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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512화 (510/1,050)

512화

“옷으로…… 옷으로…… 기름때 를 지우려고 문지르는데…… 그 게…… 너무 안 지워지는 거야. 흑흑흑!”

눈물을 흘리는 최순심을 차달자 가 조심스레 안아주었다.

“형부도…… 알 거예요.”

“그걸…… 지워 줬어야 했는 데.”

최순심의 말에 차달자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런 최순심의 모 습에 장인영도 같이 울며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알 거예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얼마나 생 각하고 아끼고 사랑했는지.”

“할아버지가…… 알까?”

최순심의 말에 장병두가 급히 말했다.

“그럼 알지! 알고말고!”

그는 최순심의 앞에 서서 그녀

를 바라보며 외쳤다.

“사랑해!”

‘갑자기?’

강진이 장병두를 볼 때, 그가 소리쳤다.

“순심아! 나한테 미안해하지 마 라! 난 순심이 너하고 살아서 세 상에서 가장 행복했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 많이 받았다! 그러니 까! 울지 마라!”

그러고는 장병두가 더 큰 목소 리로 외쳤다.

“사랑한다, 순심아!”

장병두의 외침에 강진은 웃음이 나왔다. 웃음을 터뜨리면 안 되 는 상황임을 알고 있지만 장병두 의 뜬금없는 고백을 들으니 어쩐 지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슬쩍 자리에서 일 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숨을 크게 뱉으며 웃음을 토해낸 강진이 피식 웃었다.

“‘사랑한다, 순심아!’라…… 아 저씨 열정이 넘치시네.”

목소리가 커서 그런지 열정도 차고 넘치는 모양이었다.

편히 웃고 난 강진은 홀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며 미소 지었다.

처음에는 싫었다지만 지금은 할 머니도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할 아버지는 여전히 할머니를 사랑 하니 다행인 것이다.

‘주조장 어르신 생각이 나네.’

죽은 아내가 그리워서, 그녀가 만든 반찬을 먹지도 못하고 버리

지도 못하던 유대성이 생각이 나 는 것이다.

‘언제 한 번 인사드리러 가야겠 네.’

가게에서 막걸리를 팔기는 하지 만, 그건 신수귀가 떼어다 주는 것이었다.

나중에 인사드리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강진이 김을 꺼내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

“용수야, JS 깍두기 있……

말을 하며 배용수 쪽으로 고개

를 돌리던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 이 어렸다.

배용수가 등을 돌린 채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 있어?”

강진은 그가 보는 천장을 보았 다.

“기름때가 있네. 언제 청소 한 번 해야겠다.”

천장에 있는 검은 기름때를 본 강진이 중얼거리다가 배용수를 보았다.

그러고는 눈을 찡그렸다.

“너 우냐?”

천장 기름때를 보는 줄 알았는 데…… 배용수는 눈을 감은 채 작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 려는 것처럼 말이다.

“울기는……

“우는 것 같은데?”

“아니야.”

급히 눈가를 닦는 배용수를 보

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사실 배용수는 평소에도 피눈물 을 흘리는 상태였다. 눈과 콧구 멍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다.

“왜 그래?”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작게 한 숨을 쉬고는 말했다.

“기름때……

“기름때?”

“옷으로 지우려고 하는데…… 안 지워진다는 말이 갑자기 생각

이 나서.”

이야길 듣던 강진이 입맛을 다 시고는 배용수의 어깨를 토닥였 다. 그 손길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생각하니…… 이러 네.”

“귀신이 이리 마음이 약해서 어 쩌냐.”

“하아! 모르겠다.”

고개를 저은 배용수가 눈가를 마저 닦았다. 물론 눈에서 흐르

는 피눈물은 닦는다고 닦이는 것 은 아니지만…….

“근데 뭐라고?”

“됐어. 내가 할게.”

강진은 냉장고 한쪽에서 JS 김 치 중 깍두기를 꺼내서는 포장지 를 뜯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일회용 김치라 양이 많지는 않지만, 이걸로 김 밥 몇 줄은 만들 수 있을 것 같 았다.

김에 밥을 올리고 김치와 잘게

썬 깍두기를 올린 강진이 설탕을 톡톡톡 넣었다.

