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화
점심시간, 강진은 태광무역 직 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베트남?”
이상섭이 비빔국수를 먹다가 보 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친한 사람이야?”
“그런 것은 아니고요. 그냥 집 에만 있으니 갑갑해하시는 것 같
아서 할 만한 일이 뭐 있나 해서 요.”
강진은 김영지에게 직장을 소개 해 줄 생각은 없었다. 소개를 해 줬다간 정말 직장이 필요한 다른 사람의 기회를 뺏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 서 할 만한 일이 뭐가 있는지 물 어보는 것이다.
“학벌은?”
“그건…… 그리 안 좋을 것 같
은데.”
“나이가 사십 정도라고 했지?”
“마흔다섯요.”
‘동안이라…… 아직 서른 중반 으로밖에는 안 보이지만.’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이 상섭이 말했다.
“그럼 주방에서 일하는 것 말고 는 생각 나는 것이 없네.”
“주방요?”
“한국 사람도 학벌 없고 나이
있으면 일자리 구하기 쉽지 않잖 아. 그런데 베트남에서 오신 분 이면…… 몸 쓰는 것 외에 더 있 겠어?”
그러고는 이상섭이 강진을 보았 다.
“그리고 요즘 주방 보조 일도 월급 좋다고 하더라.”
“그건 그렇죠.”
강진이 아르바이트로 다녔던 곳 의 주방 이모들 월급이 적지는 않았다. 물론 그만큼 일이 고되
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상섭이 국수를 크게 한 입 먹 으며 미소를 지었다.
“맛있다.”
“많이 드세요.”
“오늘따라 왜 이리 비빔국수가 당기던지. 이 매콤함이 당겼나 보다.”
“당길 때는 먹어야죠.”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고개를 끄덕일 때, 최미나가 말했다.
“한국말은 잘해요?”
“잘하세요.”
“그럼 학벌은 몰라도 베트남어 는 잘하겠네요?”
“그야…… 베트남 사람이니 잘 하시 겠죠?”
“그럼 언어 쪽으로 특기를 살려 야죠.”
“ 언어요?”
“외국어 공부할 땐 원어민하고 이야기하는 게 책 백 일 보는 것
보다 훨씬 도움이 되죠. 나도 하 루에 십 분씩, 주 5일 프랑스 사 람하고 전화로 이야기하거든요.”
“불어도 공부를 하세요?”
“전에 프랑스와 연관된 업무가 있었는데 좀 불편해서요. 그래서 공부 중이지요.”
“정말 열심히 하시네요.”
“무역 일을 하는 만큼 언어는 많이 알수록 좋으니까요.”
그러고는 최미나가 말을 이었 다.
“어쨌든 전화로 이야기 나누는 데 도움 많이 돼요.”
“전화로요?”
“이야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만 날 필요 없잖아요. 그리고 직접 만나면 요금도 비싸고, 오고 가 야 하는 불편함이 있죠. 반면 시 간 정해 놓고 십 분 정도 통화하 는 건 한 달에 십만 원 정도밖에 안 해요.”
“그런 것도 있군요.”
“요즘 베트남이 물가도 싸고 해
서 이민 가려는 사람도 많고, 저 희처럼 사업하려는 사람도 많아 서 괜찮을 거예요. 하고 싶다고 하면 내가 사람 좀 모아 드려 요?”
“ 사람요?”
“후배들 중에도 베트남어 공부 하는 애들 많거든요. 하루에 십 분씩 시간 정하는 것이 좀 귀찮 기는 하겠지만, 이 정도면 쏠쏠 한 아르바이트죠.”
최미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십 분에 주 5일
이면 약 한 시간이다. 그리고 한 달이면 네 시간인데 받는 돈이 십만 원이면 아주 좋은 아르바이 트였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 예요?”
“보통 오늘 기분이나 뭐 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해요. 그리고 날씨 이야기도 하고, 뉴스에 나 오는 거에 대한 이야기 등등 대 중없어요. 중요한 건 이야기한다 는 것 자체니까요.”
최미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임호진이 말했다.
“아니면 봉사를 좀 하는 것은 어때?”
“봉사요?”
“갑갑해서 일을 하고 싶다면 집 에서 전화 통화로 하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그것도 그러네요.”
“돈은 안 되지만 봉사 활동 같 은 것 하면 보람도 있고 좋지. 게다가 베트남어를 하실 수 있으 니 그런 쪽으로 봉사를 찾아도
도움이 되겠지.”
“그런 쪽으로요?”
