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8화
〈발설복숭아사탕〉
사탕을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이거 먹으면 얼마나 귀신을 보 게 되는 거야?”
“이 정도면 두 시간 정도일 거 예요.”
전에 김충호가 서천소주를 한 잔 마셨을 때 두 시간 정도 귀신
을 보았다.
양으로 따지면 소주 한 잔이 사 탕 하나보다 많을 테니 아마도 그것이 최대일 것이다.
발설복숭아사탕을 만지던 황민 성이 말했다.
“귀신 많이 무섭나?”
“정말 엄청 무섭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슬며시 황민성 이 쥔 사탕을 손으로 잡았다.
“그냥 회장님하고 하실 이야기
있으면 제가 중간에서 통역해 드 릴게요.”
“사업 기획서 팩스로 받고, 투 자 미팅 전화로 해도 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지. 직접 보고 이 야기를 나누고 결정을 해.”
황민성은 강진을 보며 말을 이 었다.
“사람을 봐야 서류에 없는 것을 볼 수 있고, 전화로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어.”
“그런데 뭘 아시려고 하세요?”
“강 회장이 상식이에게 남긴 유 산.”
“그거야 오성화학 아니에요?”
황민성은 고개를 저었다.
“강 회장에게 상식이는 아픈 손 가락일 거야. 그럼 상식이를 위 한 안배가 더 있을 거고. 그게 뭔지 알면 상식이가 조금 더 빠 르게 클 수 있어.”
황민성은 강 회장하고 직접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저승 음식을 하나 가지고 오라고 했었다.
강진은 당연히 안 된다고 거절 을 했었다. 귀신을 보는 것은 일 반인에게 좋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황민성이 강경히 나오는 바람에 일단 가지고 온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는 귀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라, 귀 신을 보는 것 외에는 몸에 부작 용이 없을 것이었다.
사탕을 보던 황민성이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 모습에 강 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럼…… 귀신을 봐도 너무 무 서워하지 마세요. 그냥 불쌍하게 구천을 떠도는 이들일 뿐이에요. 생긴 것만 무섭지, 일반 사람하 고 똑같아요. 인상 더러운 사람 이다 생각하시면 마음이 좀 편할 거예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공을 보았다.
“용수 어디 있어?”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그의 옆에 섰다.
“형 옆에 있어요.”
그에 황민성이 자신의 옆을 보 았다.
“어디 가지 말고 꼭 내 옆에 있 어. 형 무서우면 네가 지켜줘야 지.”
“근데…… 제가 좀 더 무서울 텐데요.”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 말마따나 무척 무서 운 외관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 다.
“용수 귀신 모습도 무서워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 었다.
“동생을 무서워하는 형이 세상 에 어디 있어? 내 동생은 안 무 섭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배용수가 있 는 곳을 보았다.
“형이 너 안 무서워할 자신은 있는데…… 놀라기는 할 것 같 다.”
“이해해요.”
배용수가 쓰게 웃는 사이, 황민 성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무서워서가 아니 라 그냥 놀라서일 거야. 그러니 까 기분 상하거나 하지는 마. 그 저 놀라서 그런 거니까.”
혹시라도 자신이 배용수를 보고 기겁을 하면, 그의 마음이 상할 까 싶어 미리 이야기를 하는 것 이다.
황민성이 누차 이야기하자 배용 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 진이 배용수의 말과 행동을 설명
해 주자 황민성이 장례식장 쪽을 보았다.
“ 가자.”
황민성이 장례식장 쪽으로 걸음 을 옮기자 강진과 귀신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귀신들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 하는 강진의 눈에 기자들이 사진 을 찍고 촬영을 하는 것이 보였 다.
오성그룹 회장의 장례다 보니 많은 기자가 몰려온 것이다.
그것을 보던 강진에게 한 남자 가 다가왔다.
“사람 하나 죽은 건데 뭘 이렇 게 와서 난리인지 모르겠습니 다.”
남자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 다.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 는 JS 시설 관리국 직원이었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허공을 보며 인사를 하 는 것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며 슬쩍 옆으로 피했다.
그런 황민성을 힐끗 본 직원이 웃으며 강진에게 말했다.
“서울 저승식당 사장님이지요?”
“이강진입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조 문하러 오셨습니까?”
“강 회장님 자제 중에 아는 분 이 있어서요.”
