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화
토요일 점심 장사를 마친 강진 은 차달자에게 가게를 부탁하고 는 병원에 가고 있었다.
유훈에게 식당에 오라고 한 번 더 권유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와야 임지은이 가게에 와서 밥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귀신들은 배가 늘 고프다. 그런 데 임지은은 살았을 때도 배가 고팠다.
사탕조차도 목에 걸려 죽을까 봐 먹지 못했던 임지은이니 다른 음식은 쳐다보지도 못했을 터였 다.
강진은 배고픔이라는 것이 얼마 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었다. 돈이 없어 본의 아니게 간헐적 다이어트를 하며 1일 1식만 한 적도 있고, 라면 하나를 반으로 쪼개 끓여 먹은 적도 있다.
그래서 배고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외로운 지 알고 있었다.
물론 강진은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주는 사람이 없어서 느낀 외로움이 더 컸지만 말이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운 강진 이 뒷좌석에서 쇼핑백을 꺼냈다. 쇼핑백에는 임지은을 주려고 만 든 도시락이 있었다.
그것을 챙긴 강진은 걸음을 옮 기다가 고개를 돌렸다.
지하 주차장에 택시가 들어오더 니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멈췄다.
곧 택시기사가 내리더니 트렁크
에서 휠체어를 꺼냈다. 그 사이 뒷좌석에서 남자 한 명이 내려서 는 차에서 노인을 부축해 내렸 다.
두 사람이 할머니를 부축해 휠 체어에 앉히는 모습을 보던 강진 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아직은 괜찮은 세상이 야.’
지하 주차장까지 들어와서 이렇 게 휠체어까지 내려주고 도와주 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그들 에게 다가갔다.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타려는 택시기사에게 강진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강진의 인사에 한 육십 대 정도 되어 보이는 택시기사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웃으며 차에 타려는 기사에게 강진이 말을 걸었다.
“몸 불편하신 분들 태우시는 분 맞으시죠?”
강진의 물음에 택시기사가 강진 을 보았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 있 으면 여기에 연락하세요.”
그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친절한 발이 되겠습니다.
천사족 (天使足)〉
“천사족?”
“하하. 천사의 발이라는 뜻입니 다. 이름 촌스럽죠?”
“아니요.”
택시기사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 다.
“휠체어를 타시거나 거동이 불 편하신 분들에게는 추가 요금을
받지 않고 모셔다드리니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 전화 주세요.”
기사가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 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좋은 일 하십니다.”
“아이고! 그런 말씀 마세요. 저 희보다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웃으며 차에 타려는 기사에게 강진이 명함을 내밀었다.
“저기.”
기사는 의아한 듯 그를 보다가 명함을 받았다.
“한끼식당? 식당 하시나요?”
“네. 괜찮으시다면 언제든 한 번 찾아와 주세요. 제가 최고의 음식으로 접대해 드리겠습니다.”
“식사 초대요?”
“제가 아는 할머니 한 분이…… 아! 최순심 할머니라고 아세요?”
“아! 알지요.”
“그분한테 이런 좋은 일 해 주
시는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 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좋은 일 하시는 분들에게 식사라도 대접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거든 요.”
“이거 알아주시니 기분이 좋네 요.”
기사님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 주시고 한 번 찾아주세 요.”
“저처럼 봉사하는 기사님들 많
아요.”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이야 많으 면 좋지요. 저희 가게가 삼십 명 가량 수용 가능하니 언제든 한 번 와 주세요. 꼭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하하하! 말만이라도 기분이 좋 습니다.”
택시기사는 차에 타며 강진이 준 명함을 가볍게 툭 쳤다.
탓!
“오늘 사장님 덕에 기분 좋게
시작합니다.”
“저도 좋은 일 하시는 분 뵈어 서 기분이 좋습니다. 언제든지 편히 오세요.”
“하하하! 말이라도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웃으며 기사님이 손을 흔들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부릉!
택시가 멀어져 가는 것을 보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살기 좋은 세상이다.”
그러던 중, 택시 운전석 쪽 창 문에서 손이 나오더니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었다.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드는 강진 을 보던 배용수가 말했다.