“이를 테면 베트남 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수업도 괜찮 겠네.”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생각을 해 보니 좋은 것 같았다.
‘봉사 활동이니 다른 분들 직업 뺏는 것도 아니고, 같은 고국 사 람들과 대화도 할 수 있고, 사람 들도 만나고 아주 좋은데?’
게다가 봉사 활동이니 좋은 일
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강진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임호진이 웃었다.
“그런데 친한 것도 아닌데 뭘 이렇게까지 도우려고 해?”
“그냥 좀 도와주고는 싶은 분이 에요.”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그를 보 다가 피식 웃었다.
“넌 참 착하다고 해야 하나, 오 지랖이 넓다고 해야 하나.”
“오지랖 넓은 착한 놈이라고 생 각해 주세요.”
강진의 답에 임호진이 웃으며 말했다.
“강진이 말이 맞지. 오지랖 넓 은 착한 녀석이니 우리 이 대리 가 메뉴에도 없는 비빔국수 먹고 싶다고 해도 따로 만들어 주는 것 아니겠어?”
임호진의 말에 이상섭이 먹고 있던 비빔국수를 보다가 웃었다.
“그 말이 맞네요.”
오늘 점심 메뉴는 고등어구이가 메인 반찬인 김치찌개 정식이었 다. 그런데 매콤한 비빔국수가 먹고 싶었던 이상섭이 강진에게 따로 부탁을 한 것이다.
그래서 강진이 비빔국수를 만들 어 팀원들에게만 서비스를 한 것 이었다.
웃는 이상섭을 보던 임호진이 강진에게 말했다.
“구청 다문화 가정 지원 센터에 문의하면 잘 알려 줄 거야. 그쪽 이야 늘 봉사자가 부족하니 일
찾기는 쉽겠네.”
“그렇군요.”
“그런데 그쪽은 정말 돈이 안 될 텐데 괜찮겠어?”
“괜찮으실 거예요.”
“좋은 분이네.”
그러고는 임호진이 국수를 크게 집어 먹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 이고는 다른 손님들을 살피기 시 작했다.
점심 장사를 마무리한 강진은 가게 문을 닫았다. 별다른 이유 가 있는 것은 아니고, 허연욱이 추천을 해 준 대로 추나를 받으 러 병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허연욱까지 칭찬한 그 추나를 한 번 받아 보고 싶은 것이다.
부웅!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며 강 진이 옆에 있는 차달자를 보았 다.
“이모님은 추나 받아 보셨어 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저희 가게에 오시는 할 아버님이 마사지를 무척 잘하셨 지요.”
“할아버지면 귀신요?”
“약은 잘 못 쓰시는데 침하고
마사지는 무척 잘하셨죠.”
“침을 놓으시면...... 한의사실 텐데 약을 잘 못 써요?”
강진이 의아한 듯 묻자, 차달자 가 웃으며 말했다.
“어렸을 때, 동네 침놓는 할아 버지한테 배우고는 동네 사람들 한테 침 놨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불법 아닌가요?”
“그때는 그냥 놓을 때였죠. 어 쨌든 할아버지가 마사지를 참 잘 하셨어요.”
말을 하던 차달자가 미소를 짓 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분은 잘 가셨나 모르겠네 요.”
“가시는 것 못 보고 그만두셨나 보네요?”
강진의 물음에 차달자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다른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요. 그냥 귀신들 보는 게 힘들었으니까요.”
그러고는 차달자가 창밖을 보았
다.
“그때 오셨던 분들은 어떻게 지 내시는지…… 잘 가셨는지 모르 겠네요.”
재차 한숨을 쉬는 차달자에게 강진이 말했다.
“쉬는 날에 서문식당에 한 번 가보시죠. 제가 모셔다드리겠습 니다.”
차달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물끄러미 창밖을 보았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실 때, 뒤에 타고 있던 차연미가 슬 며시 말했다.
“엄마, 한 번 가 보자.”
차연미의 말에 차달자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 다.
“언니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 렇지.”
“미안하기는 뭐가 미안해. 그리 고 엄마…… 훈이가 하늘 가시 엄마 힘들어한 거 미선 이모도,
경석 이모도 다 아는데.”
“하아! 미선 언니가 무척 서운 해하셨을 텐데.”
“이대로 한 번도 안 찾아가는 것이 더 서운하지. 그리고 엄마 도 이모들 보고 싶잖아요.”
“그건…… 하아!”
