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4화
상가도 있는 집이라면 부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던 강진이 문득 홀을 보았다.
“그런데 대강이는 돈이 없었는 데? 용돈이 적은가요?’’
전에 왔었던 임대강은 밥값 걱 정을 했던 것이다. 강진의 말에 임호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혼자 쓰라고 주는 용돈을 둘이 서 쓰니…… 늘 부족하지요.”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임호영 이 말을 덧붙였다.
“친구하고 하고 싶은 건 많은 데, 친구가 돈이 없으니 자기 돈 을 써서 그렇습니다.”
“아……
임호영의 말에 강진이 무슨 말 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 다.
최종수 집은 무척 가난하다. 어 머니가 이제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 하지만 아직 일을 할
정도로 건강해진 것은 아니다.
아직까진 최종훈이 야간 아르바 이트를 해서 버는 돈과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생계비가 다였다.
그래서 최종수에게 용돈이라고 는 가끔 형이 과자 사 먹으라고 주는 것 빼고는 딱히 없었다. 최 종수도 집안 형편을 알기에 형에 게 용돈을 달라고 하지도 않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임대강이 자기 용 돈으로 최종수와 하고 싶은 것을 같이 하는 모양이었다.
“대강이가 착하네요.”
“돈을 쓰고 싶어도 같이 놀 친 구가 없었는데…… 용돈이 부족 하기는 해도 대강이는 지금이 행 복할 겁니다.”
말을 한 임호영이 웃었다.
“종수하고 피시방 가서 같이 팀 먹고 게임하는데 그리 좋아합니 다.”
“피시방은 확실히 친구들하고 같이 가야 재밌기는 하죠.”
강진의 말에 임호영이 웃다가
말했다.
“어쨌든 우리 영지가 집에만 있 어야 하니 너무 답답해하는군요. 돈이라도 없으면 영지가 밖에서 돈이라도 벌 텐데……. 게다 가……
임호영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제 형제 녀석들이 생활비 하라 고 매달 돈까지 보내니…… 이것 참……
“형제들이 생활비를 보내요?”
강진이 묻자 임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들끼리 모아서 한 달에 이 백 정도 보내더군요. 자기들 살 기도 빠듯할 텐데……
임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가 몇이나 되는지 몰라도 이백은 큰돈이다.
게다가 매달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양 병원에 부모님 넣어 두고 매달 내는 돈 도 아까워하는 자식들도 있는 세 상이니 말이다.
‘생각보다…… 좋은 집이구나.’
강진은 조금 입맛이 썼다. 형제 들도 김영지 사정을 알 테니 돈 을 보내지 않아도 부족하지 않다 는 것은 알 것이다.
그런데도 돈을 보내는 것은…… 자식을 남편 없이 키워야 하는 김영지와, 아버지 없이 자라야 하는 대강이를 걱정하기 때문이 었다.
‘그냥 이 년만 좀 키워주지. 그 럼…… 최소한 내가 당신들을 원 망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그
래도 아빠 형제들인데……
강진이 보육원으로 들어간 것이 열여덟 살 때였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스물 될 때 까지만 친척들이 자신을 키워 줬 다면…… 명절에 찾아갈 친척 집 이 있을 테고, 웃으며 술 한 잔 나눌 사촌 형제들도 있었을 것이 다.
하지만 그 짧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은 한 번도 손을 내밀 지 않았다. 그 때문에 강진도 그 들을 잊게 된 것이다.
“하아!”
이때까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 쓰며 가슴 한편에 묻어 두었던 가족, 아니 남보다도 못한 친척 을 떠올린 강진이 한숨을 쉬었 다.
“응?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 나요?”
자신의 얼굴이 안 좋아진 것에 임호영이 의아한 듯 보자 강진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입맛을 다시며 자신을 보는 강 진의 시선에 그를 보던 임호영이 급히 말했다.
“이제 계란 볶아야 합니다.”
임호영의 말에 강진이 프라이팬 에 볶아지는 김치와 고기를 한쪽 으로 몰았다. 그리고 빈 공간에 계란을 툭 까서는 넣으며 말했 다.
“계란은 몇 개 넣을까요?”
“두 개요. 그런데 재료 한쪽에 몰아넣는 것을 보니 사장님도 볶
음밥을 하실 줄 아는군요.”
