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523화 (521/1,050)

523화

“잘 왔어.”

임석신의 위로에 차달자가 그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좀…… 일찍 올 것을 그랬어 요.”

일찍 왔으면 살아 있는 임석신 을 봤을 테니 말이다.

차달자의 말에 임석신이 웃었 다.

“그러게. 좀 더 일찍 오지 그랬 어.”

“죄송해요.”

“됐어. 이렇게 봤으니 됐지.”

임석신은 시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가자.”

그런 임석신의 뒤를 따르던 차 달자가 슬며시 말했다.

“그런데 미선 언니는 여전하세 요?”

“왜, 맞을까 봐 겁나?”

“조금요.”

“미선이도 옛날이나 미선이지, 지금이야 다 늙은 할망구인데 무 섭기는 뭐가 무서워.”

“그래요?”

“예전 서문 식칼도 지금은 과도 지, 과도.”

앞에서 나누는 대화에 강진이 차연미를 보았다.

“서문 식칼요?”

“미선 이모가 닭 장사를 하거든 요. 그래서 이따만 한 식칼로 닭 을 탕탕! 내려치는데 그 박력이 어마어마해요. 그래서 별명이 서 문 식칼이에요.”

그러고는 차연미가 작게 속삭였 다.

“미선 이모가 속정이 깊은데 겉 으로는 무척 성격이 세거든요. 아마 엄마 지금 속으로 걱정 되 게 많이 할걸요?”

“혼날까 봐요?”

“등짝 몇 대 각오해야 할 거예 요.”

차연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귀신들 몇이 다가왔 다.

“아니, 이게 누구야! 연미 아 냐?!”

“변 어르신!”

귀신들이 다가와 차연미와 변대 두를 보고는 반갑게 말을 걸었 다.

“아이고! 차 씨, 오 씨 아니야!”

변대두가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에 두 남자 귀신이 웃으며 말 했다.

“하하하! 이게 대체 몇 년 만입 니까.”

“정말 오랜만이네요.”

두 남자 귀신은 변대두와 인사 를 나누다 차달자를 보았다.

“차 사장도 오랜만이네.”

귀신이 씁쓸하게 말을 거는 것 에 차달자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들 하셨어요?”

차달자가 못 들을 것이라고 생 각을 하면서도 인사를 했던 두 귀신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 다.

“뭐야? 우리가 보여?”

“네.”

“어떻게 우리가 다시 보이는 거 야? 그……

뭔가 생각을 하듯 눈을 찡그렸 던 귀신이 고개를 저었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나도 그…… 예전에 서문식당 몰래 보 러 왔을 때 우리 못 봤잖아.”

가게를 그만두고 서울에서 살던 차달자는 사람들 몰래 서문시장 에 왔던 적이 있었다. 가게가 걱 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두 귀신은 차달자를 봤었 는데, 정작 그녀는 그들을 보지 못했었다.

“지금은 볼 수 있어요.”

“뭐야? 그럼 다시 저승식당 하

는 거야?”

귀신의 말에 차달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은 아니고 여기 이강진 사 장님 저승식당에서 일하고 있어 요.”

차달자의 말에 귀신들이 그제야 강진을 보았다. 차달자를 보고 놀라 강진에게는 시선도 주지 못 했던 것이다.

“어? 저승식당 사장님이네?”

강진에게서 저승식당 사장의 기

운을 느낀 귀신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 다.

“서울에서 저승식당 운영하는 이강진입니다. 그리고 차 사장님 은 저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오……

귀신 둘은 호기심이 어린 눈으 로 그를 보았다. 다른 지역 저승 식당 사장은 처음 보는 것이다.

두 귀신이 강진을 신기하다는

듯 보자 변대두가 웃으며 말했 다.

“그렇게 보고만 있을 거야?”

“네?”

“가서 우리 차 사장 왔다고 소 문내야 할 거 아냐.”

“ 소문요?”

“그럼 이 반가운 얼굴을 자네들 만 볼 거야? 어서 가서 차 사장 아는 귀신들 불러 모으라고.”

그제야 귀신이 무슨 말인지 알

겠다는 둣 고개를 연신 끄덕였 다.

“아! 알겠습니다.”

귀신 둘은 서둘러 시장 쪽으로 뛰어갔다. 그런 귀신들을 보던 차달자가 입맛을 다셨다.

“제가 알던 귀신들이 아직도 꽤 있나 보네요.”