강진은 손으로 김밥을 말면서, 눈으론 배용수를 보고는 말했다.

“모셔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작게 숨 을 고르고는 홀에서 장병두를 데 리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드시고 싶어 하시던 김치김밥 입니다.”

강진이 김밥을 건네자 장병두가 그것을 손으로 들었다. 자르지

않은 김밥을 든 장병두가 그것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김밥을 씹어 먹던 장병두가 미소를 지었다.

“너무…… 맛있네요.”

“그래도 아내분이 해 주신 것에 는 못 미치죠?”

강진이 묻자 장병두가 웃었다.

“우리 이쁜이가 한 것에 어떻게 비하겠습니까. 우리 이쁜이 음식 은 제 입에는 세상에서 가장 맛 있는 음식인 것을요.”

“그건 그렇죠.”

사랑하는 사람이 해 준 음식이 라면 라면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 는 음식으로 변하니 말이다.

장병두는 먹고 있던 김밥을 들 어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사장님의 김밥도 맛있 습니다.”

장병두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으며 냉장고에서 JS 사이다를 꺼 내 내밀었다.

따악!

강진이 뚜껑을 따 주자, 장병두 가 웃으며 그것을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고는 장병두가 잠시 숨을 고르나 싶더니 입을 벌렸다.

“커어어억!”

이전에 장병두가 말했던 것처 럼, 단전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듯한 용트림을 내뱉음과 동시에 그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졌 다.

‘승……

화아악!

그런데 빛이 다시 사라졌다.

“ 천?”

승천을 할 것처럼 빛이 나오다 가 다시 사라지고 장병두가 그대 로 있자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어라‘?”

강진이 당황스러운 듯 그를 볼 때, 배용수도 놀란 듯 장병두를 보았다.

“방금 아저씨…… 승천하려던 것 아니었어요?”

강진만 본 것이 아니라 배용수 도 본 것이다. 둘이 놀라 묻자 장병두가 웃었다.

“이거, 또 끌려갈 뻔했군요.”

어또?하

강진이 무슨 말인가 싶어 볼 때, 장병두가 웃으며 말했다.

“십 년 전인가?”

잠시 옛 기억을 더듬던 장병두

가 말을 이었다.

“제 납골당에 아내가 혼자 온 적이 있어요. 그때는 그런대로 몸이 움직일 만해서 혼자 차 타 고 왔었는데…… 제 유골함 앞에 서 아까 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 를 하더군요.”

장병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 다.

“나를 처음 봤을 때 웃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아빠한테 나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해 달라 고 한 것이 미안하다고……

“할머니는 그게 많이 걸리셨나 보네요.”

“그리고…… 저보고 ‘사랑해요, 여보.’ 하더군요.”

“아……

“그 말 들은 순간…… 승천을 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안 가시고 여기 계세요?”

“하하하! 우리 이쁜이 두고 제 가 가기를 어떻게 갑니까. 그래 서 버텼죠.”

강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 다.

“승천이…… 버틴다고 버텨져 요?”

“한이라든가 마음의 짐이 있으 면 귀신이 되잖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이쁜이한테 집중을 막 하면서 집착을 하니 남게 되더군 요. 하하하!”

장병두의 말에 강진이 황당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배용수를 보

았다.

“너 이런 것 본 적 있어?”

“없지. 승천을 거부하는 귀신이 어디 있어?”

배용수도 황당하다는 듯 말하자 장병두가 웃으며 김밥을 다시 먹 고는 홀을 보았다.

“저도 승천은 하고 싶은데…… 내 걱정이 있어요.”

“걱정요?”

“우리 마누라 나한테 미안하다

고 귀신이 될까 봐서요.”

“아……

“그래서 우리 이쁜이 죽으면 내 가 기다리고 있다가 손잡고 같이 가려고 합니다.”

장병두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닐 텐데요.”

최순심이 죽고 만난다 해도, 최 순심만 승천을 할 수도 있다. 같 이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장병두는 김밥을 먹고는 홀을 보았다.

“내가 가는 것을 먼저 보여줬으 니…… 우리 이쁜이 먼저 가는 것 보고 가도 상관없습니다.”

