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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539화 (537/1,050)

539화

안쓰러운 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보는 황민성의 모습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머리를 긁 었다.

“안 아파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 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그와 동시에 황민성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배용수의 어깨를

잡자 손에 차가운 냉기가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곧 얼굴을 풀은 황민성 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아프다니 다행이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잔에 소주를 따라서는 그 앞에 밀었다.

“그래도 동생 이렇게 보니 좋 네.”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 다. 그러고는 소주잔을 들고 내 밀자, 황민성이 잔을 들어 가볍

게 부딪혔다.

장례식장에서 건배를 하는 것은 예가 아니지만, 상대가 귀신이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니 가 볍게 부딪힌 것이다.

스륵!

물론 황민성의 잔은 배용수가 든 불투명한 잔을 뚫고 지나갔지 만 말이다.

어쨌든 건배를 한 황민성이 소 주를 마시고는 슬쩍 앞을 보았 다. 강진의 옆에는 이혜미와 여

자 귀신들이 주르륵 앉아서 황민 성을 보고 있었다.

여자 귀신들을 본 황민성이 미 소를 지었다. 다만 그 미소에는 안쓰러움이 어려 있었다.

여자 귀신들 역시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배용수를 봤을 때와 비슷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 다.

“이렇게 보니 또 반갑네요.”

황민성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하는 말에 이혜미가 미소를 지었

다.

“고맙습니다.”

이혜미의 인사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을 보던 황민성이 슬쩍 주 위를 보았다.

그러자 이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귀신들이 보였다.

‘귀신이 많구나.’

사람들 사이사이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귀신들을 보는 황민성 에게 강진이 말했다.

“어떠세요?”

“그냥 안쓰럽네.”

“무섭지는 않고요?”

“귀신이 나 해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황민성은 여전히 귀신들을 보며 말했다.

“저승식당에서 현신한 귀신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딱히 무섭지는 않네.”

귀신조차 무서워서 오줌을 질질

쌀 만큼, 나쁘고 잔인한 놈들도 많이 봤던 황민성이었다. 그랬기 에 그는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 일 수 있었다.

귀신들을 보던 황민성이 배용수 를 보았다.

“가서 강 회장님 좀 모시고 와 라. 약발 떨어지기 전에 이야기 좀 하게.”

그에 배용수가 일어나서는 빈소 로 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 황민성이 소주를 한 잔

따라 마시고는 강진을 보았다.

“카스 요즘 우리 집 오는데 한 번 놀러 와.”

오동민 할아버지의 진돗개인 카 스가 적응도 할 겸 황민성의 집 에 놀러가는 모양이었다.

“카스 집 좋아해요?”

“어르신하고 요즘 우리 마당에 서 공놀이 하는데 좋아하더라.”

“어머니 좋아하시죠?”

“카스 쓰다듬는 것 좋아하셔.”

말을 하던 황민성이 입맛을 다 셨다.

“그런데…… 어르신하고 헤어지 면 카스 많이 힘들어할 것 같아 서 그게 좀 걱정이다.”

“그렇겠죠. 가족하고 헤어지는 건데.”

황민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 을 이었다.

“한 번 뒷산에 내가 산책도 할 겸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어르 신이 안 가는 것 알고는 꼼짝도

하지 않더라.”

“그래요?”

“처음에는 집 밖으로 데리고 가 니 좋아하더라고. 그런데 어르신 이 안 따라오니 뒷걸음질 치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 버렸어.”

“그랬군요……. 그런데 어르신 몸은 좀 어떠세요?”

“말로는 괜찮다고 하시는데…… 얼굴이 까맣게 타 들어가신 것 보니 안 좋아지신 모양이야.”

황민성이 고개를 저을 때, 강건

희가 다가왔다.

“하하하! 많이들 먹고 있나?”

강건희가 웃으며 와서는 강진의 옆에 털썩 앉았다.

“많이들 먹게. 이 음식들 백제 호텔에서 만들어서 가져온 거 야.”

백제 호텔은 오성그룹 계열사였 다.

“맛이 좋습니다.”

“그래? 많이들 먹어.”

말을 하며 강건희가 크게 웃었 다. 그런 강건희를 보던 강진은 문득 한쪽을 보았다.