이곳을 떠나고 오랜 세월이 홀 렀음에도 아직 승천하지 못한 채 남은 귀신들이 있다는 것에 차달 자는 반가우면서도 씁쓸했다.

잠시 뛰어가는 귀신들을 보던 차달자가 강진을 보았다.

“사장님은 서문식당에 계시겠어 요?”

“같이 안 가시고요?”

“저는…… 언니들 좀 보고 갈게 요.”

“같이 안 가도 되시겠어요?”

“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서문식당에 서 기다리겠습니다.’’

강진의 답에 차달자가 시장 골 목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가시면 서문식당 나 와요. 모르시겠으면 용수 씨에게 물어보세요.”

저승식당에 가 본 적이 있는 귀 신들은, 다른 저승식당의 기운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강진이 답하자 차달자는 귀신들 을 데리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 뒷모습을 볼 때, 이호남이

말했다.

“이쪽 골목으로 가시다 보면 꽈 배기 집 있거든요? 그거 하나 드 셔 보세요. 아주 쫄깃하고 맛있 어요.”

곧장 차달자의 뒤를 쫓아가는 이호남을 보던 강진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왜 같이 안 움직이고 따로 가자고 하시는 거지?”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해되는데.”

“이해?”

“오랜 기간 떨어져 있던 지인들 을 만나는 거잖아. 그럼 할 이야 기도 많고, 감정도 격해질 거야.”

“우는 것 보여주기 싫으신가?”

“그런 것도 있지만…… 집중하 고 싶으신 거겠지. 아무래도 내 가 있으면 소개도 해야 하고 나 한테 신경도 써야 하니까.”

“아…… 그럴 수도 있겠네.”

배용수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차달자는 지인들과 이 야기를 나누는 사이 혼자 있어야 할 강진을 미리 배려한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며 골목 안으로 들어선 강진은 시장을 구경했다. 그러다 꽈배기를 파는 상점을 발 견하곤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여긴가 보다.”

귀신이자 요리사인 이호남이 맛 있다고 한 집인 만큼 강진도, 배 용수도 제법 기대를 한 상태였 다.

강진이 다가가자 가게 주인이 웃으며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꽈배기 드릴까 요?”

“네. 주세요.”

“몇 개 드리면 될까요?”

주인의 물음에 강진이 옆에 있 는 귀신들을 보았다. 여자 귀신 셋에 배용수 그리고 자신까지 다 섯이었다.

‘직원들 하나씩 먹고, 나는 직원 들이 먹은 걸 먹으면 되니 네 개

면 되겠다.’

“네 개 주세요.”

강진의 주문에 가게 주인은 꽈 배기를 꺼내 설탕을 한 번 더 뿌 려서는 종이봉투에 담아 주었다.

“이천 원입니다.”

돈을 낸 강진이 다시 골목을 따 라 걸으며 종이봉투를 앞으로 살 짝 내밀었다.

“하나씩 집으세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봉지에

손을 넣어 꽈배기를 집었다.

화아악! 화아악!

살짝 불투명한 꽈배기를 집어 든 귀신들이 그것을 입에 넣었 다.

“어! 맛있다.”

“진짜 맛있네요.”

“대박! 엄청 쫄깃해.”

귀신들의 말에 강진이 힐끗 꽈 배기 가게를 보고는 자신도 봉지 에 손을 넣었다.

귀신들이 꽈배기를 하나씩 집어 들었지만, 봉지 안에는 여전히 네 개 그대로 들어 있었다.

강진은 꽈배기를 하나 집어 들 곤 끝을 물었다.

"음......"

꽈배기를 맛본 강진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엄청 맛있네.”

“그러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쫄깃한 것이 떡 같다. 게다 가 설탕도 적당한 것 같고.”

배용수가 꽈배기를 씹으며 하는 말에 강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가게 주인이 설탕을 많이 뿌리는 것 같아서 달 것 같았는 데 생각보다 많이 달지 않았다.

게다가 설탕이 입에 씹히는 식 감도 좋았다.

“이야, 이거 레시피 배워서 네 가 하면 엄청 맛있겠는데.”

똑같은 레시피로 만든 음식이라 도 귀신에겐 저승식당 주인이 만 든 게 더 맛있으니 말이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힐끗 꽈 배기 가게 쪽을 보다가 말했다.

“음식 레시피야 음식 하는 사람 에게는 목숨 같은 건데 알려주겠 어?”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연히 안 알려주지.”

