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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541화 (539/1,050)

541 화

오성병원이 있는 동네의 도로변 에 강진의 출장 저승식당이 영업 을 하고 있었다.

원래는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골 목에서 하려 했으나, 그런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 게들이 있는 곳에서 영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도로가에 오픈을 해 버린 것이다. 전에는 숨어서

했다면 지금은 대놓고 노점상을 하는 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귀신 들이 몰려든 탓에 사람들이 알아 서 피해가고 이쪽에는 시선도 주 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나가던 사람들이 음식 냄새에 주위를 좀 두리번거리기 는 했지만 말이다.

촤아악!

맛있게 익어가는 삼겹살을 가위

로 툭툭 자른 강진은 그것을 불 판 앞으로 밀었다.

촤아악!

그러자 푸드 트럭 앞에 서 있던 강건희가 젓가락으로 삼겹살에 김치를 올려서는 입에 넣었다.

뜨거운 김치와 삼겹살이 입안에 서 씹히며 고소한 기름이 쭈욱 흘러나왔다.

거기에 김치의 매콤한 맛이 입 안에 퍼지자 강건희의 얼굴에 절 로 미소가 떠올랐다.

“좋다.

기분 좋은 얼굴로 강건희가 삼 겹살을 김치에 말아서는 다시 먹 었다.

“이런 것도 잘 드시네요?”

강진의 말에 강건희가 그를 보 았다.

“왜, 나는 이런 것 못 먹을 줄 알았나?”

“고급 음식만 드실 줄 알았죠.”

“후! 재벌이라고 먹는 것이 별

다른 것은 아니지. 그리고……

강건희는 삼겹살과 김치를 들었 다.

“의사 놈들이 삼겹살은 지방이 많아서 먹지 말라 하고, 김치는 염분이 많고 자극적이라 먹지 말 라 하고…… 그래서 정말 오랜만 에 먹어 보는 맛이야.”

웃으며 삼겹살과 김치를 입에 다시 넣은 강건희가 고개를 끄덕 였다.

역시 가장 맛있는 맛은 오랜만

에 먹는 맛이야.”

기분 좋은 얼굴로 소주도 한 잔 따라 마신 강건희가 미소를 지었 다.

“크윽! 좋다!”

그렇게 한참을 먹던 강건희는 힐끗 주위를 보았다.

현신을 한 귀신들이 음식을 먹 고 있는 모습을 보던 강건희가 옆을 보았다.

장례식장에서 본 노인이 자신처 럼 푸드 트럭 옆에 서서 강진이

구워주는 고기와 김치를 소주와 함께 먹고 있었다.

현신을 해서 귀신보다는 조금 사람답지만 살짝 뿌연 모습을 하 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강건희도 마찬가 지였다. 강건희나 노인이나 장례 가 끝나지 않아 완벽한 귀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저승식당에서도 현신이 완벽하게 되지 않고 반만 현신이 이뤄지는 것이다.

노인을 보던 강건희가 강진을 보았다.

“장례식장에 장례 치르는 이들 많던데 왜 나하고 이 노인네만 온 건가? 말을 안 전했나?”

장례식장에는 식을 치르는 귀신 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밥 먹으러 온 것은 자신과 그 무 연고자 노인, 딱 둘뿐인 것이다.

강건희의 물음에 강진이 답을 하려 할 때, 배용수가 다가오며 말했다.

“제가 식장마다 돌아다니면서 거기 귀신들한테 다 이야기했습 니다.”

“그런데 왜 안 오나? 이렇게 맛 있는 걸 그들도 맛을 보면 좋을 텐데?”

강건희가 고기를 먹으며 하는 말에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상중이잖습니까.”

노인이 말을 하는 것에 강건희 가 그를 보았다.

“우리도 상중이잖습니까.”

연배가 있어 강건희가 말을 높 이자, 노인이 한숨을 쉬며 그를 보았다.

그러고는 노인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쪽도 참…… 딱하군요.”

노인의 말에 강건희가 눈을 찡 그렸다. 그러고는 노인을 위아래 로 흩어보았다.

노인이 입고 있는 패딩에는 건 설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건설 사에서 직원들에게 주는 옷이었

다.

그리고 바지는 솜바지였다.