차달자는 다시 한숨을 쉬며 창 밖을 보았다. 서문시장에서 했던 서문식당……. 남편을 일찍 잃어 아들을 홀로 키우며 식당을 하던 차달자에게 시장 언니들은 친자
매들과 같았다.
그런 언니들에게 말도 하지 않 고 야반도주 하듯이 서문시장을 떠난 것이 미안한 것이다.
차달자가 한숨을 쉬며 창밖을 보는 것에 차연미가 입을 열었 다.
“미안해도 보고 싶은 사람은 만 나야죠.”
차연미의 말에 차달자의 고개가 작게 끄덕여졌다. 미안함이 크지 만, 그리움도 큰 것이다.
그런 차달자를 본 강진이 말했 다.
“전에 저희 가게에 오셨던 윤성 대 씨 기억하세요?”
“기억나요. 그 이모 귀신이 붙 어 있던 손님이었지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제이들 방송을 보고 한끼식당에 왔던 윤성대에게는 엄마의 친구 귀신이 붙어 있었 다.
돈을 빌리고 야반도주를 하느라
인사도 하지 못했던 이모 귀신은 윤성대 먹으라고 식사를 차려 놓 고 나서야 이승을 떠날 수 있었 다.
“윤성대 어머니가 그랬대요. 돈 빌리고 도망가서 미우면서도 안 스럽고 보고 싶다고요.”
강진이 차달자를 한 번 보고는 다시 앞을 보았다.
“돈 빌리고 도망간 친구도 보고 싶은데…… 이모님은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친구분들도 다 이해 하실 거예요.”
강진의 말에 잠시 말이 없던 차 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싶네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한 번 보고는 운전을 하다가 말 했다.
“다 왔네요.”
차달자가 병원 건물을 보고는 말했다.
“한방병원이라고 해서 작을 줄 알았는데 꽤 크네요.”
“그러게요.”
말을 하며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운 강진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 다.
“허연욱, 허연욱, 허연욱!”
강진의 부름에 옆에 허연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찍 오셨네요.”
“선생님이 너무 시원하고 좋다 고 하니 받아 보고 싶어서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자, 이쪽으
로 오세요.”
익숙하게 걸음을 옮기는 허연욱 의 모습에 강진과 차달자가 그 뒤를 따랐다.
지하 주차장에 있는 엘리베이터 에 다가가자 검은 정장을 입은 JS 시설 관리국 직원이 보였다.
병원에는 노약자가 많다. 그래 서 병원에는 JS 시설 관리국 직 원들이 대기를 하며 외부에서 들 어오는 귀신들을 관리하는 것이 다.
귀신의 귀기에 노약자가 다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호오!”
시설 관리국 직원이 강진을 보 고는 손을 들었다.
“이야! 저승식당 사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늘 그렇듯이 JS 시설 관리국 직 원은 강진이 누구인지 알아보았 다.
“여기 선생님이 추나를 잘한다 고 해서요.”
“유 선생 말하는 거구나. 하긴 그 사람이 마사지를 잘하기는 하 죠.”
직원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근무 시간 끝나면 유 선 생이 추나 하는 것 구경하고 퇴 근합니다.”
“그걸 왜 구경하세요?”
“그분 손만 닿으면 몸 여기저기 에서 우두둑 소리가 미친 듯이 나거든요. 끄윽! 내 몸뚱이가 없 는 것이 아쉬울 뿐이에요. 그거
한 번 받으면 온몸 관절이 다 시 원할 것 같은데.”
말을 하며 직원이 몸을 이리저 리 비틀었다. 하지만 현신을 한 몸이 아니기에 아무런 소리가 들 리지 않았다.
“우두둑! 소리가 나면 엄청 시 원할 것 같은데…… 아쉬워요.”
싱긋 웃은 직원이 차연미를 보 고는 분무기를 들었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기를 이미 지웠네요?”
“저희 가게 직원들은 JS 향수를 이용하거든요.”
“그러시구나.”
그러고는 직원이 계단을 가리켰 다.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을 이용 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여기는 엘리베이터가 엄청 느리거든요.”
“병원 엘리베이터는 늘 느리 죠.”
“잘 알고 계시네요.’’
직원의 말에 강진이 엘리베이터 를 보다가 버튼을 눌렀다.
“옆에 계신 이모님이 다리가 불 편하셔서요. 좀 기다리겠습니다.”
말을 하며 강진이 엘리베이터를 보았다. 엘리베이터는 층마다 서 는 듯, 층마다 잠시 대기했다가 내려오길 반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