장병두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장병두는 자신이 남게 되더라도 최순심이 잘 가는 것을 보고 난 이후에나 갈 생각인 것 이다.

그것이 최순심을 대하는 장병두

의 사랑이었다.

“다음에 또 오세요.”

강진이 배웅하자 최순심이 손을 흔들었다.

“잘 먹고 가요.”

“언니, 다음에는 시간 맞춰서 같이 가요.”

차달자의 말에 최순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음에 시간 맞춰서 같

이 가자.”

“ 연락할게요.”

“그래.”

최순심과 장인영이 탄 택시가 출발을 했다. 그 택시 트렁크에 올라타 있던 장병두가 강진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 김밥 잘 먹고 갑니다! 하 하하!”

크게 웃으며 멀어지는 장병두의 모습에 강진이 웃다가 차달자를 보았다.

“혹시 승천 거부하는 귀신 본 적 있으세요?”

“어떤 귀신이 승천을 거부해 요?”

차달자도 그런 것을 본 적 없는 지 의아해하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사랑에 앞뒤 구분 못 하는 것 은 사람이고 귀신이고 똑같더라 고요.”

“설마 장병두 씨가?”

강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멀어지는 택시를 보았다.

‘나중에…… 할머니 돌아가셔서 할아버지 보게 되면…… 그때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환한 얼굴로 미소 지어 주세요.’

강진이 저녁 장사를 마무리하고 홀을 정리하고 있을 때, 가게 문 이 흔들렸다.

띠링! 덜컥!

잠긴 문을 누군가 흔드는 것에 강진이 귀신들을 보았다. 그러자 귀신들이 서둘러 그릇들을 쟁반 에 담아 들고는 주방으로 들어갔 다.

귀신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가자 강진이 문을 열었다.

띠링!

문을 연 강진은 반가운 얼굴로 상대를 맞이하며 고개를 숙였다.

“오셨어요?”

강진의 인사에 중년의 남자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초대하신 게 좀 됐는데 늦어서 미안합니다.”

“바쁘시니까요.”

강진이 웃으며 중년 남자를 보 았다. 그는 호텔 한식당 셰프, 이 진웅이었다.

“들어오세요.”

강진은 가게로 들어가는 이진웅 의 뒤를 따라가던 아이 귀신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강진의 손길에 아이 귀신, 이소 연이 흠칫 놀란 듯 그를 보았다.

“진짜 귀신을 보시네요?”

배용수에게 들은 듯 자신을 보 는 이소연에게 작게 웃어 준 강 진은 뒤를 보았다.

이소연의 뒤에는 서른 정도 되 어 보이는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 다.

그는 이진웅의 일행인 것 같았 다.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 자 강진이 문을 닫고는 말했다.

“저녁 영업 방금 끝나서 잠시만 앉아 계세요. 금방 정리하겠습니 다.”

“천천히 하십시오.”

이진웅이 남자와 함께 자리에 앉자, 강진이 이소연의 손을 슬 며시 잡았다.

강진의 손길에 이소연이 그를 빤히 보았다.

그에 검지를 들어 입가에 가져 다 댄 강진은 이소연의 손을 잡 고는 주방에 들어갔다.

“용수야, 누가 왔게?”

주방을 정리하고 있던 배용수는 이소연을 보고는 살짝 놀란 듯하 다가 미소를 지으며 한쪽 무릎을 굽혔다.

“우리 예쁜 소연이 왔구나.”

“용수 삼촌!”

배용수의 목에 팔을 두르는 이 소연의 모습을 보던 강진이 말했 다.

“이진웅 숙수님 왔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홀 정리해. 내가 소연이 음식 좀 만들어 줄게.”

그러고는 배용수가 이소연을 보 았다.

“삼촌이 우리 소연이 오면 주려 고 김밥하고 라면 준비해 놨어.”

“김밥은 나도 자주 먹어.”

“자주 먹어?”

“아빠가 아침마다 김밥 만들어

서 같이 먹어.”

“같이?”

“응. 아빠가 나 먹으라고 아침 마다 김밥 싸 줘.”

“아……

이소연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딸이 김밥을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아침마다 만들어 주 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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