즉 완전 후줄근한 모습이었다. 그런 노인이 자신에게 딱하다고 하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쪽한테 딱하다는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닙니다.”

강건희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그를 보았다.

‘큰일이시네.’

그는 아직 자기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 지옥 참 많이 겪겠 다는 생각을 할 때, 노인이 웃으 며 말했다.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 다.”

작게 고개를 저은 노인은 소주 를 한 잔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여기에 오지 않는 장례식장 귀 신들은…… 상중이라서 오지 않 은 겁니다.”

방금 한 말을 똑같이 하는 것에 강건희가 재차 눈을 찡그렸다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도 상중인데.”

노인은 다시 소주를 따르고는 잔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다른 장례식장에 안 가 보셨습 니까?”

“남의 장례식장에 갈 이유가 있 습니까?”

“하긴…… 그렇군요.”

노인은 무연고자로 이곳에 있다 보니 장례식장을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밥을 얻어먹었다.

그러면서 본 장례식장은 참 슬 픈 곳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울며 슬퍼하는 것은 유가족만이 아니 었다.

죽은 사람, 망자 역시 슬퍼하고 우는 유가족들을 보며 같이 슬퍼 하고 우는 것이다.

그런 망자들을 떠올리며 노인이 입을 열었다.

“상중에 슬픈 건 유가족만이 아 닙니다. 죽은 사람도 슬프지요.”

말을 하며 노인이 장례식장 쪽

을 보았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그리워 하며 울고, 죽은 사람은 남겨진 자를 보며 울지요. 살아서 죽은 자를 보내든, 죽어서 산 자를 남 기든..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

보지 못하는 것은 같으니까요.”

고개를 저은 노인이 말을 이었 다.

“산 자도 상중이고, 죽은 자도 상중이니…… 배가 아무리 고프 다고 해도 밥 먹으러 나오고 싶 겠습니까? 게다가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있으니 조 금이라도 더 가족과 있고 싶은 겁니다.”

이야기를 들은 강건희가 입맛을 다시며 장례식장을 보았다. 그 말을 들으니…… 왜 노인이 자신 에게 딱하다고 한 건지 이해가 되었다.

강건희는 한숨을 쉬고는 잔을 들어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방금 전까지 입안에 짝하고 달라 붙으며 달달하던 소주가 역하게 느껴질 정도로 쓰디썼다.

“그래서 당신도 안쓰럽다고 한 겁니다.”

“도라면 그쪽은?”

강건희가 보자 노인이 한숨을 쉬었다.

“젊어서…… 가족을 사고로 잃 었습니다.”

“사고?”

강건희의 물음에 노인은 잠시 말이 없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제가 죽었다고 슬퍼할

사람도 없지요. 그리고…… 후! 제 식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인은 씁쓸한 눈빛으로 강건희 를 보았다.

“그런데 회장님은 그것이 아니 지 않습니까? 손님도 많아서 식 장도 제일 큰 곳을 하고, 그곳도 부족해서 다른 식장도 대절해서 쓰시고……

노인의 말에 강건희가 입맛을 다셨다. 그런 강건희를 보며 노 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회장님은 여기에서 식 사를 하고 계시군요.”

오성그룹 총수의 장례식인 만 큼, 강건희의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었다.

오성병원 장례식 중 가장 크고 좋은 곳에서 치러지고 있고, 오 는 손님들을 받기 위해 다른 식 장도 두 개나 따로 잡아서 손님 을 받고 있었다.

말 그대로 북적거리는 장례식이 었다. 하지만 노인의 말대로 강 건희는 이곳에서 삼겹살을 먹고

있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자신의 가족들을 보고 있는 것보다 여기서 삼겹살 을 먹는 것을 택한 걸 안쓰럽다 고 한 것이다. 다시는 보지 못할 가족들과의 시간보다 삼겹살을 선택한 강건희의 마음이 안타까 워서 말이다.

노인의 말에 강건희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분했다. 그리 고…… 인생이 후회가 되었다.

“ 하아.”

작게 한숨을 토한 강건희가 소 주를 한 잔 쭉 들이켜고는 노인 에게 잔을 내밀었다.

“강건희입니다.”

잔을 보던 노인은 고개를 끄덕 이고는 그것을 받았다.

“도규문입니다.”

인사를 나눈 강건희가 도규문에 게 소주를 따라주었다.

