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화
미소를 지은 장병두가 강진을 보았다.
“그럼 생김 있습니까?”
“생김요?”
“우리 이쁜이가 나 출근할 때 생김에 밥 싸서 양념간장하고 김 치 넣어 줬거든요.”
장병두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거 하나 쥐고 나갔다가 버스
기다리면서 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았습니다. 아! 거기에 사이다!”
“사이다요?”
“생김이 좀 퍽퍽하잖습니까.”
장병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김은 은근히 퍽퍽하 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른 음식이라 수분이 없기도 하니 말 이다.
“김밥을 먹고 퍽퍽한 속에 사이 다가 들어가면…… 하하하! 저
단전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트 림이 팡! 터지면서 속이 아주 개 운합니다. 하하하!”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리는 장 병두를 보던 강진이 피식 웃으며 접시에 다과를 담았다.
김소희 오면 주려고 틈틈이 만 드는 약과와 도라지 정과였다. 강원도에서 가져온 석청에 잘 절 인 도라지 정과를 접시에 담은 강진이 쟁반에 들고는 홀로 나왔 다.
홀로 나온 강진이 음식을 테이
블에 놓았다.
“식사하시기에는 좀 이른 것 같 아서 다과를 준비했습니다.”
“아주 맛있어 보이네요.”
“이건 저희 가게에서 직접 만든 것이라 입에 맞을지 모르겠습니 다. 그리고 이건 도라지차입니다. 다과가 달아서 좀 쓴 차를 준비 했습니다.”
강진이 식탁에 음식들을 놓자, 최순심이 음식을 보다가 웃었다.
“참 예쁘게 잘 만들었네요.”
“그럼 이야기 편히 나누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차달자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저 JS 편의점 좀 다녀올게요.”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주방으로 들어왔다.
“나 JS 가서 김 좀 사 올게. 뭐 필요한 거 있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냉장고를 열어 안을 보고는 말했다.
“김하고 햄하고…… 아! 과자하 고 음료수 좀 사 와. 전에 처녀 귀신들이 와서 비워 버렸다.”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홀을 한 번 보고는 바닥 에 조립식 문짝을 설치했다.
“그럼 갔다 올게. 아 참! 아저 씨 먹을 것 좀 챙겨 줘.”
“알았으니 빨리 갔다 와.”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명함을 꺼내 문에 대고는 손잡이를 돌렸 다.
화아악!
오가 보이자 강진은 앞구르기를 하듯이 문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 다. 특이한 자세로 JS 안에 들어 오는 강진의 모습에 주위에 있던 귀신들이 이상하다는 듯 그를 한 번 보고는 각자 갈 길을 가기 시 작했다.
그런 귀신들을 보며 머쓱해하던 강진은 몸을 일으키고는 서둘러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편의점에 들어선 강진은 김과 음식들을 골랐다. 한 가지 다행
이라면 편의점에도 생김이 있다 는 것이었다.
〈삼도천 햇김〉
‘삼도천 햇김? 삼도천이면 강 아닌가?’
봉투에 있는 상품명을 보고 의 아해하던 강진은 카운터로 다가 갔다. 물품들을 계산하고 있던 직원에게 강진이 물었다.
“저기…… 삼도천에서 김이 나 오나요?”
“물론 나옵니다.”
“김은 바다에서 양식하는 건데 삼도천은 민물 아닙니까?”
“민물이라
강진의 말에 직원이 고개를 저
었다.
“저는 그때 배 타고 갔던지라 물맛을 안 봐서 모르지만…… 저 승인데 민물이고 바닷물이고 나 눌 이유가 있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그리고 삼도천 김 양식이 무척 잘 됩니다.”
“그래요?”
“삼도천을 수영해서 가는 사람 들이 많다 보니 김이 잘 자라서 양식이 잘 된다고 하더군요. 그 리고 요즘은 수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서 그런지 삼도천에서 나는 물고기부터 굴, 김까지 다 통통하기 이를 데 없어요.”
“수영요?”
“삼도천 넘을 때 돈 없으면 직 접 수영해서 가야 하거든요.”
“아…… 이승이나 저승이나 돈 없으면 몸이 고생하는군요.”
“돈 없으면 정말 고생이죠.”
살짝 미소 지은 직원은 말을 이 었다.
“돈 있는 VIP들은 커다란 크루 즈 타고, 그 밑은 등급 따라 통 통배부터 조각배, 뗏목, 오리배 그리고 튜브까지 다양하게 나뉘 거든요.”
“그런데 수영해 가는데 왜 김이 양식이 잘 돼요?”
사람이 수영해서 간다고 강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닐 텐 데 말이다.
