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화
강진이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뒤를 바라보고 있자, 유훈이 의 아한 듯 말을 걸었다.
“이강진 씨?”
“아…… 네.”
“누구 아시는 분이라도 보셨어 요?”
유훈이 뒤를 돌아보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네.”
강진의 말에 유훈이 태블릿으로 그의 차트를 보고는 말했다.
“전에 한 번 추나 받으셨네요?”
“네.”
태블릿에 있는 강진의 기록을 확인한 유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단한 교정 스트레칭을 먼저 하고 추나 하겠습니다.”
유훈은 요가 매트에 강진을 눕 히고는 스트레칭을 도와주었다.
스트레칭을 하는 와중에 강진은 힐끗 옆을 보았다. 여자 귀신은 아직도 다가오고 있었다.
‘천천히 오는 것이 이렇게 무섭 게 보일 줄은 처음 알'았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유훈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스트레칭이 기는 하지만, 평소 움직이는 각 도보다 조금 더 움직여야 하다 보니 유훈의 도움이 있어야 했 다.
“끄응! 끄응!”
강진이 동작을 하면, 유훈이 살 짝 힘을 주어 당기거나 밀면서 스트레칭을 도와주었다.
그런 유훈의 손길에 몸이 풀리 는 것을 느끼며, 강진이 슬쩍 눈 을 떴다.
다가오던 여자 귀신은 살짝 고 개를 숙인 채 멈춰 있었다.
마치 더 다가올 수 없다는 듯 말이다.
‘왜 안 오지?’
멀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깝다 고도 할 수 없는 거리였다. 그에 강진이 의아하게 여자 귀신을 볼 때, 그녀는 강진을 보더니 흠칫 놀랬다.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마치 자신의 모습 이 부끄럽다는 듯 말이다.
그 모습에 강진이 눈을 찡그렸 다.
‘내가 누군지 아시는구나.’
저승식당 주인에게는 고유의 기
운이 있다. 그래서 귀신들은 저 승식당 주인을 알아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승 식당에 와 본 귀신들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귀신들은 모른다.
귀신들도 자신들이 보고 배운 것만 알지, 못 보고 모르는 것은 말 그대로 모르는 것이다.
그녀는 강진이 어떤 존재인지 알았다. 그래서 더 다가오지 못 하고 몸을 돌린 것이다. 자신의 모습이 무섭다는 것 또한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에 강진이 배용수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 시선에 배용수가 고 개를 끄덕이고는 여자 귀신에게 다가갔다.
“몸에 긴장 푸세요.”
강진은 배용수에게 신호를 주느 라 약간 경직되었던 몸을 천천히 풀었다.
그러자 유훈이 천천히 강진의 몸을 좌우로 꺾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쟤는 아가씨
보다 더 무섭게 생긴 귀신들하고 도 친하게 지내요.”
배용수가 여자 귀신을 다독이려 고 하는 말을 들으며 강진은 속 으로 중얼거렸다.
‘거기서 왜 아가씨보다 더 무섭 게 생긴 귀신이란 말을 해. 그냥 귀신하고 친하게 지낸다고 하지.’
여자 귀신을 안심을 시키려고 한 말이겠지만, 그녀가 무섭게 생기기는 했다는 의미가 담긴 말 이기도 한 것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여 자 귀신이 비틀거리며 몸을 돌려 강진을 보았다.
강진이 먼저 작게 미소를 지으 며 눈인사를 하자, 여자 귀신도 고개를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크…… 으으윽! 아…… 안 녕……. 아아아아. 세…… 쓰스 스…… 요……
몸이 굳어지는 병이라더니 성대 와 입도 굳었는지 여자 귀신은 말을 하는 것도 무척 힘들어 보 였다.
여자 귀신의 목소리를 들은 강 진은 절로 움찔거렸다. 정말 공 포 영화에서 나올 것만 같은 그 런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진은 그녀가 무섭 다기보다는 안쓰럽고 가엽다고 생각했다.
‘많이 고통스러웠을 텐데.’
귀신이 되어서조차 저럴 정도면 살았을 때는 얼마나 힘들고 고통 스러웠을지, 강진은 상상할 수조 차 없었다.