“안에 들어가면 사람들 엄청 많 습니다. 조심히 조문하고 가세 요.”
미소 지은 채 인사한 직원은 장 례식장 입구에 가서 오가는 귀신 들을 살폈다.
“귀신?”
황민성이 묻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JS 시설 관리국 직원요.”
“시설 관리국 직원?”
“장례식장 같은 곳은 저승에서 도 따로 관리를 하거든요.”
“저승에서 하는 일이 많구먼.”
“귀신들 오가는 곳은 다 그쪽 관할이라고 할 수 있죠.”
두 사람은 이야길 나누며 장례 식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례식장 안에 들어간 강진은 길게 늘어선 줄을 볼 수 있었다.
“줄이 엄청 기네요.”
“오성그룹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어? 그리 고 오성그룹 계열사에 하청 업체 들까지 하면…… 장난 아닌 거
지.”
황민성은 고개를 젓고는 계속해 서 걸음을 옮겼다.
“형, 우리도 줄 서야 하지 않아 요?”
“줄 서서 언제 들어가.”
“새치기하시게요?”
“새치기는 새치기인데…… 그런 새치기는 아니지.”
황민성은 장례식장을 보며 말했 다.
“상식이 보고 나오라고 했다가 같이 들어가야지.”
“아……
강진이 조금 미안한 듯 줄을 보 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들 대부분은 강 회장님 이나 오성그룹 사람들하고 일면 식도 없어.”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웃으며 답했다.
“강 회장님이나 오성그룹 사람 들하고 아는 사람들이면.... 이
렇게 줄을 서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아…… 이승의 VIP 라는 거군 요.”
“그렇지.”
그러고는 황민성이 사람들을 보 았다.
“저 사람들은 그냥 이번 기회에 잘 보이려고 온 거야. 그러니 미 안해할 필요 없어.”
강진과 황민성이 줄을 선 사람 들을 지나치며 빈소로 향하자 시 선이 쏠렸다.
빈소 앞에는 보디가드들이 서 있었다. 줄을 선 사람들을 관리 하며 기자들의 출입을 막던 보디 가드가 안으로 들어가려던 강진 과 황민성의 앞을 막았다.
보디가드는 다소 거칠게 막아선 것과 달리, 정중하게 고개를 숙 였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기분 나쁘지 않도록 최대한 친 절하게 말을 하는 보디가드에게 황민성이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 다.
“강상식 대표에게 황민성이 왔 다고 해 주십시오.”
황민성의 말에 보디가드가 명함 을 보고는 무전기에 말을 했다. 그러자 잠시 후 강상식이 피곤한 얼굴로 나왔다.
“오셨어요?”
강상식의 인사에 강진이 안쓰러
운 얼굴로 그를 보았다.
“잠 안 주무셨어요?”
“어제 병실에서 조금 잤습니 다.”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말했 다.
“대표 취임식은 언제야?”
“장례식 끝나고 해야죠.”
그러고는 강상식이 들고 나온 음료수 상자를 보디가드에게 내 밀었다.
“수고하십니다. 나눠 드세요.”
“감사합니다.”
보디가드가 그것을 급히 받아 들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미소 를 지었다.
‘확실히 사람이 됐네.’
음료수가 별것 아니기는 하지 만…… 이건 마음이다. 일하는 사람이 수고하는 것을 아는 마 음.
처음에 봤던 강상식이라면 이런 건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보디가드에게 고개를 숙인 강상 식이 강진과 황민성을 보았다.
“들어가시죠.”
강상식이 두 사람을 데리고 들 어가자,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부럽다는 듯 그 모습을 보았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간 강진은 북적거리 는 빈소 앞을 볼 수 있었다.
“조문하시죠.”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빈소를 보았다. 빈소 앞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조문을 하고 있었다.
그에 강진과 황민성이 줄을 서 서는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다 자신들의 차례가 되자 안으로 들 어가서는 강 회장의 영정을 보았 다.
영정 앞에는 강 회장, 강건희가 웃으며 앉아 있었다.
“왔어? 어서 와.”
강건희는 새벽 때와 달리 기분 이 무척 좋아 보였다. 아마도 자 신이 죽었다고 사람들이 많이 오
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런 강건희의 옆에는 장은옥이 앉아 있었는데, 무척 불편한 모 습이었다.
