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5 화
“저승식당? 무슨 식당 이름이 그래?”
강 회장은 눈을 찡그렸다. 식당 이름이 저승이라니, 마치 손님들 에게 여기 오지 말라는 듯한 가 게 이름이 아닌가?
강 회장의 중얼거림에 장은옥이 말했다.
“귀신들 밥 주는 가게 사장님이 세요.”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귀신한테 밥을 주다니?”
그러고는 강 회장이 장은옥을 미심쩍은 눈으로 보았다.
“사기 당한 것 아냐?”
“아니에요.”
“착해 빠져서는 내가 준 돈 도 시골 사는 그놈들한테 다 뜯 기고 말이야.”
장은옥에게 미안한 감이 있던 강 회장은 그녀에게 한 밑천을 주었었다.
그런데 장은옥은 그 돈을 시골 에 사는 부모님 땅과 동생들 학 비로 다 써 버렸다.
강 회장이 입맛을 다시고는 강 진 쪽을 볼 때, 그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 는 것에 강 회장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나한테 하는 건가?”
“여사님한테 제 이야기 들으시 는 것 같은데……
강 회장과 장은옥이 자신을 보 며 뭐라고 하는 것 같아 온 것이 다.
“그럼…… 정말 귀신에게 밥을 주는 식당……이 있는 건가?”
“저승식당 이강진입니다.”
“허……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는 강 회 장에게 강진이 말했다.
“강상식…… 씨와 친하게 지내 고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강 회장이 잠시 강 진을 보다가 말했다.
“상식이가 내 아들인 것을 아는 군?”
“여사님께 들었습니다.”
강진의 말에 강 회장이 장은옥 을 보았다. 질책이 담긴 그 시선 에 장은옥이 급히 고개를 숙였 다.
“죄송합니다.”
장은옥이 사죄하자 강 회장이 그녀를 보다가 강진을 보았다.
“알려져서 좋을 것 없으니 비밀 지켜주게.”
“이미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다 알려진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저쪽에 있는 사람이……
강진이 황민성을 가리키자 강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 대표는 나도 알고 있네.”
“민성 형 말이, 상식 씨가 회장 님 아들이라는 소문이 그쪽 바닥
에 퍼져 있답니다. 그리고 민성 형도 알고 있었고요.”
“그런......"
강 회장은 눈을 찡그리고는 힐 끗 강상식을 보았다.
“그럼…… 저 아이도 들어 봤겠 군.”
“알고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강 회장이 작게 입 술을 깨물었다.
‘상식이가 알고 있었다……
그는 강상식이 자신에게 가끔 보였던 표정들을 떠올렸다.
‘알고 있어서 그랬던 건가?’
잠시 입술을 깨물고 있던 강 회 장이 강진을 보았다.
“상식이가 연락을 해서 온 건 가?”
“상식 씨와 오늘 한잔하려고 했 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건가?”
“회장님 돌아가신 것을 민성 형 이 알았습니다.”
강진의 대답을 들은 강 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의료진 입은 단단히 틀어막았 는데…… 황 대표 정보력이 대단 하군.”
강 회장이 감탄 어린 눈으로 황 민성을 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왔다고?”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 들었는데 보러 와야죠.”
강진의 말에 강 회장이 그를 보 다가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뭔 가 찾는 것처럼 몸을 더듬거리다 가 입맛을 다셨다.
“내가 죽어서...... 지갑이 없 군.”
친구로서 왔다는 말이 기특해서 용돈이라도 좀 주려고 했는 데…… 귀신이라 지갑이 없었다.
“괜찮습니다.”
“아니야.”
강 회장은 강진을 보다가 말했
다.
“왕 비서라고 내 비서가 있는데 그 친구한테 내가 주라고 했다고 하고 용돈 좀 받아.”
강 회장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저었다.
“회장님은…… 돌아가셨습니
다.”
“자네는 살아 있지.”
내가 그걸 모르겠냐는 듯 고개 를 까닥인 강 회장이 말을 이었 다.