스윽!
그러고는 강진이 유훈을 보았 다.
‘연인이었습니까? 아니면…… 아내?’
승천도 하지 못한 채 저렇게 고 통스러운 모습으로 유훈의 곁에 있는 여자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리고 그건 허연욱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부탁을 했을 테고 말이다.
이 안쓰러운 사람을 도와달라고
말이다.
‘선생님도…… 너무 착하시네.’
자기도 승천을 못 하면서 다른 귀신을 돕고 싶어 하니 말이다.
“생각할 것이 많으신가요?”
“네?”
“몸이 편안해도 마음이 불편하 면 몸이 경직되는 법이라서요.”
“아......" 네.”
“그냥 몸을 편안히 하시고 생각 도 되도록 하지 마세요. 명상까
지는 아니더라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멍한 시간도 현대인에 게는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편하게, 그냥 편하게 계세요.”
그에 강진이 여자 귀신에게 작 게 고개를 숙이고는 눈을 감았 다. 일단 유훈의 말대로 생각을 끊고 그의 손에 몸을 맡겼다.
우두둑! 우두둑!
강진은 발가락에서도 소리가 나 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유훈 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발가락에 서 소리가 났다.
‘허 선생님이 추천하실 만하네.’
전에 받았던 추나 선생님도 확 실히 잘하고 시원하게 해 줬지 만…… 유훈의 추나는 더 시원했 다. 뼈 소리가 나도 통증 없이 시원했다.
원승환의 세신과 마사지가 온몸 의 피로함을 풀어 버린다면, 유 훈의 추나는 근육을 풀고 뼈마디
에 활력을 주는 느낌이었다.
편안함은 원승환의 세신이 좋 고, 몸에 활력이 도는 것은 유훈 의 추나가 좋았다.
둘의 스타일이 정반대이기는 하 지만 받고 나면 기분이 무척 좋 다는 것은 같았다.
기분 좋은 얼굴로 있는 강진을 보며 유훈이 말했다.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진의 말에 유훈이 태블릿을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그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 케어 를 더 해 주고 싶지만, 예약 손 님들이 있어서 곧장 다음 손님을 맞이하러 가야 했다.
침대에서 나온 강진이 신발을 신고는 목을 비틀었다.
평소라면 우두둑 소리가 날 만 도 한데 추나를 받아서인지 부드 럽게 고개가 돌아갔다.
‘확실히…… 좋네.’
몸에 활력이 도는 듯한 기분에 미소를 짓던 강진은 베드 앞에 놓인 의자에 배용수가 여자 귀신 과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 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돌려 유훈 이 간 곳을 보았다.
유훈은 치료실 입구에서 태블릿 을 보며 다른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쁘시 네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다 른 환자를 맞이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유훈을 보던 강진은 다시 여자 귀신을 보았다. 배용수와 뭔가 이야기를 하던 그녀는 자신을 보 고 있었다.
그 시선에 강진이 웃으며 슬며 시 옆에 앉았다.
“아……
강진이 앉자 여자 귀신은 슬그 머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최
대한 얼굴을 가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강진의 인사에 여자 귀신이 작 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동작도 힘든지 움직임이 툭툭 끊 어졌다.
“저는 저승식당이라고 귀신분들 을 위한 식당을 하는 이강진입니 다.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강진이 밝게 인사하자 여자 귀 신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조
금은 시간이 걸리게 고개를 돌린 여자 귀신이 자신을 보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제가 무섭게 생겼나 요?”
여자 귀신이 의아하다는 듯 보 자, 강진이 말을 덧붙였다.
“자꾸 저를 안 보셔서요.”
그러고는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 다.
“내가 무섭게 생겼어?”
“아니…… 너는 그냥 못생겼 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 그렸다.
“너 거울은 보냐? 누구보고 못 생겼대?”
“귀신이 거울에 비치는 것 봤 냐?”
“아, 그래서 제 주제를 모르는 구나.”
“그럼 거울 보는 너는 주제를 알고? 전혀 아닌 거 같은데.”
