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화
마요네즈 라면을 다 먹은 사람 들은 술을 더 마셨다.
“마요네즈를 넣었는데 생각보다 느끼하지도 않고 고소하고…… 개운한 것도 같습니다.”
원승환의 말에 황민성도 신기하 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동안 라면을 수도 없이 먹어 봤지만, 마요네즈를 넣어 먹는 라면은 처음입니다.”
강진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의 반응에 유 훈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제 여자친구가 이렇게 처 음 내 놨을 때는 인상을 썼었습 니다. 이 여자가 또 음식으로 쓰 레기를 만들었구나, 했거든요.”
“아니, 어떻게 내 음식을 쓰레 기와 비교를 해?”
옆에 있던 임지은이 투덜거리자 강진이 그녀를 슬쩍 보며 웃었 다.
‘아무리 지은 씨가 만든 음식이 라도 맛이 없으면 손을 대지 않 는다고 하셨지.’
보통 여자친구가 만들어 주면 맛이 없어도 그 성의와 후환을 생각해서 일단은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유훈은 입에 대지 않았 고, 결국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어쨌든 임지은이 투덜거릴 때, 유훈이 말했다.
“저도 처음에는 느끼할 줄 알았
는데 오히려 개운한 맛도 있고 고소해서 놀랐습니다.”
“마요네즈에 들어 있는 식초 때 문에 개운한 맛이 나는 걸 거야. 국에 식초를 넣으면 한결 깊은 맛과 개운한 맛이 나는 것처럼 말이야.”
배용수의 말을 들은 강진이 슬 며시 말했다.
“마요네즈에 들어간 식초 때문 에 느끼한 맛이 잡혀서 그럴 거 예요.”
자신의 말을 따라 하는 강진의 모습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한편 그 사정을 모르는 황민성 은 웃으며 말했다.
“역시 요리하는 사람이라 음식 에 대해 잘 아네.”
“하지만 저도 마요네즈 라면은 충격이었어요. 역시 세상에는 신 기한 음식들이 참 많은 것 같아 요.”
이야기를 나누며 기분 좋게 술 을 마실 때, 원승환이 문득 몸을
떨었다.
“갑자기 좀 추워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유훈도 슬며시 손으로 팔뚝을 문질렀다.
“저도 좀 한기가 드는군요.”
유훈의 말에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고개 를 끄덕였다.
곧 저승식당 오픈할 시간이라 밖에 귀신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게 안에 귀기가 모이 기 시작했고, 황민성과 강진을 제외한 일반인들이 한기를 느끼 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말했다.
“요즘 저녁에는 좀 춥더라고 요.”
“하긴, 요즘 아침에는 덥고 저 녁에는 춥죠.”
유훈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 이 말했다.
“이렇게 된 거 2층 제 집에서
편하게 술 좀 더 하시죠. 보일러 틀면 따뜻해요.”
“그거 좋네.”
황민성이 유훈을 보았다.
“이렇게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 런데…… 남자들끼리 편하게 소 주 한 잔 더 하시죠.”
황민성이 권유하자 유훈이 시간 을 보았다. 아직 늦은 시간은 아 니지만…… 고민하던 그는 탁자 를 보았다.
탁자에는 빈 소주병과 맥주들이
열댓 병 놓여 있었다.
강진의 계획대로 많은 양의 소 주를 마신 유훈이었지만, 그는 얼굴이 붉어진 것 외에 비교적 멀쩡한 모습이었다.
“지금도 많이 먹은 것 같은데.”
“형님, 한 잔 더 하시죠.”
황민성이 갑자기 형님이라고 부 르자, 유훈이 그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형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뺄 수가 없군요. 그럼 그러죠.”
그에 황민성이 웃으며 강진을 보았다.
“2층에 뭐 먹을 것 있어?”
“여기서 만들어서 올려 드릴게 요.”
“아니야. 요리 말고 간단하게 먹자고.”
그러고는 황민성이 물었다.
“이 오징어채하고 소시지, 더 있어?”
“소시지요?”
“아니면 줄줄이 소시지 있으면 그냥 그거나 줘.”
“그럼 구워서……
“아니. 그냥 줘. 남자끼리 술 먹 는데 안주 준비해서 먹을 필요 있나. 그냥 먹으면 돼.”
황민성이 냉장고를 열며 말했 다.
“봉지나 몇 개 줘.”
강진이 주방에서 비닐봉지를 가 져다주자 황민성이 냉장고에서 소주와 맥주, 그리고 음료수들을
봉지에 넣었다.