“저야 음식 장사하는데 이 정도 야.”
강진은 웃으며 계란을 하나 더 넣고는 나무젓가락으로 빠르게 휘저었다.
그것을 보던 임호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료와 섞이지 않게 계란을 따 로 볶아 줘야 눅눅하지 않고 더 맛있더라고요.”
“그건 그런데, 재료에 계란이
코팅되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분 들도 몇 분 있더라고요.”
“사람마다 식성은 각각인 편이 지요.”
웃던 임호영이 강진에게 말했 다.
“이제 간장 넣으시면 될 것 같 습니다.”
강진은 재료를 한쪽으로 또 몰 고는 비어있는 부분에 간장을 살 짝 붓고는 태웠다.
촤아악!
간장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으 며 강진이 재료를 휘저었다.
촤아악! 촤아악!
간장이 타들어간 곳에 재료들이 뒤섞이면서 양념이 배었다. 그리 고 강진이 밥을 두 공기 정도 붓 고는 꾸욱! 꾸욱! 눌렀다. 이렇게 밥을 누르듯이 해야 재료가 잘 섞이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임호영이 미소 를 지었다.
“우리 영지가 맛있게 잘 먹을
것 같습니다.”
임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백 명 중에 세 명 빼고는 다 좋아할 맛인 것 같네요.”
강진의 말에 임호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번엔 배용수가 만 드는 김밥을 보았다.
배용수는 계란지단 김밥과, 멸 치 김밥, 일반 김밥 등 여러 종 류의 김밥을 만들고 있었다.
맛있겠다는 듯 김밥을 보는 임
호영에게 강진이 말했다.
“그래도 김영지 씨는 상황이 좋 은 편이십니다.”
“그래요?”
“제가 아는 할머니 한 분은 할 아버지와 재혼을 했는데, 할아버 지 돌아가시니 자식들이 재산을 이리 빼돌리고 저리 빼돌리다가 할머니 사시는 집까지 팔려고 했 습니다.”
김윤자 할머니의 일을 이야기하 자, 배용수가 작게 말을 보탰다.
“그뿐인가? 할아버지 연금도 첫 째 놈이 다른 형제들 몰래 자기 가 챙기고 있었잖아.”
두 사람의 말에 임호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니, 무슨 그런 집구석이 다 있답니까?”
“있습니다. 나중에 그거 알고 둘째 아들하고 딸이 그걸 어떻게 혼자 먹을 수 있냐고 할머니 앞 에서 다투더군요. 그거 토해서 나누자면서요.”
“아…… 할머니 마음이 편치 않 았겠군요.”
“그렇지요.”
임호영의 중얼거림에 강진과 배 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윤자 할머니 한 번 찾아 뵈어야겠네.’
그 집에 보낸 고양이들도 한 번 볼 겸 해서 말이다.
“그럼 영지 씨는 일을 하고 싶 어 하는 거군요?”
“그럼요. 베트남에서는 매일 일 을 하던 여자인데……
말을 하던 임호영이 무언가 떠 올렸는지 말을 덧붙였다.
“베트남 여자들이 생활력이 대 단합니다.”
“그래요?”
“베트남이 1970년 중반까지 전 쟁을 겪었잖습니까. 그때 남자들 이 많이 죽었어요. 그래서 집 안 살림을 여자들이 다 했는데…… 그 영향이 많이 남아 있어서 지
금도 여자들이 많이 일을 합니 다. 그래서 우리 영지도 어릴 때 부터 일을 쉬지 않고 많이 했어 요.”
그러고는 임호영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여자가 집에서 어머니하 고만 있으니 답답하지요. 그래서 밤에 한숨을 쉴 때도 많고…… 일자리 사이트도 자주 보고. 이 제 사십 중반인데 집에만 있으려 니 힘들지요.”
“사십 중반? 그렇게 안 보이시
는데?”
“올해 마흔하고도 다섯입니다.”
“무척 동안이시네요.”
“피부가 하얀 편이라 더 어려 보이지요.”
김영지 이야기만 나오면 기분이 좋은 듯 웃어대는 임호영을 보던 강진이 다 볶아진 음식을 그릇에 담으며 슬며시 물었다.
“그럼 두 분 나이 차이가……
나이 차를 묻는 질문에 임호영
이 머리를 긁었다.