그러고는 배용수가 걸음을 옮기 며 말했다.

“몰래 알아내야지.”

“몰래?”

“이따가 내가 몰래 저 가게 가 서 꽈배기 만드는 것 좀 훔쳐봐 야겠어.”

“레시피를 훔치려고?”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나쁘게 말하면 훔치는 거지만, 배고픈 귀신에게 맛있는 꽈배기 를 먹이고 싶은 저승식당 직원의 마음이라 해야 하나.”

“근데…… 꽈배기 집에서 레시 피는 가게 밑천인데 그걸 훔치면 나쁜 짓 아냐?”

“나쁜 짓이기는 하겠지. 근데 꽈배기로 영업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끼리 먹는 건데……

말을 하던 배용수가 입맛을 다 셨다.

“돈 많이 깎일까?”

“깎이지 않을까? 요즘은 지적 저작권도 재산에 들어가니…… 저승에서도 크게 다룰 것 같은 데.”

이승의 법도를 따르는 저승 특 성상 꽈배기 레시피를 훔치는 것

도 지적 재산권 침해에 들어갈 것이었다. 그럼…… 당연히 처벌 될 테고 말이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아쉽다는 듯 꽈배기 가게를 보다가 말했 다.

“이따 집에 갈 때 좀 사라. 내 가 저녁에 현신해서 먹어보고 연 구해 볼 테니까.”

“먹어보는 것만으로 그게 돼?”

“백 프로 완벽하게 재현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

도는 흉내는 낼 수 있을 거야.”

“오! 요리사의 혀 대단한데.”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사한테 혓바닥이 가장 큰 재산이지.”

강진은 웃으며 꽈배기를 마저 입에 넣었다.

“식감 진짜 좋네. 뭘 넣은 거 지?”

“재료가 특별할 수도 있고, 튀

기는 방법이 특별할 수도 있 고…… 일단 현신해서 다시 먹어 봐야 알겠어.”

꽈배기를 보던 배용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특식 먹은 기분이네. 맛있다.”

오랜만에 자신이 모르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기분이 좋은 모양 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맛있는 꽈배기에 기분이 좋아진 귀신들과 강진은

걸음을 옮겼다.

“저쪽이다.”

배용수가 한쪽을 가리키는 것에 강진이 그쪽을 보았다. 그곳엔 서문식당이라 써진 간판이 달린 식당이 있었다.

식당 자체가 그리 크지는 않았 고, 강진의 건물처럼 서문식당 건물 역시 2층으로 이뤄져 있었 다.

식당 앞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있었는데, 거기서 부글부글 붉은

국이 끓고 있었다.

“육개장인가?”

강진이 가마솥을 볼 때, 서문식 당 문이 열리며 젊은 남자가 나 왔다.

머리를 노란색으로 탈색한 젊은 남자는 들고 있던 국자를 가마솥 에 넣으려다 강진을 보고는 멈춰 섰다.

아니, 정확히는 강진의 옆에 있 는 귀신들을 보았다.

‘못 보던 귀신들이네?’

남자는 귀신들을 보다가 그릇에 국을 담아서는 가게 안으로 들어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진이 중 얼거렸다.

“어려 보이네.”

“너보다 어린 것 같은데? 군대 는 다녀왔나?”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가 게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 다.

“어서 오……

주인 청년이 인사를 하다가 강 진의 뒤를 따라온 귀신들을 보고 는 눈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청년은 강 진에게 웃으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빈자리 아무 곳 이나 앉으시겠어요?”

청년의 말에 강진이 주위를 보 았다.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바 글바글했다.

강진이 가게를 둘러보는 사이, 주인 청년이 배용수와 귀신들에

게 작게 속삭였다.

“지금 사람 손님 받는 시간이라 저녁에 다시 오시겠어요?”

“네?”

“귀신이 가게에 있으면 손님들 이 불편해하세요. 죄송합니다. 제 가 저녁에 서비스 많이 드릴게 요.”

주인 청년의 작은 속삭임에 강 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그가 무얼 걱정하는지 가장 잘 아는 것이 다름 아닌 본인이니 말이

다.

강진은 청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와 같이 왔습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서울 저승식 당 사장인 이강진입니다.”

강진의 인사에 얼떨떨해하던 청 년이 웃으며 마주 인사했다.

“이거…… 만나서 반갑습니다. 충청도 저승식당 주인, 김대현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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