강건희가 말을 하면서 연신 힐 끗거렸던 곳이었는데, 그곳엔 사 람들 틈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노인 귀신이 있었다.

오늘 새벽, 한끼식당에 강두치 와 와서 밥을 먹고 간 VIP 노인 귀신이었다.

‘신경이 쓰이나 보네.’

하긴 그럴 수밖에……. 자신과

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고, 지금 은 VIP이니 말이다.

강건희가 노인을 볼 때, 황민성 이 입을 열었다.

“회장님 이렇게 뵙게 돼서 유감 입니다.”

황민성의 말에 강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맙네.”

그러고는 강건희가 강진을 보았 다. 자신의 말을 황민성에게 전 달해 주라는 듯 말이다.

그런 강건희의 모습에 황민성이 말했다.

“저를 보시고 말씀하시면 됩니 다.”

황민성의 말에 강건희가 의아한 듯 그를 보다가 놀라며 말했다.

“내가 보이는 건가?”

“네.”

“헉! 설마 자네도 저승식당인가 뭔가를 하는 건가?”

황민성은 웃으며 작게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강진이 도움으로 잠시 귀신과 대화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리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이야기를 서둘러 했으면 합니

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강건희를 보 았다.

“상식이에게 남긴 유산이나 안 배 더 없습니까?”

“그걸 왜 자네가 묻나?”

“상식이가 형이라고 부르는 사

람이 오성화학 주식을 노리더군 요.”

황민성의 말을 듣자마자 강건희 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도 장례 식장에서 자식들이 강상식에게 주식을 팔라고 이야기하는 모습 을 보았다.

좋게 이야기하면서 가격을 쳐 주겠다는 자식부터, 네가 무슨 염치로 오성화학을 가지냐면서 대놓고 모욕하는 자식까지...

그래서 강상식에게 미안한 생각 을 하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강

상식이 이런 대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잠시 말이 없던 강건희가 입을 열었다.

“스위스에 내 비자금 계좌가 있 네.”

“그게 상식이에게 주는 유산입 니까?”

황민성의 물음에 강건희가 슬쩍 뒤를 보았다. 그의 뒤에는 장은 옥이 서 있었다.

그에 강건희가 손을 내밀어 그

녀를 옆에 앉혔다. 장은옥이 옆 에 앉자 강건희가 그녀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너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었 다.”

“회장님……

“그날…… 미안하다.”

장은옥이 고개를 숙이자, 강건 희가 말을 이었다.

“고개 들어라. 잘못한 건 나인 데 네가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 다.”

강건희의 말에 장은옥이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그런 장은옥을 보며 강건희가 말했다.

“네가 상식이 옆에 붙어 있었으 니…… 내가 상식이에게 네가 엄 마라고 알려 준 것을 알고 있겠 지?”

장은옥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련님은 이미 알고 있었어 요.”

장은옥의 말에 강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더군.”

“알고 계셨어요?”

“녀석이 자네 가족이 사는 곳에 가끔 들르는 것 보고 그럴 거라 생각을 했지.”

그러고는 강건희가 황민성을 보 았다.

“나 죽기 전에 상식이를 불러 은옥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 네. 그리고 은옥이 납골당이 있

는 곳도 알려 주었네.”

“납골당에 스위스 비밀 계좌 정 보가 있군요.”

황민성이 짐작을 한 듯 말을 하 자, 강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외롭고 힘이 들면 납골함에 있 는 편지를 읽어 보라고 했네. 그 리고 그 안에는 계좌번호와 비밀 번호만 맞으면 인출할 수 있는 돈으로 3천만 달러가 들어 있지. 그 정도면 상식이가 위기에 처했 을 때 한 번은 살아날 구명줄이 되어 줄 거야.”

“누가 편지를 먼저 보면 어떻게 합니까?”

“후! 은옥이 납골당은 상식이와 나만 알고 있으니 괜찮네. 그리 고 비밀번호는 상식이만 알 수 있는 조합이니 괜찮아.”

강건희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3천만 달러라면 한화 로 삼백억이 넘는 돈이다.

그 돈이면 강상식이 정말 위기 의 순간일 때 큰 도움이 될 것이 다.