‘장은옥 씨는 왜 옆에 앉혀 놓 은 거야.’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황민성 과 함께 영정 앞에 절을 했다. 절을 두 번을 하고 일어난 황민 성이 상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황민성의 인사에 상주가 고개를
숙였다.
“황 대표님이 오실 줄은 생각 못 했습니다.”
“한국 경제의 큰 어른이 돌아가 셨는데 와야지요.”
“우리 집 상식이와 친하게 지낸 다고 들었는데……
상주가 힐끗 빈소 앞에 있는 강 상식을 보고 하는 말에 황민성은 별다른 답 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적의 어린 물음에 굳이 답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운 오리 새끼라……
황민성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아버 지가 집안일하는 여자를 건드려 서 낳은 아이이니 예뻐할 수 없 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황민성이 몸 을 돌리자, 상주가 눈을 찡그렸 다.
‘싸가지 없는 자식……
자신이 누구인가. 이제 오성그
룹의 총수인 강병용이다. 황민성 이 투자가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오성그룹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 닌 놈인데…….
굳은 눈으로 황민성을 보던 강 병용이 표정을 정리했다. 다른 문상객이 빈소에 들어왔으니 말 이다.
장례식장 한쪽에 자리를 한 강 진과 황민성은 식사를 하고 있었 다.
“그런데 아까 상주가 형 노려보 던데.”
황민성이 피식 웃었다.
“자기 무시했다 생각하는 모양 이지.”
황민성은 힐끗 빈소 쪽을 보고 는 말했다.
“그룹 총수라는 놈이 이런 작은 일로 감정이나 드러내고…… 오 성그룹 앞날도 위험하겠어.”
“그런데 괜찮겠어요? 저런 스타 일은 무시당했다 생각하면 보복
하려고 할 것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웃으며 손 을 흔드는 황민성의 얼굴에는 손 톱만큼의 걱정도 없어 보였다.
‘민성 형이 내 생각보다 더 거 물인 모양이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오성그룹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 은데, 황민성은 대놓고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강진이 황민성을 대단하다는 듯
볼 때, 그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냈다.
사탕을 꺼내 비닐을 뜯으며 황 민성이 물었다.
“주위에 귀신 많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슬쩍 주 위를 보았다. 주위 빈자리에는 귀신들이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 었다.
그러다가 사람이 오면 다른 자 리로 옮겨서 먹고 말이다. 그런 귀신들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장례식장이라는 곳이 죽은 자 를 위한 곳이니…… 꽤 많네요.”
“무서운 귀신은?”
“몇 있기는 한데…… 보통은 그 냥 일반 사람 같아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용수야, 내 옆에 있어라.”
“이미 그 옆에 앉아 있어요.”
강진의 답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주를 글라스에 따
랐다.
쪼르륵!
글라스에 한가득 소주를 따른 황민성이 숨을 길게 내뱉더니 단 숨에 마셨다.
꿀꺽! 꿀꺽!
저승식당에서 귀신들을 보기는 했지만, 그들은 다 저승식당 영 업시간에 와서 현신을 한 이들이 었다. 그래서 사람과 별다른 것 이 없었다.
현신하지 않은 귀신을 보는 것
은 이번이 처음이라 긴장이 돼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
냉수를 마시는 것처럼 소주를 한 잔 마셔 버린 황민성이 사탕 을 입에 넣었다.
아드득! 아드득!
사탕을 그대로 씹어 먹어 버린 황민성은 숨을 고르고는 옆을 보 았다.
그리고…….
우두둑!
황민성은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 었다. 주먹에서 뼈마디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에 배용수가 슬 며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 다.
“제가 좀 무섭게 생겼죠?”
배용수의 말에도 한참 동안 아 무 말 없던 황민성이 천천히 입 을 열었다.
“안 아파?”
“네?”
“안 아프냐고
말을 하며 황민성이 배용수의 얼굴에 흐르는 피를 만졌다.
움찔!
배용수가 고개를 옆으로 치우 자, 황민성이 그 얼굴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살았을 때 만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이 얼굴 어떻게 하냐.”
황민성은 사실 배용수를 보면 무섭지는 않아도 놀랄 거라 생각 을 했다.
강진이 한 말에 의하면 눈, 코,
입, 그리고 귀에서까지 피가 흐 른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직접 배용수의 얼굴 을 봤을 때 느낀 감정은……
안쓰러움이었다.
‘녀석…… 얼마나 아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