강진의 물음에 직원은 평온한 어조로 답했다.
“삼도천에는 사람 살 뜯어 먹는 물고기부터 뱀, 악어 등이 살고 있거든요. 그 녀석들한테 물리고 먹힌 사람들한테서 나온 피와 살 들이 김 양식하는 곳에 흘러가서 영양분이 된다고 하더군요.”
강진은 눈을 찡그리며 김을 보 았다.
‘사람 피와 살을 먹고 자랐다 고?’
사실을 알고 나니 께름칙한 것 이다. 하지만 곧 강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따지고 보면 강진이 그동안 먹 은 JS 농산물과 고기들 모두 죄 인들의 살과 피를 먹고 자란 것 이다.
검수림 식칼만 해도 사람의 피
를 먹어서 자란 것을 재료로 하 고, 쌀과 과일들은 사람 혓바닥 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니 말이 다.
어디 그뿐인가? 과자까지도 혀 에서 자란 곡식으로 만드니…….
고개를 저은 강진이 봉지에 음 식을 담으며 물었다.
“그런데 물고기하고 악어들한테 살이 다 뜯기는데 죽지는 않나 보네요?”
“죽은 사람이 또 죽을 수 있나
요?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면 머 리만 남아도 다시 멀쩡해지죠. 물론……
직원이 입맛을 다셨다.
“무척 아프기는 하지만요.”
“ 아파요?”
“생살과 뼈가 뜯겨 나가는데 안 아프겠습니까?”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 직 원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잘 아시네요?”
“수영해서 지나가지는 않았지 만, 저도 삼도천을 건넜으니까요. 삼도천 건너편에 도착하면 아파 서 신음하다 못해 땅에 머리 찧 는 인간들 엄청 많아요.”
입맛을 다시며 직원이 말했다.
“거기 도착하면 그제야 아…… 여기가 지옥이구나 싶은데, 사실 거기는 초입에 불과할 뿐이죠.”
고개를 젓는 직원을 보며 강진 이 물었다.
“그럼 지옥에도 가 보셨어요?”
“저는 나름대로 죄 없이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도 몇 개 걸 려서 다녀왔는데…… 으! 정말 끔찍하다니까요.”
진저리가 난다는 둣 몸을 부르 르 떠는 직원을 보던 강진이 웃 으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또 오세…… 아!”
말을 하던 직원이 강진을 보았 다.
얼마 전에 사장님 아는 귀신들
왔다 갔습니다.”
직원의 말에 몸을 돌리려던 강 진이 그를 보았다.
“저를요?”
“여학생 둘하고 남학생 한 명 요.”
“아…… 영수하고 예림이, 가은 이가 왔었군요.”
놀란 강진의 모습에 직원이 웃 으며 말했다.
“이름은 잘 모르겠고 그 아이들
이 사장님 이야기를 하더군요.”
편의점에 들어온 여학생과 남학 생 귀신을 보던 직원은 다시 핸 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보통 귀신 셋, 그것도 학생 귀 신들이 같이 들어오는 일은 흔하 지 않다.
귀신들은 죽으면 혼자 오거나,
비슷한 시간에 죽은 동기 귀신과 같이 오는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교복을 입 은 귀신 셋이 같이 들어오는 건 흔하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흔하지 않은 것이 지,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니 직원 이 더 눈을 줄 이유가 없었다.
여기 있으면 하루에도 수백, 수 천 보는 것이 귀신이니 말이다.
-와…… 여기가 강진 형이 이 야기하던 JS 편의점인가 보다.
-이승 편의점이랑 똑같이 생겼 네.
-그러게. 와, 되게 신기하다.
세 귀신은 가게를 구경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와! 여기서 서천꽃물을 보니 반갑다.
-반가울 것도 많다.
-왜, 반가운 건 반갑지. 나도 열화탕면 보니 반가운데. 마치 강진 오빠 가게에 있는 것 같아.
-가은이 너도 그렇지? 나도 서 천꽃물 보니 저승식당에서 먹던 그 맛이 생각나. 우리 이거 몇 개 살까?
-무슨 소리야. 오빠가 저승에 가면 돈 쓸 일 많다고 했던 거 기억 안 나? 그리고 우리 돈도 많이 없잖아.
-그래도 두치 형이 미성년자 지원금이 좀 있다고 했잖아.
일찍 죽은 귀신들은 돈을 쌓을 시간도, 쓸 시간도 없었기에 JS 금융에서 지원해 주었다. 일종의
JS 정착 지원금인 셈이었다.
-두치 오빠가 그랬잖아. 그거 정말 조금밖에 안 되니 아껴 쓰 라고.
-맛있는데…….
-맛있는 것 먹을래, 몸 고생할 래?