“내가 몇 마디 알려 줄 테니 그 대로 말을 해. 그럼 돈을 내어 줄 거야. 자네 말대로 친구 아버 지로서 용돈이라도 좀 주고 싶어 서 그런 것이니 편하게 받아.”
강진은 그를 보다가 고개를 저 었다.
“아들 친구한테 용돈 주고 싶은 마음 이해합니다만…… 귀신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려면 돈이 들 어갑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후! 나는 돈을 걱정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네.”
강 회장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죽은 지 얼마 안 돼서 상황 파 악이 아직 안 되시나 보구나.’
살아서야 오성그룹 총수로서 돈 걱정하지 않은 채 살았을 것이 다. 하지만 죽었으니 돈 걱정하 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이 죽으 면 그를 인도하는 JS 직원들이 오는데, 웬일인지 보이지가 않았 다.
그에 강진이 장은옥을 보았다.
“JS 직원들은요?”
“아까 오셨다가 일단 가셨어 요.”
“ 가요?”
“장례식을 바로 치르지 않는다 는 것 알고는 다른 일 좀 보고 오신다고 가셨어요. 장례식 시작 하면 그때 서류 작업 하신다고 요.”
장은옥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그럼 장례식 전까지는 뭐 어떻 게 하라는 말 없었어요?”
“별말 없으시던데요.”
“이렇게 그냥 두고 간다고요?”
강진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 거리자, 강 회장이 고개를 끄덕 였다.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 두고 가다니…… 흥! 인턴이 사람 보 는 눈이 없어.”
강 회장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 인턴요?”
강진의 말에 장은옥이 답했다.
“JS 금융에서 인턴 분이 왔다 가셨어요.”
“직원도 아니고 인턴?”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던 강진은 문득 강 회장을 보았다.
‘아…… 부자가 천국 가기 어렵 다고 하더니……
으는 철저하게 JS 금융에 저금 이 되어 있는 돈에 따라 대접을
해 준다.
JS 금융에 저금이 많이 되어 있 으면 VIP로서 대접을 극진히 주 고, JS 금융에 돈이 없으면 서비 스 같은 것은 전혀 받을 수 없 다.
그런데 JS 금융에서 직원도 아 니고 인턴이 왔다면…… 강 회장 의 JS 계좌엔 잔금이 바닥인 모 양이었다.
이승에서 거대 그룹 회장으로 살았어도, 죽은 후에는 지은 죄 에 따라 대접을 받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승에 아무 리 돈이 많아도 죽으면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고개를 젓는 강진에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강진 씨!”
고개를 돌린 강진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강두치를 발견했다. 그 런데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시 기에 조금 맞지 않게 두꺼운 패 딩을 입은 초로의 노인이 강두치 와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일하시는 중이세요?”
“VIP 모시고 장례식장에 식사하 러 가는 길입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노인을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VIP를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이런 인사는 이 상하지만, VIP라고 하니 만나서 반갑기는 했다.
VIP라면 소에서 인정한 착한 사 람이니 말이다. 강진의 인사에 노인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사람이신 것 같은데…… 저희 가 보이십니까?”
노인의 말에 강두치가 짧게 설 명을 해 주었다.
“……그래서 이 사장님은 귀신 을 볼 수 있습니다.”
“귀신에게 밥을 해 주는 식당?”
“귀신들에게는 아주 맛집입니 다. 귀신들에게 특화된 손맛이거 든요.”
“아…… 그래요?”
노인이 입맛을 다시는 것을 보 던 강두치가 강진을 보았다.
“사장님, 혹시 괜찮으시면 이따 가 저희 VIP 드실 식사 한 끼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분 드시게요?”
강진의 물음에 강두치가 노인을 보며 말했다.
“이분이 무연고자라…… 장례식 을 따로 치르지를 못 했습니다.”
무연고자라는 말에 강 회장이 노인을 힐끗 보았다. 그 시선에
노인이 작게 고개를 숙이자, 강 회장이 고개를 돌렸다.