“열다섯 됩니다.”
‘열다섯…… 아저씨가 노안이고 아주머니가 동안이라 더 나이 차 이가 나 보였구나.’
슬쩍 보기에는 스무 살 이상 나 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다지 많이 나지 않았다.
‘하긴 열다섯도…… 엄청 나기 는 하지만.’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
기는 하지만 그래도 서로 사랑해 서 한 결혼이니…… 서로가 좋으 면 좋은 것이다.
음식을 담은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는 접시에 김밥을 담고 어묵국에 고춧가루를 살짝 뿌리고 있었다.
“됐다.”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음식들을 쟁반에 올려서 는 홀로 나왔다.
그러고는 음식들을 식탁에 놓으
며 말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김영지가 웃으며 젓가락과 수저 를 꺼내 아이들 앞에 놓았다.
“종수야, 많이 먹어.”
“감사합니다.”
최종수가 젓가락으로 김밥을 집 어 입에 넣고는 미소를 지었다.
“형, 맛있어요.”
“그래. 맛있게 먹어.”
아이들이 먹는 걸 보던 강진이 김영지에게 말했다.
“필요하신 것 있으면 말씀하세 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강진은 걸음을 옮 기며 다른 손님들을 살폈다.
손님들이 가고, 식당에는 김영 지 테이블 만이 남아 있었다. 강 진은 주방에서 아이들이 먹을 간 식을 만들며 임호영을 보았다.
임호영은 강진이 말아 준 비빔 국수에 볶음밥을 먹고 있었다. 둘 다 즈에서 가져온 식재라 실 제로 먹으며 좋아하고 있었다.
“맛있으세요?”
“아주 맛이 좋습니다.”
흐뭇한 얼굴로 맛있게 음식을 먹는 임호영을 보며 강진이 말했 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사모님 일 하는 것 싫어하세요?”
“어머니야 영지가 집에서 편히
있으면 해서지요. 노총각 구제해 줬다고 어머니가 영지를 무척 예 뻐하시거든요. 그리고 딸처럼 친 구처럼 말동무하면서 쇼핑하는 것도 좋아하시고.”
“어머니가 정정하신가 보네요.”
임호영 나이가 있으니 어머니 나이가 못 해도 팔십은 될 텐데 말이다.
“정정하세요. 아침엔 대강이 학 교 보내고 영지하고 헬스장 가서 요가하면서 하루를 시작할 정도 로 정정하세요.”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어머니가 더 일을 못 하게 하는 것도 같아요.”
“사모님 나가시면 심심하니까 요?”
“그런 것도 있어 보이고……
고개를 젓는 임호영을 보던 강 진이 물었다.
“그럼 사모님께서 무슨 일을 하 셨으면 좋겠어요?”
강진의 물음에 임호영이 국수를
크게 한 입에 넣다가 잠시 멈췄 다. 그러고는 입에 넣은 국수를 씹어 먹고는 말했다.
“영지가 하고 싶은 일이면 뭐든 괜찮습니다.”
“그래도 뭔가 ‘이걸 했으면 ……싶은 일이 있지 않으시겠 어요?”
강진의 물음에 임호영이 홀을 잠시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냥…… 영지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갑갑해하지 않았으면 합
니다.”
그러고는 임호영이 웃으며 말했 다.
“돈이라는 것이 있잖습니까. 돈 이 있어서 가장 좋은 건 돈 때문 에 남의 눈치를 안 봐도 된다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임호영이 강진을 보았 다.
“저야 돈 없어서 고생도 하고 윗사람들 눈치도 봤었지만, 우리 영지는 다른 사람들 눈치 안 보
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았으
면 합니다.”
임호영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미소를 지었다.
“사모님을 무척 사랑하시는군 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었 던 여자입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나이 차이 나는 저 같은 놈 좋다고 이 먼 타국까지 와서 같이 살아 준 여자니까요. 미안하고…… 또 미안하죠.”
미소를 짓는 임호영을 볼 때, 배용수가 말했다.
“아내분 온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홀을 보 았다. 김지영이 주방으로 다가오 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임호영의 손에 들 린 젓가락을 잡아서는 내려놓았 다.
그와 동시에 배용수와 다른 귀 신들도 급히 고무장갑을 낀 손을 세면대 안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