“기분 좋아 보이네?”
“VIP를 봤는데 기분이 좋지.”
“VIP?”
“내 시간을 써서 남을 돕는 사
람들이 VIP 아니겠어?”
강진은 손을 내리며 배용수를 보았다.
“강두치 씨가 왜 VIP 보면 좋 아하는지 알 것 같아.”
“왜?’’
“나쁜 놈 보면 기분이 드럽지 만, 착한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 잖아. 그래서 강두치 씨가 VIP를 보면 좋아하시던 게 이해가 가.”
지하 주차장을 나가는 택시를 보던 강진이 웃었다.
“가자!”
착한 사람을 봐서 그런지 마음 이 많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 진 강진이 건물 안쪽으로 향했 다.
추나를 받는 곳에 도착한 강진 은 안을 둘러보았다. 토요일 주 말이기는 하지만 추나를 받는 곳 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스트레칭을 하는 환자들과 그들 을 진료하는 선생님들을 보던 강
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지은 씨 어디에 있나 좀 찾아 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안으로 들어가서는 커튼에 머리를 들이 밀었다.
스륵! 스륵!
배용수는 커튼을 뚫고 들어갔다 가 나오길 반복했다.
“지은 씨 여기 계셨구나. 강진 이하고 지은 씨 보러 왔어요. 나 오세요.”
배용수의 말에 커튼을 뚫고 임 지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임지은이 살짝 웃으며 하는 인 사에 강진이 슬며시 주위를 보고 는 고개를 숙였다.
“잠시 이쪽으로.”
강진은 슬며시 진료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호령이 대상으 로부터 떨어질 수 있는 거리는 15미터 정도였으니, 그를 의식해 서 움직였다.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배용수의 말에 임지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느리지만 걸을 수 있으니…… 걸어야죠.”
임지은의 말에 강진이 힐끗 그 녀를 보았다.
‘원래 자존감이 강한 스타일이 구나.’
남에게 도움을 받기보다는 자기 가 알아서 하는 스타일인 것 같 았다.
천천히 임지은이 걸어오는 모습 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처음 에는 진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 지만, 어제 보고 오늘 보니 오줌 을 지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말하는 것이 조금 부드러워졌 네.’
어제는 많이 더듬거리고 딱딱 끊어졌는데 오늘은 좀 부드럽게 말하고 있었다.
‘사탕을 먹어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던 강 진은 임지은을 보았다.
임지은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 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임지은 이 앞에 멈춰 서자 강진이 미소 지었다.
“고생하셨어요.”
“아니에요. 이렇게라도 걸을 수 있으니 다행인걸요.”
싱긋 웃는 임지은을 보며 강진 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쇼핑백을 들었다.
“제가 음식을 좀 만들어 왔어 요.”
“음식을?”
“어제 사탕 맛있게 드셨잖아 요.”
강진의 말에 임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은 한 단계 업그레 이드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먹으면 냄
새가 날 텐데.”
“그럴 줄 알고 냄새 많이 안 나 는 걸로 가져 왔어요.”
“아무리 그래도…… 괜찮을까 요? 여기 병원인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임지은을 보며 강진이 웃었다.
“물론…… 안 되죠. 하지만 지 은 씨는 됩니다.”
“저요?”
“이미 죽었는데 산 사람의 법을 따를 필요는 없죠. 그리고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물론 강진도 조금 꺼려지는 것 이 있었다. 그래서 진료실 밖으 로 그녀를 데리고 나온 것이다.
아무래도 진료실보다는 병원 복 도가 양심에 가책이 덜 느껴지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냄새 안 나는 걸로 만들어 왔 으니 사람들 눈에만 안 보이면 괜찮을 겁니다.”
말을 하며 강진은 슬쩍 진료실
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대신…… 좀 불편하겠지만 숨 어서 드셔야 합니다.”
“숨어서요?”
“여기서 음식을 까면 사람들 눈 에 보이니까요.”
강진이 진료실 앞에 놓인 의자 를 가리켰다.
“저기 앉으실 수 있겠어요?”