그런 강 회장을 강두치가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무연고자라 시신을 인도할 이 를 찾을 때까지 병원에 오래 계 셨습니다. 그동안 병원 장례식장 에서 남의 제삿밥만 드셨지, 자 기 제삿밥을 못 드셨어요. 내 제 삿밥이나 남 제삿밥이나 저승식 당 주인이 한 것 아니면 다 거기 서 거기지만…… 그래도 가시기 전에 자신을 위해 제대로 차린
한 끼를 드시고 가셨으면 합니 다.”
그러고는 강두치가 고개를 숙였 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그렇게 하시죠.”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노인
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괜찮은데……
“VIP의 편의를 봐 드리는 것이 제 일입니다.”
강두치가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말했다.
“그런데 저는 여기 잠시 있다가 가야 하는데…… 시간 되시겠어 요?”
“이분이야 남는 것이 시간입니 다. 그럼 이따 뵙죠.”
강두치가 웃으며 몸을 돌리려 할 때, 강 회장이 입을 열었다.
“거기 잠깐.”
강 회장의 부름에 강두치는 신 경도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강 회장이 눈을 찡그 리며 강진을 보았다.
가서 부르라는 것이었다. 그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상식 씨 아버지만 아니면……
강진은 결국 강두치를 불렀다.
“강두치 씨.”
강진의 부름에 강두치가 그를 돌아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강 회장을 보았다.
강진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 아 는 것이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강두치의 말에 강 회장이 뒷짐 을 진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서비스를 해야 할 직원 이 없네.”
“기다리십시오. 기다리면 담당 직원이 올 겁니다.”
그러고 다시 몸을 돌리려 하자, 강 회장이 눈을 찡그렸다.
“VIP를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건 가?”
“VIP?”
강두치는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 다.
“혹시 담당 직원이 고객님에게 VIP라고 했습니까?”
“그건 아니네.”
“그럼 다른 누가 고객님에게 VIP라고 하였습니까?”
강두치의 말에 강 회장이 눈을 찡그렸다.
“내가 VIP가 아니면 누가 VIP 인가?”
강두치는 옆에 있는 노인을 가 리키며 말했다.
“여기 계신 분이 VIP입니다. 그 리고 고객님은……
강두치가 그를 보며 웃었다.
“그냥 일반 고객입니다.”
그에 강 회장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왜 무연고자 노인네는 VIP이고 나는 일반등급인가?”
강 회장의 불만에 강두치가 힐 끗 강진을 보았다. 강진이 배려 를 하는 귀신인 것 같아서 이야 기를 하고 있는 거지, 아니었으 면 그냥 갔을 터였다.
자신이 담당하는 귀신도 아니니
말이다.
잠시 강 회장을 보던 강두치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어디 론가 전화를 걸었다.
“인턴, 당장 튀어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 버 리는 강두치의 모습에 강진이 입 맛을 다셨다.
‘이승이고 저승이고…… 인턴이 동네북이 네.’
인턴을 해본 강진으로서는 JS 금융 인턴이 불쌍할 뿐이었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희 미한 빛과 함께 강두치와 비슷한 검은 정장 차림에 가슴에 인턴이 라 써진 노란 명찰을 찬 청년이 나타났다.
“인턴 강두병!”
기합이 잔뜩 든 강두병의 외침 을 들은 강두치가 강 회장을 보 았다.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인턴에 게 물어보십시오.”
그러고는 강두치가 강진에게 웃
으며 말했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아......" 네.”
강두치는 서늘한 눈으로 강 회 장을 한 번 보고는 노인 귀신에 게 미소를 지었다.
“일단 장례식장 가서 요기라도 하고 저승식당을 가는 걸로 하시 지요.”
“아……
강두치의 말에 노인이 강 회장
을 보았다.
“저기, 같이 가시겠습니까?”
노인의 권유에 강 회장은 신경 질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됐소.”
그에 노인은 고개를 한 번 숙이 고는 강두치와 함께 장례식장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두치가 멀어지자 인턴 강두병 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강 회장 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