하지만…… 황민성이 강건희를 보았다.

“그게 끝입니까?”

“후! 더 있어야 하는 건가?”

웃으며 강건희가 말을 하려 할 때, 배용수가 말했다.

“상식 씨 온다.”

강진은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강상식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 났다.

“제가 잠시 데리고 나갔다 올게

요. 마저 이야기 나누세요.”

황민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 건희와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 작했다.

한편, 강상식에게 다가간 강진 은 그의 앞에 멈춰 섰다.

“형.”

강진이 형이라고 하는 것에 강 상식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강진아.”

“손님이 정말 많아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웃으며 강상식이 황민성에게 가 려 하자, 강진이 그 손을 잡았 다.

“답답한데 밖에서 바람 좀 쐬고 들어오죠.”

“그럼 민성 형도 같이 가자.”

“형은 아까 아는 사람을 만나서 요.”

“혼자 있는데?”

“잠시 화장실 갔어요.”

“아…… 그래? 그럼 그러자.”

강상식은 몸을 돌려 밖으로 가 다가 냉장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 겼다.

“필요하신 것 있으십니까?”

직원이 급히 다가와 하는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저었다.

“볼 일 보세요.”

“제가……

“ 괜찮아요.”

웃으며 강상식이 냉장고를 열고 는 강진을 보았다.

“음료 뭐 마실래?”

“달달한 커피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냉장고에 서 달달한 캔 커피 두 개를 챙겨 서는 장례식장을 나섰다.

아직도 줄을 길게 서 있는 사람 들을 보며 강진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밥을 안 먹고 가나요?”

강상식이 보자, 강진은 사람들 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사람들이 많이 들어 오는데 밥 먹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강진이 앉은 식탁만 해도 한가 해서 이야기 나누기 불편하지 않 았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가족들하고 알거나 우리 가 직접 대접해야 하는 손님들은

그곳에서 식사하시고, 그렇지 않 은 손님들은 다른 식장에서 식사 를 하셔서 그래.”

“아…… 식장을 나눠서 받는군 요.”

“사람 나누는 것 같아서 그렇기 는 하지만…… 손님들이 너무 많 이 몰려서 말이야.”

그러고는 강상식이 줄을 서 있 는 사람들을 보았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 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족과 아는 지인들과 그저 인 사하러 온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 를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며 밖으로 나온 강진과 강상식은 커피를 마셨다.

“식사는 좀 하셨어요?”

강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 을 보다가 웃었다.

“평소에 아버지한테 의지한다는 생각은 안 들었거든?”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숨겨 놓은 아들이라 아버지가 나한테 자상한 모습 보인 적도 없고, 나한테 아들이라고 한 적 도 없었어. 그래서 아버지 돌아 가셔도 그리 힘들거나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많이 힘드세요?”

강상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좀 외롭다.”

외롭다는 말 이후로 잠시간 침 묵하던 강상식이 커피를 마시고

는 말을 이었다.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아버지 인데…… 다른 가족들은 날 남이 라고 생각하거든. 후! 그래서 이 제 혼자네.”

외로움이 진하게 느껴지는 강상 식을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강상식은 혼 자 손님들을 상대하거나 이야기 를 했지, 오성그룹 일가 사람들 은 그에게 다가오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강상식은 혼자였다.

강상식을 보던 강진이 힐끗 옆 을 보았다. 장은옥이 슬픈 눈으 로 강상식을 보고 있었다.

“도련님……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들을 보 며 슬퍼하는 장은옥의 모습에 강 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 다 슬며시 그녀의 옆에 서서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스윽!

자신의 손을 잡은 강진을 장은 옥은 간절한 눈빛으로 올려다보 았다.

“도련님과…… 친하게 지내주세 요.”

장은옥의 말에 강진의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

‘엄마가…… 내 친구 보고 하는 말 같네.’

자신의 엄마도 친구가 놀러 오 면 ‘강진이하고 친하게 지내.’라 고 했던 것이다.

그 점은 같지만…… 장은옥은 아직도 자신의 아들을 도련님이 라 부르고 있었다.

‘아들이라 부르세요.’

장은옥에게 강진은 차마 입 밖 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마음으로 나마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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