그 사이 강진은 오징어채와 멸 치볶음, 그리고 줄줄이 비엔나와 라면을 챙겨 황민성에게 건넸다.
“라면 부셔서 드세요.”
황민성은 웃으며 라면을 보았 다.
“라면 부셔서 스프에 찍어 먹으 면 소주 안주로 좋지. 그럼 수고 해.”
말을 하며 황민성이 2층 계단으 로 향하자 원승환이 그 뒤를 따
르다가 강진을 보았다.
“사장님은?”
“형 동생 하기로 했는데 사장님 이에요?”
“아…… 그래. 강진이는 안 올 라가?”
“저는 11시에 예약을 받은 것이 있어서요. 그거 하고 올라갈게 요.”
그러고는 강진이 유훈을 보았 다.
“편하게 드시고, 혹시 취기 올 라오시면 그냥 여기서 주무시고 가세요.”
강진의 말에 원승환도 유훈을 보았다.
“편하게 한 잔 더 하시죠. 이렇 게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렇습니 다.”
유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디 한 번 먹고 죽어 보죠.”
“그럽시다. 강진아, 우리 먼저 올라간다.”
“필요한 것 있으면 전화하세 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손을 들 어 보이고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그 뒤를 원승환과 유훈이 따라가자, 강진이 임지은을 보았 다.
“작전 성공이네요.”
강진의 말에 임지은이 환하게 웃었다.
“자! 그럼 이제부턴 지은 씨 드 시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볼까 요?”
말을 한 강진이 주방에 들어가 서는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꺼냈 다.
강진이 처음 꺼낸 것은 커다란 닭이었다. 일반 닭과 다르게 껍 질에 살짝 노란빛이 돌고 있었 다.
“닭 엄청 커요.”
“노계예요. 이게 또 엄청 질기
거든요.”
강진의 말에 임지은이 웃었다. 강진에게 질긴 음식을 먹고 싶다 고 했더니…… 노계를 준비한 것 이다.
“질겅질겅 씹어 먹기 딱 좋겠네 요.”
“이거 먹으면 이빨에 고기 잔뜩 끼니 그 고기 빼 먹는 재미도 있 을 거예요.”
다소 더럽다고 느낄 수도 있지 만…… 임지은은 웃음이 나왔다.
이빨에 고기가 끼는 걸 겪어 본 게 수십 년도 더 전이었다.
“남에게 주기 아까운 고기죠.”
임지은의 농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 는 냉장고에서 소갈비를 꺼내고 있었다.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고는 역 시 소갈비가 최고니 말이다.
그 외에도 질기고 씹을 수 있는 식재들이 하나씩 배용수의 손을 거치기 시작했다.
배용수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보던 강진이 시간을 보았다. 곧 11시였다.
그에 강진이 임지은을 보았다.
‘이제…… 몸을 만들어야지.’
“지은 씨, 눈 감으세요.”
눈을 감으라는 말에 임지은이 의아한 듯 강진을 보았다. 그러 다 강진의 진지한 눈을 본 임지 은이 눈을 감았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면서
강진은 임지은이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도록 도와야 할지 고민하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훈이 씨와 1박 2일 놀러 갔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눈을 감고 있는 임지은의 입가 에 미소가 어렸다.
“훈이 씨 뭐하고 있어요?”
“숙소 앞에 있어요. 후! 훈이가 방이 하나밖에 없다고 당황해해 요.”
“남녀가 놀러 가면 꼭 방이 하
나밖에 없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 군요.”
임지은의 마음을 가볍게 해 주 려고 강진이 농을 하자, 임지은 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제가 화를 내면서 방에 들어갔어요. 안 그러면 훈이가 다른 숙소 찾겠다고 나갈까 봐서 요.”
임지은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 었다.
“그리고 씻는다면서 훈이 나가
있으라고 하고…… 어제 새로 산 속옷으로 갈아입었죠. 지금 생각 해 보면 훈이는 정말 방 두 개 잡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엄청 당황해 했고 미안해했거든요.”
웃으며 그때 기억을 더듬는 임 지은에게 강진이 물었다.
“그때 행복하셨어요?”
강진의 말에 임지은이 미소를 지었다.
“행복하기도 했고…… 많이 설 렜어요.”
미소를 짓는 임지은의 머릿속에 거울을 보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 랐다.
새로 산 속옷을 입은 채 얼굴을 살짝 붉히고 있는 모습 말이다.