“안에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더 군요.”

장은옥이 승천을 하고 강건희는 씁쓸함을 느꼈다. 장은옥에게 미 안한 마음이 있지만, 그래도 죽 어서 아는 그녀를 보니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참죄 받을 생각이었지만…… 그랬다. 그러다 장은옥이 승천하 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외로웠다.

장례식장이…… 강건희에게는 답답했다. 자신의 죽음에 진심으 로 슬퍼하는 이는 자신이 곁을 내주지 않던 강상식뿐이었다.

그런 현실에 답답하고 미안하 고…… 화가 났다. 그래서 나온 것이다.

멍하니 있는 강건희를 보며 도 규문이 소주를 따라주었다.

쪼르륵!

잔에 소주를 채운 도규문이 말 했다.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고…… 상주한테 인사를 하려다가 이야 기는 들었습니다.”

인사?”

인사를 받지도 못할 사람에게 귀신이 인사를 하는 것이 의아한 것이다.

“상주가 우리 인사를 받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남의 장례식장에 서 밥을 얻어먹는데, 염치없이 그냥 먹고 갈 수 있겠습니까. 그 래서 밥 먹고 상주한테 인사를 하고 갑니다.”

도규문이 잔을 들자 강건희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그러곤 소주를 마신 도규문이 한숨을 쉬 며 말했다.

“자제분들끼리 말이 많더군요.”

도규문의 말에 강건희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장례식 내내 아 이들은 유산 분배 문제로 다투고 있었다.

-형이 한 것이 뭔데 회장 취임 이야.

-이놈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 야? 장자(長 r)가 회장이 되는 게 당연하지.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무슨

조선시대 이야기 하고 있어. 형 삼 년 전에 두바이 투자한 건 날 려 먹은 거 기억 안 나? 그때 날 린 것이 이천억이던가?

-이 자식이! 그게 내 책임이야? 국제 유가 때문이었잖아!

-국제 유가는 무슨. 사기 당한 거면서.

첫째와 넷째는 그룹 회장 자리 때문에 다투고, 다른 애들은 자 기 지분과 계열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다투고…… 손자들은 나 눠 준주식이 작다고 다투고

그나마 사람들 눈이 있어 큰 소 리를 내지 않지는 않았지만…… 지켜보던 강건희로서는 속이 터 질 노릇이었다.

아버지인 자신이 죽었는데 유산 때문에 자식들이 다투고 있으니 말이다.

작게 한숨을 쉰 강건희가 잔을 만지다가 도규문을 보았다.

“그쪽이 부럽습니다.”

도규문이 보자 강건희가 말을 이었다.

“자식이 없으니 돈 때문에 싸우 는 자식들 꼴 안 봐도 되지 않습 니까.”

강건희의 말에 도규문이 고개를 저었다.

“자식들이 싸우는 꼴 보기 싫어 서 하는 말이라면…… 넣어 두십 시오.”

그러고는 도규문이 잔을 들어

소주를 마시고는 한숨을 쉬었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남자에 게…… 할 말은 아닙니다.”

그에 강건희가 멈칫하다가 뒤늦 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사과 받겠습니다.”

그러고는 도규문이 강건희를 보 았다.

“회장님도 속이 많이 상하시겠 습니다.”

도규문의 말에 강건희가 입맛을 다셨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생각보다는 잘못 산 모양입니 다.”

“돈이 최고는 아니니까요.”

도규문의 말에 강건희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았을 때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돈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에야 깨닫는군요.”

말을 한 강건희가 한숨을 쉬자

도규문이 멍하니 있다가 입을 열 었다.

“후회는 늘 늦게 찾아오는군 요.”

아내에게 사랑한다 말을 자주 해 줄 걸, 자식들이 자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볼 것을…….

도규문이 씁쓸히 읊조리자 강건 희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 였다.

자신도…… 후회가 되었다. 장 은옥과의 일도 후회가 되었고,

강상식을 손자로 둔 것도 후회가 되었고, 돈을 벌겠다고 아득바득 살았던 것도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번 돈을 더 좋은 곳에 쓰지 못한 것도 후회가 되 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건희 가 한숨을 쉬었다.

‘참 바보 같이 살았구나…… 인 생사 다 후회라니.’

한숨을 쉰 강건희는 다시 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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