-알았어.
남자 학생의 말에 직원이 힐끗 고개를 돌렸다. 단발인 여학생이 친구들을 말리며 돈을 쓰지 못하 게 하고 있었다.
‘애가 똘똘해 보이네. 쟤 말이 맞다. 저승 가면 돈 쓸 일 많으 니 군것질은 하지 마라.’
저승 선배로서 속으로 중얼거린 직원이 문득 아이들을 보았다.
‘그런데…… 저승식당에서 먹어 봤다는 건…… 이강진 사장네 귀 신인가?’
여러 곳에 있는 저승식당 사장 들이 가끔 와서 물건을 사' 가지 만, 강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는 서울에 있는 저승식당 사장뿐 이니 말이다.
직원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단 발머리 여학생이 저승 귀성분들 을 위한 맞춤 코너로 걸음을 옮 겼다.
-오빠가 열화내의가 따뜻하고 좋다고 했어.
-후신딘도 사야 해. 검수지옥 통과할 때 그거 없으면 칼에 다 베이고 난리래.
머리가 긴 여학생의 말에 남학 생이 가격표를 슬쩍 보고는 놀란 듯 말했다.
-이거 너무 비싼데?
-비싸도 얼어 죽지 않으려면 사야지.
-근데 우리 이거 다 사면…… 변호사 어떻게 해?
남학생이 우물쭈물하며 하는 말 에 단발 여학생이 웃었다.
-총각 귀신들은 그에 대해서 말 안 해 줬나 보네?
_뭘?
-소희 아가씨가 갑자기 승천하
게 되면 놀라지 말고 서&백 변 호사들 찾아가라고 했어.
-서&백?
-그 한끼식당에 가끔 오는 하 얀색 정장 입고 다니는 아저씨 있잖아.
-신수호 변호사님?
-맞아. 그분이 서&백 대표래.
-그거 이승 회사 아니야?
-서&백은 이승에도 있고 저승 에도 있대. 그래서 승천해서 저
승 가게 되면 서&백 변호사들 찾아서 자기 이름 말하라고 하셨 어. 그럼 변호 맡아 줄 거래.
단발 여학생의 말에 남학생이 대단하다는 듯 그녀를 보다가 머 리를 긁었다.
-근데 그거 처녀 귀신들만 해 주는 것 아냐?
-소희 아가씨가 우리한테만 말 하기는 했는데…… 몰라. 가서 일단 우겨.
-총각 귀신이라고 안 해 주면
어떡해?
-그럼 가서 자르던가. 자르면 처녀 귀신 되는 것 아니겠어?
단발 여학생이 짓궂게 웃으며 말하자 직원은 자기도 모르게 피 식 웃었다.
-큭!
직원의 웃음에 단발 여학생이 그를 힐끗 보고는 물건들을 집었 다.
-후신딘은 하나로 돌려쓰고 일 단 사자.
* * *
직원이 아이들 이야기를 해 주 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잘 왔군요.”
“잘 왔습니다.”
“그럼 애들 물건은 다 잘 샀습 니까? 부족함 없이?”
강진이 묻자 직원이 웃으며 말 했다.
“친하셨나 봅니다.”
“친하죠. 그리고…… 안쓰럽고.”
강진의 말에 직원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말했다.
“저희 단골인 강진 씨 얼굴 봐 서 필요한 것은 골라주고, 필요 하지 않은 것은 뺐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거요?”
“애들이 저승 귀성 때 필요한 물건들을 다 골랐더라고요. 근데 애들이 죄를 지으면 얼마나 지었 겠어요. 그래서 걸리지 않을 지
옥들 물품들은 뺐습니다.”
살인해서 가는 지옥, 사기 치면 가는 지옥 등등 보통 평범한 아 이라면 가지 않을 지옥들의 물건 들을 빼고 남은 물품만 계산한 것이다.
원래라면…… 손님이 계산대에 놓은 그대로 다 팔지만 말이다.
“매상이 줄었을 텐데……
“하하! 여기가 제 가게도 아니 고 저야 아르바이트일 뿐인데요. 많이 판다고 제 월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괜찮습니다.”
‘확실히 이승이나 저승이나 아 르바이트 포지션은 다 비슷하구 나.’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강진의 말에 직원이 미소를 지 었다.
“사장님 생각나서 물건 몇 개 안 판 것뿐입니다.”
“그 돈으로 애들 저승 가서 따 뜻한 밥 한 끼 먹을 수 있으 니……
강진이 다시 깊이 고개를 숙였 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별거 아니래도요. 또 오세요.”
계산을 마친 강진은 물건이 담 긴 봉투를 들고 다시 이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