‘그때 나 정말 예뻤는데……
거울 속의 자신을 떠올리며 미 소를 짓던 임지은의 귀에 헛바람 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헉!”
“아이고야!”
그에 임지은이 눈을 떴다. 그러 자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강진과 배용수가 보였다.
똑같은 자세로 서 있는 두 사람 을 보던 임지은이 배용수를 다시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수 씨 모습이?”
방금 전까지 피를 홀리던 배용 수가 지금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옷 도 바뀌어 있었다. 피에 절은 옷 에서 멀쩡한 옷으로 말이다.
임지은이 놀란 눈으로 두 사람 을 볼 때 뒤에서 여자의 고함이 들렸다.
“뭘 그러고 서 있어요! 어서 뒤 돌아요!”
이혜미의 외침에 강진과 배용수 가 급히 몸을 돌렸다.
“험!”
“미…… 미안해요.”
둘이 급히 몸을 돌리는 것과 동 시에 임지은의 몸에 담요가 걸쳐 졌다.
“어?”
자신의 몸에 걸쳐지는 담요를 멍하니 보던 임지은의 얼굴이 굳 어졌다.
자신이 속옷만 입고 있었기 때 문이었다. 그것도 유훈과 여행을 가는 날을 대비해서 입었던 검은 색 속옷 차림이었던 것이다.
“꺄아악!”
급히 몸을 숙이며 쪼그리는 임 지은의 모습에 이혜미가 한숨을 쉬었다.
“사장님, 올라가서 지은 씨 갈 아입을 옷 좀 가져다주세요.”
“위에…… 여자 옷 없는데.”
“추리닝 바지에 티셔츠 아무거 나 가져오세요.”
“아…… 알겠어요.”
강진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 며 주방을 나왔다. 가게 안에는 이미 귀신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 사장!”
“이 사장 얼굴이 왜 그래요?”
“어디 아픈가? 왜 이리 빨개?”
자신의 얼굴을 본 귀신들이 의 아한 듯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 를 저었다.
“일단 술 드시고 계세요!”
그러고는 서둘러 2층으로 올라 갔다.
2층에 올라간 강진은 거실에서 술을 먹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 다. 그들은 어느새 편한 복장을 한 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왜 올라왔어?”
“가지고 갈 것이 있어서요.”
황민성의 말에 빠르게 답을 한 강진이 방에 들어가 추리닝 바지 와 박스티를 하나 꺼냈다.
스윽!
강진이 옷을 챙길 때, 황민성이 따라 들어와서는 슬며시 물었다.
“현신했어?”
“네.”
“그 아픈 모습으로?”
이제는 귀신들의 생리에 어느
정도 아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장 생기 넘치던 모습으로 현 신하셨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네. 그러고 보니 소희 아가씨는?”
“오늘은 안 오신 것 같아요.”
강진의 답에 황민성이 거실을 한 번 보고는 물었다.
“만날 수는 없는 거겠지?”
“어렵죠.”
황민성은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 다.
“어서 맛있는 음식 해 드려라.”
황민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서둘러 내려갔다. 주방에 들어간 강진은 굳은 듯 서 있는 배용수와 쭈그려 있는 임지은을 볼 수 있었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돌리고는 옷을 주었다.
“일단 이거 입으세요.”
이혜미가 옷을 대신 받아서는 임지은이 옷을 입는 걸 도와주었 다.
“이제 됐어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임지은이 자신의 옷을 입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많이 놀라셨죠?”
임지은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왜 속옷만 입고......
당황과 민망함에 얼굴이 잔뜩 붉어진 임지은을 보며 강진이 말 했다.
“일단 홀로 가세요. 1시까지 시 간이 제한돼 있으니 음식 먹으면 서 이야기해요.”
이야길 듣던 이혜미가 그녀를 데리고 홀로 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나온 강진은 귀신들에 게 주문을 받았다.
모든 주문을 받고 주방에 들어
온 강진은 자욱한 연기에 눈을 찡그렸다.
보니 배용수가 프라이팬에 소갈 비를 꾸욱! 꾸욱! 누르고 있었다.
“고기를 왜 그렇게 구워?”
“이렇게 구워야…… 질겨진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소갈비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음식을 맛 있게 만드는 것을 우선시하던 그 가 지금은 오히려 음식을 질기게 만들려고 살짝 태우고 있는 것이 다.
“아주 질기게 구워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음식을 일부러 질기게 만 들 줄은 생각도 못 했네.”
고개를 저은 배용수는 고기를 다시 꾸욱! 꾸욱! 누르기 시작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