강진의 말에 임지은이 천천히 의자 쪽에 가서 앉았다. 다행히 거기까지도 거리가 되는 모양이 었다.
임지은의 옆에 앉은 강진은 옆 으로 긴 쇼핑백을 그녀의 옆에 놓았다.
“지은 씨가 쇼핑백 안에 손 넣 어서 음식을 드세요. 아! 그리고 음식 드실 때는 최대한 고개를 숙이셔서 쇼핑백으로 가려서 드 셔야 합니다.”
학교 수업 시간에 몰래 과자를 먹는 것처럼 먹게 하려는 것이 다.
“불편하게 드시게 해서 죄송합 니다.”
강진의 말에 임지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 음식 먹게 해 주 려고 준비하신 거잖아요.”
그러고는 임지은이 쇼핑백을 좌 우로 벌렸다. 쇼핑백 안에는 반 찬이 담긴 통 두 개와 밥이 담긴
통이 하나 있었다.
임지은이 통들을 보자, 강진이 주위를 한 번 보고는 슬며시 손 을 넣었다.
달칵! 달칵! 달칵!
뚜껑을 연 강진이 손을 빼냈다. 그러자 쇼핑백 사이로 하얀 쌀밥 과 멸치볶음, 소시지와 계란말이, 그리고 김 튀김이 모습을 드러냈 다.
임지은이 음식을 보며 말을 잇 지 못하자, 강진이 말했다.
“혹시 마음에 안 드세요?”
“맛있어 보여요.”
임지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냄새가 많이 안 나는 걸로 골 라서요. 다음에 더 맛있는 걸로 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강진은 주위를 한 번 보고는 말 했다.
“드세요.”
강진의 말에 임지은이 숨을 한 번 고르고는 음식을 보았다. 살 아 있을 때의 기억 때문에 음식 에 대한 거부감이 있지만…… 어 제 사탕을 먹어서인지 처음처럼 심한 거부감은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른 임지은이 몸을 숙였다.
‘먹고 죽지는 않잖아.’
살았을 때야 목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이야 그런 것도 아니다.
먹고 죽기야 하겠냐는 생각을 하며 임지은이 천천히 몸을 숙여 쇼핑백에 얼굴을 대고는 손으로 계란말이를 집었다.
스윽!
계란말이가 손에 집히는 것에 임지은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하긴 귀신이 먹는 음식을 만드 는 분이 주신 건데…… 집을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임지은이 손 가락에 잡힌 계란말이를 손으로
눌렀다.
부드러운 계란말이의 감촉에 미 소를 지은 임지은이 그것을 한 입에 넣었다.
스륵!
입에 넣자마자 감도는 기름의 고소한 맛에 미소를 지으며 임지 은이 고개를 들었다.
계란말이를 입에 넣은 채 고개 를 든 임지은은 강진을 보며 천 천히 입을 움직였다.
스륵! 스륵!
입을 움직일 때마다 고소하면서 달콤함이 입안에 퍼졌다. 그리고 부드러우면서도 몽글몽글한 식감 에 임지은이 미소를 지었다.
만족스럽게 계란말이를 먹고 있 던 임지은은 돌연 눈물을 뚝뚝 흘렸다.
“흑! 너무…… 너무 맛있어 요……
그녀는 계란말이를 삼키곤 눈가 를 닦아낸 뒤 입을 열었다.
“이게…… 음식을 씹는다는
거…… 너무 기분 좋은 일이네 요. 씹으니 너무 좋아요.”
임지은의 말에 강진이 웃다가 말했다.
“저희 가게 오시면 물고 뜯고 맛보는 소갈비를 해 드릴게요.”
“소갈비요?”
“물고 뜯는 맛은 역시 갈비죠.”
강진의 말에 임지은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 물고 뜯고 싶네요.”
“제가 꼭 물고 뜯게 해 드릴게 요.”
강진은 말을 하며 진료실 쪽을 보았다. 활짝 열려 있는 문 너머 로 환자에게 스트레칭을 해 주고 있는 유훈이 보였다.
‘문제는 유훈을 어떻게 데리고 가느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