀 편이잖습니까. 그래서 종이 지 자를 썼지요. 제가 직접 이름 붙여 줬습니다.”

임호영이 미소를 짓는 것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으세

요?”

강진이 걱정스럽게 보며 기름에 튀겨지는 마늘을 뒤적이고는 돼 지고기를 넣었다.

촤아악! 촤아악!

돼지고기가 들어가자 임호영이 말했다.

“맛소금 조금 넣어 주세요.”

“맛소금요?”

“소금은 맛소금이죠.”

“하긴, 맛이 들어간 소금이 조

금 더 맛있기는 하죠.”

입에 착 달라붙는 MSG가 들어 간 소금이니 말이다. 강진이 맛 소금을 툭툭 치고는 돼지고기를 휘저었다.

촤아악! 촤아악!

살짝 달라붙은 돼지고기가 뜯어 지며 맛있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 다.

그것을 보던 임호영이 한숨을 쉬었다.

“지금 저희 어머니하고 같이 살

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영지 가 밖에서 일하는 것을 많이 싫 어하시네요. 그래서 영지가 너무 갑갑해합니다.”

“ 일요?”

임호영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볼 때, 배용수가 말했 다.

“애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 텐 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임대강도 밥을 먹을 때 밥값이

없다고 걱정을 했었고 말이다.

“사실…… 제가 베트남에서 돈 을 좀 잘 벌었습니다.”

“부자세요?”

강진이 묻자 임호영이 작게 웃 었다.

“처음에는 베트남에서 남의 일 하면서 월급 받았는데, 있다 보 니 돈이 될 일들이 보이더군요. 게다가 현지인 아내가 있으니 그 쪽 문화에도 익숙하다 보니 한국 물건 들여다 파는 사업을 했는데

그게 잘 됐습니다. 그래서 돈을 제법 벌었습니다.”

“그럼 대강 어머니가 일을 안 해도 되는 건가요?”

임호영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내와 나이 차이가 있다 보니…… 저 죽고 난 후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오래오래 같 이 살면 좋겠지만, 언젠간 제가 먼저 죽지 않겠습니까?”

임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차이가 정확히

얼마나 나는지 모르지만 딱 봐도 딸과 아빠 뻘로 보이는 것을 보 면…….

‘도둑……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릴 때, 임호영이 말했다.

“그래서 사망 보험하고 연금을 좀 강하게 들어놨습니다.”

말을 하던 임호영이 흐뭇하게 웃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거기에 제가 모아 놓은 돈도

있고 작은 상가도 있으니 아껴 쓰면 영지 죽을 때까지는 일 안 해도 충분할 겁니다.”

강진이 살짝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상가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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