두 남자가 만담하듯이 하는 말 에 여자 귀신이 피식 웃었다. 물 론 그 웃는 모습이 조금은 더 무 섭지만 말이다.
어쨌든 웃는 여자 귀신을 보며 강진이 배용수에게 눈을 찡긋하 자, 배용수가 엄지를 세웠다.
‘잘 했어.’
‘후! 이 정도쯤이야.’
“그런데 성함이?”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 가장 우선되는 것이 서로의 이름
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귀신과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강진은 귀 신이든 사람이든 만나게 되면 서 로 이름을 나누었다.
“이…… 임…… 지…… 으…… 은…… 입……
“임지은 씨구나. 만나서 반갑습 니다.”
“아…… 느…… 네.”
입이 잘 움직이지 않아서 발음 이 다소 뭉개졌지만, 귀를 기울
이면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 었다.
임지은을 보던 강진이 물었다.
“혹시 돌아가실 때 나이가 어떻 게 되세요?”
“스물여섯입니다.”
귀를 기울이며 임지은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러시구나. 저는 올해 29살입 니다.”
“네.”
그러고 임지은이 입을 다물자, 강진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냈 다.
“이거 하나 드시겠어요?”
“사탕을요?”
“귀신이 먹는 사탕이라 맛이 좋 습니다.”
강진은 여자 귀신을 만나면 주 려고 사탕을 가져왔다.
다른 음식이나 음료를 가져올
수도 있었지만, 몸이 굳어 고통 스러운 상태라면 음식을 먹는 게 힘들 터이니 사탕을 챙긴 것이었 다.
사탕은 빨아 먹으면 되고, 사람 들의 눈을 피해서 먹기도 좋으니 말이다.
“저는…… 음식을 먹기가…… 불편해요.”
임지은의 반응을 예상했던 강진 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그냥 입에 넣어서 빨아
드시면 되는 거라 먹기 안 불편 하실 겁니다.”
“저는......"
임지은이 불편한 얼굴로 사탕을 보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 했다.
“혹시 복숭아 좋아하세요?”
“좋아……했어요.”
“그럼 저 믿고 입에 살짝 넣어 만 보시겠어요?”
임지은이 보자 강진이 말을 덧
붙였다.
“이건…… 정말 행복한 맛입니 다.”
강진의 말에 임지은이 그의 손 에 들린 사탕을 보았다. 병이 심 했을 때에는 물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음식에 대한 두 려움이 있었다. 여전히 망설이는 임지은을 보며 강진이 사탕을 조 심스레 내밀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세요. 귀
신은 통증을 느끼지 않아요.”
배용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 왔다.
“저를 보세요.”
그는 고개를 돌리기 힘든 임지 은을 위해 일부러 강진의 옆에 멈춰 섰다.
임지은의 앞에 모습을 보인 배 용수가 자신의 얼굴에 홀러내리 는 피를 손으로 만졌다.
“ O ”
그 모습에 임지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도 무서운 얼굴이 지만, 피를 철철 홀리는 배용수 의 모습도 무척 무서운 것이다.
“이렇게 보여도 안 아파요.”
배용수의 말에 임지은이 잠시 있다가 말했다.
“저는…… 아파요.”
임지은의 말에 배용수가 그녀를 보다가 강진을 보았다.
강진이나 배용수나 귀신이 아프 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몇
년을 고통스럽게 병에 시달린 임 지은은 그 고통을 잊을 수가 없 는 것이다.
그런 임지은을 보며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지은 씨가 음식을 먹기 좀 불 편하실 거 같아서 시작을 사탕으 로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 직 좀 어려운 모양이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강진은 웃으며 사탕을 주머니에
넣었다.
‘천천히 하자. 천천히……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임지은 을 보았다. 그에 임지은이 물끄 러미 시선을 맞추자, 강진이 웃 으며 말했다.
“저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 없으 세요?”
“이 야기?”
“귀신분들은 보통 저를 보면 이 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거 든요.”
강진이 운을 뗐지만, 임지은은 그저 말없이 그를 볼 뿐이었다.
사실 임지은은 강진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웠 다. 말을 하려면 입을 벌려야 하 는데, 그 작은 움직임조차 힘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